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2일 주일예배 - 전도인의 직무를 다해라 (딤후 4:1~5)
전도인의 직무를 다해라.(딤후 4:1~5)
여러분 성도 중에 현장에서 구원의 축복을 누리면서 완전 불신자에게 예수를 믿어야 할 이유와 그 이유와 함께 예수 믿으면 어떻게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되고 어떻게 운명이 바뀌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성도 중에 그냥 “교회 다녀봐라” “예수 믿어봐라”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내가 있는 현장에서 불신자 상태를 알고 정확히 답 주어서 영접을 시키고 다락방 할 수 있는 성도는 얼마나 될까요? 여러분이 이것이 되는 것이 올해 목표입니다. 아까 찬양한 것처럼 언약 속에서 기도가 되면 이 발전이 돼요.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어지도록 하실 것을 약속했다는 것을 진짜 붙잡고 기도하면 자기 삶도 바뀌고 또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이 불신자나 확신 없는 신자를 만났을 때 불신자를 영접시키고 확신 없는 신자에게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제자로 양육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알아듣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게 되기 위해서 언약 안에서 기도하셔야 돼요. 너무 좋은 찬송 감사합니다.
언약 속에서 기도가 되면 여러분의 생각이나 여러분의 계산에 의한 삶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그것이 실제 되어질 걸 믿고 기도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체험이 돼요. 기도 안 하면 자기 생각대로 사는 거고 실제 이 기도가 되면 불신자에게 답 주고 또 확신 없는 신자를 확신 갖게 만들고 제자 삼는 일이 실제 기도 속에서 되어집니다. 여러분이 답 주고 제자 세우기 위해서는 현장이 있어야 하고 전도 규례가 있어야 됩니다. 현장이 없으면 계속 갈등하게 됩니다. 일단 현장 가서 뭐부터 하라고요? 전도부터 할 생각하지 말고 현장에서 기도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현장에서 흑암이 꺾이고 여러분을 불안케 만들고 전도에 대한 부담과 연약함을 주는 영적인 상태가 뒤집히는 기도부터 체험하기 바래요. 그래서 “오늘 이 현장에서 주님이 연출해 달라고, 정말로 하나님이 복음들을 사람 또 구원받을 사람, 제자 될 사람을 주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이게 내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거예요.
그리고 좀 사람 있는 데 가야 되겠죠. 사람이 전혀 없는 데 가서 기도하면 소용없고 놀이터나 사람들이 쉬러 오는 곳에 가요. 바쁜 데는 가면 안 돼요. 가서 이 기도를 탁하면 기도가 풀리고 기도가 잘 되면 지금 성령께서 이끄시고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나는 통로입니다. 저에게 말씀도 주시고 상대방 속에도 성령님이 역사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여러분의 현장에 있어야 되고 이거를 실행하는 전도 규례가 있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제가 몇 주 전에 공대 가서 컴퓨터 공학 전공하는 대학원생을 만났어요. 이 친구도 인공지능 하더라고요. 제가 음료수를 주면서 궁금한 것을 몇 가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잘 대답해 주더라고요. 이 친구는 무신론자고 교회에 전혀 가보지 않은 친구예요. 복음을 전하는데 관심있게 듣더라고요. 복음이 뭔지를 처음 듣는 거예요. 관심을 보이면서 또 놀라기도 하고 전혀 그런 거 몰랐는데 이런 식의 반응이에요. 그래서 질문하고 대답해 가면서 한 40분 얘기를 했어요. “복음을 뭐 이렇게 오래 전하냐?” 그러는데 대화가 되면 1시간도 대화가 돼요. 제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인간이 갖고 있는 기본 욕구 두 가지가 있다.” 여러분 아시죠? 안전에 대한 욕구, 생존에 대한 욕구, 그다음에 자존심과 성공의 욕구입니다. “사실 인간이면 이 기본 욕구는 당연히 갖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불안과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 안전만 생각하고, 가지고 있어도 남 주지 못한다.” 제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성공하기 위해서 높아지길 원하는데 그러나 자기는 높아지고 남은 낮추기를 원한다”고 이런 얘기를 했는데 인정해요. “그게 바로 죄의 본성이다.” 그러면서 “AI는 발전하지만 인간성은 더 타락하게 되고 지금 불안과 욕심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 때문에 또 명예 때문에 끊임없이 욕심부리고 투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죄와 갈등과 고통은 더 심해지게 된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창 3장의 죄의 본질이 뭔지 또 그 결과가 뭔지를 알려주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심판하시는데 세상을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의 길을 내셨는데 그 구원자가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렇게 설명하면 일단 논리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 친구도 일단 논리가 되니까 이해력으로 듣는 거예요. 성령님의 역사하시면 이해력이 아니라 말씀이 내면에 들어가겠죠. 아무튼 그날 이 친구는 정확한 복음을 들었어요.
