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8일 주일예배 - "교회의 성장 문제"(엡4:7~16)
교회의 성장 문제(엡 4:7~16)
한동대 채플에서 어떤 선교 단체 대표자가 와서 설교했다고 그래요. 그 제목이 뭐냐 하면 ‘Finish well’이에요. ‘잘 마쳐라’ 이런 뜻이에요. 어떤 조사 기관에서 큰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들의 생애를 조사해 봤대요. 특별히 그 마지막이 어땠는지를 조사해 봤대요. 의외로 목회 마지막을 잘 마치지 못한 분들이 꽤 많더래요. 그래서 이 선교 단체 대표자가 나와 한국 교회를 향해서 굉장히 경성시키는 메시지를 했다고 그래요. 바울 사도가 이런 고백을 했어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한다는 거는 구원 못 받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사명에 대해서 하나님 보실 때 ‘참 충성 된 종이었다. 잘했다’. 이렇게 평가 못 받는 것을 말하는 거죠. 어떤 경우가 그럴까요? 인간이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자기가 받아버리면 그러기가 참 쉬워요. 큰 목회를 하시는 분이 조심해야 할 것은 철저히 교만을 조심해야 해요. 일이 잘 안될 때 비교 의식 속에 빠지고 우울하고 낙심에 빠지는 것보다 일 잘 될 때 교만이 더 세게 올라옵니다. 왜 그래요? 우리는 크게 쓰임 받았다고 해도 자기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창 3, 6, 11장에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믿음의 사람이라도 자기 영광 받기 쉽고, 편안하면 육신의 정욕에 빠지기도 쉬워요. 그리고 금전적인 문제에 빠질 수도 있어요. 그런 거에 목사님들이 많이 걸려들어요. 그래서 끝까지 내 속에 창 3, 6, 11장에 본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깨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처음에는 잘했는데 나중에 잘못한 왕들이 여러 명 나와요. 사실 다윗도 방심했을 때 넘어졌죠. 최고 영광을 누렸던 솔로몬은 크게 타락했어요. 그리고 성경에 보면 아사 왕, 히스기야 왕 이런 왕들이 나오는데 훌륭한 왕들이에요. 그런데 마지막을 보면 ‘Finish well’ 이 안 돼요. 여러분은 3, 6, 11장의 본성에 대해서는 깨어 있어야 해요. 계속 갱신이 필요해요.
지난주에 실천 편으로 첫 번째, 교회 일치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렸어요. 오늘 두 번째로 교회의 성장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성장하도록 돼 있어요. 이 성장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거예요. 우리 수준이 머리 대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눈을 뜨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생각을 하고, 그리스도의 말을 하고, 그리스도의 행사를 하는 거예요. 우리 속에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심으로 그리스도의 계명도 지키고, 그리스도의 열매도 맺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1. 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1) 우리는 창세기 3장의 뿌리 바닥까지 봐버려야 한다.
이게 왜 중요해요? 못 보면 그 본성대로 그냥 살아버려요. 그런데 못 느끼는 거예요. 난 어릴 때부터 걱정이 많았다. 그러면 그게 자기의 성격인 줄로 착각해요. 언제부터 자꾸 화가 일어난다. 그게 원래 내 태생인가 보다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데 그게 아닌 겁니다. 부부 관계 같은 경우는 에베소서에도 부부 관계가 나오지만, 굉장히 습관적으로 행했던 것들이 있는데 아직 인식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게 안 들키고 창 3장의 본성을 따라 행하고 있는 건데도 모르고 있는 경우들이 참 많아요. 우리 가치관, 생각, 기준, 동기, 행동 이런 부분에도 그런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못 의식하는 거예요. 이게 보일수록 진짜 그리스도가 필요하구나. 느끼게 된다 이 말이에요. 이게 보이는 사람이 그리스도께 절대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뭐예요? 세계 복음화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거죠.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세계 복음화가 완성되게 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십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셔요. 여기에 여러분과 제가 도구로 쓰임 받는 거예요. 교회가 그 통로가 되는 거예요. 제가 쓰는 말로 손발이 되는 거예요. 손발이 되기 위해서 여러분이 자라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교회 제자가 되고요. 현장 제자가 되어서 정말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사람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섬기고 현장을 살리는 제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려면 역량이 필요하잖아요. 그 역량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거예요. 내 능력으로 하는 게 아니고 이것을 위해서 주님과 생명적 관계로 하나님이 부르신 거예요. 예배 안 드리고 자꾸 빠지고, 개인기도 시간도 없고 그러면 이 생명적 관계가 발전이 안 돼요. 이 발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집중 훈을 시키는 거거든요. 이 생명적 관계가 우리를 자라나게 해요. 그리스도와 분리되면 죽어버려요. 주님은 교회를 24시 성령으로 통치 인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24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속에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기 위해서 여태까지 내가 주인으로 살았던 창 3장의 본질과 뿌리 바닥까지 봐 버려야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럴 때 나를 주인 안 삼고 내 생각대로 안 살잖아요. 그때부터 내가 주인으로 산 게 뭐가 틀렸는지 보이기 시작하잖아요. 그런 사람이 자기 죽음을 선언하고 갈 2:20이 되는 거예요. 그전에 갈 2:20 성구 다 외워도 소용없어요. 세례받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라고 그랬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낸 바 되고 다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다는 의미라고 그랬어요.
