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회메세지

2026년 8월 2일 주일예배- 말의 중요성 (약 3:1~12)

별종외계오동 2026. 8. 2. 18:18

 

https://youtu.be/IhfyKup-JxI

 

말의 중요성(3:1~12)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거 맞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 나옵니다. 여러분은 사람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요새 저는 공대 전도하러 들어가면 전도 전에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오늘도 이 복음의 말씀이 정말 답이 될 사람을 만나게 해 주옵소서오늘도 생명 얻을 자, 구원받을 자, 영원한 운명이 바뀔 자를 만나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자 될 자를 만나게 해 주옵소서이렇게 기도합니다. 지난주 월요일인가 서울 사랑의 교회라고 있어요. 대형 교회예요. 장로교로 대표적인 교회죠. 그 교회를 좀 다녔던 대학원생을 만났어요. 얼마나 다녔는지 물어봤더니 중학교 때 좀 다녔고 잘 안 다니다가 대학에 들어와서 몇 번 나간 것 같아요. 집안 자체는 기독교 집안인 것 같아요. 대화를 해보니까 믿음이 없는 종교인인 것 같았어요. 종교적인 지식만 갖고 있고 기독교랑 일반 종교랑 차이를 모르더라고요. 제가 성경이 말하는 죄의 의미를 설명했어요. 양심적인 죄 이전에 인간이 지은 죄가 영적인 죄라고 이렇게 설명했어요. “이거는 하나님과 관계 선상에서 짓는 죄다이렇게 설명하고 그러면서 인간이 지금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다. 자기가 선악의 기준이 되어서 하나님을 맞서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선상에 서 있다. 이것이 영적인 죄인데 이걸 인정 못 한다. 성경에서는 이걸 근본적인 죄라고 얘기한다이런 말을 하면서 복음까지 설명해 주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제 구원에 간증을 했어요. 사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구원받게 됐는데 나는 죄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몰랐고 나는 지옥 갈 만한 죄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하나님이 니가 가지고 있는 인본주의 자존심이 죄다이렇게 가르쳐 주셨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런 식으로 얘기하니까 좀 심각하게 듣더라고요. “너는 니가 가지고 있는 인본주의 죄가 죄라고 인정하냐물어봤어요. “이게 죄라고 깨달아진다면 오늘 밤에 네가 잠자리 들기 전에 예수님을 니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해라이렇게 요청을 했어요. 그리고 니가 진짜로 오늘 밤에 인격적으로 주님을 영접했다면 다음 주에 내게 연락을 주라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이번 주가 다음 주입니다.

여러분은 평상시에 살리는 말을 해야 해요. 그리고 여러분이 과거에는 영적으로 사람 못 봤거든요. 영적으로 사람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되면 여러분이 살리는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영적으로 안 보이니까 사람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질내고 그냥 부닥치는 겁니다. 그러지 말고 이제 영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형성됐고, 어떻게 저런 말이 나오고, 저런 삶이 나오는지 이해가 되면 사실 여러분이 살리는 말을 할 수 있고 복음으로 답을 줄 수가 있어요. 그거 하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야고보서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죠.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그 사람의 인격과 상태를 보여줍니다. 말로써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근데 우리는 말이 생각에서만 나오는 줄 알죠. 근데 아니에요. 그 사람의 본성과 상태에서 말이 나와요. 영적 상태, 마음 상태에서 말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남편한테 아내가 좀 짜증스러운 말을 탁 던지면 단순히 인격으로, 성격으로 보면 안 돼요. 그 사람의 지금 상태를 여러분이 볼 수 있어야 해요.

