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6일 주일예배 - 직업과 경제(약 4:13~17)
직업과 경제(약 4:13~17)
https://www.youtube.com/live/bVwEXQFRCdY
오늘 직업과 경제에 대한 말씀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평신도들에게 직업을 하나님이 주시죠.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구약에 보면 가나안 정복 이후에 땅 분배를 합니다. 레위 지파는 전적으로 성막 직분만 감당하라고 빼고 모든 지파에게는 일할 수 있는 토지를 주셨어요. 지파별로 제비를 뽑아서 주었고 또 그 지파는 가족별로 제비뽑기했다고 합니다. 대략 차지할 땅의 위치는 제비뽑기로 하고 땅의 크기는 가족의 수를 고려해서 분배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공평하게 분배해 주신 거죠. 토지 경작을 해서 생활을 하는 거예요. 당시에는 토지나 목축이 1차 산업이고 그게 주업이었죠. 농경이나 목축을 했고 또 상업이 발전하게 되잖아요. 그게 오래 가서 18세기나 돼서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20세기 디지털 시대가 왔고 우리가 지금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고 인공지능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봅니다. 평신도들에게는 업이 중요해요. 업에서 거의 시간을 쓰잖아요. 업을 통해서 이익을 얻고 생활 기반을 닦게 되는 거고, 거기서 사회생활도 하고 문화생활도 하고 그러는 거죠. 뿐만아니라 이 업을 통해서 여러분이 공익을 위해서 세금도 내요. 요새 삼성이나 하이닉스가 잘 나가니까 초과 세수로 인해 나라가 호황을 누리고 있잖아요. 지금 청년들한테 분배하고 미래를 위해서 초과 세수를 쓰려고 정부에서 계획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업을 통해서 공익을 위해서 세금을 내는 거예요. 국가 발전에도 기여하고 사회봉사도 하게 되는 거예요. 근데 이거는 불신자나 신자나 다 똑같죠.
이제 신자는 불신자와 다른 기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익 추구가 다가 아닌 거예요. 이익 추구를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이 말이에요. 신자는 불신자와 다른 소속, 신분, 사명을 갖고 지금 이 땅에 있는 거예요. 매주 생업이 잘 돌아가는 것만 신경 쓰고 그것만 관심이 있으면 신앙 성장 안 돼요. 여러분의 소속과 신분과 사명에 따른 인생을 어떻게 한 주간 살았는가를 점검하여야 하는 거예요. 신자는 불신 세상, 하나님 떠나 반역하는 세상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세상 가치관을 따라서 그냥 살아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물질과 육신의 삶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에요. 한 주간 일을 잘해서 돈 벌었다. 그래서 너무 기분이 좋다. 그것만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에요. 신자는 창조 상태 또 타락 상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상태가 뭔지 아는 사람이에요. 미래 상태까지 내다보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신 것에 대해서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 통치 구현의 삶을 살아야 하고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계속 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업이 쓰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여기에 우리가 업 하는 진정한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1. 우리는 직업에서도 주인이 그리스도십니다.
주님은 돈에 예민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마 6장 31~33절 이게 바리새인들이 돈을 사랑하고 돈에 대해서 민감한 상태를 보고 주신 메시지예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하시리라.”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의 통치 실현을 위해서 살라는 거예요. 그게 그의 의를 구하는 거고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확실히 기준 삼아 살아야 해요. 이 말씀이 진짜 적용되어야 해요. 여러분이 예배가 우선이 되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그것을 현장에 적용하는 삶을 살지 않습니까? 우리는 육신의 삶이 우선이 아니에요. 육신의 삶을 기본으로 해서 계속 영적 성장이 되고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삶의 방향이 되고 목표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이 하나님 나라 구현을 위해서 살려고 한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에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결여한다면 우리는 계속 합리적 이성으로 살아야 하는 거예요. 합리적인 이성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보이는 현실 중심이에요. 그러니까 항상 돈에 대해서 애착을 갖고 돈에 대해서 염려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정말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점검하셔야 해요. 늘 점검이 우리한테 필요하잖아요.