2) 그런데 주인을 바꾸고도 창 3,6,11장의 본성은 남아 있어요.
정말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주인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창 3, 6, 11장의 본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그래서 뭐가 필요하냐 하면 언약 신앙이 필요해요.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나를 인도하실 것을 믿는 언약 신앙이 필요해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이 원래 믿음이 좋았던 사람입니까? 아니요. 전혀 안 그래요. 우리와 똑같은 창 3, 6, 11장의 본성의 사람이었어요. 창 22장에 보면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랬는데 아브라함이 군소리 없이 순종합니다. 굉장히 믿음이 좋아진 거잖아요. 여기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신 거예요. 그의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주님은 언약으로 그를 인도하신 거예요.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고 그러면서 시행착오 거쳤을 때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회개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그의 행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잖아요. 근데도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하나님은 끊지 않으시죠. 그가 믿음의 사람이 되기까지 끌고 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드디어 그가 믿어진 거예요. 이제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믿어지고, 그분 말씀의 권위가 믿어진 거예요. 그래서 순종하라니까 독자까지 바치는 거예요. 여러분 이렇게 믿어지면 11조 못 하겠습니까? 이렇게 믿어지면 헌신을 못 하겠습니까? 이게 안 믿어지는 거예요. 사실은 안 믿어지니까 내가 가진 기준대로 사는 거예요. 내가 가진 기준 그게 사단의 통로가 되는 거예요. 주님이 죽어주셨다는 거는 우리가 얼마나 아니면 죽어주셨을까요?
열두 제자도 믿음이 원래 좋았던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믿음이 좋아서 택함을 받았습니까? 아니죠. 그야말로 우리와 똑같은 본성의 사람들이었어요. 오히려 갈릴리 출신들을 하나님이 택하셨어요. 없고, 배우지 못했고, 지혜롭지 못하고, 세상에서 별로인 사람들을 택하신 거예요. 이 12 제자가 똑같이 시기하고. 똑같이 다투고, 똑같이 육적이고, 또 위기 왔을 때는 똑같이 도망갔어요. 예수님 버리고 도망갔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끝까지 사랑해 주십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거예요. 제자만 아니라 우리 포함해서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여 주셔서 어디까지 인도하십니까? 사명 감당하는 자리까지 인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작품이 되게 만드시는 거예요. 우리는 창 3, 6, 11장의 본성 중에 있기에 끝까지 언약을 잡아야 해요. 언약 신앙에 서야 해요. 예수님이 진짜 그리스도고, 나의 주요, 나의 인생의 모든 것이라는 언약을 딱 잡아야 해요. 나의 나 되게 하시는 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잡아야 해요. 그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서 내 인생을 인도하신다고요. 그리고 내 능력이 아니라 1장 8절 성령의 권능까지 약속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언약 신앙이 되어야 낙심하지 않고 또 성공해도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2. 지난주 교회 일치에 대한 말씀을 드렸어요.
교회 일치가 가능한 이유가 뭡니까? 나의 창 3장에 바닥까지 봐버렸기 때문에 일치가 가능한 거예요. 정말 봤더니 내 자신이 정말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건덕지가 아무것도 없는 거야. 오히려 죄 덩어리라니까요. 그런데 주님이 용납하고 나를 치유하고 나를 갱신시키고 회복시키잖아요. 주님이 나에게 아가페의 사랑을 베풀고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사람에 대해서 용납할 수 있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내 기준에서 보는 게 아니고 주님의 관점에서 보는 거예요. 이 사람을 주님이 어떻게 창 3장에서 건져내서 치유하고 회복해서 자라나게 하시는지 그 관점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면 진짜 일치할 수 있어요. 저는 여러분이 안타까워하는 거 잘 알아요. 그런데 정말로 주님이 보시는 관점으로 볼 수 있기 바래요. 여러분이 창 3장의 바닥까지 보는 것이 돼야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용납함이 가능해요. 오늘은 교회 성장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1) 교회 성장 문제 성장에 대해서 먼저 알 것은 교회가 유기체라는 거예요.
