본교회메세지

2024년 11월 27일 수요예배 - 주님은 나의 연출자2 (행 24:1~27)

현상금 2024. 11. 27. 20:53

주님은 나의 연출자(24:1~27)

 

서론) 기도란 매 순간 주인을 바꾸는 것이고, 육신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다.

1) 왜냐? 우리는 오랫동안 3,6,11장의 본성과 그것을 받아 인본주의 이성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3,6,11장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동기를 갖고 보이는 것과 내 능력만 믿고 계산하며 처리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것이 설정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창 3,6,11장의 렌즈를 끼고 사는 것을 말한다. 나 중심과 육신의 욕구로 사는데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인본주의 체질로 사는데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 중심이다 보니깐 남에겐 비판적 사고를 하고 나 중심의 처세를 한다.

3,6,11장의 본성과 인본주의 이성의 판단으로 살아왔기에 살아온 만큼 체질되어 있다.

2) 임마누엘의 삶이 회복되고 성령의 통치받아야 잘못된 설정이 깨달아지고 기도 속에서 치유, 갱신, 회복된다.

문제가 와도 기도하면 하나님의 계획을 찾을 수 있다.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다. 성령의 통치를 받고 임마누엘을 기도로 누리면 문제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 상처를 안 받는다. 3,6,11장의 본성과 인본주의 이성으로 사는 것이 사탄의 함정에 빠진 거라는 사실을 진짜 알게 된다. 그래서 주객과 체질이 점점 바꿀 수 있게 된다.

3) 신앙생활은 결국 갈 2:20, 살전 5:16~18이 되는 거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도록 전환시키는 것이 기도다. 육신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바울은 이것이 되는 가운데 체포되었다. 그래서 오늘 본문처럼 감옥에 갇혀 있는데도 성령의 통치를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감옥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그의 연출자시고 언약의 성취자셨다.

 

1. 가이사랴 감옥에서 2

1) 벨릭스 총독은 죄가 없음에도 2년 동안 감옥에 구류해 놓았다. - 감옥에서 2년이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바울이 이미 주의 음성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일이 진전되지 않으면 조급증과 답답함과 불신앙이 들어올 수 있다.

2) 그러나 기도가 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릴 수 있다.- 성령께서 계속 영의 생각과 영의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는 성령 충만을 이미 여러 번 체험하였다. 그러니 바울은 이미 주객과 체질이 바뀌었고 자기 동기를 갖고 자기 욕구를 위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의 이루실 계획과 목적에 자신을 수단으로 드렸다. 이것이 주객과 체질이 전환된 사람의 모습이다.

 

2. 바울이 가진 믿음이 뭔가?

1) 절대 주권과 함께 주님이 연출하신다는 믿음이다.

그는 2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렇지만 대 로마 전도를 위한 중요한 기도 시간표를 가졌다. 2년이 딱 지나니, 하나님의 시간표가 되어 로마로 출발하게 된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바울은 로마에 가서도 재판받기까지 2년 가택 연금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때 그 중요한 옥중서신을 썼다. 그는 절대 주권과 주님이 연출하신다는 믿음을 가졌다. 1:6,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우리가 확신하노라2:13,14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2) 그렇기에 우리도 주님이 부르신 목적을 위해 주관 통치 연출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부르신 목적이란 하나님 소원을 위한 삶이다. 이를위해 각자의 천명, 사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육신의 생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내 감정, 내 생각에 빠지기 쉽다. 기도 속에서 계속 영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현실이 어려우면 이러다 바라는 게 안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 주님을 신뢰한다면망하면 망하겠습니다하는 고백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사탄은 패배하고 주님이 높임을 받으신다. 여러분은 3,6,11장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생각과 인본주의 이성으로 판단하며 살아온 체질이 사탄의 함정에 빠진 거라고 분명히 알아야 승리한다. 그 사람이 주객을 바꾸는 갈 2:20의 삶이 된다. 2:20이 되는 사람이 승리한다. 제자가 되어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전도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3. 전도 운동도 주님이 연출하신다.

1)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구원의 계획을 갖고 계시다.

1:4~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13:48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2)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출생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

주님은 그로 구원받도록 환경과 상황과 문제까지 연출하신다. 그것이 믿는데 기여하거나, 발판이 되게 하신다. 그래서 복음 듣고 믿도록 인도하신다. 거기에 여러분을 쓰시는 거다.

3) 여러분이 전도 현장에 들어가는데 주님의 연출을 믿고 들어가야 한다.

전도 현장에 들어가는데 만남을 연출하신다. 만남이 될 때 성령께서 전도자에게도 역사하시고 피 전도자에게도 역사하신다. 복음 전할 때 전도 대상자에게 성령께서 하나님께 대한 인식과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갖게 하신다.

4) 전도는 대상자의 이성에 설득하고 호소하는 게 아니다.

이성에 설득되어 믿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성에 설득한다고 해서 죽은 영이 살아나지 않는다. 성령께서만 죽은 영이 살아나게 하신다. 그러니 우리는 이성에 설득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영에 답을 주는 것이다. 진정한 고통의 문제의 원인과 그 결과와 그 해결책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을 사람과 안 들을 사람이 있다. 성령께서 연출하지 않는 사람은 이 복음이 안 들리고 관심도 없다. 상대방이 안 들으면 이 사람은 오늘 예비 된 사람이 아니구나 여기면 된다. 아닌 줄 확인하면 된다.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자, 자의 영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듣는 귀, 깨닫는 마음, 보는 눈을 여시사 하나님께 대한 인식과 회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영접케 하시는 것이다.

 

결론 여러분은 믿음의 전도를 해야 한다. 주님이 나의 모든 삶에 언약을 이루시는 연출자시다. 전도에도 주님이 연출자시다. 이 사실을 믿고 현장 들어가는 거다. 이론으로 배우지 말고 현장에서 믿음의 전도를 배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