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5일 주일예배 - 제자의 요건(눅 17:1~10)
제자의 요건(눅 17:1~10)
주님은 보좌 통치하시면서 각 사람 속에 지금도 성령으로 오셔서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붙잡고 우리 속에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소원을 이루기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주에 주님이 우리 속에 살아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그런 말씀을 드렸어요. 우리보다 더 그분이 싸워주시기를 원하신다. 또 우리보다 더 언약을 성취해 주기를 원하신다 는 그런 말씀을 드렸어요.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고 사실 계속해서 의탁하는 체질, 믿음의 체질로 발전시키는 것이 여러분이 집중훈련하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삶의 전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제자로 서게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 내가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고 내 생각으로 안 들어가고 주님이 주시는 생각으로 삶을 처리하는 역량이 길러진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오늘 부활절 축제가 있어야 할 날이지만, 한국교회와 또 우리 교회와 우리 교단이 살아야 할 제자 조건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목이 “제자의 요건”이에요. 오늘 이 제자의 요건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1. 제자는 살리는 자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실족시키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1) 의미
실족게 한다는 것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거죠. 신앙에서 넘어지게 만드는 걸 의미하는 거예요. 오늘 특별히 용서와 관련된 말씀이 나오잖아요. 주님이 용서했는데도 우리가 용서를 안 하고 여전히 그 사람을 정죄해버리면 실족하는 거죠. 또 우리가 사람을 무시해서 실족시킬 수도 있어요. 여기 작은 자를 실족시키지 말라 이렇게 돼 있잖아요. 이 작은 자는 어린아이도 될 수 있어요. 또한 영적인 어린아이 다시 말해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도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사회적 지위나 경제 이런 것들이 낮아서 무시당하고 천대당하기 쉬운 자도 될 수 있습니다. 실족시키는 것은 주로 말로 많이 실족시키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거예요. 실족이라는 것이 그 사람이 아무리 연약하고 작은 자일지라도 그리스도께 뿌리내리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반대로 떨어져 나가게 만드는 거예요. 그 대가는 상당히 위중합니다.
2) 그 대가
2절에 보면 “그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이렇게 돼 있어요. 아주 강력한 표현이죠. 작은 자를 실족시키는 죄에 빠지게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런 말씀이 되는 거죠. 사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사람의 말을 별로 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뭐라 뭐라 그래도 저는 기도하면 되거든요. 기도하면 내 본성으로 반응하지 않고 내 마음이 상하고 걸리는 게 아닙니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걸렸어요. 근데 지금은 성령으로 반응하니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말한 사람의 상태를 보면서 그 사람을 위해서 오히려 중보 기도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별로 그 영향을 타지 않는데, 반면에 작은 자는 이게 안 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께 뿌리내리는 게 아니라 떨어져 나가는 실족을 하게 되는 것이죠. 주님 보시기에 이 작은 자도 주님이 죽어 주신 영혼이고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중하다고 간주하시는 영혼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지금 하시는 이유가 당시 바리새인들이 이 짓을 많이 한 거예요. 자기들이 갖고 있는 기준을 가지고 죄인을 치는 거예요. 간음한 사람 치는 거예요. 세리 잘라내는 거다 이 말입니다. 우리도 우리 기준이 강하면 그렇게 하기가 쉬워요. 오늘 우리가 율법으로 행한다면 쳐낼 사람 진짜 많아요. 그러면 나도 쳐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전적으로 지금 복음을 허락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살리는 자가 돼야 하고 실족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에요.
2) 그러면 일체 권면이나 옳은 말, 바른 말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3절을 읽어볼까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내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이렇게 돼 있어요. 여기 경고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죄를 묵인하라는 말 아니거든요. 무조건 죄를 덮으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 사람을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그런데 전제가 있어요. 정죄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내가 걸려서 쓴소리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고하고 책망할 수도 있죠. 필요하다면 책망하는데 사랑함으로 그 일을 하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해는 하지만, 내가 무시하는 사람이나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이 딱 눈에 보이면 그 감정이 드러나게 돼 있거든요. 이게 걸러져야 하는 거지요. 사람을 바꾸는 건 누가 바꿔요? 우리말로 못 바꿔요. 하나님이 바꾸셔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올바른 통로가 돼야 한다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정죄가 아니라 형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사랑의 권면과 가르침이 필요한 거예요. 특별히 목사님이 여러분을 놓고 기도하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얘기하더라도 받아 낼 수 있는 힘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이십니까? 안 그러면 누구한테 가르침을 받겠어요?
