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9일 주일예배 - 하나님 나라와 위로부터 난 지혜(약 3:13~18)
하나님 나라와 위로부터 난 지혜(약 3:13~18)
지난주에 WRC 대회를 우리 교단에서 잘 마쳤습니다. 한 만여 명 모인 것 같고 저희 교회에서는 12~3명 참여해서 하나님이 우리 후대들을 키우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 주간 잘 사셨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그냥 적당히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디서부터 구원받았고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알고 또 지금 여러분이 어떤 축복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여러분이 그냥 육신대로, 또 욕구대로, 세상대로 살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 소원 위에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과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 시급한 하나님 백성이 전 인류 가운데서 구원받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이것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몇 주 전에 공대 대학원생을 전도했는데 에덴동산을 아냐고 물었더니 이 친구가 안다고 그래요. 이 친구는 자기한테 전도하는 친구가 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에덴동산의 본래 인간 상태를 설명하면서 인간이 빠진 죄 그리고 복음을 쭉 전했어요. 이 친구가 참 잘 듣더라고요. 그리고 나중에 묻더라고요. “목사님 그러면 우리가 다시 에덴동산 같은 곳에 살게 됩니까?” 제가 대답하기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 세상이 심판당하고 이 땅 전체가 에덴동산처럼 변하게 된다. 거기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살게 된다고 얘기를 해 주었어요. 정말로 여러분,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사실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지금 이 세상에서 적당히 살아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자로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여러분 청지기 삶을 사셔야 해요. 하나님이 맡겨주신 여러분의 직분, 여러분의 기능, 여러분에게 주신 경제 이 모든 것들을 청지기 자세로 사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을 위해서 사셔야 합니다. 어디서? 지금 이 불신 현장에서! 여러분이 하나님 백성답게 산다는 것은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 통치를 구현하는 삶을 사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살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영혼 구원하는 전도자로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사는 게 하나님의 소원과 방향 맞춰서 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가진 전문성과 직업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 소원을 이루는 수단이 되니까 여러분이 갖고 있는 기능이나 전문성, 직업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썩을 육신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제목은 하나님 나라와 위로부터 난 지혜라는 제목이에요. 사실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는 성경의 가장 큰 주제예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되 위로부터 내리시는 지혜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1.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어요.
1) 하나님이 왜 에덴동산을 창조하셨죠?
그냥 너무나 살기 좋은 지복한 그런 동산이었다. 이런 개념으로만 알면 안 되고 이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고자 창설하신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통치자가 한 나라를 세우고자 한다면 그 통치권자의 말은 그 나라의 법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통치권자의 말이 선악의 기준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돼야 통치자의 뜻대로 그 나라가 세워지게 되고 그 통치자의 주권과 왕권이 인정되는 나라가 되는 거예요. 에덴동산 그러면 꼭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대리 통치자로 세웠습니까? 아담을 대리 통치자로 세웠고, 하나님의 통치권이 시행되고 그러기 위해서 그 통치권자인 하나님의 말씀이 법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창세기 2장 17절에 명령을 주신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왜 이 명령을 하셨습니까? 통치자의 뜻대로 나라가 세워지고 통치권자의 말씀이 법이 되기 때문에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선이 되고 불순종하는 게 악이 된다는 그런 말씀인 거예요. 그래서 이 말씀의 권위를 깨뜨리고 통치권자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가 안 세워지는 거에요. 그렇기에 “이 명령을 지켜라. 지키지 않으면은 반드시 죽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아담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반드시 창 2장 17절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 거예요. 사단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인간을 꼬였던 거예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창세기 3장 5절“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할 줄 하나님이 아시니라” 이렇게 꼬인 거죠. 하와와 아담은 이 유혹에 넘어가서 자기 포지션을 지키지 못했던 거예요. 본분을 지키지 못했던 거예요. 그 결과 정말 하나님과 관계는 파괴가 되고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나서 저주와 죽음이 오게 된 거예요. 세상 모든 저주와 고통이 그때부터 오게 된 거죠.
