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2일 주일예배 -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25~32)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25~32)
축하해 줄 일이 있어요. 한 주 전에 대구 초신에서 종강 예배를 포항 초신이랑 같이 드렸거든요.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책 읽고 포럼하는 대회도 있었고 또 성경 퀴즈로 골든벨이 있었어요. 작년에 골든벨 해서 민규가 거기 포함돼서 일본 갔다 왔잖아요. 이번에는 민규가 골든벨을 잘 못했어요. 그런데 책 포럼이 경제 포럼을 했는데 민규가 발표를 제일 잘했어요. 그래서 등수 든 사람들을 이번에는 미국을 보내기로 했어요. 8월 14일에서 23일까지 열흘간 박우영 사모님 인솔하에 미국 비전 캠프를 민규가 가게 됐습니다. 물론 엄마도 갑니다. 엄마가 경제 포럼 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줬습니다. 그래서 참 기뻐요. 우리 후대들이 민규를 닮아서 계속 앞으로 비젼 캠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민규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민규야 생각나는지 기억해 봐라. 니가 내년이면 벌써 중학생이다. 어제 반영이한테 민규가 6학년이고 내년에 중학생 된다니까 깜짝 놀랐더라고요. 제가 민규한테 어떤 얘기를 했냐면 4학년쯤 되면 벌써 어른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니가 너희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생각과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을 구분할 줄 알아야 된다 그랬어요. 니가 좀 되냐고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민규가 조금 된다는 식으로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제가 어른들도 잘 안 되는 부분인데 지금부터 니가 이게 되면 너는 굉장히 발전하게 될 거다. 하나님이 쓰시게 되는 거죠. 사실은 우리는 오랫동안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이 본성과 영이 죽은 이성으로 살았던 사람이에요. 이것 때문에 형성된 인본주의 체질도 잘 모른 채 살았어요. 여러분이 거듭나서 성령의 통치받는 삶을 사는 게 안 되면 여러분 인본주의 체질로 그냥 살아요. 여러분 이게 진짜로 깨달아져야 할 부분이고 이게 자꾸 눈이 열려야 될 부분입니다. 그것 때문에 주님은 대속의 은혜를 주신 거예요. 여러분을 십자가에서 대속해 주셨고 보좌에 오르셔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보내주신 거예요. 성령으로 거듭나고 생명 주시고 이제 여러분 속에 성령으로 주님이 통치하는 삶이 되게 하신 거예요. 진짜 거듭났으면 그날로부터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게 되는 거예요. 거듭난 난 그날로부터 사귐이 시작되는 거예요. 이걸 구원이라 그래요.
그런데 이 구원받았지만 창 3장, 6장, 11장의 본성은 어디 갔나요? 간 건 아니라고 그랬어요. 결코 없어지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의 통치 안 받으면 언제든지 우리는 본성의 느낌, 감정, 생각 또 인본주의 이성의 판단으로 빠지게 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을 잘 구분해야 되는 거예요.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통치받는 생각 속으로 계속 인도받는 것이 이게 신앙생활의 핵심이에요. 24시가 되는 겁니다. 집사람과 산책하면서 집사람이 “여보, 24시가 되면 그럼 내 생각이 없어지는 거네”. 내 생각이 없어지는 건 아니고. 있는데 내 생각이 나를 주장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주시는 생각이 나를 주장하는 거예요. 그거를 이제 류 목사님은 위드, 임마누엘, 원네스 이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위드와 임마누엘은 알죠? 원네스는 뭐예요? 우리가 주님과 교회와 원네스 되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거예요.
