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2일 주일예배 - 이긴 싸움을 해라.(요일 2:7~14)
이긴 싸움을 해라.(요일 2:7~14)
대상 29:11, 이 성경 구절을 외우시면 좋겠어요. 가능한 외워서 고백하면 좋겠다 싶은 성구입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험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었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아멘! 여러분 이런 하나님을 실제 믿고 있습니까? 이런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언약적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언약적 인도라는 거는 우리가 자녀가 됐기 때문에, 후사가 됐고 상속자가 됐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 전체에 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인도하신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언약적 인도 속에서 자신의 시간표가 보여야 합니다. 언제 보입니까? 기도할 때 보여요. 이 시간표가 보이면서 계속 인도받는 사람은 절대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됩니다. 인도 속에 있으니까. 그래서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주의 형상으로 회복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시대 사명을 위해 쓰실 것이다.” 이런 기대감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환경이든, 사람이든, 문제이든 다 기회가 된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왜 이게 기회가 됩니까? 이게 문제가 안 되고 왜 기회가 됩니까? 윤정자 집사님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고 계시니까 그분이 주인이고, 책임자시니까 이게 기회가 되는 거예요. 이걸 바르게 고백하고 체험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죠. 우리가 이걸 믿도록 우리가 계속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 안에서 행하는 기도의 삶을 사는 거예요. 우리에게 이 부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믿음입니다. 믿어야 이게 내게 적용이 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이게 머리로 믿는 거랑 실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믿는 게 달라요. 그렇죠? 실제 어려운 상황 가운데 직면이 불안이 먼저 와요. 여러분이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배경을 믿는 게 성령님의 역사예요.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7 망대, 7 여정, 7 이정표를 말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그 인도를 받도록 하기 원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여러분이 전도 제자로 세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보통 전도 그러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해서 생명 얻게 하는 걸 전도라고 그러잖아요. 근데 이거는 좁은 의미에서 전도고, 넓게 보면 양육해서 제자로 세우는 것까지 전도로 다 포함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보통 선교 단체에서는 전도해서 양육, 제자, 재생산의 커리큘럼을 갖고 있어요. 선교 단체는 초교파적으로 교단에 매이지 않고 특별히 대학생들을 재생산할 수 있는 제자로 세우는 일을 하죠.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 관점에서 모든 교회를 봐야 하고 전 세상을 봐야 한다 이 말이에요. 우리도 파라 처치와 로컬 처치 이 두 개념을 갖고 같이 가야 된다 이 말입니다. 내 교회만 생각하면 안 되고, 내 교단만 생각하면 안 되고 전체를 생각하고, 제일 중요한 것이 한 사람을 양육해서 어떻게 재생산하는 제자로 세울 것인가 하는 겁니다. 이게 세계 복음화 하는 방법이고 내가 그 속에서 시간표를 가는 게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이게 또 이번 10일 기도회 하는 이유입니다. 이걸 위한 영적 성장이 되도록 주님을 이끄시는 거죠. 문제 사건도 다 거기의 일환이 되게 만드시는 거예요.
1. 여러분은 자신의 불신자 상태를 알아야지 남의 불신자 상태도 알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불신자 상태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서 치유 회복되었는지를 경험하게 되면 답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죠. 말로 하면 간단하죠. 근데 정말 오래 걸리는 사람들이 있고 오래 걸려도 안 되는 사람도 있어요. 그냥 여전히 자기 현실 필요 중심으로, 내가 하나님 믿으니까 복이 왔고, 내가 지금 안정된 삶을 살고,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이 정도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근데 저희 교회는 그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이 나를 통해서 진짜 복음으로 증명되고, 내가 증인으로 세워져 하나님의 소원과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인생 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1) 여러분이 각자의 과거 내력이 있어요.