또 이런 말씀이 있죠. 형제가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돼 있어요. 회개하면 언제든지 용서해야 합니다. 4절 읽어볼까요?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로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어떤 성경에는 7번에 70번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라 돼 있어요. 여기서는 일곱 번이라고 돼 있지만. 사실 일곱이라는 것은 완전수를 말하는 거거든요. 70도 그래요. 용서의 한계가 없다는 말씀이에요. 근데 우리는 안 그렇잖아요. 참아주죠. 근데 또 그러면 ‘그래, 한 번 더 참아준다’ 그러잖아요. 또 그러면 이제는 못 참겠다. 이렇게 나오잖아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똑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더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언제든지 용서하라는 거예요. 상대가 회개 안 해, 그리고 계속 고집부린다면 그건 주님께 맡겨야 해요. 말해도 안 들으면 주님께 맡겨야 해요. 이게 지금 여러분이 가질 자세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한히 용서하고 있습니다. 맞죠? 7번에 70번이라도 주님은 용서하고 있는 거예요.
2. 여기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1) 믿음을 더하소서
5절을 읽어볼까요?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갑자기 믿음을 더해 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제자들은 무한히 용서할 수 있다는 거는 그만큼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주님께 대한 믿음이 확실해야지 그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죠. 맞죠? 용서하는 거는 계명 지키는 거잖아요. 우리가 계명 지키는 전제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에요. 그럴 때 계명을 지킬 수 있어요. 그러나 이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하면, 8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 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라 하면 하였을 것이오.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이 산이 들려 저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면 그것이 이루어지리라 이런 표현도 나오거든요. 같은 맥락이죠. 여기서 용서와 관계해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으면 뽕나무더러 명하면 그게 저 바다에 심겨질 거다. 사실 뽕나무 뿌리는 뽑기가 힘든 나무래요. 근데 그게 뽑혀서 바다의 심기라고 하면 심긴다는 거예요. 이건 불가능한 게 가능하게 된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2) 여기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뭘까요?
제자들이 믿음을 크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믿음의 본질에 대한 설명을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 중에 하나죠. 한번 앞에 한번 볼까요? 여기 겨자씨가 보이십니까? 이게 겨자씨예요. 이것 보니까 좀 커 보이는데 제가 볼 때 채송화씨보다 더 작은 것 같아요. 근데 크면 이렇게 커져서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가 되잖아요. 여기 겨자씨 하나일 만한 믿음이라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아주 작아 보이잖아요. 근데 이게 생명의 역사가 그 안에 들어 있어요. 생명은 계속 자라나게 돼 있어요. 여러분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고 10년 믿었으면 그 믿음이 막 자라나는 거예요. 20년 믿으면 굉장히 그 믿음이 알차지고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거예요. 맞잖아요. 지금 그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바리새인들은 외적으로 보이는 믿음, 드러내는 믿음, 형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잖아요. 지금 거기에 반하여서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윤주가 4월 27일이 출산일이라고 그래요. 지금 밤에 잘 때도 발로 막 찬대요. 우리 어머니들은 다 경험했던 일 아니겠습니까? 근데 자라나는 게 느껴지잖아요. 지금 배가 상당히 나왔어요. 형상이가 이름을 지었는데 ‘신이로’로 지었어요. 여자애거든요. ‘이’ 자가 진리를 뜻한대요. ‘진리의 좁은 길로 가는 사람’ ‘신이로’ 그렇게 지었대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 겨자씨 한 알이 자라나서 새들이 깃들인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주님과 생명적 교제가 있으면 크게 성장하는 믿음이 됩니다. 여러분 매주 주님과 생명적인 교제가 되는 것이 기도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돼요? 여러분이 이때까지 살아왔던 체질을 바꾸게 돼요. 본성을 극복하게 돼요. 뭐 짜릿 찌릿하든지 충만한 느낌보다도 중요한 거는 믿음의 통로가 되는 거예요. 실제 하나님이 한 사람을 통해서라도 얼마든지 역사하신다는 거예요. 문제는 “내 같은 게”, 그러면서 믿음의 삶의 비전이 없어요. “그냥 이래 살다 죽지 뭐” 이렇게 사는 거 있죠? “내가 뭐 이때 비전을 가져서 뭐 얼마나 큰 비전을 이루겠다”고 아니 스스로 이렇게 한정해 버리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내 꼬라지가 이런데” 이건 하나님을 참 제한하는 거예요. 맞습니까? 실제 역사를 이루고, 능력을 이루는 거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이라는 통로만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다 이루시는 거예요. 비전을 가지세요. 환경에 매여버리는 믿음 말고. 자신의 수준에 묶여버리는 믿음 말고. “나는 공부도 못해, 나는 지적이지 못해. 내가 뭐 하겠어” 스스로 묶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능력으로 한다고 생각하는 꼴이에요. “난 돈이 없어.”그럼 평생 돈 없는 거에요. 묶어버리잖아요.