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7일 주일예배 - 하나님 나라와 전도 제자(골 4:7~11)
하나님 나라와 전도 제자(골 4:7~11)
우리 렘넌트들은 이번 수요 예배 때 오기 바랍니다. 수요 예배 때 오면 목사님과 또 장로님과 성도님들이 여러분을 파송하는 기도를 해드리겠습니다. 오늘 기도해 주면 너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수요일날 오세요. 수요일 날 여러분이 특별히 대만 선교 집중 캠프를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내일은 동 시찰회가 우리 교회에서 열립니다.
동 시찰 그러면 하양부터 시작해서 영천 포항 경주 또 울진까지가 동 시찰에 해당합니다.
지금 우리 교단 교회가 13개 교회가 있습니다. 내일 모이면 먼저 예배드리고 시찰 업무를 처리하는 거예요. 그게 시찰회입니다. 예배는 시찰장인 제가 설교를 하게 됩니다. 제가 시찰장을 하면서 유익한 점이 두 가지가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유익점 첫째는 시찰장이 되니까 기도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13개 교회와 또 목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게 저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시찰회는 1년에 4번 모여요. 세 달에 한 번씩 교회가 돌아가면서 모이는데 내일 저희 교회 순서입니다. 모이면 먼저 예배드릴 때 제가 설교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저의 유익점은 설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분들을 위해서 주신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이 목사님들에게 하실 말씀을 제가 받아 메시지로 섬길 수 있기 때문에 그게 저에게는 유익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분들은 다 하나님 나라 위해서 천명 사명을 받은 목사님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중요한 만큼 모든 교회가 다 중요합니다. 모든 교회가 다 전도 운동이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런 일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게 하나님의 소원을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겁니다. 거기에 방향 맞춰야 된다는 말씀을 많이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의 소원이 뭐라고 말씀드렸죠?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의 나라 통치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 하고 주님의 지상 명령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지상 명령이 전도 선교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게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돈을 벌어도, 우리가 무슨 다른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그럴 때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다. 주님이 책임자가 되시는 일이다” 이런 말씀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은 시급히 전 세계 복음이 증거되어서 하나님 백성을 다 구원하기 원하고 계신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 때문에 살은 거죠. 사도바울이 행 19장에 바울이 들어간 지역이 에베소 지역이죠. 그 지역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다. 28장 31절에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그러니까 바울은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거죠. 그래서 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동역자들이에요. 바울의 동역자들이 참 많았는데 바울이 지금 로마에서 재판받기 직전에 감금된 상태에 있잖아요. 이때 동역했던 사람들은 더 각별히 마음이 가지 않았겠습니까? 또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교회가 특별히 그 마음에 담기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골로새서를 마치면서 바울이 동역해 주었던 동역자들을 소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1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후반부에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 사실 심적인 눌림이나 부담들이 얼마든지 올 수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이들이 나의 참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목이 하나님 나라와 전도 제자입니다.
1. 성경의 대주제가 하나님 나라이다,
1)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거예요.
