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회메세지

2025년 2월 2일 주일예배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 1:27~30)

현상금 2025. 2. 2. 15:05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30)

 

 

 

 

다음 달 11일부터 17차 집중훈련이 시작된다. 저는 그간 16번에 걸친 집중훈련을 해 오면서 계속 성령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니깐 자꾸 자신을 보는 눈이 열리더라. 저는 원래 3,6,11장의 본성과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며 합리적 이성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그렇게 많이 기도했음에도 이 체질은 참 오래고 깊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것이 분별되니깐 점차 이런 체질로 반응하지 않고 성령님으로 반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기도 체질이 될수록 성령님께서 이것이 분별이 되게 해 주신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이 기도다. 그러니 성령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성령님은 모든 능력의 근원이시기 의탁하면 나의 모든 문제를 감당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문제도 기회가 된다. 이걸 체험하게 되면 이건 대박이다.

저와 여러분은 삶의 배경도, 경험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가진 은사도 다르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은 똑같다. 주인이 같다. 똑같은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서 저와 여러분 속에 성령으로 통치, 인도, 역사해 주신다.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 생명 있는 사람은 누구든 집중하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다. 하루에 10분 기도하는 사람은 20분으로 늘려라. 하루에 한 번 기도하는 사람은, 두 번으로 늘려라. 두 번 기도하는 사람은 세 번 하고, 세 번 한 사람은 네 번으로 늘려라. 그러다 보면 3,6,11장의 본성과 체질이 보이고 그것으로 반응하던 것이 성령으로 반응하는 체질로 바뀐다. 메시지만 들어서는 안 된다. 깨닫는 은혜만 있으면 안 된다. 결단하며 실제 의탁해야 한다. 기도의 체질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만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래야 주님이 주인이신 것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된다. 바울은 갇혀있지만, 복음으로 살고 복음으로 힘 입어 살고 있었다. 이미 본 바대로 1장에서 그의 중심과 믿음이 어떤지를 빌립보 교인들에게 간증했다. 그는 요 4장의 생수의 삶, 7장의 목 마르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1장을 마치면서 이제 실천할 부분을 권면하고 있다. 오직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이다. 이걸 교회 안과 밖으로 적용하는 말씀을 주고 있다. 여러분이 다락방을 한다면 이건 양육 메시지에 해당한다.

 

1. 먼저 교회 안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에 협력하라는 것이다.

1) 여러분은 복음 신앙에 협력하고 있는가?

성도 간에 그렇게 하고 있는가? 계층 간에 그렇게 하고 있는가? 이것은 교회가 현장을 살리기 위해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주인이 안 되면 하나가 안 된다. 빌립보 교회에는 교인 간에 갈등이 있었다. 그럴수록 교회는 손해다. 이들이 복음을 분명히 체험했지만, 서로 안 맞아 갈등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빌 2:5~6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을 하고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과 같이 되셨고했다. 이 말씀이 교회 갈등을 배경으로 한 말씀이다. 4:2에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 라는 두 사람에게 권면하는 말씀이 나온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 같은 마음을 품으라하였다. 서로 안 맞으면 갈등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뜻, 한 마음을 품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2)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면 된다.

부부가 왜 갈등하는가? 살아온 배경과 경험이 다르다. 취향도 다르다. 그래서 그간 빠져있었던 사탄의 함정과 체질을 깨닫고 거기에 빠져나오면 가능하다. 바울처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면 문제가 문제 되지 않는다. 자기에게 걸리지 말고 서로 다양성과 시간표를 인정해 주면 된다. 사람들은 참 다양하다. 그러니 교인도 다양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디자인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설계하신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지체들이 장점을 가지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되면 된다. 그러면 교회가 세워지게 되고 하나님 소원의 통로가 된다. 우리는 현장을 살리기 위해 한 마음, 한 뜻 되어야 한다. 그게 복음의 신앙에 협력하는 것이다. 왜 교회에서 갈등하는가? 왜 집에서, 직장에서 갈등하는가? 안 맞는 사람 때문에 그렇다.그 갈등을 통해서 사탄의 통로가 되라고 하지 않으신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돼야 한다. 그러면 갈등도 기회가 된다. 내 중심이 깨지고, 내 그릇을 넓히는 기회가 된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안 되면 이렇게 안 된다. 3,6,11장 본성의 내가 살면, 안 맞는 사람은 다 내게 걸린다. 여러분은 3,6,11장의 본성과 그 체질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게 아담의 원죄를 타고나면서 셋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팅 된 체질을 주님이 피로 사시고 성령을 주신 것이다. 그러면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에 오면 체제가 바뀌었기에 싹 바뀌어야 한다. 한 두가 말씨 고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어릴 때 들어간 정서 같은 것은 안 바뀐다. 근데 우리는 성령께서 인간의 가장 깊은 영에 임재, 통치하시기 때문에 근본 뿌리 체질을 바꾸어 주실 수 있다. 오래된 각인도 풀릴 수 있게 하신다. 상처도 풀린다.

