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회메세지

2026년 8월 23일 주일예배 - 하나님의 기준과 사람의 기준(약 4:11~12)

현상금 2026. 8. 23. 19:05

하나님의 기준과 사람의 기준(4:11~12)

 

제가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제 모 교회는 좋은 교회였어요. 목사님이 참 인품도 좋았고 선교에 헌신하신 목사님이셨어요. 개척하셔서 본인이 교회를 한 4~ 500명 세워지기까지 헌신하시다가 본인이 직접 선교사로 나가셨다는 말씀을 과거에 드렸습니다. 말년에는 선교사로 사셨어요. 그런데 영적인 부분 곧 영적인 메시지, 복음 메시지는 좀 약하셨어요. 저희 목사님만 그랬던 게 아니라 교단 자체가 좀 그랬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성장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과 또 양심적인 죄 때문에 고민했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왜 난 안 되지? 왜 그렇게 못 살지이런 고민이 참 많았는데, 사실 제가 지금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양심적인 죄보다 영적인 죄가 더 중요하고 영적인 죄가 뿌리라는 것을, 그때는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영적인 죄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지금 반역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인간이 선악의 기준을 왜곡시키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거를 우리는 사탄에게 속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 양심가나 세상 범죄자나 똑같이 영적인 죄에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굉장히 충격적인 얘기 아닙니까?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 기준의 의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세우고 있습니다. 죄인이라고 얘기하면 듣기 싫어하죠. 그리고 우리가 다 죄가 있지만, 우리가 무슨 지옥 갈 만한 죄가 있느냐?” 이렇게 보통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진짜 우리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 모든 인생은 대역죄 가운데 빠져 있는 셈이에요. 인간은 이 사실을 모르니까 자기 기준에 의를 세우며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는 겁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이렇게 돌아갈 수가 없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굉장히 양심 바른 종교인들을 인정해 주고 높여줍니다. 또 각 분야의 전문가나 큰 일을 해낸 사람들을 인정해 주고 높여주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도 영적인 죄에 어떻게 빠져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관점에 눈을 떠야 한다 이 말이에요. 우리는 사회에서 해를 끼친 사람들인 사기범, 성폭행범, 유괴범 이런 사람들을 굉장히 지탄하잖아요. 지탄할 수밖에 없죠. 그리고 거기다가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이라든지 부모를 죽인 존속 살인범이라든지 연쇄 살인범은 지탄할 정도가 아니라 이놈들은 마땅히 사형당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게 세상 도덕 윤리 기준이에요. 그러나 아무도 영적인 죄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아무도 영적인 눈으로 보지는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 영적인 눈을 감고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사람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오늘 메시지의 의미를 여러분이 잘 알아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지금 세상의 양심가나 선행을 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정반대로 진짜 지탄받아야 하고 사형당해야 할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의 관점은 어떻겠습니까? 이사야 558~9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천지 차이다. 하나님 판단의 기준과 사람 판단의 기준도 다르다는 거예요.

 

1. 여러분은 세상을 영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해요.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속량은 대속과 같은데,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이유가 지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실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굉장히 영광 있는 존재예요.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영광을 반영하지 못해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나타낼 수 있는 존재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존재가 됐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모든 인생이 마귀의 속임수와 욕심에 빠져서 자기가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선악의 기준이 되어 자기 의를 세우고 있다는 말이에요. 하나님께 반역하는 건 인정 안 하고 반역하면서도 이게 마귀의 욕심을 받아들인 결과라고 전혀 생각을 못 하는 거예요. 사실 우리 이기심의 뿌리는 마귀의 욕심에 의한 겁니다. 이걸 인식 못 하는 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마귀 종노릇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마귀를 세상 임금이라고 그러죠. 세상 성공자나 실패자나 양심가나 범죄자나 어린이나 노인이나 다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반역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 성공자나 양심가는 자기 의가 아주 탄탄한 사람들이에요. 자기 의가 더 센 사람들이에요.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들도 자기 의가 강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인이나 세리나 창녀들과 함께 하는 것을 보고 비난했어요. 예수님은 그들을 친근히 대하셨죠. 그리고 오히려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셨어요. 우리 상식이랑 안 맞잖아요. 도덕 윤리적으로 사는 면에서는 바리새인들이 훨씬 낫습니다. 근데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비판하시고 오히려 그들이 비난하고 있는 당시 율법에 저촉되는 죄인, 세리, 창녀들을 더 가까이 대하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설명하셨습니다. 런 점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달라요. 오늘 잘 들어보세요. 당시 율법에 근거해서 죄인, 세리, 창녀, 귀신 들린 자 이런 사람들은 가장 천대를 당했던 사람들이에요. 가장 낮추어 무시당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야말로 복음에 필요한 자로 보셨어요. 바리새인들은 자기가 복음이 필요한 자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렇지 못했어요. 예수님은 오히려 드러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구원과 치유를 베풀어 주셨어요. 이들이 의로워서 그런 게 절대로 아니었어요.