에덴동산 자체가 “하나님 나라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죠. 근데 인간 범죄로 말미암아 깨지게 됐어요. 그래서 범죄한 인간을 에덴동산 곧 하나님 나라에서 추방한 거죠. 그때부터 세상에는 죄와 저주와 영적 문제가 오게 된 거죠. 하나님의 소원이 하나님 나라였기 에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계획과 마침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계획을 갖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택한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죠.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만든 것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목적이 있었던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사실 결코 완전치 못하잖아요. 그렇지만 그 모양새는 하나님 나라예요. 하나님이 진짜 왕으로 통치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백성이 되고 그다음에 통치 수단은 율법이에요.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이스라엘 나라다 이 말이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적인 죄를 짓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과 율법의 언약을 깨뜨리는 그런 죄를 범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특권을 받았지만 계속 범죄하는 것 때문에 결국 가나안 하나님 나라에서 추방당합니다. 그게 바벨론 포로였고 포로 생활하면서 그들의 죄를 담당하는 거죠. 그러면서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 적이 없어요. 계속 속국 생활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계속 속국 생활하다가 예수님 때까지 온 거 아니겠습니까? 예수님 때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거 아닙니까?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 예수님이 출생을 하신 거예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말씀이 이런 말씀이에요. 막 1:15에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처음 하시는 말씀이 역시 주제가 하나님 나라예요.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했을 때 유대인들이 복음은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때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거나 부활하기 전이에요. 물론 복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지만, “하나님 나라 가까웠다. 복음 믿어라” 그러면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그 당시에 예수님이 죽고 부활한 걸 믿으라고 그렇게 복음을 이해 안 했어요. 그들이 이해한 것은 곧 로마 제국이 무너진다. 이스라엘은 독립하고 다시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 이걸 복음으로 생각을 한 거예요. 이해되시죠?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그들과 다른 거죠. 로마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불순종하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로마를 무너뜨리고 다시 이스라엘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그게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그들이 사단과 죄와 불순종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나라를 이루려면 나라의 3요소가 뭐예요? 우리 사회 시간에 배운 건데 나라의 3요소 첫째가 주권이 있어야 되고 두 번째가 영토가 있어야 되고 세 번째가 국민 곧 백성이 있어야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사실 제일 문제가 뭐냐 하면 백성이 범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이 문제인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보실 때는 이들부터 회복시켜야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 일부터 하러 오신 거예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며 또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임하게 될 것인지를 계속 얘기하셨어요. 하나님 나라는 지금 이 세상 나라가 아니다. 또 이 하나님 나라 들어가려면 너희가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된다. 이런 말씀들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씨뿌리는 비유하면서 천국은 이런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은 이런 것이다. 이런 게 전부 다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설명이에요. 하나님 백성에게 제일 중요한 게 하나님 나라에요.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잖아요. 병든 자를 고치잖아요. 또 자연의 저주를 해결하시잖아요. 이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입증하는 것도 되지만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귀신을 쫓아내는데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임했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이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장소적으로 국가가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라기보다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했다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 나라예요. 사실 당시 유대인은 이스라엘 독립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마 제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저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하나님 나라를 다시 회복되게 해 주옵소서. 저 로마를 타도시켜 주옵소서.” 우리가 옛날에 그리웠던 그 나라를 회복시켜 달라고 그렇게 아마 기도했을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 영적인 메시지를 하시는 거예요. 영적 메시지를 못 알아들어요, 그리고 메시지만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 자체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갈라지는 거죠. 왜 안 받아들였을까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게 쉬웠을까요? 여러분 그 시절로 돌아가 보세요. 예수님을 “진짜 하나님과 동등 된 분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믿는 게 쉬웠을까요? 어려워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모친이 살아 있었거든요. 그 모친이 낳은 자식들이, 형제들도 있었고 딸도 있었어요. 예수님 형제 중에 딸도 있었어요. 그들이 다 지금 살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목수의 아들로 생각하지,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믿겠어요? 근데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계속 가르치셨고 자신은 “이 땅에서부터 온 게 아니고 위로부터 왔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과 동등 되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다.” 뭐라고 생각이 들겠어요? 이거 “귀신 들렸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 말을 실제 들었단 말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증거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내 행위가 나를 증거하는 거다. 내가 행하는 표적을 통해서 나를 믿어라” 이런 말씀을 계속 반복적으로 하셨어요. 그러면서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든지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 죽은 자를 세 번 살리거든요. 파도를 잔잔케 해요. 그리고 바다 위를 걸으셔요. 이런 거를 통해서 자기를 믿도록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직접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음성으로 들려주셨던 적이 있을까요? 언제 그렇게 했나요? 세례 요한에 의해서 세례받을 때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마 3:16~17. “홀연히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오, 내 기뻐하는 자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직접 하나님이 증거해 주셨어요. 또 한 번은 언제일까요? 변화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변형됐다고 해서 변화산입니다. 그때 음성입니다. 마태복음 17:1절부터 보겠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 변형되어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꽃이 빛과 같이 휘어졌더라.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와 여수께 여짜오되...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오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이때 베드로는 생시인지 꿈인지 헷갈렸어요.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시는 분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40일 동안 여러 차례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지금 하나님 나라는 두 단계에 걸쳐서 임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첫 번째 단계는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게 아니라고 그랬죠. 눅 17:20~21,“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이 하나님 나라가 장소적으로, 건물적으로 임하는 게 아니죠.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하시는 나라예요. 이게 복음이 전파되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1단계예요. 그다음에 2단계 최종 단계는 어떻게 임해요? 예수님이 복음이 다 전파된 이후에 세상 끝날 재림 때 하나님 나라가 우주적으로 이 땅에 임하시게 된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이런 개념이 당시에는 없었어요. 전혀 없었어요. 우리도 뭐 안 배웠으면 이런 말씀 알아듣겠습니까?