전부 다 창 3장 5절에 사단의 꼬임에 빠져 있었어요. 사단이 하와를 꼬인 죄의 핵심에 우리도 빠져 있었다는 말이에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데도 사단은 먹는 날에는 죽지 않고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된다고 꼬였잖아요. 이거는 사단의 욕심을 인간에게도 심어준 거예요. 사단이 타락한 그 죄의 그 성격 그대로 인간에게도 빠지게 만든 거예요.‘네가 선악의 기준이 되고 하나님 자리에 앉으라’ 이 말씀 아니겠습니까? 이 죄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을 빼앗는 죄예요. 사실 우리가 지금 양심, 도덕, 윤리적인 죄 짓는 것보다 이게 더 근본적인 죄예요. 하나님의 주권과 왕권을 인정 안 하고 그 자리를 인간이 차지하고 하나님께 받아야 할 영광을 빼앗는 짓을 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게 마귀가 짓는 죄의 본질입니다.
사단의 욕심에 넘어간 결과 어떻게 됐습니까? 실제로 인간이 선악의 기준이 되어 버렸어요. 하나님 인식이 안 되고 영적인 죽음이 와서 눈에 보이는 거는 물질과 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주인 되는 거 아니겠어요? 인간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자기가 판단자, 심판자의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선악을 분별하는 거예요. 그러나 자기는 지금 욕심에 빠져 있거든요. 자기는 지금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있는데 그 죄에 대한 인식은 없고 자기 기준의 의를 세우려는 인생이 됐다 이 말이에요. 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을 가지고 사물과 만물과 모든 것 판단의 척도를 삼고 있어요. 영이 죽고 물질과 육신적인 것만 믿는 이성인데 그거로 모든 것들을 판단하는 척도로 삼는다 이 말이에요. 자기 이성으로 하나님도 판단하고요. 성경도 판단하고요. 선악도 판단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대마다 선악의 기준이 막 흔들려요. 지금 다원주의 그러잖아요. ‘진리는 없다’ 이게 다원주의거든요. 실상은 영이 죽고 창 3장, 6장, 11장의 본성에 철저히 빠져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면서 두 가지 기본 욕구를 위해서 열 내고 있잖아요. 그걸 위해서 투쟁하잖아요. 어떡하든지 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투쟁하고 영적인 기쁨이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없으니까 육신적인 기쁨과 쾌락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또 물질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세상 성공 기준이 된 거 아닙니까? 지금 이게 근본적으로 뒤집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세상이 지금 말한 이 두 가지 기본 욕구인 안전의 욕구, 성공을 위한 자존심의 욕구 위해서 지금 죄 짓는 거예요. 이게 없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싸워야 되잖아요. 욕심 내야 되잖아요. 처세해야 하지 않습니까? 자기 자리와 자기 명예와 자기의 권력을 위해서 전쟁해야 되지 않습니까? 지금 트럼프가 전쟁 일으킨 것도 다 이 관련 속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란은 괜찮다는 말이 아니고 사단이 강대국이나 빈국이나 할 것 없이 전부 장악하여서 지금 끌고 다니는 거예요. 여러분도 저도 이 속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체질 되었던 사람들이에요. 여러분이 이것이 깊게 통찰되십니까? 이게 깊이 통찰이 안 되면 그 속에 여전히 빠져 살게 돼요. 이게 통찰이 되면 될수록 그리스도가 주인 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러면 거기서 빠져나오게 돼요. 극복하게 돼요. 왜요? 그리스도께서 보좌 배경도 되어 주시고 우리 안에 모든 진리의 성령으로 통치 인도하시니까 우리 삶이 바뀌는 거예요. 성도들은 본질적 싸움을 하는 거예요. 죄라는 게 그냥 죄가 아니고 영적 문제 때문에 죄가 왔구나! 사단에게 넘어가서 죄에 빠졌잖아요.
2) 그러니까 모든 인생은 다 지금 영적 문제에 빠져 있어요. 그래 계속 죄 짓는 거예요.