지난주에 불신자가 육체화 되는 단계를 전하면서 불신자의 상태에서 벗어나라 그랬어요. 오늘은 이어서 사도바울께서는 에베소 성도들이 살아야 될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이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보면 성숙한 사명자에게 따로 주는 말씀은 아니에요. 보편적으로 불신 이교도 생활을 했다가 돌아온 에베소 교인들 전체에게 주는 말씀이에요. 우리는 만약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개인 양육을 한다면 복음 편지하고 새 생명 새 생활을 할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줄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1) 실천해야 할 구체적 항목
① 25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여기 서로 지체가 됐다는 말은 누구한테 해당 되는 걸까요? 성도 간입니다. 성도 간에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는 거예요. 제가 초등부에서, ‘지도자가 되려면’하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지금 계속하고 있거든요. 지도자가 되려면 아주 중요한 덕목이 그게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거예요. 유익 주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 되면 안 되는 거죠. 유익을 주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인정해요. 그래서 그 사람을 자꾸 앞장서게, 대표가 되도록 세우게 된다고요. 왜? 전체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니까. 그러니까 이웃에 대해서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 당연한 거죠. 26절을 읽어볼게요. ② 26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분을 낼 수 있어요. 다혈질적인 사람들은 분을 잘 내요. 근데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거예요. 그 말은 뭐예요? 분이 올라오게 되면 얼른 이게 창 3장의 본성에서부터 올라오는구나 하고 빨리 자각하고 기도로 들어가야죠. 내가 계속 분에 잡혀 있지 않도록 주의 성령의 통치하심을 구하는 겁니다. 이런 부분에서 자기가 어떤 부분에서 분을 잘 내는구나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 참 좋아요. 모르면 그냥 대책 없어요. 또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그랬어요. 분을 품고 자면 어떻게 돼요? 밤새도록 곱씹어요. ‘그 놈 이래서 나빴지’, 계속 자기 편에서 합리적인 논리로 그 사람을 씹게 돼요. 그러면 사단의 통로가 되죠. 그래서 27절은 뭐라고 돼 있냐면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이렇게 돼 있어요. 분이 올라올 수 있는데 그것 가지고 악한 생각을 했다. 미운 생각으로 들어간다. 이러면 마귀에게 틈을 준 거잖아요. 마귀가 지배하게 되잖아요. 이렇게 되도록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③ 28절,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하지 말고 오히려 구제하고 선한 일을 하라고 돼 있어요. 어떻게 이게 가능해요? 성령님이 심령을 깊게 터치하면 사람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요. 마음이 부드러워져 녹습니다. 은혜에 감동이 되면 참 희한하게 모질었던 마음, 나 중심적인 이런 마음들이 풀려요. 그리고 성령님은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타자 중심의 생각을 하게 한단 말이에요. 여러분 매번 체험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래서 심령의 터치를 받게 되면 진정한 삶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생각으로만 아니라 실제 도둑질한 사람이 도둑질을 끝내고 이제는 근면 성실해져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겁니다. 우리 또 ④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여기 더러운 말은 뭘까요? 욕도 되고 욕만 아니라 온갖 음담패설이 다 들어가는 거예요. 음담패설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는 거예요. 이것은 성도에게 합당하지 않다는 거예요. 왜? 우리가 성전이니까. 그래서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하라고 돼 있어요. 은혜를 끼치라는 거예요. 여러분 진짜 한 번 해보세요. 남 흉보고 뭐가 잘못됐다는 말은 전달하면 안 좋은 거예요. 주로 대화하는 거 보면 남 얘기를 하는데 주로 안 좋은 거 전달하는 얘기를 해요. 여러분이 그러면 심령이 눌려야 돼요. 남 험담하고, ‘어떤 권사님이 그랬대’ 이러면서 전달하거든요. 그거 성령님이 안 기뻐하세요. 은혜 끼치는 말은 뭐예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 받은 얘기를 하는 거예요.
또 누가 은혜받아서 변화된 그런 포럼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런 삶의 변화는 정말로 어떻게 일어납니까? 말은 마음에서 나오고 영적 상태에서 나와요. 그래서 영적 상태 마음 상태가 바뀌면 언어생활이 바뀌게 돼요. 근데 여러분이 자꾸 본성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본성에 맞는 창 3장의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거 하지 말라고 했어요.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실제로 영적인 상태, 마음의 상태를 누가 바꾸십니까? 성령님이 바꾸시잖아요. 언어와 생활 습관까지 다 고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과 만나는 가장 깊은 인간 좌소가 영이거든요. 그 영이 변화돼서 ‘심령이 새롭게 되어’ 그랬잖아요. 그 영이 변화되어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고 언어와 행동이 바뀌게 되는 거예요. 요 14:26~27절 읽어보세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니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어떤 평안을 줘요? 성령으로 평안을 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잖아요. 생각나게 하는데 이게 성령이 주시는 생각이죠. 그리고 말씀 그 자체도 생각나게 만드시죠. 머리로 들었던 거는 기억은 하지만 심령을 건드리지를 못하거든요. 근데 성령님이 생각나게 하고 깨달아지게 하는 건 심령을 자꾸 건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렇게 되시기를 계속 축원합니다.