2) 지금 많은 성도가 하나님 나라 개념이 너무 약해요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 얘기 많이 듣고 있잖아요. 근데 실제적으로 하나님 나라 개념이 너무 약해요.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 너무 젖어 살고 있어요. 눈에 보이는 것만 너무 꽂혀 있어요. 하나님 나라는 막연히 죽어서 가는 나라로만 생각해요. 근데 죽어서 가는 것도 가봐야 알겠다 이런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러니까 굉장히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세상에 꽂혀 살고 있어요.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서 도피처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뭐를 강조합니까?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해서 살았잖아요.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골인 지점으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요한이도 그렇게 살아야 되고 예은이도 그렇게 살아야 되고 형성에도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근데 우리가 그렇게 안 살잖아요. 현상적인 것에 목적을 걸고 참 많이 살고 있잖아요.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이게 진짜 여러분 인생의 방향으로 설정돼 있습니까? 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방향이 잡혀 있으면 바울과 같이 하나님 나라 위해 살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감금돼서 아무 일도 못 하는 것처럼 돼 있으면 따라다니는 추종자들이 다 떠납니다. 그렇겠죠. 뭔가 이렇게 “으싸 으싸”하면서 세상에서 각광 받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고 뭔가 되는 레벨에 끼어야지 보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사도가 갇혔어요. 재판 당해서 죽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따라다니던 사람들 다 흩어질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자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산다는 게 뭐냐 하면 이 땅에서 우리에게 성령의 법이 있잖아요. 성령께서 지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만드시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거는 이 불신 세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 통치를 실현시키는 거예요. 근데 믿음 없으면 절대로 그렇게 못 해요. 믿음이 없으면 눈에 보이는 걸 붙잡아야 되잖아요. 그것 때문에 우리도 세상 사람처럼 같이 싸워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우리 속에 성령의 법의 통치를 받아서 주의 계명대로 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있는 현장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도록 하는 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거예요. 또 한 가지는 뭘까요? 전도자의 삶을 사는 거예요. 지상 명령을 위해서 사는 거에요.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사람이 안 바뀌면 안 되잖아요.
지난주에 선미 분식을 갔어요. 그 아주머니에게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지금 가고 있습니다. 물어보니까 자기는 돈 벌어서 거리에서 어려운 노숙자들한테 밥 퍼주는 거 그거 하는 게 꿈이래요. 이분은 꿈을 갖고 있어요. 제가 참 대단한 생각을 하신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러면서 이분이 또 그런 얘기를 해요. 젊은 사람이, 일할 만한 사람이 와서 배식만 타 먹으면 되겠나? 자기가 그래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는 붕어빵 같은 거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대요. 이 사람이 건강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분은 한 70세는 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제가 인간을 변화시키는 거는 정신을 변화시켜야 하고 그 정신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말을 걸어놓고 왔어요. 제일 중요한 게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안 바뀐다는 겁니다. 정신이 안 바뀐다는 겁니다. 그렇죠? 복음으로 인생을 구원해야지 마음과 생각과 정신이 바뀌어요. 구원해야지 사단 죄 저주 지옥 운명에서 빠져나온다고요. 그래서 주님께서 지금 1차 적으로 하는 게 뭐예요? 전 세계 복음이 전파되어서 사람들이 구원받는 거고 그 사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겁니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전에 이루어질 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2. 우리는 전도자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1) 세상 가치관과 세상 가치 기준이, 영적인 눈이 안 열리면 절대로 안 바뀌어요.
여러분이 실제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려면 정말 필요한 게 여러분의 눈이 전도자의 눈으로 바뀌어야 해요. 세상은 지금 세상 기준의 의를 갖고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떠난 것을 죄로 인식이 안 돼요. 사람들이 사탄에게 속아 살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대충 알아서 안 돼요. 그리스도로 확실히 답을 내고 말씀의 뿌리를 내려야 해요. 성령님이 뿌리내리게 만들잖아요. 그럴 때 눈이 열리는 거예요. 안 그러면 절대 눈이 안 열려요. 눈이 안 열리고 가치관도 절대로 안 바뀌어요.
