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회메세지

2024년 12월 8일 주일예배 - 가이사에게 상소한 바울(행 25:1~12)

현상금 2024. 12. 8. 16:43

가이사에게 상소한 바울(25:1~12)

 

 

 

 

 

신앙생활에 있어서 시작은 언제나 영적 갈망이 필요하다. 영적 갈망이 없는 사람은 목마름이 없고 육신대로 살게 된. 영적 갈망이 있는 사람은 채움을 받는다. 5:3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뭔가? 영적인 은혜 없이는 못 살겠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영적인 은혜를 심히 갈망하는 사람이다. 5:6에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름을 얻을 것이라 했다. 이런 사람이 날마다 말씀과 기도하기를 사모하고 갈급함이 채워져서 기쁘고 만족한 상태가 된다. 그러면 삶이 행복해진. 주님과 그 나라 위해 살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이 생긴. 이 사람은 언약을 확실히 잡기에 나의 CVDIP가 만들어진. 목적 있는 인생을 살고 그게 열망이 되고 실현된다.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다. 가이사랴 감옥에서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감옥에 있는 상태였지만 갈급하거나 연약한 상태가 아니라 로마 복음화를 향한 열정과 열망이 가득찬 상태였. 이런 사람이 진정한 망대요 플랫폼이다. 이런 사람이 7,7,7 망대 여정 이정표를 간다. 오늘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가이사 앞에 상소하는 내용이 나온. 그는 로마 복음화라는 비전을 잡았기 때문에 상소할 수 있었다. 오늘은 내년도 임명이 있는데 임명받는 분들이 바울과 같은 비젼을 갖고 내년도를 준비하기 바란다.

 

1. 직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비젼에 잡혀야 한다.

1) 먼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권위가 심령으로 와 닿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말씀에 인생을 걸 수 있다. 직분자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가? 창조주의 말씀에 인생을 걸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우주를 통치하시며 자기 백성을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아담,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말씀으로 생명의 계약을 하나님과 맺었다. 그런데 사탄은 이것을 정면적으로 부정하는 말을 했다. 절대 죽지 않는다고 했고 오히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고 했다. 하나님 말씀이 선악의 기준인데 사탄은 교묘히 그것을 흐리게 하면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꼬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셨피조물이 살고 죽는 법칙과 질서를 다 창조하셨다. 말씀의 권위는 대단한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생명이고 불순종이 죽음이다. 사탄은 이것을 햇갈리게 만들었. 인간만이 유일하게 하나님과 말씀으로 인격적 교제가 가능한 존재로 지어졌다.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특별한 권한과 임무가 주어졌다. 하나님을 대리해서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탄이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하심이라고 꾄 것이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 결과 죄에 빠졌고 즉각 영적 저주, 환경의 저주, 육신의 저주가 초래되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새삼 깨달아져야 한다. 거기에 인생 거는 직분자들이 되기 바란다. 이스라엘 민족도 이 말씀의 순종 여부에 따라 흥망성쇠가 죄우 된 것이다. 그것이 여호수아 이후 사사시대, 왕정 시대, 포로 시대다. 인간이 영이 죽은 인본주의 이성으로 살다 보니깐 인본주의 이성으로 말씀을 판단하고 있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인간 이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믿고 안 받아들여지는 것은 안 믿는 상황이다.

2) 오늘 본문

바울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알고 믿었. 그는 성령에 매인 사람이었다(20:22). 성령에 매였다는 것은 성령께서 심령이 말씀에 잡히게 한 것이다. 이성적으로 알아듣는 것 하고 기도할 때 심령에 성령께서 믿어지게 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이성의 이해력과 심령에 와닿는 영의 생각이 다르다. 영의 생각으로 믿어지고 정립되고 확신되어야 된다. 이게 안 되면 말씀이 자기 것이 안 된다. 여러분이 문제, 사건 터지면 인본주의 이성에 근거하여 거의 사고를 한다. 성령으로 말씀 잡는 힘이 약하다. 인본주의 이성은 눈에 보이는 것과 자기 능력만 믿는다. 그러니 현실 문제에서 밀리게 된다. 인본주의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된다. 바울은 성령에 매인 바 되니깐 환란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하는데도 굳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벨릭스의 후임인 베스도 총독 앞에서 다시 재판받는 내용이 나온. 유대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게 해서 도중에 매복해서 살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가이사랴에까지 내려와서 재차 고소하게 되었다. 베스도는 유대인들을 의식하여,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재판받겠느냐 물었다. 그러자 바울은 가이사 황제 앞에서 재판 받겠다고 상소하였(9~10). 바울이 로마 시민권이 있었기 때문에 이 상소가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래서 이 재판이 바울이 로마로 가게 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주님이 말씀하신 행 23:11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2. 주님은 지금도 교회를 말씀으로 다스리고 계시다.

영의 말씀으로 다스리고 계시다. 교회는 주님의 말씀의 권위를 믿고 순종해야 한다. 성령께서 요 14:26~27을 성취하고 계신 것이다. 16:16 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백했다.

1) 그때 주님은 3가지 축복을 말씀해 주셨다(18~19).

(1)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다.

교회를 세우는 분은 누구신가? 전도, 선교를 이루는 분은 누구신가? 그리스도! 그런데 누구를 통해서 이 일을 하시는가? 베드로처럼 그리스도를 정확히 고백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 그리스도를 진짜 주인으로 인정하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세계 복음화 하신다. 이걸 확실히 믿기 바란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고, 전도 선교하기 위해 강단을 통해 적용 역사 성취될 말씀을 주신다. 물론 개인적으로 성경 읽을 때도 은혜 주신다. 강단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은 교회 전체가 공유하고 한 방향으로 나가도록 주신다. 성경을 읽을 때 자기 취향이 있기에 은혜받는 것도 다양하다. 그래서 교회가 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강단 통해서 말씀 주시는 거다. 일단 이것을 보편적으로 같은 방향 따라가도록 하신다. 여러분은 머리가 아닌 기도로 말씀을 자기에게 적용시켜야 한. 이게 되면 여러분을 통해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는 일을 하신다. 베드로가 실제 쓰임 받은 것처럼 말이다.