여러분, 한 번 더 얘기하자면 세상은 기본 두 가지 욕구가 있잖아요. 안전과 명예를 욕구, 자존심을 위한 욕구 이것을 달성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가치 기준이에요. 이걸 달성하지 못하면 실패자가 되고 낙오자라고 생각해요. “너 왜 이렇게 좋은 대학 못 갔냐?” 전부 다 이 기준이거든요. 달란트대로 하나님이 쓰시는 거 그렇게 안 가르치거든요. “너 1등 해야 돼. 너 돈 많이 벌어야 돼. 너 돈 못 벌고 니 좋은 직장 못 가면 니 얼마나 사람들한테 무시 당하겠어!” 이렇게 얘기 들어요. 이걸 달성하면 교만해지고 이거를 달성하지 못하면 열등감과 갈등에 빠지고 절망에 빠지는 거예요. 이 두 가지 욕구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 배후에서 지금 사단이 그렇게 인간을 몰아가는 거죠. 나의 과거 상태를 분명히 알고 그리스도께 뿌리내릴 때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왕으로 통치하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럴 때 빠져나오고 치유되고 회복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데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하심이라 이렇게 돼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눈과 생각을 우리가 마음속에 느끼고 그거를 본받고자 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치유 회복된 스토리를 가지고 승리해야 다른 사람에게 답 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영적인 눈으로 보면서 전도의 가치를 느끼게 되는 거예요. 전도하기가 너무 부끄러워... 부끄럽죠. 이제까지 인간관계를 어떻게 했어요? 항상 체면 차리고 얌전 떨고 딴 사람한테 피해 주면 안 된다는 그 사고방식 속에 살았으니까 내가 복음 전해서 저 사람한테 기분 나쁘게 하면 어떡할까? 이런 생각에 딱 잡히잖아요. 그걸 이용하는 거죠. 주님은 여러분이 정말 열매 맺는 사람으로,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런 자녀로, 제자로 세우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신앙생활의 방향이 이런 방향으로 가야 됩니다.
2. 여러분의 인생이 승리하는 그런 방법은 뭡니까?
1) 실제 그렇게 되는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려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삶을 처리하는 삶을 체질화시키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이 체질화되는 거예요. 이게 기도 없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기도는 그냥 어떤 문제 응답만이 아니에요. 여러분 전체가 뒤집어지는 거거든요. 내가 주인 되어져서 마귀에게 속았던 그 인생 체질 전체가 뒤집혀야 하거든요.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금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고, 육신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고, 보이는 것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생각 자체가 그렇게 들어가는데 기도로 그걸 뒤집는 거란 말이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행하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면 여러분의 남아 있는 죄의 본성이나 체질이나 사단의 공격까지도 그리스도가 역사하실 기회가 돼요. 제가 하나님 소원의 방향에 맞추면 나의 문제가 더 이상 나의 문제가 아니고 내 일이 더 이상 내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이 되고 주님이 책임자가 되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소원에 방향을 맞추게 되니까 주님이 진짜 주인으로,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거예요. 기도를 계속 이끌어 가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갖고 있는 어떤 문제도 주님께 뿌리내릴 기회가 되는 거고, 주님이 그걸 선용하셔서 여러분을 기르셔요. 최고의 자녀로 회복하시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전의 삶과 지금의 삶이 차이 나도록 자꾸 바뀌게 되는 거죠. 이 삶은 내가 주인 되면 절대 안 되어요. 육신대로 살아도 절대 이 삶은 안 바뀌어요.