류 목사님 그러잖아요. ‘렘넌트는 한 말씀만 꽂혀도 그게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 근데 60대 70대는 진짜 대놓고 얘기해도 안 바뀐다. 왜 안 바뀌어요? 굳어져 있고. 거기다가 자존심이 딱 있기에 잘 안 바뀌어요. 근데 내가 보니까 안 바뀌는 거 아니에요. 성령님 역사하면 다 바뀌어요. 여러분 개인이 성령의 통치를 받아서 심령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인간관계 승리하고 전도자의 삶으로 들어가서 살리는 자가 돼요. 여러분이 분위기에 좌우되는 사람이 아니에요. 31~32절을 읽어볼까요?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랬어요. 31절에 보면 모든 악독과 하면서 쭉 나오잖아요. 이건 뭐냐 하면 분에 차서 막 악독한 말이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악의에 차서 떠들면서 남 비방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에베소 성도들이 불신 이교도 생활을 했잖아요. 이들은 이런 것들이 여사로 살았던 사람들이에요. 이게 전부 다 사단의 통로가 되는 겁니다. 사단이 지배하는 운명 속에서 인생 살다가 이제 하나님이 전격적으로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해 주신 거죠.
지금 다섯 가지를 얘기했어요. ①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 이 거짓은 자기를 변호하는 거잖아요. 그 역시 나 중심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다음에 ② 분을 내어도... 누가 건드리면 분 나죠? 무슨 안전의 동기나 이익 동기, 자존심의 동기 건드리면 “왜 못 알아듣는데, 나를 어떻게 그것밖에 평가 못 해” 그러면 막 열 내잖아요. 전부 다 나예요. 도둑질하는 거 이것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 도둑질하는 거잖아요. 더러운 말 이거는 창 6장이잖아요. 모든 악독, 노함, 분 냄, 떠드는 거, 비방, 모든 악의 이게 지금 세상에서는 성행하고 횡행하는 거예요. 사실은 에베소 성도도 이 속에서 그냥 체질로 살다가 구원받은 거거든요. 근데 이게 뭐예요? 마귀에게 다 틈을 주고 통로 되는 거예요. 여기에 틈을 주지 말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라. 갈라디아서에서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이렇게 돼 있어요. ‘육신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신을 거스리나니 이것이 너희 원하는 것을 못 하게 한다’ 고 얘기하잖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고 얘기하잖아요. 제가 중력의 법칙을 육신의 본성이라고 그랬고 양력의 법칙을 성령의 법칙이라고 그랬어요. 어느 게 더 세요? 중력이 셉니까? 양력이 셉니까? 중력이 더 세면 비행기 못 떠요. 뜨게 하는 거 양력이거든요. 기압 차로 뜨게 할 수 있듯이 지금 성령의 법이 통치하고 있어요.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본성에서부터 올라오는 것과 성령님이 주시는 것을 세밀히 구분하셔야 돼요. 기도 안 하는 사람은 구분 자체가 안 돼요. 제가 민규에게 말한 것처럼 이게 어릴 때부터 돼야 되는 겁니다. 초등부 때부터 만약 이 영적 메시지가 들어가고 복음 메시지가 들어가서 본성으로 행하는 것과 성령이 주시는 생각이 구분되어 기도되고 성령이 주시는 생각으로 말하는 게 되면 얼마나 발전하겠어요. 어른들처럼 잘못된 각인이 그만큼 뿌리내리지 않는 거예요. 사람들이 이걸 구분 못 하고 어릴 때부터 그냥 본성대로 살아온 거예요. 그러면서 사람한테 걸리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돼요? 전부 다 자기 처세하잖아요. 자기 방어하잖아요. 비판심 길러지잖아요. 그러면서 자기 자존심의 자아가 있기 때문에 그 자존심의 자아는 들키려고 안 해요. 자기 자존심을 안 드러내요. 그러니까 치유 안 되는 거예요. 사실 여러분이 이때까지 살아온 본성과 거기서부터 이 체질화 되고 형성된 것들이 이렇게 보여야 된다니까요. 그래서 분별 되어야 극복되고 승리할 수 있어요. 이게 진짜 은혜란 말이에요.
