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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0일 주일예배 - 두 가지 신분과 소속(요일3:1~12)

별종외계오동 2026. 5. 11. 06:05

두 가지 신분과 소속(요일3:1~12)

 

https://youtu.be/NrsGgxQD9BQ?si=r62wV2RkzDwtNQQt

 

두 가지 신분과 소속 (요일 3:1~12)

 

오늘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께 연락하고 감사하는 그런 시간을 다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미 또 그렇게 하신 줄로 여겨집니다. 오늘도 권성민 형제가 왔는데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오늘 두 번째로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따로 평일에 만나서 말씀 공부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만나게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112~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종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하나님 자녀가 되도록 믿게 됐는데 이게 혈통에 의해서 된 게 아니다 이 말이죠. 아무리 가문이 좋아도 후손들이 싹 다 예수 믿고 그러는 법은 없거든요. 또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원한다고 해서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게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돼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성령으로 나게 하셨다는 그런 뜻이 포함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거는 사실은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이러한 계기를 통해서 교회에 나왔지만, 사실 계속 말씀을 듣고 믿을수록 내가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 내 인생을 알고 계셨고 개입하시고 또 인도하셨구나 이런 것들을 느끼게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라고 그랬는데 이 무한한 우주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의 세계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지금도 경영하시는 그 하나님 아버지가 내 친 아버지, 영적 아버지가 되셨다 는 뜻이죠. 사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어떤 느낌으로, 이 말씀을 들었을까요?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런 말씀을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느낌으로 받았을까요? 사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항상 두렵고 경외의 대상이었어요. 하나님이 내가 너희 아버지고 너희는 내 아들이다라고 부자 관계로 설명한 적은 있어요. 그러나 개별적으로 너희가 내 자녀다. 개별적인 호칭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이스라엘 민족이 갖는 하나님께 대한 느낌이 어떤 느낌이냐 하면 하나님은 율법의 수요자, 하나님은 심판주 이런 개념이었어요. 두려우신 하나님이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조차도 직접 부르지 못했어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거든요. 어떤 교회에서는 야훼라고 호칭합니다. 근데 그 이름을 직접 호칭하는 것을 꺼려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실제 여호와라고 안 부르고 아도나이로 불렀다고 그래요. 아도나이 뜻은 일반적으로 그냥 ’, ‘주님이런 호칭으로, 하나님을 너무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런 개념이에요. 그래서 오늘 요 112절에 하나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이 말씀은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상당히 파격적인 선언이에요. 우리는 지금 너무 익숙하게 듣고 있어서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한테는 파격적인 선언이었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건 얼마나 개별적이고 친밀한 관계인지 몰라요.

우리가 아무리 세상이 흉흉해도 우리는 끝까지 자기 자녀는 챙기고 또 자기 부모나 혈연관계에 대해서는 굉장한 애착을 가지잖아요.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여기신다는 거예요. 2017절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첫 번째 만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예요.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면서 너무너무 반갑잖아요. 너무 놀랍고 반가와서 예수님을 딱 붙잡았어요. 안 놓고 그냥 딱 붙잡고 있는 거예요. 그랬더니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2017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지금 우리가 예수님과 촌수가 어떻게 됩니까형제지간이 돼버렸어요. 내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고 내 하나님이 너희 하나님인데 그분께로 내가 올라간다고 해라. 하셨어요. 왜 이런 선언을 할까요? 드디어 십자가에서 구속 사업이 완성됐다는 얘기예요. 절대로 이런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우리는 사실 죄인이라서 율법 앞에서 정죄당하고 진노의 대상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구약에서는 피 제사가 필요했던 거거든요. 근데 그 피 제사가 이제 필요가 없게 됐어요. 드디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성취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 자녀 됐다 이 말이에요. 이게 보통 은혜의 말이 아닌 거예요. 세상에는 지금 영적으로 보면 두 가지 신분과 두 가지 소속이 있습니다. 미국인, 영국인, 중동인 수많은 나라가 갈라져 있고 또 피부 색깔로 갈라져 있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있고 불신자가 있는 거예요. 영적인 소속은 하나님 자녀 소속, 마귀 자녀 소속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이 말씀입니다.

 

1. 전도자는 세상을 영적인 눈으로 봐야 하는 겁니다.