 

제가 여러 번 언급했던 교도관 생활을 하셨던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생각해 볼 것이 참 많아요. 세상 최고형인 사형 언도를 당한 흉악범, 가정 파괴범, 살인범 그것도 연쇄 살인범에 대한 간증을 보면 예수님이 그들도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셨어요. 실제로 그들이 구원을 받아요. 그래서 마지막 사형당할 때 성령님이 강력하게 붙잡아주시는 간증을 우리가 보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박효진 장로님이 이런 부분을 간증하면서 조심한다고 그랬잖아요. 내가 이렇게 간증을 하지만, 그들에게 직접 피해당한 사람들은 분노와 증오를 삼키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이런 사람들까지 구원하신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의를 가지고 회개치 않는 자를 책망하셨지, 심지어 살인죄까지 범했을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셨어요.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보셨기 때문에 그래요. 다시 말해서 모든 인간을 육신적으로 안 보고 영적으로 보셨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영적 문제, 영적 문제이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근데 지금 자신의 영적 문제가 얼마큼 심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천지예요. 영적인 죄와 영적인 문제의 측면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지금 하나님을 대항하고 반역하고 있어요. 정말 여러분 인생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인정되십니까?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인생을 산 것이 맞습니다. 그게 사단이 인간을 꼬여 넘어뜨리고자 했던 핵심 목표였어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깨지고 하나님 나라가 설립되지 못하게 된 거예요.

 

2) 우리는 사람에 대한 영적 이해가 진짜 필요해요.

심각한 사회적 범죄를 지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건 드러난 거죠. 세상 양심 윤리적인 기준으로 이 사람들은 용납 안 되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들의 이면을 볼 수 있어야 해요. 사단이 모든 사람에게 죄의 본성을 심었잖아요. 죄의 본성에 대한 책임은 누구한테 있어요? 우리 자신들에게 있어요. 그러나 죄의 본성을 심어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 만들어 놓고 사단은 가문의 심각한 영적 문제를 통해서 사람을 공격하거나 시달리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현실 문제가 맞물리게 만드는 거예요. 영적으로 시달리는데 누가 괴롭히면 어떻게 되겠어요? 폭발해요. 완전히 상처 받아버려요. 가문의 영적 문제와 현실 문제가 겹쳐버리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이 무너질 수 있어요. 병들 수 있어요. 겉만 보지 말고 이면적으로 보자 이 말입니다. 사단이 그 사람의 심성과 정신과 인격까지 무너뜨릴 수 있어요. 그냥 흉악범이 되는 게 아니에요. 보통 보면 가정에서 상처가 많아 이미 삐뚤어지는 과정을 겪은 거예요. 우리는 영적인 문제를 안 보면 사람만 지탄하잖아요. “나쁜 놈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어?”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근데 지금 뭘 보라고요? 그 가문의 역사는 영적인 문제와 이 사람이 성장하면서 겪은 현실 문제가 겹치게 된다니까요. 그렇게 될 때 인격의 손상과 심성이 무너지고 인간성과 양심까지 무너질 수 있어요. 그래서 각종 죄악과 타락과 중독 같은 것에 빠질 수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대속과 은혜는 놀랍게도 이런 사람까지 포함합니다. 사단이 아무리 무너뜨리고 흉악한 죄를 짓게 한 사람까지 포함해요.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세요. 창세기 3장 사건을 통해서 인간이 사단에게 종 노릇하게 되고 환경의 저주까지 왔어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성장 배경 속에서 이런 문제를 더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무너지고 악해지고 독을 품을 수 있어요. 이미 버린 몸 그러면서 폭력조직에 들어갈 수 있어요. 조직의 의를 위해서 살게 돼요. 조직 간에 사람 죽이는 거는 일도 아닌 걸로 생각해요. 사단이 인간을 이렇게 무너지고 흉악한 죄에 빠지게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죽어주셨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의 책임이 없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죗값을 받아야 한다면 완전히 지옥,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허락하고 계시다는 거죠. 심각한 영적 문제와 현실 문제가 맞물려서 범죄한 사람까지도 구원하시는 복음을 주신 거예요. 지금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부류의 사람들도 구원받는 역사가 기독교에서는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게 이해가 돼야 해요.

 

여러분은 영적인 관점으로 보면 자신이 의로우십니까? 의롭지 않기에 여러분의 의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보지 말아야 해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도덕 윤리 기준으로 교육받았어요. 그런 사람은 자기 기준 의가 강합니다. 바리새인들 아주 강합니다. 율법 기준으로 보도록 배웠으니까 그런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과 인간 기준이 다릅니다.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다그랬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와 창녀와 함께하는 것을 보고 비난했어요. 그러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다른 성경에서 보면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돼 있어요. 여러분, 진짜 죄인이 구원을 제대로 받으면 하나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돼요. 세상에서 최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이유가 있어요. 아무 육체라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시고 하나님 구원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하기 위한 거예요.