그렇다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된 걸까요?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신 그 계획을 그냥 실패로 끝내셨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류가 번성해서 각 나라와 각 민족이 세워졌을 때 한 사람을 택해서 불러내서 그 사람과 그 후손과 언약을 맺으신 거예요. 그 사람 누구예요? 아브라함과 그 후손 이스라엘 민족이잖아요. 그들을 가나안 땅에 넣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셨다는 것을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나라에요.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나라를 회복할 때가 이때입니까? 묻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 회복을 하나님 나라 회복으로 생각했던 거예요. 그렇지만 이스라엘 민족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실패한 거예요. 우리가 말씀을 준행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여기에 생사화복이 다 달린 거예요. 성경은 이걸 너무나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도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추방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2. 드디어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1) 예수님을 둘째 아담으로 보내신 겁니다.
첫째 아담이 실패했지만, 다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예수님을 둘째 아담으로 보내신 겁니다. 육적 이스라엘은 실패했지만, 예수님을 참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우리를 위해서 보내신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초림하셨고 또 앞으로 재림하실 거 아니겠습니까?
초림은 왜 하셨어요?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전 먼저 하나님 백성부터 회복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겁니다.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자기 백성을 속죄하기 위해서 십자가 지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신 것이죠. 그래서 지금 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는 그 사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걸 말씀을 드렸어요. 우리 속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는 장소, 영토적 개념이 아니고 통치 개념이에요. 우리 속에 성령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재림 때는 어떻게 됩니까? 그때는 이 세상 전체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거예요. 그때는 장소적이고 영토적인 하나님 나라가 완성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는 개념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어요. 여러분 어때요? 어릴 때부터 교회 다니신 분,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나요? 구원 설교와 천당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천당은 막연히 죽어서 가는 나라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지금 죽으면 우리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요. 그 들어가는 천국을 다른 표현으로는 낙원이라 그래요. 그래서 중간 상태로 있어요. 영혼 상태로 지금 보좌가 있는 낙원, 천국으로 들어가 있는 거예요. 불신자는 어떻게 될까요? 아직 영원한 지옥으로 안 떨어졌어요. 음부라고 해서 불신자가 죽어서 가는 장소에 가 있어요. 음부는 무덤이라는 뜻도 있는데 지금 중간 상태가 음부에 있는 상태예요.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 얘기할 때 음부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부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거예요. 영혼은 없지만 정신은 그대로 말짱하거든요. 부자가 음부에 떨어져서 정신적인 고통을 얼마나 당하고 있는지 몰라요(눅 16:24). 그리고 장차 영원한 불로 들어갈 것을 지금 알고 있거든요. 그게 지금 음부 상태에 놓인 불신자의 모습이에요. 제가 어릴 때는 아무튼 천당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현실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막연한 거예요. 성도들이 그냥 이 현실에서는 주로 어려움 없고 문제 해결되고 고난 안 당하고 현실적 축복받는 거 그런 개념이 주로 신앙생활의 핵심이 됐어요.
2) 예수님 메시지의 주제는 항상 하나님 나라였어요.
정말 다시 하나님의 왕권과 주권이 회복되고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통치 받고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그 주제를 얘기하신 거예요. 우리가 기도할 때도 이런 기도하지 않습니까?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이 나라가 무슨 나라에요?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도하는 거예요. 어디에? 이 땅에! 그래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지금 보좌에서 하늘 세계를 통치하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불신 세상에서도 이루어지리라는 말이에요. 지금 하나님의 통치를 반역하고 있는 이 효자동에, 이 포항에, 이 대한민국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거예요.
(1) 예수님은 공생의 첫 메시지가 하나님 나라였어요.