2. 둘째 교회 밖으로 대적하는 자들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1) 빌립보 교회를 어렵게 하는 외부 대적자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에 의해 이단이라는 핍박은 늘 있었다. 28절을 보면,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라고 하였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다면 핍박하는 자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핍박받는 성도에게는 구원의 증거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고 하였다. 핍박받는 일과 구원받는 일이 다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절대 주권 신앙을 가지고 담대해야 한다. 나를 핍박하는 자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거다. 하나님이 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불신자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 불신자의 재능과 재력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45:7에 보면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하였다. 욥기 1장에 보면 하늘 어전 회의가 열렸는데 사탄도 여호와 앞에 나와서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 하나님의 통제 속에 있다 이 말이다. 욥을 시험하는 것에 대한 허락도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주권 신앙을 가지고 담대해야 한다. 15:1 아브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하셨다.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하였다. 사실 바울은 그동안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과 테러와 살해의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건져주셨고 그 속에서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의 축복을 체험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되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2) 12:19에는 이런 말씀도 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아 주리라고 주께서 말씀 하니라”.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계시고 심판주가 계시다는 것이다. 부당한 일을 당했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너희가 복수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악을 행할 때 원수 갚음으로 악에 같이 빠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정의의 사도가 되어서 악을 처단하려고 하면 같이 악에 빠지게 된다. 세상에는 주인이 나 자신이기 때문에 내가 처리해야 한다. 주인인 당사자들끼리 처리해야 한다. 인본주의로 사는 세상은 부당한 일을 당했으면 복수해야 하고 손해봤으면 응징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심판하시기 때문에,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 주님과 일대일의 관계에 항상 서야 한다. 각각을 심판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상대가 죄를 짓는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관계해야 하는 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서 하나님의 배경이 되어 주시고 죽어서도 하나님의 보상이 되어 주신다.

산상수훈에 보면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하신다(5:44).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되어 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각각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쟁 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개인 간의 윤리다. 전쟁의 경우는 공공 윤리가 적용된다. 그 부분은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수요예배 때 말씀드리겠다.

 

3) 그래서 29, 그리스도 때문에 오는 고난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분과 소속 때문에 오는 고난이다(15:18~19). 고난을 이기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 3,6,11장의 본성과 체질로는 안 된다. 우리 본성은 없어지지 아니했다. 성숙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도 본성은 여전히 올라온다.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할 세 가지 이유를 말씀드린 적이 있다. 첫째 두 계열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두 가지 믿음이 가능하기 위해서이다. 셋째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30절에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했다. 바울이 자기의 모범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인 것과 하나님이 심판주 라는 사실을 실제 믿었다. 3,6,11장의 자신이 주인으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 사시는 삶을 살았다. 보좌 배경과 24시 임마누엘을 누렸다. 이것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결론 - 주님은 우리에게도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한다.

왜요? 교회가 하나 되어 힘 있게 전도 운동하기 위해서다.

1. 교회 내적으로는 한 뜻, 한 마음을 품으라고 하신다. - 다양성과 시간표를 인정하고 연합해야 교회가 세워진다. 그 힘 가지고 현장 살려야 한다.

2. 교회 밖으로는 핍박을 이기고 영적 가나안 정복하라 하신다. - 우리는 지금 핍박의 때에 있지는 않다. 이때 육신에 빠져 살아서는 안 된다. 세상 유행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 현장을 항상 영적인 눈으로 봐야 한다. 여러분이 세상의 빛이다. 평안에 안주하지 말고 하는 일에 승리하며 전도자의 삶을 살기 바란다. 17차 집중훈련은 장성도 목사의 1차 합숙 재훈련 메시지를 녹취하고자 한다. 1차 합숙 훈련의 목적이 다락방 인도자가 되기 위해서 하는 거다. 초등부 교사들은 어린이 다락방을 하기 바란다. 그래서 친구를 초청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