하나님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졸부보다 못한 하나님이 아니셔요. 졸부는 능력이 없는데도 부모가 남긴 땅이 갑자기 팔려서 돈을 벌었다 하면 이런 사람들을 졸부라고 하잖아요. 공부한 것도 별로 없고 특별한 사회적 지위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겁니다. 근데 졸부의 아들은 돈 때문에 걱정 안 해도 되잖아요. 하나님은 졸부보다 못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 말이에요. 하나님은 재벌보다 못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 말이에요. 재벌 아들이 돈 때문에, 등록금 때문에, 먹고 사는 것 때문에 걱정 안 하잖아요. 재벌보다 못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 말입니다. 임금이나 황제보다 못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 말이에요. 황제의 아들이면 왕자고 앞으로 황제 될 사람인데 맨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면 이건 수준과 신분에 안 맞는 거잖아요. 황제보다 못한 하나님이 아니시단 말입니다. 근데도 왜 우리가 염려에 걸려요? 여러분이 영의 생각으로 안 들어가고 자꾸 합리적인 이성과 계산으로 들어가게 되니까 여러분 본성에서 염려가 계속 올라오는 거예요. 내 본성과 이성은 그럴 수 있구나. 이때까지 살아왔던 게 정말 3, 6, 11장의 본성을 근거로 한 합리적 이성으로 살았구나. 이걸 발견하는 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제 분별하고 깨뜨리고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의 영적 상태를 바꿔야 하는 겁니다. 영적 상태가 안 바뀌면 말씀 실천 자체가 안 돼요. 보좌 배경과 보좌 능력이 안 믿어져요. 말씀 실천해서 기도 응답받고 말씀 실천해서 기도 응답받는 게 안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결국 징계를 당한 겁니다. 오늘 우리는 그러지 말라고 신약 성도가 됐는데 똑같은 체질대로 살면 우리도 제사장 나라가 안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의 그 역할을 우리에게 주셔서 말씀하고 있잖아요. ‘너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왜 왕이라 그럴까요? 우리가 하나님 자녀니까 ‘왕 같은 제사장이다’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불신자가 가진 기능, 건강, 부까지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지금 최고 부자가 일론 머스크다 그러는데 일론 머스크가 천재 맞아요. 그렇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천재성, 그의 생명, 건강, 재능, 경제, 환경 누가 다 준 겁니까? 자기가 만들어낸 겁니까? 다 부여받은 거잖아요. 일론 머스크가 주신 거에 대해 청지기로 살아야 해요. 여러분 기억하세요. 불신자의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하나님 아버지의 친자녀예요. 영계와 현상계를 주관하고 계시는 아버지입니다. 이걸 날마다 고백하셔야 해요. “오늘도 영계와 현상계와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신데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 인생을 살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셔야 해요. 지금 우리에게 분명히 보좌 배경과 주님이 우리 안에 통치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주어졌어요. 우리는 믿음과 기도로 이걸 누리며 계속 성령의 통치를 받고 성령과 깊게 교제하면 영적 상태가 점점 회복하고 발전하게 돼요. 믿음을 자꾸 사용해야지 믿음은 자라납니다. 우리가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의 축복을 약속받았는데도 합리적인 이성이 자꾸 이것을 방해해요. 이성은 믿음이 없다니까요. 이성은 합리적인 이성이다 보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 믿잖아요. 눈에 보이는 것만 근거로 한 사고, 논리, 계산을 하잖아요. 그 계산으로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이 없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론은 맞는데 실제 믿음으로 실천하려고 하니까 본성에서 올라오는 불안과 이성의 계산이 그 믿음을 실천 못 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가난하면 계속 염려 속에 살아야 해요. 좀 부자가 되면 그걸 또 의존해요. 그렇게 돼 있어요. 여러분이 부자가 됐어도 항상 생각하셔야 합니다. ‘내가 돈을 의지하고 있느냐?’ 아니면 ‘진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느냐?’ 