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생명력 있는 믿음을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생명적 교제가 있는 믿음을 말하는 거예요. 성령의 임재, 통치, 인도, 역사하심이 본질적으로 되면 하나님 역사의 통로가 되는 거예요. 사실 하나님 백성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환경이 안 좋을수록, 여러분이 어려울수록, 교회가 어려울수록 진짜 하나님이 여러분을 믿음의 사람으로 바꾸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항상 남 믿음에 따라가는 믿음, 환경에 의존적인 믿음 아니거든요. 남이 낙심하면 같이 낙심하면 바른 믿음 아니거든요. 여러분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그게 믿음이고, 하나님 백성이 가질 믿음이에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아야 해요. 하나님을 알게 되니까, 그리스도를 알게 되니까, “야, 이게 정말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구나” 이게 와닿아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인본주의 논리와 계산에 갇혀 있으면 안 돼요. 하나님의 능력과 배경을 믿는 백성이 돼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내가 회복되고 내가 자유인이 되어요, “저 사람은 별로 돈도 없는데, 저 사람은 항상 기쁘게 사네.”이런 사람이 돼요. “저 사람은 상당히 생각이 긍정적이고 확신이 있어!” 이런 사람이 된다니까요. 그런 사람이 남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섬길 수 있고, 계명 지킬 수 있게 돼요.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삶을 살도록 부름 받은 거예요. 하나님이 증명되는 민족,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이 증명되는 민족으로 택하심을 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들은 불신앙 불순종에 빠져서 살았어요. 마치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살았어요. 무화과나무라는 게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십자가 지러 올라가셨을 때 시장하셨어요. 그래서 열매를 구하기 위해서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에게로 가셨어요. 근데 열매가 없었어요. 그러자 예수님이 저주해 버리셨어요. 이 저주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예언적 성격이 있는 거예요. 그 후 한 40년 후에 AD 70년에 이스라엘이 멸망해 버린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제일 견디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믿음이 없는 사람이에요. 제일 안 바뀌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이 제일 답답해하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의 효과를 알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멋있게 살 수 있어요. 모든 게 다 기회가 된다니까요. 여러분의 연약함이 다 기회가 돼요. 문제가 다 기회가 돼요. 우리 가문은 귀신의 역사, 사단의 역사가 많았던 우상숭배의 집이야 해도 그것도 기회가 돼요. 그것도 발판이 돼요. “기회가 되는 삶을 삽시다.” 지난주도 얘기했지만, 지금 우리 교회가 오히려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하지 않고 성령으로 반응하고, 내 생각으로 반응 안 하고 믿음으로 반응할 좋은 기회예요.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루실 일에 진정한 그릇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시간표입니다.
3) 무익한 종의 비유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을 이야기 하시고 예수님의 종의 비유를 드셨어요. 7~10절까지 읽겠습니다. 종들은 자기가 뭐 열심히 수고했다고 해서 주인 앞에서 내가 이렇게 했네 라고 내세울 수 없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뭐라고 얘기한다고요? “나는 무익한 종이니이다. 하여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이다.” 이게 모세가 고백할 고백이에요. 이게 바울이 고백해야 할 고백이에요. 이게 지금 대교회든, 작은 교회든 모든 목사님이 고백해야 할 고백이에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역사에 크게 쓰임 받았다고 해도 결국 고백해야 할 것은 ‘나는 무익한 종이니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크고 작은 게 기준이 아니라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과 목표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 사람의 믿음이 회복되고 주의 형상이 회복되면 일단 계명을 지키는 사람으로 바뀌게 돼요. 크고 작은 문제가 아니잖아요. 진정한 회복의 문제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의 사역을 크게 쓰고 작게 쓰고는 주님께 달려 있는 겁니다. 그걸 자랑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 권사님 인생에 대한 계획과 목표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오 권사님이 가정에서 자기 역할을 정말 잘하는 거예요. 그리스도로 반응하는 거예요. 그게 주님이 기뻐하는 거예요. 또 직장 일을 정말로 기쁘게 감당하는 거예요. 그걸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예요. 직장 일에서 누림이 있는 거예요. 오 권사님이 나름대로 행복의 비밀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누리는 그리스도를 말하게 되는 거예요. 이걸 주님이 원하시는 거예요. 오 권사님에게 목사가 되라 이렇게 요구합니까? 니가 저 필리핀 가서 선교하라고 요구하십니까? 아니잖아요. 우리는 자랑할 수 없어요. 공로를 주장할 수 없어요. 우리는 질그릇 같은 존재고 모든 것이 은혜였음을 고백할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런 고백을 하잖아요.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오.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오늘 이런 자세가 우리 대한민국 교회가 다 가져야 할 자세예요. 특별히 우리 교단이 가져야 할 자세예요.