마태복음은 천국이라는 말을 하나님 나라라는 말로 대신해서 씁니다. 왜 그러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라는 말 자체를 쓰는 걸 꺼렸어요.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천국으로 바꿔 쓴 거예요. 마 4:16~17 “비로소 전파에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세상 나라가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때가 됐다 이 말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먼저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거예요. 그래서 회개하라는 거예요. 막 1:14~15,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의 메시지의 주제가 뭐라고요? 하나님 나라예요.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을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우리 육신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나요? 착하게 살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겁니까? 아니죠. 그래서 요한복음 3장 5절에 보면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고 했습니다. 여기서 물은 십자가의 대속의 피로 우리가 속죄받는 걸 의미하는 거예요. 물과 성령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에요. 마 7장 13절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거예요. 지금 3, 6, 11장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넓은 문이에요. 세상은 다 그리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뭐라고 돼 있어요?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이것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조건이 돼요. 여기서 심령이 가난한 것은 뭘까요? 육신의 배고픔을 말하는 게 아니고 심령 곧 영적 상태가 가난한 거예요. 그건 하나님 앞에 영적인 목마름을 느끼는 거예요. 은혜 없이 못 삽니다. 이게 가난한 상태인 겁니다. 심령이 가난한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육신적으로 잘 살아도 내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이 죽고 내가 성령의 통치를 못 받고 하나님과 교제가 막히면 우리는 죽을 것 같아야 해요. 불신자는 이 감각이 없죠. 그래서 이건 은혜를 갈망하는 심령이에요. 제가 전도하러 갈 때마다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심령이 가난한 자를 만나게 해 주옵소서, 영적으로 목마른 자, 갈급한 자를 만나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이 복음이 정말 답이 될 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들어가는 조건을 많이 얘기하셨어요.
(3)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설명하셨어요.
마 13:1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춘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그 시대에는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은 재산이 몰수당하잖아요. 피난 갈 때 자기 재산 가지고 갈 수도 없잖아요. 이때 신용카드가 있었습니까? 은행이 있었습니까? 그러면 자기 집에 금덩이 어떻게 해야 해요? 밭에 숨겨놓고 가는 거예요. 자기가 아는 장소에 딱 묻어놓고 싹 가려놓고 피난 가는 거예요. 근데 만약에 피난 간 그 주인이 죽었으면 어떻게 돼요? 못 돌아오잖아요. 그럼, 밭의 주인이 바뀌어요. 밭 주인이 새로 생긴 상태에서 누가 소작인으로 온 거예요? 소작인으로 와서 밭을 갈잖아요. 근데 뭔가 떨 그럭 하는 겁니다. 그래서 보니까 누런 금덩어리가 있어요. 이 사람이 머리를 쓰는 거예요. 싹 숨겨놓고 자기 전 재산 팔아서 그 밭에 사는 거예요. 이게 주는 교훈이 뭐예요? 천국은 우리의 전 재산을 걸고 심지어 우리 목숨을 걸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순교도 하잖아요. 이게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설명하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는 진주와 같다는 비유도 하잖아요.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전부 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예요.
(4)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제자가 가질 제자도에 대한 말씀도 하셨어요.
제자가 가질 자세. 마 16장 24~25절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주장하고’가 아니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저 남편이 내 십자가다. 이런 의미의 보다는 여기서 십자가의 의미는 자기 죽음의 선언이에요.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내 의로 살았던 나는 십자가에 마땅히 죽었어야 할 인생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죽었습니다. 내가 더 이상 주인이 아닙니다.” 이 고백하라는 거예요. 부부 싸움할 때도 이 고백을 하길 바래요. 내가 주인이 되면 항상 내 이익에 민감하잖아요. 내 자존심에 민감하잖아요. 근데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되면 거기에 민감하지 안잖아요. 그렇죠?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또 마 20장 26~27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게 세상 원리로 맞나요? 우리 본성에 맞나요? 안 맞아요. 이 삶을 성령님이 살도록 만드는 겁니다. 이 삶의 모범이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예요. 이게 제자도 입니다.