우리 교회에 부자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 안정된 삶을 이만큼 살 수 있다.”고 하면서 의존하고 있는 거 있잖아요. 그게 사실 하나님으로 바꾸어야 해요. 우리도 불신자처럼 물질과 육신의 삶을 위해서 살아왔어요.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1~33절은 지금 우리의 삶에 기준점으로 항상 점검해야 해요.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것이 너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일을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우리 한번 생각해 볼 게 있어요. 오늘 제목이 직업과 경제예요. 매일 영적 싸움이 필요해요. 우리의 삶에 본성과 이성이 남아 있어요. 이성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이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죠. 근데 영이 죽은 게 문제예요. 왜 신자 중에 가난한 자가 많죠? 신자가 가난한 자가 많아요. 사실 왜 그럴까요? 신자가 되어서 가난해진 게 아니라 가난한 중에 신자가 된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신자가 되면 마음과 정신과 삶까지 치유 회복이 된다고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이 살아나면 전인까지 그 영향을 줘요. 정신, 기능, 건강도 성령께서는 창조의 영이 되시고 치유의 영이 되신다고요. 회복의 영이 되셔요. 그래서 예전에 자기 삶의 습관이 안 돼 있고 또 삶이 원활하지 못했던 사람도 자꾸 회복되니까 이 사람이 일을 더 잘하게 돼요. 관계성도 잘하게 돼요. 이 사람이 주님께 맡기면서 자꾸 응답받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이 더 확신을 가지고 자기 삶을 오직 하나님의 방향에 딱 맞추게 됩니다. 그러면 진짜 주인이 되시고 책임자가 되시고 언약 성취자로서 주님이 그 사람 속에서부터 인도하시는 거예요. 나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 육신 중심에서 성령 중심, 이 땅 중심에서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전환이 되잖아요. 그래서 업이 회복되고 경제가 회복되게 만드시는 거예요.
그러나 신자라고 해서 다 부자가 되는 건 아니에요. 신자라고 해서 다 높은 지위에만 앉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 이런 말씀이 많아요.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자기 위치에서 행해라” 이런 말씀이 있거든요(고전 7:20). 다시 말해서 각자 재능과 부르심에 따른, 자기 포지션이 있어요. 그 포지션에서 세상 살리는 빛을 발하는 인생을 살라는 거예요. 이거를 ‘직업 소명’에 적용할 수 있어요. 목회자만 소명이 있는 게 아니라 평신도에게도 직업 소명이라는 게 있어요.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더 좋은 자리와 위치로 이동할 수 없느냐? 더 좋은 자리와 위치로 이동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이동한 그 현장에 서 또 직업 소명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각자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고 거기에서 로마서 12장 1절 ‘산 제물’로 드리라. 갈라디아 2장 20절이 실천되라 이 말이에요. 직업에서도, 경제에서도, 대인관계에서도 더 이상 내가 살지 말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삶이 되라는 겁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변화를 체험하게 돼요. 불신자와 차별이 돼요. 직업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인 마태복음 6장 33절을 실제 사는 단계로 들어가요.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삶이 들어가는 거예요. 이게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고 이유예요. 이렇게 하나님의 소원에 내 인생이 맞추니까 그 일에 필요한 지혜와 능력도 주님이 주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런 메시지 들으면 여러분 마음속에서 기쁨이 와야 해요. “진짜 맞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렇게 바꾸셨구나” 이러면서 얼굴에서 광채가 나야 해요. 우리는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기도로 누리며 사는 삶이 방식이 돼야 해요. 이게 체질화되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성경에 믿음의 사람이 먼 대상이 아니에요. 우리가 그 믿음의 사람으로 회복되는 거예요.