우리 교회의 서연 자매가 지금 아마 유튜브로 이 예배를 같이 보고 있을 텐데 지난주에 감사하게 깊은 얘기를 좀 나누게 됐어요. 서연 자매 할머니가 무당이었다고 그래요. 그리고 자기 친족 중에서도 그 영향을 받고 자기는 유치부 때부터 영향이 오기 시작했대요. 감사한 거는 자기 문제가 영적 문제라는 거를 소연이가 믿어지고 고백이 되는 거예요. 지난번에 보니깐 저 자리에 앉아 말씀의 은혜를 받더라고요. 근데 지금 스트레스성 골절이 되어 교회에 못 나오고 있어요. 스트레스성 골절이 뭐에요? 스트레스에 의해서 뼈가 세밀하게 금이 가는 거래요. 서연이가 은혜받으니까, 사단이 이거 못 하도록 별짓 다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포럼하는데 서연이가 “목사님 내가 그리스도를 믿어요. 신앙 고백해서 은혜도 체험한 바도 있어요. 근데 왜 내가 계속 이 모양이죠? 내가 왜 이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는 거죠” 이렇게 묻더라고요. 제가 대답해 주었어요. “그래 네 운명, 소속, 신분 바뀌었어. 그렇지만 너에게 아직 남아 있는 본성과 체질이 있어. 그래서 사단이 그걸 틈타는 거야. 그래서 너로 승리하지 못하도록 지금 방해하는 거야. 그러니 “야 사단아 고맙다.” 이 기도를 좀 해봐라 했어요. 말씀 잘 듣다가도 말씀이 안 들어온대. 말씀에 집중이 안 되고 혼미해진대요. 이런 게 사단 역사죠. 뇌가 시간마다 혼미해지는 게 아니에요. 보세요. 우리 마음과 생각을 성령님이 다스리게 돼 있잖아요. 그런데 영이 죽었잖아요. 지금은 귀신이 얼마든지 마음 생각에 틈탈 수 있단 말이에요. 우리의 혼과 뇌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서연이에게 가문에 관해서 물어봤더니 할머니가 무당이었다고 했고 우리 교회를 거쳐 간 자매들을 보면 전부 다 할머니가 그런 배경을 갖고 있어요. 영적인 거예요. 근데 이 사단 역사까지도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면 승리해요.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시잖아요. 귀신이 항복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것까지 기회가 된다니까요. 진짜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되면 이건 기회가 돼버려요. 서연이한테도 “네가 이게 기회가 되므로 치유되고 회복되면 네가 증인 된다. 지금 현장에 정신 문제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네가 도울 수 있는 사람 된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2) 내가 주인 되면 이게 절대로 안 돼요. 항상 기도 속에 있어야 해요.
여러분의 염려, 긴장, 힘 다 빼기 바랍니다. 이게 안 믿어지니까 염려 들어오고 긴장 들어오고 힘 넣어야 하는 인생을 살았던 거예요. 그게 사단이 빠뜨려 놓은 인본주의 체질이에요. 성령님이 통치하시면 평안을 줘요. 믿음을 줘요. 기쁨을 줘요. 기대감을 줘요. 자유 함을 줘요. 담대함을 줘요. 확신을 줘요. 감동을 주셔요. 그리고 내가 막 이루어야 하는데 주님이 도와줘야 하는 신앙이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는 지금 언약 신앙이란 말이에요. 오히려 우리는 완전 불가능한 상태에서 주님이 우리를 건져내신 거잖아요. 근데 남아 있는 문제가 있잖아요. 끝까지 “너는 나를 믿으라. 내게 뿌리내려라. 오직이 돼라” 이 말이에요. 정말 그러면 바꿔주셔요. 여러분 속에 이렇게 성령으로 인도 안 하시면 그건 하나님 자녀가 아니거든요. 인도하실 수밖에 없어요. 그걸 주님이 더 원하시니까 그래요. 아침, 낮, 밤 기도를 계속하게 되면 계속 언약적 인도를 받게 되는 거예요. 처음엔 스케줄 놓고 기도하게 되잖아요. 밤 기도를 깊게 하면 중보 기도까지 들어가거든요. 하나님은 더 깊게 자신과 영적 소통이 되는 영의 사람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문제를 딱 주시는 거예요. 집중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주시는 거예요. 아무리 성경 공부를 많이 해도 지식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바뀌어요. 하나님이 직접 만지셔야 해요. 문제와 사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키우는 아주 중요한 기회가 돼요. 근데 문제가 너무 크다고 나자빠지고 뒤집어지는 겁니다. 그럼, 사탄한테 지는 겁니다. 주님 때문에 기쁨과 감사가 올라와야 해요. 주님 때문에 기쁨과 감사가 올라와야 해요. 이게 제자 되는 과정입니다.
3. 오늘 본문
1) 새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이 나온다.