(5)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두 단계로 설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바리새인들이 물은 거예요.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하나님 나라 회복이었어요. 어느 때에 임하시니까 묻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어요.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는 말이에요.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 사람입니까? 날마다 통치받고 사는 사람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맞습니다. 이 하나님의 통치가 없으면 내가 주장해야죠. 내가 기준이 돼야 하죠. 근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겁니다. 예수님이 모델이 되어서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이끄신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에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란 예수님의 재림 때를 말하는 겁니다. 그때는 세상이 불 심판 당하고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성도는 어떻게 될까요? 부활 체를 입고 이 땅에 예수님과 함께 내려와요. 천년 왕국을 믿는 교단도 있고 안 믿는 교단도 있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천년 왕국을 믿어요. 천년 왕국이 먼저 있다가 그다음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진짜 부활의 몸을 입고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자연 경치도 누리고 비교가 안 되는 그런 하나님 나라의 땅을 밟고 여러분이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이게 그냥 만화 같잖아요. 근데 성경은 이 얘기를 분명히 하고 있어요.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주제고 성경의 대주제예요. 구원 사역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세상 나라만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어요.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 하나님 나라의 요건, 하나님 나라의 가치 이런 것들을 성경은 끊임없이 얘기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가는 경우들이 참 많아요.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사실적으로 알면 이 땅에서부터 보좌 배경을 믿으셔야 해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골인 지점으로 알고 살아야 해요. 나이가 많아질수록 “이제 시간 없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뭐 할 것도 없고 나는 뭐 가치도 없고” 이런 생각으로 빠지는 건 아닌 겁니다. 이제 정말 소중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 이 땅은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이 안 되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살고 있잖아요. 마귀 적으로 살고 있잖아요. 지금 그런 세상 현장에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을 위해서 있는 거예요. 이 현장이 선교지예요.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사는 거예요. 이걸 위해서 공부하고 이걸 위해서 직장 다니고 사업하고 돈 벌어야 하는 거예요. 당연히 돈을 이걸 위해서 써야 하죠. 이걸 위해서 결혼하고 이걸 위해서 자녀 양육해야 해요. 이걸 영적으로 늘 되새기기 위해서는 우리 교단 표현으로 한다면 777 기도를 해야 하는 겁니다. 하루 세 번 정시 기도로 늘 영적 리듬을 타는 기도가 돼야 합니다. 이 영적인 사실은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으면 잊어버려요. 영적인 사실은 보이는 현실이 아니니까 기도할 때는 생각나고 기도 안 하면 잊어버려요.
3.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위로부터 주시는 지혜가 뭘까요?
야고보는 지혜에 대해서 조금 다른 방향에서 얘기해요. 답부터 말을 하자면 말로만 하는 믿음이 아니고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고 행위로 연결되는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을 위로부터 주시는 지혜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여기서는 지금 다니엘 같은 지혜를 말하는 게 아니고 진짜 실천적인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위로부터 난 지혜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1) 13절을 보면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고 돼 있어요.