 

1. 말의 부정적인 면

1) 1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는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이런 말씀을 하고 있어요. 왜 이런 말을 할까요? 사실 교회 학교가 부흥되려면 좋은 교사가 필요해요. 교사가 가능한 많아야 해요. “애들이 별로 없는데 교사만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아니요. 저 현장에는 수도 없이 많아요. 현장 나가서 전도해서 만들면 돼요. 그런 교사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당시 유대교 회당이나 또 초기 교회에서는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교사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야고보는 가르치는 자가 더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을 경고했어요. 왜 가르치는 사람이 더 엄격한 심판을 받을까요? 선생은 필연적으로 말을 많이 하게 돼요. 말의 책임을 져야하기에 그래요. 그래서 야고보는 말의 폐단을 가르치기 전에 자기 같은 선생이 더 책임성이 크다는 말을 먼저 하고 있는 거예요. 말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실수가 많죠. 저도 설교할 때 실수 많이 해요. 정확한 수치를 말하지 못한다든지 또 인용을 정확하게 못 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참 많이 해요. 여러분은 남 평가하는 말, 흉보는 말, 죽이는 말을 금해야 합니다. 주로 많이 하는 게 뭐예요? 남 평가하는 말, 흉보는 말, 사람 죽이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이에요. 말은 자기 본성과 영적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우리가 본성대로 할 때가 참 많잖아요. 본성에 충실한 사람들은 감정에서 올라오는 대로 해요. 자기 본성에 충실한 거죠. 성도들은 절대 영적 상태 관리가 필요합니다. 즉흥적이거나 본성적인 말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해요. 특별히 편한 사람한테 본성적으로 말하기 참 쉽거든요. 즉흥적으로 말 나가는 대로 하기가 참 쉬운데 이거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2) 야고보는 말의 위력을 설명하면서 세 가지 비유를 합니다.

3절부터 5절까지 볼까요?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강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서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가 그런 권세도 있고요. 위력이 있어요. 혀가 세 치보다 짧지만, 이 혀로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세 가지 비유를 하는데 첫째는 뭐예요? 사람이 타고 다니는 말의 재갈, 그다음에 둘째는 배의 키, 셋째가 큰불을 일으키는 작은 불씨, 이것들은 작은 것들이지만 큰 것을 지배하는 능력이 있어요. 여러분 뛰어다니는 말이 크고 힘이 센데 어떻게 조종하죠? 밀어요? 때려요? 여러분 재갈이 뭔지 알아요? 쇠붙이가 입을 통과하잖아요. 이게 재갈이에요. 어금니하고 앞니 중간에 이가 없대요. 그래서 이 재갈이 통과하는 부분은 뚫려있데요. 여기에 재갈을 끼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잡아당기는 거예요. 당기거나 옆으로 조정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말이 이거 따라서 움직이는 거예요. 재갈은 사실 단순하지만 더 큰 힘센 말을 조종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배의 키, 배의 키는 아시죠? 이게 키예요. 방향을 조정하는 조정실이 조타실인데 거기에 있는 이 키가 큰 배를 조정하잖아요. 또 여러분 불씨는 작지만, 큰 산을 태우잖아요. 야고보가 이 세 가지를 가지고 비유를 하는 거예요. 이게 마치 혀와 같다는 겁니다. 혀도 아주 작은 지체지만 엄청난 일을 해요.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사랑도 하고 배신도 하고 말을 잘해서 계약을 따내고 일을 아주 성공적으로 할 수도 있고 일을 망칠 수도 있는 게 말이에요. 6절에 보면 뭐라고 돼 있냐 하면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지옥 불이 얼마나 뜨거운데 이 지옥 불에서 날 정도로 이 말의 영향이 세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말로 사람 죽인다 이 말이에요. 삶의 수레바퀴라는 말을 하는데 이거는 우리 인생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이 수레바퀴 같은 인생 여정을 가는데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 말이에요. 말로서 부부 싸움하다가 이혼까지 가요. 진짜 말싸움하다 불 지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부부간에는 존중하는 말을 해야 해요. 여러분 부부간에 존중하고 계십니까? 부모가 자녀에게 말로써 살릴 수도 있고요. 평생 가는 상처를 줄 수도 있어요. 정말 아이들하고 관계에서도 엄마가 자기 기준과 자기 동기를 갖고 애를 잡을 수 있거든요. “왜 너는 그거밖에 안 되니? 왜 그것도 못해?” 이런 식으로 들어가면 얘의 상태나 얘에 대한 이해력 없이 인상 쓰고 말에 힘 들어가고 이러면 애한테 상처가 되는 거죠.