제자의 삶에 제일 중요한 게 뭐예요? 새 계명을 지키는 것과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는 거예요. 새 계명은 사실 새 계명이 아니고 옛 계명이에요. 레 19:18에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을 사랑하기로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우리 죄의 본성상 이게 안 되잖아요. 이게 되려면 하나님 배경과 보장과 하나님의 사랑이 맛봐져야 하는 거죠. 그럴 때 이 삶의 방향을 계속 방향 맞춰서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걸 원하셨던 거예요.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명령하셨어요. 예수님이 요 13:34 말씀하셨죠?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주님이 어떻게 사랑하셨어요? 그분은 죄인의 자리까지 내려오셨잖아요. 이번에 박효진 장로님 간증을 보면서 더 확신이 오는 게 하나 있었어요. ‘연쇄 살인범까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할 수 있다. 세상에 최악의 존속 살인한 사람까지도 십자가는 구원할 수 있다.’ 이게 믿어져요. “그런 사람을 어떻게 구원해? 어떻게 사랑해? ”이게 우리 일반적인 생각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 사랑하는 삶을 요한일서에서는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이다. 어둠에 거하지 않는 삶이다. 형제를 미워하는 건 어둠에 거하는 거다. 그래서 여러분이 빛 가운데 거하면 거리낌이 없다. 무슨 거리낌이 없어요? 정죄가 없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주시는 평화와 자유를 누리게 돼요. 2장 10절 11절 읽어볼까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두움이 그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거는 영적 소경이래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제자의 두 가지 계명이 있어요. 그게 뭐예요? 가장 큰 계명이 사랑하라는 거 아니겠어요? 원수도 사랑하래요. 두 번째 계명은 마지막 미션이죠. 전도 선교의 명령이죠. 이게 우리의 방향이 돼야 하는 거죠. 앞을 보세요, AD 85년에서 94년 경 예수님이 승천하고도 한 50년 이상 지났네요. 그때까지 사도 요한이 살았어요. 최고령으로 에베소에서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을 썼어요.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이미 쓰여있었고, 세 복음서는 공관 복음이라고 같은 관점으로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한 거라면 요한복음은 영적인 관점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다시 조명한 거예요.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의 사상이 거의 일치해요.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이후에 쓰여졌어요. 도미티안 황제 때 밧모섬의 유배 가서 요한계시록을 썼다고 합니다. 일화에 따르자면 90세 노년에도 사도 요한이 제자들에게 늘 했던 말이 “너희는 서로 사랑해라 이게 주의 계명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해라” 그런 면에서 교회가 싸우고 분쟁하고 교단이 갈라서고 이게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갈라서는 건 진짜 이 계명을 못 지키고 있는 거예요.
2) 보장된 것
마지막으로 12절에서 14절에 보면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주님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얘기하는 겁니다. 우리가 새 계명을 지키고 계속 우리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게 있어요. 첫 번째 죄 사함의 확신이에요. 두 번째가 너희는 태초부터 계신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알았다는 거예요. 우리의 믿음은 그분을 아는 데서 시작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분이 태초부터 계신 진짜 창조주라는 걸 아는 것과 예수님이 구속 주, 그리스도 대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아는 것! 여기서 우리의 믿음이 시작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너희가 악한 자를 이겼다는 겁니다. 흉악한 자를 이겼다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율법하고 달라요. 율법은 보장 없이, 성령님도 우리 안에 보혜사로 안 와 있는 상태에서 계명을 요구하는 게 율법이고 복음은 율법에서 안 되는 것을 되도록 해 주시는 게 복음이에요. 실제 계명 실천이 가능하도록 해 주시는 게 복음이에요. 우리가 이 복음을 받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려고 하다가도 넘어지잖아요. 그러면 죄에 빠지면서 죄책감이 또 오잖아요. 그런데 너희 죄가 이미 사해졌다고 하십니다.
(1) 12절부터 다시 읽어볼까요?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오.” 여기 받았다고 얘기하고 있죠. 사죄의 확신이에요. 이게 우리 신분의 기초가 되는 거예요. 무너지지 않는 토대가 되는 거예요. 만약에 사죄의 확신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거듭 짓는 죄에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계명을 지키려다가 또 넘어지고 정죄당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사죄의 확신은 우리가 무너지지 않는 토대요, 완전한 신분의 기초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늘 이 사죄의 확신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래요.