이렇게 믿음이 회복되면 두 가지 기본 욕구를 위해서 살지 않아도 돼요. 안전의 욕구와 자기 자존심과 명예 욕구를 위해서 안 사는 사람이 돼요. 원래는 안전의 욕구를 위해서 안 살았잖아요. 하나님이 책임지시니까, 보좌 배경이 실제로 주어져 있었기 때문에, 안전의 욕구를 위해서 사는 게 삶의 목적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세상을 통치하도록 권세를 주셨잖아요.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녀로서의 영광이 있었어요. 인본주의 자존심에 걸려서 “왜 나를 안 알아줘, 나를 왜 무시해” 거기에 걸려서 상처받고 성질내고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어떤 사람이 나를 함부로 무시하면 상처 많은 사람은 당장 걸려요. 자존심이 살아 있는 사람은 당장 걸려요. 근데 내가 안정된 심령을 가지고 살게 되면 저 사람의 문제로 보여요. ‘저 사람에게 지금 복음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여지지, 저 사람 때문에 내가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두 가지 기본 욕구를 위해서 안 살아도 되는 인생으로 주님이 전환시켜 주셔요.
지금 사모님이 대학 공부하면서 불신자들과 사귀고 있거든요. 그들이 너무나 세상 경제나 이익 쪽으로만 신경이 쏠려 있는지를 대화 속에서 너무 느낀대요. 투자 얘기하고 자기가 어떻게 돈 번 거, 술을 팔아서 이만큼 돈을 벌었고, 그래서 “마지막에 공부 좀 해보려고 왔다. 복지 센터 같은 거 좀 차려 보려고 왔다” 이런 얘기한데요. 그게 노후 대책이죠. 그들에게는 우리가 갖고 있는 기준과 우리가 갖고 있는 눈이 없어요.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몰라요. 맞죠? 물론 여러분도 회사 배당도 받고 성과급도 받고 주식 배당도 받아서 집도 사고 땅도 사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게 여러분 인생의 목적이 돼서는 안 돼요. 여러분의 목적은 전도자로서 후대 전도와 전도 선교를 위해서 땅을 사야 하는 거예요. 그걸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거예요. 부자가 되면 11조 제대로 안 해요. 11조도 정확하게 하셔야 해요. 그 이상을 하실 수 있어야 해요. 그게 내가 돈에 안 묶여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겁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청지기고,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자고, 전도자로서 위로부터 소속 신분 사명이 주어진 거예요. 지금 복음 못 누리고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못 누리면 그렇게 살 수 있는 여력이 없어요. 다시 3, 6, 11장의 본성과 합리적 이성으로 싹 들어가 버려요.
2)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떤 자세로 공부해야 하겠습니까?
공부해야 할 이유를 분명히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실력을 키워야 하는 겁니다. 학생 때부터 오직 기도로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의 축복을 실제로 누릴 수 있어야 해요. 이런 학생이 집중하게 되면 진짜 300%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달란트를 발견해서 전문성 100%, 현장에 필요한 일을 하게 되므로 현장성 100%, 미래에 쓰임 받을 수 있는 일을 준비함으로 미래성 100%, 그래서 300% 준비하는 거예요. 학생들은 진짜 지금 어떤 체질로 공부하느냐에 따라서 이것이 실제 준비될 수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지난주에 소개했던 ‘제임스 투어’이분 같은 경우는 주 안에서 모든 삶을 처리하는 거예요. 날마다 자기 속에서 성령이 주신 영의 생각을 받들어서 사는 거예요. 기도 삶의 루틴이 확실한 거죠. 자기 업인 과학을 통해서 이분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과학 세계, 그 분자 원자 세계 속으로 들어가면 너무 경탄할 만하거든요. 도저히 이거는 자연환경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게 너무나 놀랍거든요. 그러니까 이분은 당당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과학자면서도 전도하는 겁니다. 이분은 학계에서는 배척을 받아요. “이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다. 종교인이다.” 학회 분위기는 진화론을 배척하게 되면 학회에 들어오는 것도 막아요. 이분은 신앙의 이유 때문에 많이 무시당하고 비판당하고 조롱당하는 일들을 겪었어요. 근데 개의치 않은 겁니다. 조롱을 당하면 “하나님, 오늘도 제가 하나님 나라의 상을 더 얻게 되었네요.” 이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온전히 회복되느냐 안 회복되느냐에 따라서 삶이 많이 차이가 나요.