요새 제가 가면 정확한 복음 듣는 애들이 많아요. 정확한 복음이 전해졌으니까 저는 어떤 생각이 드냐 하면 일단 성공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 친구가 믿든지 안 믿든지 일단 성공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때를 어떤지 못 얻던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그랬지, 니가 믿게 하라고 이렇게 돼 있지 않아요. 믿게 하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영접을 막 해서 무릎 꿇고 막 눈물 흘리면서 받아들이면 신나겠죠. 근데 그 신나는 게 없다고 우리가 안 전해야 됩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지금 자기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두고 진리에서 돌이킨다고 되어있어요. 진리를 지금 사람들이 안 즐거워한다 안 받아들인다는 말이에요. 그러나 “너는 전도인의 직무를 다해라.” 이렇게 돼 있어요. 제가 공대에 들어가서 작년 1학기 때부터 지금까지 공대에서만 복음 전한 사람이 87명이 되더라고요. 87명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그걸 다 기록해 놨거든요. 그 명단이 있으니까 파악이 됩니다. 그중에 관심 있게 복음들은 사람, 1시간씩 대화하면서 복음들은 사람, 이들의 명단을 따로 뽑았어요. 따로 뽑아서 관리하면서 “이 친구들은 계속 기도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먹고 제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은 전부 다 제 폰 번호를 알려준 친구들이에요. 자기 마음이 움직이고 성령님이 저와의 만남을 기억하게 한다면 전화 올 수 있죠. 그러니까 주님의 전도에 나 자신을 드리는 겁니다. 전도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그만큼 복음을 누리는 삶이 전제가 돼야 해요. 그러니까 거꾸로 얘기한다면 전도 현장에 들어가 전도 규례를 가지고 시행한다면 항상 깨어 있게 돼요. 안 그렇습니까? 자기 관리가 된다고요. 내가 영적인 상태가 안 좋으면 현장도 못 들어가요. 뭐 이래저래 핑계 대요. “요새 누가 이렇게 노상에서 전도해서 뭐 믿나?” 이런 얘기만 하지. 사실 여러분이 항상 깨어 있고 그리스도로 답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럴 때 안 나가도 그런 사람이 붙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주 바울의 유언적 명령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네 가지 권위적 배경을 갖고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바울이 그렇게 엄히 명령하지 않았습니까?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다시 말해서 “니가 믿게 해라.” 그 말이 아니라고 그랬죠. 니가 믿게 하라는 게 아니라 말씀을 전파하라는 거예요. 왜요? 심판주께서 곧 임하시게 되니까 그때 저와 여러분이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복음 듣지 않았습니다”라고 말 못 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여러분은 굉장히 중요한 하나님의 통로가 되는 거예요. 네 가지 권위적 배경이 뭐였습니까? 첫째가 “하나님 앞에서 와” 그랬죠. 두 번째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앞에서”와 세 번째는 “그가 나타나실 것 앞에서”와 마지막으로 네 번째가 “그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가 완성되는데 그 앞에서 엄히 두고 명령한다 이렇게 돼 있어요. 이것만큼 더 엄중히 말하고 있는 내용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엄중히 아주 장엄하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지금 대상은 사역자인 디모데에게 하는 얘기예요. 우리는 참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가졌어요. “내가 목산가? 나는 평신도잖아. 목사님은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죠. 근데 나는 세상에 지금 하는 일도 바쁜데 어떻게 그렇게 삽니까?” 그런 얘기를 참 많이 해요. 근데 그걸 깨부순 게 사실은 우리 다락방 전도 운동이거든요. 선교 단체 아니더라도 일반 성도들도 전부 다 전도자로 세우는 게 우리 교단이 나아가는 방향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함께 메시지 받고 그랬잖아요.