1) 육신적인 조건, 외형적인 조건만 보지 말고 주님의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세상 기준으로 봤잖아요. 육신의 기준으로 봤잖아요. 이제 어떻게 봐야 합니까? 사람을 영적인 눈으로 봐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지금 세상이 왜 이렇게 어려울 수밖에 없는지, 또 세상에 왜 죄와 고통과 혼란이 끊임없이 있을 수밖에 없는지 우리는 이제 영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씀입니다. 이게 안 되면 우리는 사람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안 되는 거예요. 인간 문제는 그 근본 문제가 하나님 떠난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영적인 안목이 없으면 사람이 왜 저렇게 사는지 이런 거에 대한 이해력이 없게 된다 이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도할 이유도 못 느끼게 돼요.

 

제가 이런 지난주에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영적 문제가 깔린 상태에서 현실 문제를 접하게 되니까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 떠난 영적인 상태에서 문제를 당하면 다 문제가 상처가 돼요. 문제가 스트레스가 되고 고통이 돼요.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석도 안 돼요. 그런데 불신자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안 심리나 욕심을, 인간이면 다 그런 거 아니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요. 성경에서는 지금 인간이 불안 심리와 욕심을 가진 게 당연한 게 아니라 죄에 빠지고 하나님 떠나서 생긴 거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간관계 문제가 일어나도 사실은 인간 내면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불안 심리나 욕심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세상은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어떤 걸 주로 얘기합니까? 인간은 다 그런 거니까 그걸 그냥 덮어놓은 상태에서 외부 환경의 문제나, 인간관계 문제에서 오는 고통만 얘기하게 됩니다. 근데 우리는 외부 문제만 아니라 그 외부 문제도 사실은 하나님 떠나서 온 문제고, 지금 우리 내면이 불안할 수밖에 없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고 나 중심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문제에 빠졌다는 것을 보는 거죠.

 

지난 수요 예배 때도 얘기했지만 이호선 교수라고 부부 상담 하는 여자분이 계셔요. 지난번에 보니까 어떤 부부가 나와서 상담하는 내용을 봤어요. 결혼 생활 12년 차예요. 그렇게 나이 드신 분들은 아닌데 남편과 아내의 대화가 일주일에 한 열 마디 한 대요. 남편이 입을 닫고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은 얼마나 말 안 하나 보자 그래서 부인이 방에 들어가서 자기도 말 안 하고 버텼대요. 그랬더니 두 주 동안 한마디도 안 하더래요. 이호선 교수님이 상담하러 오면 기질 성향 이런 질문지를 먼저 가지고 분석해요. 그 분석지 보니까 내용이 괜찮더라고요. 그 분석을 통해서 일단 사람들의 성향들을 살펴봐요. 예를 들어 성향이 그런 사람한테 아무리 가르쳐도 그 성향은 못 바꿔요. 그러니까 이호선 교수가 아예 그렇게 되기를 포기하세요이런 얘기를 잘해요. 왜냐하면 성향에 잡혀있으니깐 그래요.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 성향까지도 성령께서 건드리시거든요.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부분이 인간 영이에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부분을 딱 건드리니까 성향도 그 마음과 생각에 다 연결이 돼 있잖아요. 그 마음과 생각을 감동하고 울림이 되고 그러니까 성향도 묶인 게 풀리고 남 생각할 수 있는 성향이 되고, 성향에도 하나님이 역사를 하시는 거예요.

 