여러분 지금 어려운 공식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을 대속해 주신 그리스도께서 보좌 통치하시면서 여러분 속에 성령 통치하시는 거예요. 갈 2장 20절 되게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렇게 되면 체제와 체질이 다 바뀌어요. 이게 복잡하지 않아요. 777은 복잡한데 이건 복잡한 게 아니에요. 이게 돼야 777이 되는 거예요. 이게 돼야 7 여정을 간다니까요? 진짜 7 이정표를 간다니까요? 그래서 32절이 가능한 거예요. 32절,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랬는데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통치하니까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창 3장의 눈으로 상대를 통찰하면서 진짜 이 사람이 이렇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이해된 것처럼 이제 다른 사람을 창 3장을 보는 눈으로, 복음 관점으로 보게 되는 거예요. 이 사람은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이고, 이 사람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가면, 그리스도의 통치만 받으면 이 사람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지 믿어지는 거예요. 불쌍히 여기는 것이 잘 안 됐던 사람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돼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용서가 된다고요. 절대 용서 못 했던 사람이 그렇지 않다니까요.
여러분 4장 1~ 3절 읽어볼까요?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을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랬는데 이게 이제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4장 13~15절을 읽어볼까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었기 때문에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게 돼요. 여러분 성령님이 이런 통치를 하게 되면 자기가 잘 보여요. 자꾸 보이고, “야 내가 이런 인생인데 주님이 구원하셨구나 그리고 이것을 치유시키고 계시는구나” 이런 것들을 실제 체험하는 거예요.
2. 인생의 수만 가지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들의 원인은 창 3장의 원죄의 문제고 영적 문제예요.
1) 거기다가 환경의 문제가 겹쳐서 정신 문제, 드러난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어요.
영적 문제에다 환경이 겹쳐서 정신 문제가 심해지는 거예요. 마음과 생각이 더 병드는 거예요. 삐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드러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잘못된 언어 습관도 되고, 삶의 습관도 되고, 인간관계 습관도 되는 거예요. 드러난 문제가 꼭 무슨 중독이라든지 음란이라든지 도벽이라든지 사회적 문제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분내고 악한 말하고 더러운 말하는 이런 문제들도 드러난 문제에 들어가는 거예요. 이게요, 말만 하면 자꾸 누구 씹는 얘기만 계속하는 거예요. 욕하는 말이 그냥 상투적으로 나와요. 사람들 당 짓고요. 니 편 내 편 가르고요. 전부 다 이 드러난 문제예요. 이게 워낙 일반화돼 있다 보니까 별 문제로 생각 안 해요. 막 돈에만 매여서 돈에 벌벌 떨고요. 돈 때문에 악한 생각을 하고 죄짓고 전부 다 드러난 문제죠. 하나님이 진짜 배경이면 돈에 그렇게 잡힙니까? 안 잡히죠. 돈을 잘 써야죠. 그래서 정말 인생 수만 가지 문제가 있더라도 그 원인은 창 3장의 원죄 문제고 영적 문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분내고 악한 말하고 더러운 말을 했다고 해봅시다. 이런 것들은 이런 말과 행동이 나갈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의 영적 상태예요. 막 누구를 탓하면서 욕하는 거예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의 마음 상태예요. 거기에다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 자기한테 걸릴 사람이 딱 걸리는 거에요. 그 사람한테 마음속에 있는 답답한 거 다 풀어요. 지금 불신자는 창 3장, 6장, 11장 본성대로 살아요.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는 거예요. 내 남편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는 거예요.
2) 지금 여러분은 불신자 상태에서 빠져나와서 유일한 답과 해결책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유일한 해결책이 누구예요? 그리스도죠? 그래서 4장 20~21절 읽어볼까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데’, 복음의 진리, 영적 진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예요. 성령님이 여러분의 심령에 이걸 가르친다고요.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것이 되는 사람은 치유 회복 승리하게 돼요. 여러분 마음 상태가 평상시에 늘 우울해, 별로 행복이 없어, 거기다가 현실까지 안 좋아. 그러면 이 사람은 현실 탓밖에 못 해요. 자기 마음은 못 바꾸는 거에요. 정말 이 사람이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게 최고의 방법입니다. 이 사람이 치유 회복되면 24 제자가 되는 거예요. 25 제자도 될 수 있고, 영원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3. 제자란 어떤 사람이 제자일까요?