지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하고 그다음에 뭐라고 돼 있습니까?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그러니까 1~2절 말씀은 개인 전도와 다락방 전도 운동을 하라 이렇게 받으시면 돼요. 전도란 제가 영적 가나안 정복이라는 말씀을 여러 번 드렸습니다. 영적 가나안 정복이 싸움이잖아요. 이 싸움은 교회가 세상을 정복하느냐, 아니면 교회가 세상에 정복당하느냐의 싸움이에요. 여러분 전도 안 하는 거는 우리가 당하는 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그냥 육신적으로 살고 세상적으로 사는 꼴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나는 내 믿음 지키면 돼” 그게 아니고 세상에게 지는 거예요. 주님은 그렇다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열심과 여러분의 능력과 방법으로 전도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또 속는 거예요. 그게 아니고 여러분 속에서부터 주님이 여러분을 잡고 여러분을 통해서 전도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약 안에서 기도하는 삶이 평상시에 체질이 되는 사람이 이쪽으로 발전하게 되는 거죠. 기도를 잘 안 한다. 기도하는데 진짜 제가 계속 영적인 근본 문제를 깔고 얘기하잖아요. 그게 정확하고 확실해지면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분명히 알게 되거든요. 강단 말씀 붙잡고 기도하셔야 돼요. 여러분 진짜 지금 불신자 상태가 어떤지, 자기와 비추어져서 아주 정확하게 고백하는 기도를 하면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느끼게 되어요. 그런 나를 또 이때까지 치유하고 회복하셔서 승리하게 만드시고 또 주님이 증인으로 세워서 쓰고자 하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이런 맥락의 기도를 실제적으로 여러분이 붙잡고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1. 여러분은 세상 현장을 영적 가나안으로 간주하시고 주님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세상에 어떤 불신자 상태에 놓여 있는지 계속 보는 눈이 열려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 안주 안 해요. 제가 계속 선악의 기준점이 왜곡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죠. 저는 이게 타락의 핵심이고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종교에서도 다 죄에 대해서 얘기해요. 무슨 죄를 얘기해요? 양심 윤리적인 죄에 대해 일반 종교가 다 얘기합니다. 그러나 지금 말한 것처럼 사단이 속여 하나님처럼 된다는 욕심을 넣으면서 선악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됐다는 말은 누구도 안 합니다. 여러분 이게 바르게 이해되었다면 “엘리트든, 양심가든, 타락한 사람이든 전부 다 지금 사단의 권세 아래 놓여 있네. 사단에게 지금 속고 있네.” 이게 와닿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깨달아지고 믿어지면 “나는 진짜 은혜로 주님이 택해 주신 거네. 나를 구원해 주신 거네. 내 조건 때문에 구원받은 게 아니네”. 감사케 됩니다. 신앙생활은 종교 생활과 다른 겁니다. 종교는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 신을 만들고 섬기는 거예요. 거기다가 윤리 도덕을 찾는 거 아니겠습니까? 창 3장의 사건은 인간이 사단의 속임수와 하나님처럼 된다는 욕심에 넘어간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인식은 없어지고 보이는 것과 육신의 것만 인식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 상태에서 내가 선악의 기준이 되고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는 거예요. 그러면서 온전하지도 못하면서도 양심적인 의, 윤리적인 의를 자꾸 세우려 하고 딴 사람 비판하면서 자기는 정작 하나님께 안 돌아가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그러니까 신 목사도 반역자였고 윤용섭 집사님도 반역자였어요. 온 세상이 지금 죄 가운데 빠진 거예요. 반역한 인간이 양심, 윤리적인 의, 각종 행위적인 의, 종교적인 의를 내세우면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단에게 지금 속는 거예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과 왕권과 하나님의 기준에 선악의 말씀을 인정 안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영적 관계가 회복돼야 하는 거예요. 지금 말씀드리는 게 창 3장의 원죄의 핵심이에요. 사단은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해서 타락했잖아요. 그 욕심을 똑같이 인간에게 심었던 겁니다. 우리가 창 3장의 죄를 말할 때 단순히 도덕 윤리적인 죄를 말하거나 그런 죄의 목록만 말해서는 안 돼요.