 

사도 바울이 깨달은 부분이 이 부분이에요. 우리는 세상에 파렴치한 죄인이나 흉악한 죄인까지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단은 여까지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여까지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원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그동안 양심, 도덕, 윤리적 기준으로 사람을 너무 많이 봤어요. 영적으로 보는 기준이 별로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음의 대상과 복음의 관점으로 못 보고 어째 저럴 수가 있어?” 하면서 계속 판단하면서 보는 거예요. 제가 그 사람이 의롭다고 얘기하는 겁니까? 아니요. 정말 그 사람들이 잘못한 죄인이에요. 만약에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안 받아들이면 영벌을 당하는 게 마땅해요. 그렇지만 지금 하나님은 어디에나 구원의 길을 허락하고 계시는 겁니다. 복음으로 돌아오라고 부르고 계시는 겁니다.

어제 현석이랑 말씀 나누면서 천주교랑 기독교 차이를 얘기해 주었어요. 사실 천주교와 기독교 차이의 가장 핵심이 영적인 죄 곧 원죄에 대한 해석이 달라요.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과 전인격이 다 죄에 오염됐다고 봅니다. 이게 기독교의 관점이고 천주교의 관점은 원죄에 빠졌지만, 인간에게는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원죄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구원관의 차이가 나요.

 

사도 바울 같은 경우도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교회를 핍박했던 대적자잖아요. 이 바울이 왜 구원받을 수가 있었던 거죠? 사실 바울도 구원받을 수 없는 대상이에요. 사도 바울은 정말 자기가 그걸 인식했거든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였노라고백하거든요. 내가 구원받은 것은 철저히 하나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함이고, 나중에 믿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 3:18~19,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의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만 그런 게 아니고, 지금 세리나 창녀만 그런 게 아니고, 지금 오덕규 장로님도 마찬가지고 윤용섭 집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절대 구원받을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함이 마땅한 겁니다. 사단은 지금 사람들을 속이고 있어요. 그래서 온 천하를 꾀는 자’(12:9)라고 돼 있잖아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낳나니 너희는 너희 아비의 욕심을 행하는 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의 아비’(8:44)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탄은 영적인 죄는 모른 채 인간이 자기 의를 세우게 만들고 있어요. 지금 인간은 자기 기준의 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있어요. 그러나 주님은 그리스도로 오셔서 심각한 영적 문제와 현실 문제가 맞물려서 범죄하고 타락한 사람들까지도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길이가 어떠한지 알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죄에 빠졌든지 복음 듣고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시는 겁니다. 만약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너희는 너희 죄 때문에 죽으리라(8:24).’‘이미 도끼가 나무의 뿌리에 놓여 있느니라(3:10).’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계속 자기 의를 세우고 있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계셔요. 왜냐하면 그 의를 가지고 자기가 죄인이 아니라고 고집하고 있고 하나님께 안 돌아오니까 그래요. 우리가 보면 살면서 무너진 사람들 있잖아요. 타락하고 중독에 빠진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도 복음의 관점으로 보셔야 해요. 중독에 빠진 사람을 우리가 구원하고 치유, 회복하는 거는 우리 능력으로 안 돼요. 내가 복음의 증인으로서 이런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면 주님이 나를 구원의 통로로 쓰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그렇게 만들어 쓰기를 원하시는 거죠. 누구의 표현처럼 이 구원에 저와 여러분이 얻어걸린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지금 우리는 영적인 죄와 영적인 문제를 들어서 알고 있어요. 여러분 중에서 아직 마음이 높은 사람은 빨리 내려가야 해요. 사회적 지위가 있든지 아니면 학식이 있든지 어릴 때부터 자존심을 갈고닦은 사람이 있다면 빨리 내려가야 해요. 자기 의를 갖고 있는 사람도 빨리 내려와야 해요. 여러분이 자랑할 건 그리스도의 의밖에 없어야 해요. 우리가 빠져 있는 영적인 죄와 그래서 초래된 결과를 제대로 알게 될 때 정확히 복음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성공한 자나 자기 의가 강한 사람도 영적으로 보게 되면 속는 것이고 정말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성공한 사람이나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겸손해져야 해요. 자기가 속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자기 의를 버려야 합니다. 지금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문은 열려 있어요. 자기가 높은 줄로 알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시냐 하면 심령이 가난해지고 목마르게 해서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거예요.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자기 의가 센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치 않아요. 그래서 낮추어서 쓰시게 돼요. 교만한데 하나님이 쓰시면 이 사람 더 교만해질 거 아니겠어요? 여러분의 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드린 복음의 가치를 안다면 여러분은 이제부터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앞에 지금 전도 현장이 있어요. 여러분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여러분이 그들을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2. 여러분은 이 큰 구원을 받아놓고도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게 오늘 말씀입니다.