3. 오늘 세 가지 제자 요건에 대해서 말씀드렸어요.
1) 제자는 살리는 자다.
작은 자를 실족시키지 않는 자다. 그의 진정한 유익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래서 경고해도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고하고 가르치는 거다.
2) 제자는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에요.
이 믿음은 자라난다니까요. 하나님 역사의 통로가 되고 하나님 쓰시기에 정말로 올바른 그릇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성장하는 믿음, 생명력 있는 믿음을 갖는 거예요. 19차 훈련 집중 훈련을 했는데 하나님 저는 매번 은혜받는 것 같아요. 그게 맞는 거죠. 계속 성장하는 것 같아요. 그게 맞는 거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용서가 가능하고 하나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뀐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어떻게 돼요? 내 틀, 내 그릇이 깨뜨릴 수 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틀이 있거든요. 우리가 전부 불신자로 살았기 때문에 불신자의 틀이 있어요. 그게 인본주의 틀이죠. 내 불안과 나 중심의 자아가 인생 살면서 문제의 사건을 당하는 거거든요. 그때 어떻게 처세합니까? 불안을 갖고 나 중심적인 내가 문제를 겪으면 어떻게 반응하겠어요? 피해 의식을 가져요. “진짜 힘들어서 죽을 뻔했어.” 이 소리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때 불안한 가운데 더 자존심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남 생각 못 하잖아요. 불안한데 문제 겪으니 더 나 중심으로 들어가면서 내 안에 꼭꼭 묶이는 거예요. 그때 경제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가정에 대해서 틀들이 다 만들어진다니까요. 저 사람은 돼, 안 돼 이런 기준도 그때 더 강화되는 거예요. 나 중심으로 다 강화가 되는 거예요. 그때 처세를 하는데 사람한테 보이기 위해서 처세하고 사람들한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자기 체면 차리기 위해서 처세하고 그런 게 다 그때 굉장히 깊게 들어가는 거예요. 이때까지 50이 넘었고, 60이 넘었고 70이 가까웠는데 그 틀을 딱 갖고 있는 거예요. 말씀을 들을 때 이해는 되는데 내 본성과 체질 속에서 형성된 틀은 안 바뀌는 거예요. 말씀의 빛이 쫙 비춰야 한다니까요. 하나님의 능력은 크신데, 하나님은 나를 진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리는 사람으로 쓰기를 원하시는데 내 그릇이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그건 누구 책임이에요? 그거는 우리 책임이에요.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예요. 난 바쁘기 때문에 딴 거 신경 쓰지 못해 하면서 맨날 일에만 매이면 사단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못 하게 만드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자기 염려 불안을 자녀에게 투사시켜서 자녀들도 거기에 묶여 살도록 만드는 거예요. 자기가 불안한 사람들은 자녀들을 자유롭게 못 키워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배경을 믿으면 자녀들이 믿음의 모험을 하도록 기를 수 있어야 해요.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 예수님 보시기에 지금 바리새인들이 다 생명력 없는 믿음, 자라지 않는 믿음 거기에 묶여 있거든요. 보여주는 믿음, 사람 의식하는 믿음에 묶여 있는 겁니다.
3) 제자는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에 하나님 능력의 통로가 되는 체험을 한 후에라도 뭐라고 고백합니까?
“내가 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겠어요? “내가 저 사람보다 낫습니다. 내가 아무래도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하겠습니까? 아니요. “무익한 종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돈도 다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내 거 아닙니다.” 진짜 청지기적 삶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자로 하나님은 세우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저는 얼마든지 저희 교회가 그렇게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여러분과 환경에 묶였으면 저는 낙심하는 생각할 거예요. 근데 그런 게 없어요. 계속 성장하는 믿음을 갖고 있으니까 “제 인생을 통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소원에 제 자신을 드리겠습니다.”이런 믿음이죠.
결론
오늘 민규 성인식을 거행합니다. 민규가 이런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일대일 관계로 민규가 서는 게 성인식입니다. 성인식의 의미가 앞에 다 적혀 있는데 이걸 민규가 제대로 기억하고 기도 수첩도 하고 큐티도 하고 5,5,10 기도도 하기 바랍니다. 중등 렘넌트선교사로 올바로 세워지기 바랍니다. 민규가 대학 들어갈 때는 최초로 사명식도 하고 졸업할 때는 파송식도 할 겁니다. 최초로 모델이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오늘 말씀드린 제자의 세 가지 요건을 갖추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