2) 지금 온 세상이 사단의 속임수와 욕심에 빠져서 삶의 체제와 기준이 다 뒤집혀버리는 거죠.
저는 이게 인정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보니까 지금 온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하에 있고 시급한 구원이 필요한 거예요. 하나님의 카운트 다운이 들어갔어요. 말세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카운트 다운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자기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영원한 지옥 불 못에 떨어지는 것을 애통해하며 탄식하시는 거예요. 이것을 여러분이 알면 사도 바울이 왜 네 가지 권위적 배경을 갖고 명령하는지 이해가 되는 거예요.
이 현장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이 말이에요. 우리가 다락방 기초에서 불신자 6가지 상태가 있잖아요. 그 6가지 상태를 보는 눈에 이걸 더하면 돼요. 현장에 들어가서 불신자의 상태를 통찰하면서 현장에서 기도가 되면 돼요. 전도하기 전에 기도가 되면 돼요. 성령님이 불신자 상태 보는 그 통찰력을 갖고 기도하게 만들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전도의 주인이십니다” 하는 그 기도가 되게 만들잖아요. 그래서 전도에 부담이 없어져요.
어디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가? 우리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딘가 찾아보시라고요. 만약에 자기 직업이 사람이 찾아오는 직업이면 최고 좋은 거죠. 이렇게 사람과 만남이 잦은 그런 직업은 굉장히 좋은 거죠. 그 직업 속에서 관계성을 잘 맺어서 밥 한 끼 사주면서 전도하면 되잖아요. 누가 밥 사줘요? 공짜로! 여러분은 “하나님 나의 배경이십니다. 이렇게 나가는 돈은 하나님이 다 보장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밥 한 끼 사줘 봐요. 동네 아줌마들 전부 다 신나지요. 어려운 게 아니에요. 밥 한 끼 사줘요. 그러면 얼마든지 전도 할 수 있어요.
2. 오늘 읽은 본문이 시대적 특징을 잘 나타냅니다.
1) 3~4절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길을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여기서 보면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그랬어요. 귀가 가렵다는 것은 긁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 말이에요. 다시 말해서 자기 사욕을 시원하게 채워줄 그런 스승을 많이 둔다는 거예요. 인간 타락의 본질을 말해주고 그 해결자 되신 그리스도를 전하면 안 들어요. 진리의 교훈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필요에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말은 잘 듣는다는 거예요. “하나님 자녀의 합당한 삶을 살아라” 이런 메시지보다는 창 3, 6, 11장의 본성을 채워주는 그런 말에 다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육신의 본성의 재미 거리를 제공하고 쉼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자기 이익에 합치하고 만족시켜 주면 다 좋아해요. 4절에 “그 길을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얘기를 따른다”이렇게 돼 있는데, 진정한 답이 아닌 영혼을 살리지 못하는 비복음 비진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 말이에요.