아무튼 이 두 사람의 얘기를 이호선 교수님이 듣는데 둘 다 상처 투성이에요. 남자 쪽은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어요. 엄마도 빨리 죽었고 형이 하나 있는데 형이 장애야. 이 남편이 참 그런 가정 속에서 살았던 거예요. 그러면 여자는 어떠냐 하면 여자도 끊임없이 부모가 부부싸움을 했대요. 아버지가 엄한 짓을 하게 되니까 엄마는 막 쏟아내고 또 그걸 자식한테 자기 답답함을 막 쏟아냈던 겁니다. 그래야 자기도 좀 숨통이 터지니까. 근데 애는 반 죽는 거야. 엄마 아빠가 하도 싸우니까 이 여자분이 자기 어린 동생이 있었대요. 자기 동생을 지키려고 벌벌 떨면서 자기 동생을 자기가 지키느라고 그렇게 컸대요. 그러면서 중고 시절에 우울증이 왔대요. 자살 시도도 한 번 했대요. 이 두 남녀가 만난 거예요. 상처 속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공감을 잘 못해요. 내 살기도 죽겠는데 어떻게 공감하겠어요? 그러니까 이호선 교수님이 그 남자분한테 왜 이렇게 말을 안 하게 된 이유가 있냐? 고 질문했어요. 그랬더니 남자가 하는 말이 아내랑 얘기하면 아내가 전혀 공감을 안 해준다는 거예요. 아내는 항상 자기의 평가자 노릇을 한 대요. 오빠라고 부르는데 오빠는 이게 잘못됐어. 오빠는 이게 문제야.” 항상 평가를 해주는 거야. 그러니까 점점 벽이 쌓이더래요그래서 이제 입 딱 닫은 겁니다. 그러니까 성격 검사, 성향 검사한 다음에 자라온 성장 배경을 들으니까, 이해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호선 교수님이 이쪽은 이렇고, 저쪽은 이렇다. 둘 다 성장 배경이 다 지옥 같았네요.” 이해를 해주고 공감을 해주니까 그때 사람들이 다 마음이 풀려요. 그 상담 프로그램이 좋은 거는 솔루션 해결책을 위한 과제를 내줘요.

 

그런데 이제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원래 갖고 있는 그 불안, 우리가 원래 갖고 있는 결핍, 원래 갖고 있는 허함, 원래 갖고 있는 두려움 이게 어디서부터 왔는지 답 줄 수 있다 이 말이에요. 영적인 문제 속에 지금 인간이 빠져 있는 거예요. 왜 영적 문제라고 그래요? 인간이 영적 존재잖아요. 하나님과 교제해야 행복하도록 지음을 받았고 육신의 축복도 하나님이 복의 근원으로 인간을 지었단 말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이에요. 근데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반역하는 죄 가운데 빠졌어요. 지금 사단에게 계속 종 노릇하는 인생으로 빠져버렸어요. 그걸 우리는 영적 문제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거기다가 현실 문제가 오니까 마귀가 마음과 생각을 지배해요. 계속 나 중심으로 지배하고 미움으로 지배하고 비교 의식으로 지배하고 상처에 빠져서 그 상처가 일평생 가도록 완전히 각인되도록 만든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 문제를 사람의 선행이나, 근면이나, 성실로 해결 못 해요. 성실 근면은 그 사람의 좋은 기질이에요. 근데 그것 가지고 인간 속에 고착해 있는 성향과 같이 함께 체질화돼 있는 부분들을 못 고쳐요. 늘 강조하지만, 영접할 때 우리 속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이 살아나는 거예요. 다시 하나님 만나고 교제하는 영으로 바뀌는 그 영접이 되는 거예요. 그 영접이 된 사람을 우리는 생명 얻었다.’‘구원받았다이런 표현을 하잖아요. 그 사람 속에 생명의 성령께서 모든 진리를 가르치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신다고 그랬어요.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는 성령이신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성령이 주시는 영의 생각으로, 영적 말씀의 깨달음으로 기도하게 되면 평안해집니다. 그다음에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생각이, “, 이게 하나님과 맞지 않는 생각이구나. 내가 어릴 때부터 상처받으면서 그때부터 진짜 골똘히 생각하면서 잡혔던 생각이 사실은 마귀가 몰아간 생각이구나. 마귀가 묶이게 한 생각이구나이런 것들이 보이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먼저 변화를 받는 거예요. 내가 먼저 변화가 되니까, 내가 이해되니까 나와 유사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력이 생기는 거예요. 상대방이 창 3장의 근본 문제에 빠져서 이 근원적인 배경이 있고 하나님 떠나서 우상 숭배했던 가문 배경이 있고 그 속에서 내 가정 배경이 있었구나. 그 속에서 내 성장 배경이 있었구나. 영적으로 보면서 이제 재해석이 된다 이 말이에요. 이거 사람 이해에 절대 필요한 거예요. 이거는 교과서에서 안 가르쳐요. 사실 불신자가 말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해되고 내가 치유되어야지 그때부터 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겁니다. 딴 사람도 나처럼 저렇게 형성됐겠구나. 그래서 내가 살리는 자가 되는 거야. 살리는 자! 근데 살리는 자 되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게 이해해 주는 자가 되는 겁니다. 이해해 주는 자!