 

말에는 따뜻한 말, 위로하는 말, 살리는 말, 지혜로운 말 이런 말은 필요한 거죠. 반대로 차가운 말, 공격하는 말, 죽이는 말, 어리석은 말이 있어요. 이 말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난다고 할 정도로 독한 거예요. 7절에 보면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그렇죠? 생물은 길들일 수 있으나 혀는 길들이기가 어렵다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왜 그럴까요? 사실 길들이기 어려운 생물도 많이 있는데 근데 특별히 혀를 길들이기가 어렵다고 지금 야고보 는 얘기하고 있어요. 왜 이런 얘기를 하냐 하면 인간은 생물보다 더 센 자존심을 부려요. 더 큰 고집을 부려요. 인간 고집이 세잖아요. 안 바꾸려면 죽어라도 안 바꿔요. “니가 아무리 해봐라. 개소리해 봐라. 내가 듣나 봐라안 고쳐요. 그래서 하는 얘기예요. 8절에 보면 혀는 능에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얘기했잖아요. 혀는 죽이는 독이 있다고 해요. 9절부터 보면 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나무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나무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한 입에서 주 아버지를 찬송도 하고 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도 한다는 걸 지금 책망하는 거예요. 예배 시간에는 거룩 거룩 거룩해 놓고 야 이씨 자기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여기에 딱 걸리면 올라오잖아요. 한 번 더 걸리면 터지잖아요. 참다가 폭발하잖아요. 그러면 내가 얼마나 세게 말해서 상대에 자극을 주느냐에 방점이 있어요. 그렇죠? 부부 싸움할 때도 살살 얘기해서 상대방이 내 말을 인정 안 하면 점점 언성도 높아지고 강도도 세지잖아요. 저도 해봤어요. 그래서 내가 얼마나 답답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남자들은 물건도 던져요. 상도 부러뜨리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저도 그럴 가능성 있어요. “아니 목사님이 어떻게?” 가 아니고 똑같아요.

11절에서 12절에 보면 출처와 그 결과는 따로 놓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낼 수 있겠냐?” 그렇죠? 무화과나무가 감람나무 열매 못 맺죠.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 말이에요.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낼 수 없단 말이에요. 너희 안에 정말 그리스도가 통치하고 있다면, 성령께서 통치하고 있다면 그 조정을 계속 받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걸 지금 강조하고 있는 거죠. 물론 야고보서는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을 지금 거론하지는 않아요. 사실 우리가 죄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성령도 계시고 죄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두 종류가 나오는 거죠. 사실 정답은 우리 속에 죄의 본성도 있고 우리 안에 영이 거듭나서 성령께서도 내주하고 계세요. 감동 주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할 때는 편안한 말이 나와요. 남 이해하는 말이 나오고 나 자신을 반성하는 게 돼요.

 

2. 말이 나오는 메커니즘

1) 여러분이 말이 나오는 메커니즘을 잘 알아야 돼요.

우리 말이 그냥 생각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에요. 말이 나오는 메커니즘을 제가 좀 설명할게요. 인간은 다 영적 문제에 빠져 있어요. 3장의 영적 문제죠. 사단의 꼬임과 그 욕심에 넘어가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단 말입니다. 그래서 영이 죽었어요. 영이 죽고 사단의 영적 지배받는 운명이 된 거예요. 이것을 영적 문제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이 영적 문제로 말미암아 사단의 욕심에 빠진 인간은 3장의 나 중심, 6장의 육신 중심, 11장에 보이는 세상 가치 중심, 성공 중심에 빠졌잖아요. 이 본성을 지금 우리가 항상 갖고 있어요. 이 본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경우가 파다해요. 그런데 우리 외부 조건 있죠? 외부 문제, 현실 문제를 말하는 거예요. 이 외부 문제가 우리한테 영향을 대단히 주잖아요. 사실 영적 문제나 창 3, 6 ,11장의 본성에 대해서는 심리학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교육학에서 왜 이런 본성을 가지고 있느냐? 이런 부분은 안 다뤄요. 그냥 인간이니깐 갖고 있는 본성으로 그냥 인정해 버리는 거예요. 사실은 이 본성과 외부 문제에서 영향 들어오는 것이 나에게 영향을 줘서 마음의 상태에 영향을 줘요. 그리고 마음의 상태는 어디에 영향을 줘요? 생각의 상태, 내가 마음 상태가 우울하면 생각의 상태가 부정적이에요. 마음 상태가 눌려버리니까 생각 상태에 영향을 줘요. 그리고 이 생각의 상태가 결국 말과 행동으로 나온단 말입니다.