2) 5절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내 직무를 다하라.
고난을 피하라 이렇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돼 있지 않아요. 그 시대 상황이 고난으로 배도하기 쉽고 두려워서 전도하기는 힘든 시대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사도 바울은 고난을 받아들이면서 전도자로 살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우리는 전도하는데 딴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얘기할까, 의식돼서 전도 못 하는데 지금 그런 차원이 아니죠. “모든 일에 신중하여” 그랬어요. 이것은 전도자와 사역자가 가질 자세예요. 우리는 모든 일에 신중하되 복음의 진리 앞에 합당한 삶을 사는 거예요. 내 인생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릴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소원에 내 인생을 드릴까?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이런 걸 점검하는 게 신중한 거 아니겠습니까? 고난을 받되 고난을 피하지 말고 담대함을 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전도자의 일을 하며 내 직무를 다하라는 거예요.
이게 바울의 유언적 명령이에요. 오늘 여러분이 이 말씀이 내게 하시는 말씀이구나 이렇게 들린다면 여러분은 전도자입니다.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답 났고 결론 나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이 된 거예요. 이 말씀이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아멘 되는 사람도 있죠? 올해 이게 되라는 거예요. 이게 교인 수가 적든, 많든 이런 사람들이 나와야 하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 되면 돼요. 사실 심판은 다 각 개인이 받는다니까요. 아주 수만 명 모이는 교회 그 성도들도 각 개인의 심판을 받아요. 그 교회 목사님이 누구냐? 뭐 이런 거 안 물어요.
3. 전도자가 명실할 것
1) 우리가 정복하지 않으면 교회가 정복당합니다.
교회가 정복하지 못하면 교회가 정복당해요. 이스라엘 민족이 정복 못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정복을 당하는 거와 같은 거예요. 주님은 교회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도록 1장 8절의 언약을 필연적으로 주신 거예요. 가나안 전쟁에서 하나님이 내가 싸워주신다고 돼 있잖아요. 근데 전쟁이니까 두렵죠.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놀라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지금 두려운 현장이거든요. 가만히 보세요. 전도 현장도 불편한 현장 아닙니까? 내 본성으로는 안 편한 현장이에요. 류 목사님이 이렇게 나가서 하는 전도 말고 다락방 전도식으로 해라. 그렇게 된다면 좋은 거죠. 근데 그게 수십 년 동안 안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현장에 나가면서 계속 영적인 역량이 길러지거든요. 그래서 24시로 들어가거든요. 주님이 어떻게 은혜를 주실까 기대가 되거든요. 근데 현장이 없으면 계속 메시지만 듣고 있고 다 평가자, 판단자만 돼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메시지가 별로 없는데도 그 은혜에 감동돼서 복음을 말하지 않습니까?
수가성 여인, 사마리아 여인 있잖아요. 예수님 만났다고 막바로 쫓아 들어가서 동네에다가 얘기하잖아요. 그렇게 말할 여인이 아니거든요. 지금 창피당하는 여인이란 말이에요. 숨어서 사람들 없을 때 정오에 물 길으러 왔던 여인이란 말이에요.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도 또 다른 남자랑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율법 사회에서 얼마나 손가락질 당했겠어요. 근데 자기가 메시아를 만나게 되니까 부끄러움 없이 그냥 뛰어 들어가서 사마리아 동네에다가 전도하잖아요. 이게 지식이 많아서 되는 게 아니에요. 이게 전도 방향을 안 맞추고 있는 사람은 평생 그렇게 안 들어가요. 전도에 대한 방향을 맞추게 되면 내가 어디가 약하지, 내가 왜 어떤 부분이 안 되는지, 계속 점검에 들어가는 거예요. “정말 내면적으로 그리스도가 24시 누려지게 하옵소서” 그럴 때 24시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때마다 문제 사건을 주시잖아요. 그게 그리스도께 믿음의 뿌리를 자꾸 내리라고 주시는 문제예요. 영적으로 안 깨어 있으면 문제 올 때마다 휙휙 넘어지는 겁니다. 사람한테 걸려, 목사님한테도 걸려요. 목사님이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사실 설교 시간에 그분한테 얘기한 게 아니고 전체적인 얘기를 했는데 자기는 그렇게 들리는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소원에 방향을 맞추는 게 신앙생활에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제가 지금 초신자한테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여기 초신자 아무도 없어요. 1장 8절이 지금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이 싸워주시는 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싸워주신다는 얘기 아닙니까? 두 계열의 싸움에서 이기고 히 11장에 두 종류의 믿음이 가능하려면 성령 충만이 필요한 거예요. 히 11장의 두 가지 믿음, 하나는 고통과 죽음도 감당하는 믿음, 또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응답을 체험하는 믿음 다 성령 충만해야 가능합니다.
