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회메세지

2026년 6월 17일 수요예배 - 세상은 절대 구원이 필요하다.

현상금 2026. 6. 17. 10:11

요일서의 기록 목적(요일 5:4~13)

 

서론

1. 기록 목적 13-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함이라고 했다.

2. 영생이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만 아니라 현재 예수 생명 곧 성령의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이로써 아버지와 아들과 영적 연합이 이루어지고, 생명적 교제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차 영생이 보장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생명을 얻은 것이 얼마나 감사 감격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특별히 우리가 빠져 있었던 영적인 죄, 영적 문제와 그래서 초래된 결과를 안다면 더욱 그러한 것이다. 우리는 사탄에게 평생 속고 도적질 당하는 삶을 살다가 영원히 지옥 형벌을 받을 운명이었다.

 

본론

1. 세상은 절대 구원이 필요하다.

 지금 세상은 영적인 죄와 양심적인 죄를 구분하지 못한다그래서 복음과 종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것은 사탄의 대단한 트릭에 빠진 것이다.

1) 영적인 죄

하나님과의 관계 질서를 파괴한 죄이다. 3:5절이 그 핵심이다. “네가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했다. 사탄이 속임수와 욕심으로 하와를 꼬인 것이고 이것은 사탄이 범한 죄의 성격과 동일한 성격의 죄를 하와로 짓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죄의 성격과 죄의 본질을 정확히 아는 것이 복음만이 필요한 이유를 아는 것과 직결된다. 이 죄의 성격은 한 마디로 네가 하나님같이 되고 네가 선악의 기준이 되라는 것이었다. 선악의 기준이 하나님만 돼야 하고 피조물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런데 네가 선악의 기준점이 되고 하나님께 반역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게 된다. 이 죄가 바로 영적인 죄다. 하나님과의 관계 질서를 파괴한 죄다. 반역죄다. 인간은 기준점을 왜곡시켰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방향에 선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사탄의 종이 되고 영이 죽었다. 하나님께 대한 인식이 안 되고 영적 상태가 무너진 상태로 자기 기준의 의를 세우고 있다. 그래서 지금 세상 전체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2) 양심적인 죄

양심은 좋은 것이지만 지금 영적으로 속고 있는 것이다. 양심은 도덕, 윤리적 잣대는 되지만 양심만으로는 영적인 사실을 모른다. 양심으로는 윤리 도덕적인 죄만 알 뿐이고 하나님을 어렴풋이 인식할 뿐이다. 양심 윤리적인 죄는 불신자도 인식한다. 종교인들은 인식 정도가 아니라 강조한다. 이 양심의 의를 세워서 보상받고자 한다. 성경에도 양심 윤리적인 죄를 죄라고 말한다. 그리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한다.

그러나 영이 죽은 결과 양심도 죄의 영향 속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1:15에는 양심이 더럽혀졌다고 한다. 딤전 4:2에는 양심이 환인 맞았다고 한다. 인간은 지금 하나님을 반역하면서도 자기 의를 세우고 있다. 내가 노력하면 더 선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교회도 영적인 죄와 양심적인 죄의 차이를 선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복음과 종교의 차이를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죄의 경중만 따질 것이 아니라 선악의 기준점이 왜곡되었고 방향이 잘못됐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2. 지금 세상은 절대 복음만이 필요하다.

개인이나 전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로만 구원받고 치유 회복될 수 있다. 또 예수 그리스도로만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고 하늘과 땅이 통일될 수 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고 이를 위해 물과 피로 임하신 분이시다. 그분만이 우리의 참 제사장, 참 선지자, 참 왕이 되신다.

1) 물은 물세례다.

2) 피는 십자가 사건을 의미한다.

그의 피로 새 언약을 맺으셨다(22:20). 대속 사업을 완성하신 것을 말한다.

3) 이를 증거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고전 2:12 -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신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3. 우리가 점점 되어져야 할 부분이 있다

1) 나의 낮아짐이 점점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본주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왔다. 나 자신을 옹호하며 다른 사람은 판단하며 살아왔다. 자기 의를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했다. 우리는 창 3, 6, 11장의 기준으로 사람을 본 것이다. 그러면서 나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낮춘다. 우리는 다 내로남불 형이다. 이게 저는 사탄의 속임수와 사탄의 욕심에 빠진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본주의 자아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다 산 것이다. 이런 나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속죄해 주시고 속죄만 아니라 이제 내 안에 들어와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사탄의 함정에 빠져서 그 속에서 인본주의 체질이 형성되었는지를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인본주의 자아가 주인되어 인본주의 자존심을 갖고 산 것이 죄 인 줄 알게 된다. 이것을 아는 만큼 내가 십자가에 죽어야 할 인생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된다. 그러니 겸손해진다. 2:20이 되고 믿음과 의탁과 순종과 충성과 겸손과 사랑의 체질로 바뀌게 된다.

2) 따라오는 것이 복음의 관점, 주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점점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인본주의 관점으로 봤다. 비교 의식으로 봤다. 그러나 성령께서 눈을 바꾸시는 것이다. 전부 창 3장의 운명인데 그들을 주님이 어떻게 구원하고 세우시는지 주님의 관점으로 보게 된다. 주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 치유, 회복시키고자 하시는지 그 관점으로 보게 된다. 영적인 눈이 안 열리면 이게 안 된다. 내가 먼저 어떻게 구원받았고 어떻게 치유 받고 있는지를 알게 돼야 한다. 그러면 복음의 관점이 생긴다. 근데 내가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이 안 누려지면 내 동기를 극복 못 하니깐 다시 내 이익의 관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영의 생각이 더 강해지고 영의 생각을 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주님의 관점으로 보게 된다. 모든 사람을 주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 있는 사람으로 봐야 한다.

3) 매사에 모든 일, 모든 문제, 모든 스케줄을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처리하는 것이 점점 되어야 한다.

나로 사는 것과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 극명하게 다르다. 내 본성으로 사는 것과 성령으로 사는 것이 점점 더 차이가 나야 한다. 그래야 주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삶을 처리하는 삶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적인 죄, 영적 문제, 거기에 빠진 자기 본성이 어떤지를 정확히 보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결론

1. 정말 그리스도 때문에 기뻐하는 삶이 돼야 한다.

2. 갈 2:20이 실제로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