 

근데 불신자가 모르는 영적 상태라는 게 인간에게 있어요. 죄의 본성이 있고 외부의 문제가 있지만 영적 상태가 죽었냐 살았냐, 충만하느냐 따라서 이게 마음 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불신자,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영적 문제를 몰라요.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을 몰라요. 외부 조건만 인정하고 영적 상태는 몰라요. 이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 사람의 성장 배경이 어떠한지 보이는 요인만 주로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마음 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릴 때 얘기를 들어보면 알죠. 이거 중요한 것이지만 우리는 영적 사실을 알아야 해요. 영적 상태를 살리고 영적 문제를 꺾고 3, 6, 11장의 본성을 제어할 수 있는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말도 바뀌어져요. 행동도 바뀌어져요.

4:23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여러분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는 건 마음이 우울하면 죽고 싶은 마음도 들 수 있어요. 마음이 희망이 차면 절대 환경이 나쁘다고 안 죽어요. 그럼 생명이 거기서 나온다는 말이 맞잖아요. 마음에 미움과 독이 들어갔어요. “저 새끼 내가 죽여야 돼.” 마음에 그런 결심이 들어가면 나중에 진짜 복수하고 살인할 수 있어요. 사실 여기 마음이라는 건 감정적인 요인만을 성경에서는 마음이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인격의 주체가 마음이라고 합니다. 자아의 주체가 마음이라는 겁니다. , , 의가 다 포함돼 있어요. 이 마음을 심리학에서는 주로 감정 쪽을 얘기하는데, 마음 그러면 성경에서는 감정만 말하는 게 아니고 전인격적인 부분을 다 포함하는 걸 마음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이 낙심하거나 우울하거나 병들거나 반대로 마음이 기쁘거나 희망이 차거나 감사하거나 여기에 따라서 사람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러는 거예요. 사실은 이 마음을 살릴 수 있는 거는 사람의 따뜻한 위로의 말들이 도움이 돼요. 일단 죽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을 충분히 공감해 주고 이해만 해줘도 좀 마음이 누그러지잖아요.

 

근데 아까 봤던 도표에서 중요한 거는 영적 상태예요. 사람의 위로가 힘이 안 될 때가 있어요. 근데 이 영적 상태는 하나님과 영적 교제하는 상태 곧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고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와닿고 하는 부분이 영적 상태이거든요. 하나님의 사랑은 전능하신 분의 사랑이잖아요. 나의 모든 문제를 알고 있잖아요.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잖아요. 그분이 진짜로 너는 내 백성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의 인생에 대한 계획이 있다. 이 문제를 통해서 나는 너에게 일하기 원한다이런 걸 깨닫게 해 주신단 말입니다. 그러면 영적 상태가 살아나고 마음 상태가 바뀌어요. 그러면 생각의 상태가 바뀌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진로에 대해서 막 걱정이 많으면, 생각으로 들어가면 생각은 계속 고민이 돼요. 이래 생각하니까 이게 문제고, 이래 생각하니까 저게 문제고, 그래서 생각으로 들어가지 말고 기도로 들어가라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기도가 뚫리면서 성령님이 영의 생각이 나게 만들면서 필요한 기도를 이끌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말과 행동을 바꾸기보다 생각을 바꿔야 하고, 생각 바꾸기 전에 마음을 바꿔야 하고, 마음을 바꾸기 전에 영적 상태를 바꿔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자기들에게 나오는 바리새인들을 바라보면서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어디다 악한 거를 쌓아요? 마음에 쌓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쌓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상처 준 사람에 대해서 안 풀리는 거예요.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용서하라고 그러면 용서가 되나요? “내가 너 용서했잖아. 너도 용서해라.” “그 사람이 불신자라면 이 사랑을 모른다. 그러니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지 않니? 너는 이제 나를 만나지 않았니?” 이래 말씀하십니다.