(2) 그런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그런 교회란 그리스도가 주인 되신 교회다. 그리스도께 믿음과 의탁과 순종하는 교회다. 음부의 권세사탄 죄 저주 지옥 권세를 말한다. 이것이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교회는 이걸 이기는 증인 되어야 한다. 그럴 때 현장에 사탄 죄 저주 지옥 권세 하에 잡혀있는 자들을 건져내는 일에 쓰임 받게 된.

(3)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하셨는데 교회가 이걸 누려야 한다.

열쇠는 어떤 의미에서 권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요 사신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자.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고, 살리고 죽이는 일에 권세 가진 대사이(20:21~23). 그런 우리에게 기도 응답의 권세도 주신 것이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셨.

지금 말한 3가지 축복을 오늘 임명받는 분들은 꼭 잡기 바란다. 3가지 축복을 붙잡고 강단 말씀의 흐름을 타면 말씀의 성취자, 실현자, 응답자가 된다. 말씀을 기도로 타야 한다. 이게 핵심이다. 강단 말씀을 타면 제가 성장하는 만큼 여러분도 같이 성장한다. 저와 중심이 통하고 비젼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제자가 된다. 그걸 교회 제자라고 한다. 여러분이 강단 말씀의 흐름을 타지 못하면 다른 흐름을 타야 한다. 그러면 갈등 된다, 제자란 중심이 통하고 비전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사람이. 저는 지난주에 어떤 권사님에게 그리스도의 심판대골인 지점으로 하여 같이 믿음의 경주를 하자고 말씀드렸다. 여러분이 하나님 소원을 함께 이루는 것이다.

 

3. 내년도 교회 방향과 직분자의 자세

1) 교회 방향은 하는 일에 승리하며 다락방 전도 운동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는 일에 승리하는 법은 그리스도가 일에도 주인 되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강단 말씀을 기도로 타면 이것이 가능해진다.

13장에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12 정탐꾼을 보내는 내용이 나온다. 똑같은 것을 보고 왔는데 10명은 불신앙의 보고를 했고, 2명은 믿음의 보고를 했. 그래서 보고가 달랐다. 10명은 거기에서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고 했다. 반면 2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것이.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하였다. 같은 걸 봤는데 왜 정반대로 얘기하는가? 눈의 차이다. 환경과 문제의 차이가 아니다. 영적 상태의 차이다. 그래서 강단 말씀을 기도로 타야 한다. 지식으로 타는 것은 힘이 없다. 이해력 가지고는 자기 본성을 뛰어넘지 못한다. 본성은 여전히 나 중심이니깐 복음 가지고도 남 비판하고 자기 방어하는 데 쓰게 된다. 지금 우리 앞에는 믿음의 눈으로 봐야 할 전도 현장이 있다. 영적 가나안 정복할 현장이 있. 믿음의 눈이 없으면 그 현장에 못 들어간다. 모두 안 믿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주님이 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생각을 갖지 못한다. 13장은 남의 얘기 아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2) 믿음의 눈이 있는 사람이 충성한다.

4:2에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충성이란 내 열심을 가지고 내 능력으로 충성하라는 말이 아니다. 성령님을 힘입고 믿어 순종하는 충성을 말한다. 여러분은 어떤 서리 집사, 어떤 중직자 되어야 하겠는가?

(1) 서리 집사 주일 성수가 기본이며 강단 말씀의 흐름을 타야 한다. 강단을 탄다는 것은 목회자와 중심, 비젼, 생각과 통하는 것을 말한. 앞으로 서리 집사 임명 기준주일 성수, 십일조 헌금, 기도로 말씀 흐름 타는 것이다. 여러분이 주관적인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강단을 통해서 주의 종과 통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제자로 준비되고 그 제자 중에 중직자가 나온다.

(2) 중직자 중직자는 말씀 흐름을 타는 교회 제자, 현장 제자 되는 사람이. 목사님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께 절대 복종하는 제자가 되는 것이다. 현장 제자란 업에서 승리하고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 통치를 구현하면서 전도 제자로 사는 사람이다. 지역장들은 전도와 다락방부터 다시 시작해라. 중고 교사들도 그렇게 하길 바란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실제적인 통치를 받으면 이 삶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감정, 생각을 성령님이 주시는 것과 구분하라고 했다. 주님께 의탁하고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주님이 계속 성령으로 이끄신다. 중직자가 본이 되기 바란다. 중직자가 그리스도 제자의 본이 되는 것이다. 내년에는 하는 일에 승리하면서 다락방 전도 운동 속으로 들어가기 바란다. 이 삶이 살아질 때 가장 행복한 삶이 된다.

 

결론

바울이 가이사 황제 앞에 상소하였다. 그는 감옥에 있었지만 확실한 비젼이 있었다. 여러분도 내년에 확실한 비젼을 가져라. 이걸 위해 연말에 한 주간 기도회를 하고자 한다. 국가적으로나, 교단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정말 기도할 때다. 기도 안 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으로 인도 못 받는다. 중직자는 당연히 기도회 나오기 바란다. 13장의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의 눈이 있어야 된다. 성령님이 그 눈을 허락하신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주신 세 가지 축복을 여러분에게도 주셨. 오늘 임명 받는 분은 이 축복을 누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