유기체는 각각 다른데 한 생명체예요. 교회는 각 지체의 위치와 기능과 역할이 다 따로따로 있어요. 서로 달라요. 그러나 한 몸이라는 거예요. 통일성과 유기성을 갖는 거예요. 그게 교회라는 거예요. 이 몸 각 위치에 지체를 배정하신 분은 누구일까요? 하나님 되시는 거죠. 근데 정말 다양하잖아요. 7가지가 같다고 그랬어요. 몸이 하나고, 한 성령이고, 한 소망으로 부름 받았고, 주님이 한 분이고, 믿음도 하나고, 세례도 하나고, 하나님도 한 분이다. 7가지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몸이 서로 유기성을 가지고 자라나도록 하신 거예요.
거기에 특별히 중요한 사역자를 세우신 거예요. 7절‘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리스도 선물의 분량대로 11절과 같은 사역자들을 세웠어요.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특별히 말씀을 증거하는 사역자를 세우신 겁니다. 첫 번째 사도를 세우신 거예요. 우리가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다 이런 표현이 있거든요. 첫째가 사도인데 12 제자죠. 이들이 왜 사도가 되냐 하면 예수님 생애 다 봤잖아요.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목격자잖아요. 또 예수님이 떠나시기 전에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사명을 주셨어요. 그래서 이들이 사도가 되는 거예요. 바울은 그때 없었잖아요. 근데 바울은 사도 바울이라고 얘기하거든요. 사도 아닌데 왜 그렇게 부른가 하면, 그는 주님이 부활하셔서 직접 만나주셨고 사명을 주셨어요. 그래서 사도라고 바울은 자기에 대한 인식을 한 거에요. 두 번째 선지자는요? 신약에는 선지자가 있을까요? 이게 2세기까지는 있었어요. 100년 넘어가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사도들이 다 죽었어요. 선지자들도 점차 사라졌어요. 초대교회 때 선지자로 유다와 실라, 아가보 등이 있었어요.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는 특별히 생업을 두고 순회하면서 복음 전하는 그 일을 맡았던 사람들이에요. 마지막으로 목사와 교사는 지역 교회의 사역자죠. 목사와 교사는 따로 나눌 수도 있고 목사가 교사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누가 이 직분들을 주신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 고 돼 있어요. 그리스도께서 은혜 주셔서 이 사역자들을 세우신 거에요.
그런데 누가 이렇게 쓰임 받고 저렇게 쓰임 받는 부분에 대해서 인본주의 관점으로 보면 안 돼요. 누가 쓰시는 거예요? 그리스도. 베드로의 조건 때문에 쓰시는 게 아니라니까요. 근데 우리는 이때까지 어떻게 학습이 돼 왔어요? 사람 볼 때 항상 사람의 능력으로 키 재기를 하잖아요. 누가 잘났느냐의 싸움을 하잖아요. 이게 사실 인본주의 체질이고 사단의 함정에 빠진 거거든요. ‘내가 체질’로 살다 보니까 전부 다 내가 이렇게 했어. 내가 이만큼 했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우리는 그 소리 참 잘하거든요. 근데 아니에요. 그거 정말 깨져야 할 부분이에요. 여러분 지금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이 자리에 있지도 못해요.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영이 죽어버려요. 그래서 직분 맡은 자는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거예요. 너에게 선물의 불량대로 은혜를 주셨는데 너는 너의 포지션에서 어떻게 충성했냐 이렇게 보신단 말이에요. 여러분, 이 직분을 주신 목적이 어디 있습니까? 12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이 사역자들이 있는 이유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거예요. 온전하게 하는 게 뭔지 13절에 설명이 돼 있어요. 성도로 하여금 봉사 일을 하게 하며, 사역자가 봉사 일을 다 하는 게 아니고 성도들이 각각의 포지션에서 이 봉사 일을 하게 만드는 거예요. 교회 안에서도 할 수 있고 사회에서도 할 수 있겠죠. 이 봉사는 영적인 봉사도 하고 육적인 봉사도 하는 거예요. 봉사 일을 하게 하며 또 어떻게 한다고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래서 교회 그러면 지역에 보이는 우리 가시적인 교회가 있는 반면에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어요. 과거 현재 미래 통틀어, 지역을 초월해서 전 지구를 통틀어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다 교회예요. 그거를 우주적 교회라 그래요. 오늘 이 말씀은 개교회에 당연히 주는 말씀도 되지만 이게 우주적 교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내 교회만 생각하면 안 돼요. 영광교회도 생각해야 되고, 은성 교회도 생각해야 되고요. 심지어 한국의 교단에 있는 수많은 교회도 생각해야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다른 교회가 잘 되는 거에 대해서 우리 죄의 본성으로 들어가면 배 아파요. 왜 저 교회는 저렇게 성장하는데 우리 교회 성장 안 해 그러면서 비교 의식과 열등감으로 들어가요. 그게 3, 6, 11장의 본성으로 반응하는 것이지 그리스도로 반응하는 게 아니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의 창 3장의 바닥까지 안 보면 내가 지금 비판하고 있고 딴 사람을 시기하고 있어요. 