10,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다. 니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오. 재판관이로다.” 왜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죠? 여러분이 잘나서 비방하고 판단하고 있는 거예요. 비방하고 판단하면서 자기 의를 세우는 겁니다. 여러분이 주인이 되고 선악의 기준이 되어있기 때문에 비방하고 판단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저 사람보다 진짜 더 죄인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비방이 훨씬 적어지게 돼요. 나 자신을 영적으로 보게 되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자가 되면 상대를 내 기준의 의로 보는 게 아니라 복음의 관점으로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비방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해요. 복음 받을 대상으로 봐야 해요.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고 있으면 그게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과 같대요. 왜 그럴까요? 율법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돼 있어요. 비방하고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판단하는 짓을 하지 말라고 돼 있어요. 근데 내가 형제를 비방하고 무너뜨리고 있으면 내가 율법을 비방하는 거와 같다는 겁니다. 율법을 싹 무시하는 겁니다. 그러니 율법을 범하지 말고 율법의 준행자가 되라는 겁니다. 율법의 준행자가 돼야지 어찌 너희가 재판관이 되고 있느냐?”는 겁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권한은 누구에게만 있다고요? 하나님께만 있다는 겁니다.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인간에게 사단의 욕심이 들어갔을 때부터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이 선악의 판단자가 된 거예요.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 양 선악의 기준이 되어서 남 비방하고 판단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조심할 게 있어요. 사람은 안 그러려고 해도 항상 자기 동기가 갖고 있기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면 판단하게 되어요. 여러분의 동기에 저촉을 받으면 그 사람은 용서가 안 되고 판단하게 됩니다. 여러분 항상 조심해야 해요. 무심코 남 얘기할 때 의도적으로 그 사람을 까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무심코 얘기하다 보면 주제가 남 얘기예요. 근데 남 얘기할 때 그 사람의 장점이나 칭찬할 만한 일을 찾아서 얘기하는 사람 못 봤어요. 주로 어떻게 얘기에요? 약점과 그 사람이 주로 잘 못하고 있는 거에 대해서 얘기해요. 이렇게 우리가 보통 무심코 말이 나가요. 생각 없이 말하고 또 전달합니다. 딴 사람도 같이 동조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공감대를 얻고자 하는 겁니다. 이게 상당한 죄악이에요. 지금 너무나 많이 그렇게 하고 있어요. 복음의 관점으로 보면서 사람 살려야 됩니다. “사람 살리기 위해서 우리 기도합시다이런 얘기는 별로 안 해요. 오늘 본문에는 이것은 네가 율법의 판단자가 되고 입법자가 되고 심판자가 되는 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누구밖에 없다고요? 하나님밖에 없어요. 우리는 다 율법의 준행자가 돼야 합니다. 여러분은 복음 가진 자입니까? 그러면 더더욱 이제 성령님을 힘입어서 율법의 준행자가 돼야 합니다.

 

결론

왜 우리가 비방하는 자가 아니고 살리는 자가 돼야 하겠습니까? 이유가 있어요.

1. 주님이 나를 비방하지 않고 정제하지 않고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를 정죄했으면 난 끝나는 거잖아요. 나를 살리셨어요.

2.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그래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힌 거예요. 우리가 나의 죽음을 선언해야 하는 겁니다.

3. 나도 반드시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후 5:10,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지옥 영벌의 심판을 받지는 않지만, 우리가 말한 거, 행한 거를 하나님이 다 심판하세요.

4. 주님은 나에게 적극적으로 행하라고 새 계명을 주시고 전도 명령을 주셨어요. 제자 삼으라고 하셨어요. 그렇기에 우리는 살리는 게 기준이에요. 남을 살리는 7포인트 제자가 되는 겁니다. 남은 자, 순례자, 정복자, 흩어진 자, 파수꾼, 정탐꾼, 기를 든 자. 전부 다 살리는 제자예요. 저와 여러분이 이런 축복을 누리기 바랍니다.

 

오늘 말한 관점은 굉장히 중요한 관점이고 교회 다니면서도 이런 관점까지 안 들어가는 경우들이 참 많아요. 왜요? 영적으로 아직 사람 보는 게 안 되는 거예요. 아까 말한 것처럼 사단이 가문에 역사해서 현실 문제와 함께 겹치게 만들면서 사람을 무너뜨리거든요. 심성도 무너뜨리고 인격도 무너뜨릴 수 있어요. 사람들이 파렴치범이 될 수도 있고 중독에 빠지도록 사단이 끌고 간다고요. 영적으로 이해 못 한다면 이런 사람들 이해 안 돼요. 오늘 말씀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