 

우리가 박효진 장로님 간증 영상을 봤잖아요. 거기에 어떤 사람이 구원받아요? 교도소에 살인범, 성폭행범, 가정 파괴범, 연쇄 살인범까지도 하나님 구원하셔요. 사형수들을 구원시켜요. 하나님이 무슨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설득 시키시는 게 아니고 복음 전하는데 성령이 임하셔서 그 마음 문이 열리고 은혜를 받아버려요. 여러분처럼 성경 많이 알지도 못해요. 그냥 그 심령을 하나님이 터치하시면서 그 딴딴한 마음이 녹게 만드시는 거예요. 성령의 역사죠. 그래서 지금도 사형수들을 주님이 구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박효진 장로님이 이런 말을 하세요. 저는 이 말씀이 참 마음에 남아요. 주님은 교도소 감옥을 지금도 휙휙 뛰어넘어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셔서 구원 역사를 이루고 계시는 게 자기는 보인다는 거예요. 주님이 담을 휙휙 뛰어넘어서 교도소 안에 들어가서 구원 역사를 이루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남편, 여러분의 형제, 친족, 직장 상사, 동료들을 어떤 눈으로 봐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본성이 없어진 건 아니에요. 체질이 없어진 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본성이 못 참는 형도 있고요. 본성이 대쪽 같은 사람도 있고요. 굉장히 의로운 사람도 있고, 착한 사람도 있고 뭐 가지가지 있잖아요. 내성적인 사람도 있고 외향적인 사람도 있고 그렇죠? 그런데 사실은 그 성향이 불안과 두려움과 억압 속에서 더 좁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풀리게 하시면서, 성령님이 평안을 주시고 감동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사랑을 느끼게 만드시면서 우리가 딴 사람에 대한 폭이 넓어지게 만드시는 겁니다. 이해력을 갖게 만드시는 거예요. 예전에는 절대 이해가 안 됐어요. 근데 이제는 이해가 되게 만드시는 거예요. 공감이 되게 만드시는 거예요.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두 가지 기본 욕구를 위해서 살아야 해요. 두 가지 기본 욕구 곧 자기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또 자기의 명예와 자존심 지키기 위해서 무시당하면 안 되고, 나를 까는 소리 들으면 그 사람 용서 못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근데 이제는 엄청난 분이 나를 사랑하시는 거예요.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돌리시고 지금 바늘 끝점처럼 작은 점조차도 다스리지 못하는 일이 없으신 그분이 내 아버지가 되시고 내 배경이 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겁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을 온전케 하십니다. 여러분을 치유 회복시키십니다. 치유 회복되어서 이제는 내 사랑을 너희도 해라.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제는 두 가지 기본 욕구를 위해서 살지 말고 내 계명을 지키고 전도 선교 사명을 감당해라.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겁니다.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겁니다. 할렐루야!

 

2) 오늘 본문

오늘 본문에 31절을 한번 보세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어떤 사랑을 베풀어 주셨어요? 십자가에 자기 아들을 못 박히게 만드는 그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신 것을 질문하는 거죠. 우리가 사실 이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 사랑을 받은 자로다! 이 말이에요.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그가 누구일까요? 아버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그가 누굴까요?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나타나신다는 건 재림하신다는 거죠. 그러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그와 같을 줄 안다는 건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게 된다는 거예요. 그 부활의 몸을 입고 그의 참모습 영광스러운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고 맞대하게 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3절부터 6절까지 보면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주님 만나서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고 우리가 그분과 영원히 거하게 되는데, 그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기를 깨끗게 하고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거예요.

이 죄는 불법이라는 거예요. 5절에도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은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래서 6그 안에 가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 못하였고 그를 알지 못하였느니라.”여기서 이 범죄함이라는 것은 단회적인 범죄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죄를 계속해서 지으면서 그 죄 속에 머무는 걸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죄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성령님과 죄의 본성이 충돌하잖아요? 여러분이 영적 상태가 좋아지고 기도의 삶이 발전하면 영적 상태가 점점 더 성장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될 때 죄를 극복할 힘을 갖게 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범죄함이란 그런 상태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죄에 대한 의식이 없이, 성령의 통치를 안 받고 계속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상태를 지금 말하는 겁니다.