근데 내가 못 느끼는 거에요. 이게 지금 내가 죄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걸 못 느끼는 거에요. 그리고 막 옳다고 우겨요. 바닥까지 봐야 된다니까요.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밀리는 분이 아니에요. 염려하는 분이 아니에요. 그리스도께서 돈 문제 염려 안 하셔요. 그리스도께서는 영계와 현상계를 다 다스리고 계셔요.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보시는 눈으로, 그리스도가 생각하는 생각으로, 그리스도께서 품는 마음으로, 그리스도가 말하는 말로 반응하도록 하기를 원하셔요. 그래서 지금 성령으로 임하셔서 통치하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자기 연약함 속에 빠져 있으면은 여러분 집니다. 여러분이 살려야 될 사람인데 약해서 맨날 자기 연약함 속에 있어요. 이건 빨리 치유 받아야 될 부분이에요. 또 한 가지 그리스도가 주시는 힘이 아니고 성령의 충만함이 아닌데도 굉장히 자기를 과신하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도 있어요. 이거는 신념이죠. 이건 또 아니에요. 이건 하나님이 만지셔야 할 사람이에요. 오늘 직분을 주신 목적에 대해 설명했어요. 몸을 세우는 거에요. 몸을 세우는데 어떻게 이 몸이 세워지도록 하는가?
1) 첫 번째 사역자들이 해야 할 일이 있어요.
13~15절 읽어보겠어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역자들이 할 일이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교회가 바로 믿고, 바로 알도록 가르치는 것이 사역자의 주된 일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하나 되게 하여 그랬잖아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하는 것에, 주된 사명 받은 사람들이 사역자예요.
성도들이 그리스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된다는 건 뭐냐? 같은 믿음, 본질적으로 같은 믿음을 갖는 거예요. 그리스도에 대해서 같은 지식 곧 진정한 앎을 갖는 거예요. 그래서 사역자가 해야 할 것은 뭐냐?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르게 믿도록 가르치고, 바르게 알도록 도와주고, 그리스도를 바르게 체험하도록 도와주는 거에요. 이제 성령께서 사역자에게 은혜 주시고 말씀 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은혜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성도들 개개인도 말씀 들을 때 또 말씀 잡고 기도할 때 역사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그리스도께 어떻게 집중하느냐가 성장의 관건입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어떻게 집중하고 그분의 통치를 어떻게 받느냐가 성장의 관건이라니까요. 그리스도와 별로 교통하는 시간이 없어. 진짜 이 예배의 축복을 못 누려. 그러면 연약해져요. 어린아이처럼 되어요. 14절에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 사람은 율법주의나 인본주의나 세상에 다른 사상이 틈타기가 쉬워요. 왜? 말씀 정립, 복음 정립이 아직 안 돼 있으니까, 뿌리 안 내려져 있으니까 그리고 그냥 육신적으로 사니까 그래요. 교회는 어떻게 그리스도께 집중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럴 때 2장 1절~ 3절에 불신자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거예요. 거기서 빠져나와서 체질까지 치유되는 거예요. 그래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오직 참된 것을 하여 범사ㅇ레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게 되는 거예요.
(구미 안디옥교회 김성우 목사님 간증)
제가 모델적인 교회를 하나 소개해 준 겁니다. 다락방 교회 중에 이런 교회가 사실 없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탄탄하게 계속 제자화 되고 있는 교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박수쳐 줘야 합니까? 아니면 시기해야 됩니까? 박수쳐 줘야 되거든요. 그러면서 나에 대한 포지션과 나에 대한 기능과 나에 대한 역할을 주님은 갖고 계시는 것을 믿는 거예요. 나에 대한 목표와 목적을 갖고 계신 거예요. 목적이 없고 목표가 없는 인생을 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지금 세계 복음화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를 손발로 쓰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결론
우리는 주님이 정확하게 인도하시는 사람들이에요. 여러분은 어린 신자가 있으면 도와주셔야 해요. 여러분은 몸이 세워지는 것과 우주적인 교회가 세워지는 것 속에는 전도 선교가 포함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안으로는 교회 지체를 섬기고 사랑하고 세우는 일을 하시고, 밖으로는 현장에 불신자 살리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 제자, 현장 제자 되는 거예요. 거기에 24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