우리 교회가 지향해야 할 제자의 조건을 제가 얘기해 볼게요.
1) 복음으로 인생 전체에 대한 답을 낸 사람이에요.
복음을 부분적으로 믿는 게 아니에요.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전 세계의 문제가 똑같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에요. 그럼 똑같은 예수 그리스도면 되잖아요. 그래서 복음을 부분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 인생 전체에 대한 답으로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복음으로 자기 이해도 되고 다른 사람 이해도 되는 거예요. 이게 제자의 첫 번째 요건이에요.
2) 제자란 자신의 본성과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구분하여서 성령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로 사는 사람이죠. 본성과 성령이 주시는 것을 구분해서 성령으로 반응하는 사람. 이게 체질 되는 사람이 제자다! 이 말이에요. 성령님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현재적인 통치를 받는다는 거예요. 강단 말씀도 성령께서 심령으로 깨달아지고 믿어지게 해서 적용되게 하는 거잖아요. 성령님이 계속 강단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이 개인화되고 여러분이 제자화 되게 만드는 거에요. 개인화라는 건 복음의 개인화가 되게 만드는 거예요. 그게 성령님이 여러분 심령의 말씀에 부닥치면서 이 말씀의 흐름을 타게 하면서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3) 불신 현장에 대해서 드디어 하나님의 소원을 가진 사람이 제자가 되는 거예요.
여기서 사명이 나오는 거죠. 하나님의 소원을 알고, 현장을 보면서 진짜 저 불신자 상태에 빠져있는 사람을 어찌할꼬? 이제 그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전도할 사람이 없다가 아니라 복음 들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생각하는 사람이 제자란 말이에요.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거지만 그전에 한 영혼이 구원받고 회복되는 일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전 인류 가운데 일어나는 게 하나님의 소원이에요. 거기에 일꾼이 되는 거예요.
4) 제자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오직 유일한 구원의 기관으로 교회를 두셨잖아요.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제자예요. 교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단독 플레이 하는 거는 제자가 아니에요. 아무리 믿음 좋아도 교회랑 분리된 사람은 제자가 될 수 없어요. 교회 중심돼야 하고요. 강단 중심돼야 하고, 목회자 중심이 되어서 충성하는 게 진짜 충성하는 거예요. 여러분 직분을 주신 이유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거라니까요. 첫 번째 목회자와 소통하고요. 두 번째 중직자와 소통하고 세 번째 온 교회와 소통하는 거예요. 왜 소통을 못 해요? 자존심 때문에 소통 못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목회자와 진짜 소통되어야 해요. 그냥 겉모습만 목사님 따른다. 그거 아니죠. 목사님도 자기 거를 얘기할 수 있어야 되고 그 사람도 자기 거 얘기해서 소통할 수 있는 관계 돼야 되죠.
5) 자기 업의 전문성을 갖고 전도와 말씀 운동하는 사람이 제자예요.
자기 업의 300% 하는 거예요. 첫째 전문성, 두 번째가 현장성, 세 번째가 미래성인데 미래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평신도들은 300% 준비하면서 개인 전도와 다락방 말씀 운동을 하는 사람이 제자란 말이에요.
6) 재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이에요.
내가 제자가 되면 반드시 이어지는 게 재생산이거든요. 그래서 첫째 복음으로 인생 전체에 대한 답을 낸 사람이고, 두 번째가 제자는 자신의 본성과 성령의 생각을 구분하여 성령으로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그랬어요. 세 번째가 불신 현장에 대해서 하나님의 소원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랬어요. 네 번째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교회 중심, 강단 중심, 목회자 중심이 되는 사람이라고 얘기했어요. 다섯 번째가 전문성을 갖고 전도와 말씀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그랬어요. 여섯 번째가 재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세계 복음 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 효과적인 방법이 재생산이에요. 제자로 여러분이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에베소서 말씀은 전도자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이 어디서부터 구원받았고 어떻게 구원받았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까지 목표를 둬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한다고 얘기했잖아요. 여러분은 분명한 인생 전환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180도 인생 전환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 6가지 특징을 가진 제자로 서기를 바라고 또 우리 하윤이와 그 가정 위에서 이 시간 기도합시다. 합심해서 우리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