2) 성경은 세상이 분명히 지금 하나님과 적대 관계, 원수 관계가 돼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어요.
마 16:4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 마 17:17에 “믿음 없고 패악한 세대”, 막 8:38에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 빌 2:15은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라고 했어요. 여기에 예외 되는 사람 있을까요? 공부 잘하는 사람은 예외? 좀 도덕 윤리적인 사람은 예외 이럴까요? 아니에요. 이 세대 가운데 속해 있고 여기에 사는 개인을 이렇게 설명하는 거예요. “허물과 죄로 죽었다.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여기에 모든 사람을 다 포함해서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다고 얘기하고 있잖아요. 이게 진짜 여러분의 심령에 부닥치면 그 눈으로 보게 된다니까요. 말씀에 입각해서 세상을 본다니까요. 그래서 여러분의 본성에서부터 올라온 느낌, 감정, 생각, 판단이 아니라는 게 깨달아지는 거예요. 기도가 약하고 말씀이 약한 사람은 본성에 입각한 삶을 살아요. 본성의 느낌, 눈에 보여지는 거, 본성에서부터 올라온 내 생각 거기에 다 잡혀요. 근데 성령님만이 그게 하나님을 떠나서 영이 죽어, 사탄에게 장악돼서 죄의 본성 가운데서 올라오는 판단이고 생각이고 감정이고 이런 걸 구분되게 만드는 거예요. 이게 분명히 구분되면 본성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안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 생각이 분명히 오더라도, “아니라” 이렇게 할 수 있는 겁니다. “나는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만 진리인 것을 믿는다”. 이렇게 들어갈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전도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 때 전도 제자가 되는 거예요. 우리 교회만 아니라 동 시찰 13개 교회가 다 전도 운동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소원이에요. 여러분 하는 직장 일 그만두라는 게 아니죠. 300% 전문성을 갖고 일하되 전도자의 눈으로 일하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맞는 인생을 살라 는 거예요.
3. 하나님 나라 위해 살았던 바울의 동역자들
1)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했던 바울의 동역자들을 지금 소개하고 있습니다.
7절~9절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두기고가 네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주리니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두기고는 우리 교단에서 많이 거명되는 이름이잖아요. “비서다”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근데 여기 보면 그는 어떤 사람이라고요? 사랑받는 형제예요. 교회가 이 사람을 “참 사랑받는 형제다” 이렇게 평가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장로님은 참 사랑받는 장로님이야 이렇게 평가받는 거와 같은 거예요. 그다음에 신실한 일꾼이요. 신실하다는 것은 어떤 직무에 대해서 아주 신실한 거예요. 그다음에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 그 말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군사고 종이고 전도자로 역할을 한 사람에게 붙이는 말이에요. “내가 그를 특별히 너에게 보내는 것은” 골로새서를 두기고에게 맡겨서 골로서 교회에 보내겠다는 거예요. 두기고가 이 서신을 갖다 준 사람이에요. 골로서 교회는 누가 세웠다고 그랬죠? 에바브라가 세웠어요. 근데 지금 바울이 쓴 서신은 두기고가 가져다주는 거예요. 당시에는 인편으로 가져다 줘야 되잖아요. 가는데 골로새 찍고 그다음에 에베소까지 가서 에베소서도 전달하는 직무를 두기고가 맡았어요. 그리고 골로새에 누가 있느냐 하면 빌레몬이 있어요. 골로새에 있는 그의 집에서 교회하고 있었어요. 우리처럼 예배당 건물이 있었던 시대가 아니에요. 몇 가정에서 예배들 드렸어요. 근데 빌레몬은 좀 부자였고 집이 컸기 때문에 그 집에서도 예배 모임을 가졌던 겁니다. 근데 이 빌레몬이라는 사람의 종이 오네시모 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 보면 오네시모를 두기고와 같이 보내요. 왜 보낼까요? 주인한테 돌려보내는 거예요. 오네시모를 형제로 받아주라고 하면서 빌레몬서까지 써서 그거를 두기고에게 맡긴 거예요. 두기고는 골로새서, 에베소서, 빌레몬서를 다 가지고 바울에게서부터 떠나서 각 교회로 갔던 사람입니다. 중요한 사람이지요. 이 사람 가다가 제 역할 못 했으면 성경이 안 남아 있게 될 뻔했어요.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에요.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주겠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8절에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라고 했어요. 