 

2) 우리의 영적 상태가 정말 중요해요.

이게 마음 상태에 영향을 주는 겁니다. 마음 상태가 어둡고 답답하고 눌리면 우리는 조그마한 외부적인 문제, 인간관계 갈등도 세게 들어와요. 근데 여러분이 하나님과 매일 교제가 뚫리고 깊은 기도가 되면 외부 문제를 이겨버려요. 현실 문제가 커도 이겨버린다니까요. 그리고 하나님이 내 인생 인도하신다고 믿어져요. 제가 예전에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한 적 있었잖아요. 그 후 약 타기 위해서 몇 번 간 적이 있어요. 한 번은 그 주변에 있는 약국에 제조 받으러 갔는데 한 60~70대 되는 아저씨예요. 조제 하러 왔다가 약사란 시비가 붙었어요. 조제 기다리다가 자기 뜻대로 안 해주니까 시비가 붙었는데 이 약사는 자기가 화낼 수 없잖아요. 가능한 이 사람을 누그러뜨리려고 하는데 이 사람이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소리 지르는 거예요. 나중에는 거기 수십 명 있는데 막 큰소리로 막 따지는데 저도 뭐 한마디 하고 싶더라고요. 좀 조용히 하시라고 저도 하고 싶더라고요. 제가 그 모습을 보면서 뭔 생각을 했냐 하면 이런 문제는 벌써 태아 때와 영유아기를 거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것들의 결과라고 느껴졌어요. 잘 들어보세요. 이게 지금 참으라 해서 바뀌는 게 아니에요. 이게 태아에서부터 영유아기를 거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것들의 결과란 말이에요. 여러분 무의식, 잠재의식 속에 상처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요. 의식에서는 용서했고 생각도 안 나는데, 과거에 들어간 정서는 남아 있거든요.

저희 장모님이 서울에 가 계시지만, 장로님의 모친이 바다에서 익사하셨어요. 장모님은 평생 물가에 못 가요. 장모님이 집사람이 물가 간다고 하면 , 물가에 가지 마라맨날 그래요. 이게 의지력, 정신력으로 고칠 수 있습니까? 안 돼요. 성령님만이 고칠 수 있어요. 성령님은 우리의 영을 건드리기 때문에, 영 보다 더 깊은 부분이 없거든요. 영에 감동이 되면 무의식 잠재의식까지 건드릴 수 있어요. 치유할 수 있어요. 여러분 지금도 어떤 상처받을 만한 어떤 사건을 겪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걸 본성으로 반응하면 안 돼요. 본성적으로 굉장히 놀라거나 상처가 강하게 들어와도 빨리 성령님을 의지해야 해요. “이거 꺾어내 주시옵소서. 성령님 이걸 내 본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해 주옵소서여러분 그렇게 기도하셔야 해요.

 

임산부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불안을 겪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라는 게 몸에서 나와요. ‘코르티솔그런 호르몬이 있어요. 그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가 된다고요. 만약에 지속적이고 만성적으로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면 코르티솔이 태아에게까지 전달되는 거예요. 이렇게 태어난 아기의 뇌는 배 속에서 겪었던 경험을 통해 세상은 매우 위험한 곳이다.’ 이렇게 인지를 하는 거예요. 뱃속에서부터 들어간 정서에 의해 이 세상이라는 것은 너무 위험한 곳이야이렇게 인식을 한 거예요.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는 자라면서 남들보다 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게 생존 본능이에요.