2) 여러분의 정체성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정체성과 승리에 대한 확신의 말씀을 좀 드릴게요. 신 33:29절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이거 신분이죠.
정체성이죠. “여호와가 누구신데 그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이 말이에요.
그다음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 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것을 밟으리로다.”전쟁에서 고지를 점령해버리면 승리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전쟁하는데 여호와께서 방패와 칼이 되신대요. 이것보다 강력한 게 어디 있어요? 이게 지금 정체성의 확신과 승리의 확신이거든요.
이거를 여러분, 신약적 단어로 한번 바꿔보세요. “복음 가진 자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리스도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 마귀가 네게 복종하리 네가 그들의 높은 것을 밟으리로다.”
여호와를 그리스도로 바꿨거든요. 대적을 마귀로 바꿨거든요. 이게 지금 오늘 우리의 정체성이란 말입니다. 보장된 승리란 말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이 신 33장 29절 그 본문대로 정체성의 확신과 승리의 확신을 가졌다면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했을까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보좌 배경을 누리면서 제사장 나라 사명까지 감당했을 겁니다. 왜 이스라엘은 맨날 전쟁하지요? 하나님 나라 대 세상 나라와의 전쟁이에요. 만약에 이스라엘이 전쟁 안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정복당해요. 힘없으면 정복당해요. 그래서 가나안 땅에서 고난 당했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영적으로 지금 정복하느냐 정복당하느냐의 싸움이란 말이에요. 전도하지 않고 맨날 텔레비만 봐. “내 유일한 안식처 TV, 유튜브. 나는 세상에서 피곤한데 이 시간이 제일 편안해. 그리고 자는 시간이 제일 편안해. 잘 때는 모든 걸 다 잊어버리기 때문이야.” 근데 여러분이 안 싸우게 되면 여러분이 정복당해요. 교회가 정복당해요. 저도 필요하면 유튜브 보잖아요. 요새 그런 내용이 많이 나와요. 교회가 없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2천 몇 년부터 통계치로 얘기를 하더라고요. 한국 교회에서 한 130만 명이 교회를 떠났다는 겁니다. 코로나 그때부터 시작해서 130만 명이면 굉장한 숫자예요. 그래서 앞으로 이제는 더 심해진다. 저는 근데 확신해요. 영적인 파워가 있는 교회는 이 시대를 뚫어요. 체질을 바꾸셔야 돼요. 아무리 237이라 얘기해도, 아무리 하루 세 번 기도 얘기해도, 자기 패턴이 딱 고정돼서 맨날 똑같은 반복으로, 똑같은 사고와 똑같은 관심과 똑같은 패턴으로 살아버리면 안 바뀌어요.
결론
이스라엘에게 승리가 보장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지금 승리가 보장이 돼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언약 안에서 기도” 찬양을 너무 잘했습니다. 언약 안에서 기도하는 거, 언약 잡고 기도하게 되면 성삼위 하나님이 모든 것 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영적 가나안 정복의 주역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