2.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교훈
오늘 본문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당신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어요. 유대인인데 예수를 믿었으니까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된 거예요. 이들이 핍박을 받아서 로마 전역에 흩어지게 된 겁니다. 흩어진 사람을 디아스포라라고 그래요. 이 사람들이 처했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있었어요.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이 사람들이 낯선 땅으로 가서 살아야 하는 거예요. 자기 고향을 떠나서 낯선 땅에 들어가서 정착해서 자기 토지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잖아요.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했던 거예요. 떠돌아다니면서도 장사할 수 있는 이런 업에 원래 유대인들이 발달했거든요. 그러니까 13절처럼 말하기가 쉬웠던 거예요.
13절,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이게 뭐가 잘못된 건가요? 로마 도로가 발달했기 때문에 타 도시로 건너가기가 쉬웠어요. 거기서 1년 머물면서 장사해서 돈 벌겠다 이 말이에요. 문제는 뭐냐 하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장사 계획을 짜는 거예요. 자기 안전과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돈과 현실적 계산만 하는 겁니다. 사실은 업을 택할 때도 우리는 하나님을 제외시키고 안전과 경제 이익만 생각해서 업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에요. 주님과 상관없이, 믿음과 상관없이 현실적 계산만 하고 그게 우선이 되는 경우들이 당시에도 많았던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야고보는 “왜 불신자처럼 계획하고 행동하느냐” 이 말이에요.
14절을 읽어볼까요? “내 일을 너희가 알지 못 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사실은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그게 맞잖아요? 그래서 야고보가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 의존해 있는 거다. 이거를 상기시켜 주는 거예요. 그렇기에 사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손 놓으시면 하루아침에도 무너질 수 있는 인생이고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다는 겁니다. 지금 그런 인생인데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어서 구원받은 거고 이 땅에서 위치와 업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15절 읽어볼까요?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도 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 업이나 저 업이나 할 것이거늘” 그 말이거든요.
주의 뜻이면 핍박을 당해도 우리가 살아남아요. 주의 뜻이 아니라면 죽을 수도 있어요. “주의 손에 우리 인생이 있다는 거를 왜 알지 못하느냐?” 지금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직업이 얼마나 중요해요? 직업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당연히 주의 뜻을 묻고 주님이 주인 되게 하셔야 한다 이 말이에요.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추고 또 어디를 간다고 한다면 더욱 주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경제에 어려움과 핍박이 와도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도 저것도 하리라”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는 거예요.
예전에 오 장로님이 해외에 한번 가볼까? 또 다른 지역에 한번 가볼까? 이런 얘기를 저한테 한번 한 적이 있어요. 근데 장로로서 가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때 안 가셨던 적이 있어요. 그렇게 하셔야 해요. 장로, 권사 직분의 중요성도 모르고, 교회 책임성도 없이 그냥 현실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된다 이 말이에요.