이런 경우가 또 있어요. 뱃속에서 엄마의 영양이 결핍돼서 자기가 제대로 못 먹은 태아가 있어요. 그 아이는 태어난 다음에 과도하게 먹는 습관이 있대요. 뱃속에서 굶었기 때문에 자기가 태어났을 때 악착같이 먹어야 돼.”이게 실험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어요. 태아 때 정서가 불안했어요. 태어나서 자기 안정감을 갖기 위해서 외부 영향에 대한 신경을 꺼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딴 사람이 나한테 영향을 주는데 내가 그 영향을 받으면 내가 더 불안해지잖아요. 그러니까 안 듣는 겁니다. 딴 사람에 대해서 내가 관심을 꺼버리는 겁니다. 우리가 볼 때는 애가 왜 저렇게 관계성이 안 되지?”“왜 저렇게 남에 대해서 의식이 없지이건 의식이 없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에요.

 

태어난 이후에 부모의 관계와 가정 환경은 매우 중요합니까? 매우 중요하죠. 어릴수록 더 중요해요. 만약에 태아에서 받은 불안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가정이 평안을 주는 거예요. 부모가 불안케 안 하는 겁니다. 평안을 주고 행복을 주고 이해해 주고 울면 얼른 젖 주고 이렇게 필요를 공급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 뇌가 또 어떻게 반응하는 줄 아세요? “세상은 안전한 곳이고 사랑받는 곳이구나.” 다시 재입력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애착 형성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태아 교육도 참 중요하고 어릴 때 어떻게 교육하느냐가 참 중요하고 부모가 굉장히 중요한 거죠.

근데 우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잖아요? 우리가 믿음의 부모라고 한다면 그냥 일반적인 교육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이 아이에게 영적인 메시지, 복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잖아요. 기도 같이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 아이의 영적 상태를 살리는 거예요. 애가 구원받고 거듭나도록 아이한테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이 아이가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만들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알려주는 거예요. 그리고 아이랑 같이 기도 응답의 체험을 공유하는 거예요. 기도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 진짜 믿어지잖아요. 그러면 이 아이가 비록 결핍이 있었어도 자꾸 만회되는 겁니다. 성령님이 그 내면을 만지시며 자꾸 치유하시는 겁니다. 불안을 제거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부모가 자기 기준과 욕구로 자녀 교육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부모도 결핍이 있는 거죠. 그래서 내 자식만은그러면서 자기가 못 채웠던 거를 애를 통해서 채우려고 애한테 계속 요구할 수 있거든요. 그게 애 잡는 겁니다.

 

결론

앞에서 본 도표의 관계성을 여러분이 잘 아셔야 해요. 마음 상태가 인격의 중심이라고 그랬잖아요. 더 중요한 건 영적 상태예요. 영적 상태 이게 본성과 외부 조건을 통해 마음 상태를 공격하는 것을 완충시키고 극복하게 만들고 뒤집는 것까지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은 이거를 부부 관계에 적용하셔야 해요. 이거를 자녀 관계 대입하셔야 해요. 직장 관계에서도 적용해야 해요. “왜 직장 사람들이 다 저러냐?” 그게 아니라 이제 네가 구원받지 않았냐? 니 인간관계에 내가 주인 되기를 원한다. 저 사람들은 이런 거 전혀 모른다. 넌 이제 알지 않느냐? 니가 기도할 때 나는 너를 살린다. 너로 승리하도록 내가 너의 주인이다.” 우리 공대생들이 있지만 앞으로 어떤 직장에 들어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그 직장에 들어가서도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느냐 내가 누구와 함께하고 있느냐가 중요해요. 그러면 환경도 이기고 인간관계도 이겨서 그 안 좋은 인간관계를 역전시킬 수도 있어요. 직장에 왔는데 처음에는 뭐 전부 냉정하고 사람들이 다 자기중심적이고 관심도 안 가져다주고 그러는 거예요. 근데 그것 때문에 내가 상처받으면 안 돼요. “그럴 수 있구나. 내가 이 현장에 온 것은 나로 하여금 빛을 발하도록 보내셨구나.”주님은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기를 원하셔요. 여러분을 바꾸기 원하시고 여러분을 치유 회복시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