 

8절은 죄의 배후 세력이며 조종자인 마귀에 대한 설명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여기서 마귀의 일이 뭘까요? 문맥상으로 보면 죄짓게 하는 일이 마귀의 일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불 신앙하게 만들고 하나님과 교제 못 하게 만들고 하나님 떠나서 창 6, 11장의 본성대로 살게 만들고 그래서 또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살고 이게 전부 다 마귀의 일이에요. 죄짓게 만드는 일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거예요. 어떻게 멸해요? 십자가와 성령으로 여러분이 마귀의 통로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겁니다. 마귀에게 종 노릇하지 않게 만들고 그래서 죄짓는 인생으로 사는 게 아니고 성령의 통로로, 성령의 도구로, 일꾼으로 살게 만드시는 겁니다. 10절을 읽어볼까요?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 또는 그 형제들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함이라여기 보면 하나님 자녀, 마귀 자녀로 나누어진다. 이런 말씀이 있죠.

 

2. 9~12절은 하나님 자녀와 마귀 자녀의 비교표다.


하나님 자녀 마귀 자녀
태 생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마귀에게 난 자(8:44)
생 명 하나님의 씨(거듭난 생명) 하나님의 씨(거듭난 생명) 없음
소 속 하나님 소속 악한 자 소속(가인)
속 성 의를 행함(빛 가운데 행함) 죄를 지음(어둠 가운데 행함)
열 매 형제 사랑 형제 미워함

 

태생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마귀 자녀는 마귀에게서 난 자 그렇게 말할 수 있죠. 8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나니하잖아요. 그다음에 생명은, 하나님의 씨가 있대요. 하나님의 씨라는 건 거듭난 생명, 영적 생명, 성령이 임하시면 영적 생명이 있는 거잖아요. 그게 하나님의 씨예요. 불신자 마귀 자는 없어요. 그다음에 소속은 하나님 소속과 악한 자 소속으로 되어 있는데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다고 돼 있어요. 그러니까 죄의 항상 배후에는 마귀 역사가 있어요. 마귀랑 죄가 붙어 다녀요. 속성은 의를 행함과 죄를 지음으로 나누어 집니다. 여기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계속해서 짓는 거예요. 그다음에 열매는 여기는 사랑의 열매를 맺어요. 형제 사랑, 반면에 형제 미워함. 형제가 미워, “꼴배기 싫어, 쟤는 안 되겠어”, 하면서 마귀의 본성 따라가는 거예요. 오늘 정리합시다.

 

3. 우리는 왜 영적으로 봐야 하고 또 영적 문제를 강조해야 합니까?

1) 죄의 배후 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단이 거짓과 욕심으로 처음부터 인간을 꼬인 거예요. 인간의 책임성이 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인간의 책임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마귀에게 넘어갔더라도 그래서 죄에 빠졌더라도 우리는 주님과 관계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또 깨어 있지 못하고 내가 사단의 통로가 되었습니다.”합니다.“사단 때문입니다.” 이렇게 얘기 안 하잖아요. 누구 잘못이에요? 통로가 되어 준 거는 내 인격으로, 내 의지로, 내 책임성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먼저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선행될 게 회개가 돼야 해요. 반드시 회개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 이놈 사단아, 이 원수 마귀야 떠나가라하고 사단을 대적하는 겁니다.

 

4:7을 볼까요? 가인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가인과 동생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의 제사를 안 받아주셨어요. 그때 안색이 변하고 미움과 시기심을 아벨 향해서 갖게 됐을 때 하나님이 가인에게 했던 말씀이에요. “네가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죄에 대한 책임성을 누가 갖고 있는 거예요? 가인이 갖고 있는 거예요. ‘죄가 너를 노리고 있다이 말이에요. 근데 너는 그 죄를 죄에 빠지지 말고 죄를 다스리라고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죄의 배후 세력인 마귀를 분명히 말하고 또 그놈에 대해서 우리는 경계하고 대적하라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는 자기 자신이 마귀 통로가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요일 312절을 보십시오.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는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여기 보면 악한 자에게 속하였다 그랬어요. 다시 말해서 악한 자에게 속하여서 죄를 짓는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영적 문제를 말하는 겁니다.