(2) 13절 읽읍시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으며,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겼으며 이겼었음이라.” 이것은 아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죠.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다고 돼 있는데 태초부터 계신 이가 누구예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거예요. 특별히 당시에 이단 영지주의가 자꾸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거거든요. “어떻게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올 수 있느냐? 육신은 악한 거다.” 그들은 이원론적으로 설명한다고 그랬잖아요. 물질은 악한 거라고 그러니까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정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태초부터 계신 이를 너희가 알았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태초부터 계셨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에요. 우리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앎과 믿음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예수 영접하고 거듭나서 생명을 딱 얻게 되면 그때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교제가 시작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영적 교제가 지금까지 이어온 거예요.
3) 그리고 청년들에 대한 마지막 권면이 악한 자를 이겼다고 돼 있어요. 악한 자를 이길 것이다. 이렇게 얘기 안 하고 있어요.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보장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렸어요. 하늘에서 참소하지 못 하도록 내쫓아내셨어요. 이 땅에서도 정복당하도록 만들어 놓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14절에는 조금 변경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아, 내가 너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으며,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일을 알았으며 청년들아, 내가 너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겼음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확보된 승리를 바탕으로 새 계명을 지키라 이 말이에요. 또 넘어질 수 있어요. 그래도 정죄 당하지 말고 회개하고 다시 성령님을 힘입으라 이 말씀이에요.
결론
여러분은 이긴 싸움 하기 바랍니다. 보장하고 있다니까요. 여러분이 그리스도만 붙들면 성령님을 힘입을 수 있고 그러면 여러분이 날마다 영적으로 세워지게 돼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을 놓치지 말기 바래요. 그게 아침, 낮, 밤이에요. 그리고 시간을 내서 여러분이 이번 10일 기도회처럼 집중 기도하는 거예요. 여러분 인생이 집중기도할 때 또 한 단계 올라가는 그런 경우들이 참 많아요. 여러분의 연약함, 남아 있는 문제, 사단의 공격까지도 오히려 기회가 됩니다. 정죄 받는 기회가 아니고 여러분이 세움 받는 기회가 되는 겁니다. 과거 내력을 여러분이 잘 알고 거기서 빠져나와서 세워지고 승리하는 것이 증인의 삶이에요. 제자의 삶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냥 눈으로 보면 물질적으로, 육신적으로 잘 되는 사람이 뭐가 문제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여요. 성령님이 임해서 영으로 봐야만 말씀으로 볼 수 있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거예요. 전도도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나를 쓰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현장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현장이 없으면 여러분이 전혀 전도할 기회가 없어요. 직장에서 관계된 사람 전도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는 거고요. 직장에서 복음 전하려면 정말 깨어 있어서 해야 하거든요. 안 깨어 있으면 그것도 안 돼요. 근데 그것도 안 하고 전도 현장이 없으면 실제 전도하는 경험이 없어요. 그럼, 계속 듣고만 있는 거죠. 들은 걸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만 하죠.
마지막으로 10일 기도의 기도 제목입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1. 보좌의 배경을 믿음으로 주의 계명을 지키고, 사명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삶의 수단을 위해 살지 않는 주의 제자 되도록
2. 주격과 체질이 180도 바뀌고 믿음과 의탁과 순종의 24 체질 되도록. 인본주의 기준, 동기, 잘못된 믿음의 현주소, 방법, 욕구 달성이 주님의 기준, 동기, 믿음 현주소 방법, 소원으로 바뀌도록
3. 구원받지 못한 남편, 자녀와 사위, 며느리, 손주 구원 위에서
4. 나의 전도 현장에 성경적 전도 운동이 일어나도록
5. 교회가 성경적 전도 운동의 모델이 되고 시찰, 노회, 교단을 섬기고 영향을 주도록.
6. 지역, 민족, 북한, 다섯 나라 세 가지 동역, 특히 필리핀 동역, 237 5천 종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이렇게 되는 것은 결국 주님이 교회를 통해서 여러분을 통해서 증명되는 것이죠. 이게 우리 힘으로 하는 거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이런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