오네시모를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래요. 사실 종이거든요. 빌레몬의 종으로 빌레몬 집에서 도망쳐 온 종이에요. 그것도 주인 돈을 훔쳐서 도망쳐 나왔던 종이에요. 이 오네시모에 대해서는 빌레몬서를 볼 때 더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 마지막으로 10~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나와 함께 가신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음에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여기 보면 아리스다고가 나오죠. 또 바나바의 생질 마가가 나오죠. 생질은 외가 쪽 조카를 얘기해요. 그다음에 유스도 라는 예수, 이 세 사람을 거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사람인데 3차 전도 여행 때부터 바울 팀과 동행하기 시작했어요. 이 사람은 사도 바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갔고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해서 결국 로마로 호송 되잖아요. 그때 같이 배를 타요. 아리스다고가 어떻게 같이 배를 탔냐? 바울의 마치 노예나 종처럼 서류를 처리해서 타지 않았나 학자들이 그렇게 보고 있어요. 아리스다고는 실제 노예가 아니잖아요. 근데 바울과 함께 가기 위해서 바울의 노예인 것처럼 해서 같이 호송선에 승선하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가서 로마 셋집에 감금당했을 때 같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끝까지 같이 있었던 사람이죠. 바울을 돌보는 일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이런 일들을 행했던 거예요.
그리고 마가와 유스도도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같이 배를 같이 타서 로마에 갔던 거는 아니고 지금 감금 생활을 바울이 하고 있을 때 밖에서 계속 면회 와서 바울을 돌봤던 사람이에요. 아무튼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했고 바울의 위로가 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 가치가 있으면, 뭔가 잘 되면, 거기 붙어 함께 하지요? 저 사람이 지금 뜬다고 그러면 그 사람에게 딱 붙는 거예요. 근데 그 사람이 세상적으로 손해 보고 세상에서 저평가 당하면 떠나게 된다 이 말이에요. 지금도 종종 그런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말하는 사람들과 또 다음 주에 말하는 사람들 말고는 지금 바울과 같이 긴밀하게 교제했던 사람들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음 주에 의사 누가도 나오고 몇몇 사람이 나오거든요.
결론입니다.
누가 전도 제자입니까? 끝까지 하나님 나라에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에요.
진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산다면 세상 가치 기준대로 안 산다니까요. 오늘 제목이 하나님 나라와 전도 제자입니다. 여러분의 가치관과 가치 기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라고요. 여러분 정말 세상 가치 기준으로 쳐내야 될 게 참 많아요. 왜냐하면 그건 전부 다 사람의 기준이거든요. 여러분이 전도자의 눈이 안 열리면 불가능한 거죠. 근데 이 눈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의 소원에 여러분의 관심과 시간과 돈을 다 맞추게 됩니다.
여러분, 권사님이나 장로님이나 이제부터 진짜 중요한 시간이에요. 뭐 무릎도 안 좋고 허리도 안 좋고, 뭣도 안 좋고 그러니까 슬슬 정리하자 이런 시간표가 아니에요. 우리한테는 아니라니까요. 세상은 65세 되면 노인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럼, 노인처럼 살아요. 여러분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개인 전도하고 다락방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러면 직업이 없어도 그거 해요. 사람을 기르는 일을 한다고요. 우리가 도와줘야 할 후대가 얼마나 많은데 벌써 생각 자체가 낡아지고 생각 자체가 연약해져 버리면 느낌대로 생각이 가거든요. 오늘 그렇게 하지 말라고,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루하루가 중요하게 여겨야 돼요. 왜요? 목표 지점이 점점 가까워지니까, 지금까지 산 것보다 지금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이 말이에요.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진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 후대들이 다 봐요. 후대들이 엄마는 진짜 귀중하게 살았다. 전도자로 살았다. 후대들이 평가한다고요. 저와 여러분이 이런 축복 누리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