여기서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랬는데 지혜의 온유함은 뭐냐 하면 성령이 주시는 지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남을 배려하고 온유함을 품고 유익을 끼치는 지혜를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온유를 아세요? 포항 사람들은 억세요, “됀니더” 이게 포항 사투리 아닙니까? 남을 배려하는 온유함으로 유익을 끼치는 것이 지혜의 온유함이라는 거예요. 14절과 정반대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뭘 자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지혜 있다, 뭐 믿음이 있다.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거는 진리를 거스르는 거짓말하는 거라는 겁니다. 어떻게 성령이 다스리는데 독한 말을 하면서 “시원하다” 그러는 사람 있나요? 본성은 시원하겠지만 성령은 근심해요.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성령을 거스르면 기도 안 돼요. 15절 16절이 부연 설명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오. 땅 위의 것이오, 정욕의 것이오,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야고보는 불신자도 아닌 교회에 왜 이런 말을 쓰고 있는 걸까요? 야고보서를 쓸 때 아직 교회가 탄생 된 지 오래되지 않았어요. 초신자가 많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불신자 상태에서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참 많았기 때문에 은혜는 받았어요. 근데 혈기 나면 그냥 해대버리는 거예요. 미워하는 거 그대로 하고 독한 말 그대로 하고 교회에서 분쟁하고 이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지금 거기에 대해서 야고보가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어찌 참 믿음이냐?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2) 17절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여러분 앞을 보세요. 제가 정리를 했습니다. 이렇게 위로 난 지혜는 첫째 성결은 죄 짓지 않고 자기를 거룩하게 지키는 거잖아요. 이건 일단 자기 보호 차원으로 필요해요. 맨날 음란한 것만 시청하게 되고 더럽고 악한 거 이런 것들과 어울리고 술 취하고 이러면 성결이 무너져요. 성결은 자기를 지키는 거예요. 그리고 화평부터 거짓 없음까지는 전부 다 타자적 삶이에요. 전부 이거 대인관계에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에요. 성령의 열매예요. 이런 사람은 화평케 하는 것을 좋아하는 거예요. 관용은 이해해 주고 용납해 주는 겁니다. 여러분 자신을 가만히 보세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으로 다스림을 받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고집스럽지 않고 순종하는 게 양순이에요. 온유랑 같은 뜻이에요. 긍휼은 남 불쌍히 여기는 것이고 선한 열매는 선을 베풀고 사랑 실천하는 것입니다. 편견 없음은 사람 차별하지 않는 겁니다.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부자든 거지든 차별하지 않는 겁니다. 거짓 없음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거고 사기 치지 않는 겁니다. 여기에 미워하는 거, 혈기 내는 거, 자기 고집 피우는 거, 주장하는 거, 자기 뜻이 관철 안 되기 때문에 갈라서는 거 이런 거는 하나도 없어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 말씀 속에 다 들어 있는 거죠. 이게 위로부터 난 지혜라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다니엘 같은 지혜를 구하지 말아야 합니까? 아니요. 우리는 공부할 때 늘 하나님이 연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나에게 창의성을 주시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주옵소서, 집중력을 주옵소서, 기억력을 주옵소서 다 기도하셔야 하고 그래서 여러분 영적 상태가 충만할 때가 최고로 기능이 좋을 때입니다. 저는 영적으로 눌리면 목소리도 잘 안 나와요. 제가 느끼거든요. 영적으로 누르면 목소리가 탁해지고 답답해져요. 근데 성령 충만하면 목소리가 가볍고 속에서부터 확 뚫리는 목소리가 나와요. 소리도 고음이 잘 나와요. 모든 기능이 하나님의 영이 충만할 때 다 회복되는 겁니다. 그래서 충만하면 병도 낫는 겁니다. 마지막을 보십시오. 13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했는데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들이에요. 살리는 자예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했어요
결론
여러분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그 하나님의 통치가 실행되고 있는 백성이기 때문에 그래요. 보좌 비경과 임마누엘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를 골인 지점으로 알고 지금 믿음의 경주를 하는 사람들이에요. 요새 ‘7포인트 제자’ 얘기 참 많이 하는데 한번 여러분 찾아보세요. 7포인트 제자가 뭔지? 거기 보면 남은 자, 순례자, 정복자, 흩어진 자, 파수꾼, 정탐꾼, 기를 든 자 이런 것들이 7포인트 제자라 하거든요. 이게 전부 세상 살리는 것과 관련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본성으로 반응하지 말고 성령으로 반응하는 삶을 계속 발전시키셔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자기만 사는 게 아니라 불신자를 살려요. 여러분 불신자는 세상 지혜는 뛰어나요. 오히려 세상 살아가는 이득을 보는 데 있어서 불신자 머리는 대단히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 3, 6, 11장의 본성은 안 바뀌어요. 그 본성은 그대로 추구하면서 이익이나 사람들한테 영광 받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불신자 머리는 진짜 잘 돌아가요. 오히려 그런 면에서 세상 이득을 찾는 지혜가 신자들이 떨어져요. 신자들이 그게 잘 안 돌아가요. 여러분이 성령 충만함을 받으셔서 여러분이 실제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삶이 연결되는 것이 능력이다. 이런 축복 누리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