16절 17절을 읽겠습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탈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16절, 허탄한 것을 자랑한대요. 그게 악한 거래요. 이게 뭔 말이냐? 하면 주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 생각과 계획대로 장사하러 가서 혹 돈을 벌 수 있거든요. 돈은 왜 버느냐 하면 모든 사람에게 준 재능이 있어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돈 벌어요. 이 사람이 주의 뜻을 묻지 않고 갔는데도 돈은 벌 수가 있어요. 그리고 돌아왔어요. 근데 여전히 믿음이 없는 채 돈 벌었다고 지금 자랑하는 거예요. 그걸 지금 허탄한 자랑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기도해서 인도받았어!” 그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 돈 벌었어!” 하고 자랑하게 되면 믿음이 적은 초신자들은 혹해요. 믿음의 모델이 되는 게 아니라 “신자들도 저렇게 사는구나” 이렇게 여긴단 말이에요. 야고보가 이런 걸 꾸짖는 거예요. 그것은 주님 보시기에 ‘허탄한 자랑이고 그런 자랑을 하는 건 악한 거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17절 다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는 주의 뜻을 묻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이 선인 줄 아는데 알면서도 주님께 묻고 행하지 아니하면 죄다 이 말입니다. 두 번째는 번 돈을 가지고 허탄한 자랑만 했지, 그 돈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지 않는 것을 또한 책망하는 거예요. 당시 가난한 성도가 참 많았거든요. 그들은 생각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는 거예요.
결론
주님은 여러분에게 업을 주시고 삶의 포지션을 주시는 거예요. 거기서 충성해야 하고 불신자와 차별화해야 하는 겁니다. 기도로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누림으로 주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주시는 것을 계속 확인하셔야 해요. 그렇게 되면 생각도 가치관도 삶의 목적도 방법도 자꾸 바뀌게 돼요. 인본주의 인생을 살았는데 그 체질이 바뀌어버려요. 주님이 실제 주인 되어서 성령의 통치받는 삶이 뭔지를 분명히 알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경제관도 달라지고 경제 사용처도 달라집니다. 지금 오직 내 가정, 내 자식들에게 돈 쓰는 것만 생각하고 있으면 안 돼요. 여러분 그러면 돈이 많이 있어도 그렇게 살아요. 가난한데도 불구하고 믿음이 딱 들어간 사람은 보좌 배경이 믿어지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자기의 합리적인 이성을 깨뜨리는 믿음으로 자꾸 인도해 주시는 거예요. 그럼 이 사람은 경제는 너무 약한데도 불구하고 믿음의 행동을 해요. 그래서 우리가 과거부터 은혜받은 사람들이 믿음의 행동을 하는 걸 보게 되잖아요. 근데 그게 마이너스가 아닌 거예요. 그 사람의 믿음에 반응하셔서 하나님이 응답 주세요. 그러니 믿음이 더 자라나게 해 주세요. 하늘에 상이 쌓이죠. 딴 사람한테 도전 주죠. 네 가지 효과가 있어요. 여러분이 자기 삶에 갇히지 말고 보이는 환경에 갇히지 말고 계속 여러분의 영은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의 소원에 맞췄을 때 하나님이 하신 일들에 대한 믿음이 계속 회복되기 바랍니다. 그래야 멋있는 권사님으로 살게 돼요. 자기를 뛰어넘는 삶이 나오기 시작한다고요. 잘못하면 이대로 죽을 수 있어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패턴대로 그냥 살다가 죽을 수 있단 말입니다. 왜 이렇게 강력한 얘기를 합니까? 여러분이, 갇혀 있는 부분에 대해서 너무 고정화돼 있고 체질화돼 있는 부분을 깨뜨리라고 이런 부분의 메시지를 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제가 볼 때 요대로 살다가 요대로 가게 될 것 같아요. 전도자의 삶도 안 돼요.
학생들은 이를 위해서 주 안에서의 믿음과 실력을 갖추는 거예요. 주님이 왜 “하나님을 믿으라” 지난주에 그렇게 얘기를 했을까요? 사실 그말 속에 의미가 다 들어 있어요. 왜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다다’ 이렇게 얘기합니까? 그 안에 다 들어 있어요. 거기에 인생 회복이 다 들어 있어요. 저와 여러분이 이 축복을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