 

사실 많은 교회 설교 강단이 죄와 인간의 책임성은 강조하지만, 그 배후 세력인 사단에 대해서 별로 강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단 귀신이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틈타는지,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참 부족해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신앙생활을 인간이 책임성이 있으니까, 책임성을 감당하기 위해서 애씀과 노력으로 하나님을 잘 믿어보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 보고자 노력하는 거예요. 근데 이게 종교 생활과 같아요. 이게 단순히 양심, 윤리의 문제가 아니에요.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죄 그러면 양심적인 죄, 윤리적인 죄도 분명히 죄예요. 근데 일반 종교인들은 영적인 문제는 모르는 상태에서 네 양심대로 살면 된다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한 인식과 하나님께 어떻게 범죄하고 반역했는지 그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거예요. 그 영적 문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모든 종교인은 양심대로 착하게 살면 돼.’ 양심대로 착한 거는 사람이 노력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종교는 영적 문제를 모르고, 배후 사단의 세력을 모르니까 인간의 열심과 노력으로 잘 믿으려고 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이 말이에요.

 

구원을 받고 자기 안에 성령이 오셨더라도 이 영적 문제를 잘 모르면 자기가 주체가 되고 예수님은 도우미가 된다니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도우미가 되면 안 되고 내가 창 3장에 깊게 빠진 하나님을 반역한 인생이라는 걸 확실히 깨닫고 내 자신이 십자가에 죽었음을 인정하셔야 해요.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주인이 아니다 이렇게 고백하셔야 해요. 종교랑 달라요. 그래서 나는 이제 내 안에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 여러분 인생이 믿음으로 사는 인생이 되고 실제로 여러분 속에 성령님이 임재 통치하는 삶을 진짜로 날마다 날마다 맛보고 누리고 사셔야 해요. 자기가 딱 주인으로 살고, 자기 본성과 자기가 기준이 되고, 자기 동기로, 자기 애씀으로 사는 그 체질 가지고 내가 딱 들어앉아 있으면서 그걸로 남을 다 비판하고 하나님 잘 믿으려고 하는 거는 아니다 이 말이에요. 얼마나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몰라요. 이건 아직 자기가 발견이 안 된 거예요. 여전히 인본주의 자존심을 가지고 내가 살면서 예수님을 지금 믿는 거예요. 목사님도 그럴 수도 있고 장로님도 그럴 수도 있어요.

 

부부싸움을 하는데 어떤 아줌마들이 모여서 부부싸움 얘기를 하는 거예요. “너희는 부부 싸움하면 누가 먼저 잘못했다고 얘기하는데?” 그랬더니 세 사람이 모였는데 하나 같이 나는 절대로 얘기 안 해. 남편이 와서 잘못했다고 얘기해야지 그러면 풀어지고 끝나는 거야.” 그랬더니 나도, 나도그랬대요. 전부 다 자기들이 잘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겁니다. “왜 우리가 잘못했다고 먼저 얘기를 해전부 다 남편이 나중에 와서 잘못했다고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 그걸 3명이 좋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이분들이 오랫동안 믿었던 사람들이에요. 교회에서 중직자들입니다. 뭘 모르는 겁니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이 자존심이 창 3장의 자존심이라는 거 모르는 거예요. 그러면서 열심히 믿는다면 이런 게 종교 생활이에요. 이분들이 다 나는 하나님 잘 믿는다고 얘기해요. 교회에서 열심히 해요.

 

2) 우리는 사단을 강조하고 인간의 책임성을 회피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균형을 잘 잡아야 해요.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계약의 당사자예요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 나라를 맡긴 거예요. 에덴동산을 맡긴 거예요. 누가 에덴동산을 하나님 나라로 세워야 할 책임을 맡은 거예요. 인간이잖아요. 근데 그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사단이 인간을 꼬인 거잖아요.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관계를 제대로 유지하도록 분명히 명령하셨어요. 2:17을 읽어볼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내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은 뭐냐 하면 선악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 말씀을 지켜서 네가 나와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해라 이 말이에요. 근데 사단은 네가 선악의 기준이 돼라. 그래서 네가 하나님 돼라이렇게 꼬였던 거예요.

 

에덴동산의 통치법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사단은 이 점을 정확히 알고 하와를 먼저 꼬인 거예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꼬였고 거기에 넘어갔기 때문에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고 현재 같은 모든 저주가 온 거예요. 지금 인간이 겪고 있는 모든 현실적인 고난, 질병, 죽음이 그때부터 오게 된 거예요. 사단은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까지 등장해요. 요한계시록을 보면 일곱 교회에 편지를 쓴 거잖아요. 일곱 교회를 범죄케 하고 무너뜨리고자 하는 놈이 사단이에요. 그래서 마지막에 이 사단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내용이 요한계시록이에요. 그리고 그 사단을 지옥 유황불 못에 던지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는 게 요한계시록의 끝이에요. 사단을 바로 알 때 죄에 대해서 더욱 경계하고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더 확실하게 붙잡게 돼요. 여러분 죄를 티미하게 알고 사단을 티미하게 알면 그리스도도 티미하게 붙잡아요. 그리고 끝까지 문제는 나 라는 창세기 3장에 나를 계속 주장하는 거예요. 3장이 고집만 있는 게 아니고 비교 의식도 있고 사람 의식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있고 각종 눌림과 연약함과 목마름과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주인 되면 그런 삶을 못 벗어나요. 그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직도 내 본성이 더 세기 때문에 이 본성에 잡혀요. 본성은 환경을 하나님보다 더 잡아요. 돈을 더 잡아요. 아직 영적 문제를 제대로 모르니까 항상 사람에 대해서 꽂혀서 다른 사람 평가를 많이 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어떻게 지금 속았고 내가 어떻게 묶였는지 그거를 제대로 알 때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는 거예요. 진짜 이제는 믿음과 의탁의 인생으로. 순종의 인생으로 바뀌게 되고 나의 두 가지 기본 욕구 때문에 안 살아도 되는 인생이 되는 거예요. 진짜 하나님이 배경이 되시고 임마누엘 누리는 삶 속으로 계속 들어가는 거예요. 여러분 내면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셔야 해요.

 

결론

오늘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들이 이런 영적인 메시지, 복음 메시지를 듣지 못하고 오래 사신 경우가 많아요. 오래 교회 생활을 했더라도 영적 메시지, 복음 메시지를 정확하게 안 들었으면 율법 메시지를 많이 들어요. 그렇게 되면 한편에서는 하나님을 정말 절실히 믿으려고 하는 권사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사실은 내면으로 들어가면 갈등과 상처가 많아요. 아직도 응어리가 다 해소가 안 됐어요. ? 영적 문제 모르니까. 이거를 아직 처리를 못 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영적인 문제와 죄와의 상관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문제로 가정 구성원이 어떻게 서로 죄짓게 되는지 알아야 해요. 이게 부부 관계, 부모 관계, 자녀 관계 전부 다 갈등과 상처의 원인이 돼요. 여러분은 세상을 영적인 눈으로 보고 어떻게 영적 문제가 죄로 빠지게 만들고 죄로 말미암아 어떻게 저주가 왔고 그 속에서 지금 사람들이 어떻게 두 가지 기본 욕구를 위해서 투쟁하고 욕심을 부리면서 더 죄를 짓는지 알아야 해요. 이거 보는 눈이 열리면서 진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성령께서 이 모든 문제를 치유하시고 관계를 회복하시는 답이라는 사실을 아는 여러분이 됩니다. 여러분이 증인으로 서야 합니다. 연로한 부모님을 대할 때 우리 어머니는 너무 고집이 세, 그런데 또 치매가 오면 우리가 싹 무시하기 쉽잖아요. 치매 왔다고 무시하면 안 돼요. 그 혼이 치매 온 것이 아니고 뇌가 치매 온 거예요. 그래서 연로한 부모님도 복음의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섬기고 사랑하셔야 해요. 우리 본성은 못 됐어요. 옛날에 부모님이 잘했더라도 현재 치매 들고 그러면 무시가 딱 들어가요. 진짜 여러분이 아직 연로한 부모님이 계시다면 지금 잘하셔야 해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 오늘 여러분은 다 치유자, 회복자 되어서 구원의 일을 이루시는 주님의 손발이 되시고 도구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