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회메세지

2026년 11월 4일 수요예배 - 전도 제자가 가질 자세2 (벧전 1:13~21)

현상금 2026. 11. 4. 09:10

전도 제자가 가질 자세 (벧전 1:13~21)

 

서론)

사랑의 교회 고 옥한흠 목사님의 레전드 설교를 들었음. – 미국 1차 대각성 운동의 주역이 되었던 죠나단 에드워드(진노하에 있는 인간)에 대한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도에게 도전하는 말씀을 들었다. 내용인 즉슨 예수 영접했으면 무조건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고 말해주는데 과연 그렇겠는가? 성령의 확실한 내주 인도 역사의 체험이 없는데 진짜 구원을 받은 것이 맞는가? 이런 식으로 변화 없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도전하는 설교를 하셨다. 이런 도전을 하면 성도들이 도전받고 좀 각성하겠죠? 저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저는 다락방과 기존 설교의 차이를 좀 생각해 보았다.

1) 성도들이 영적인 죄가 뭔지, 영적 문제가 뭔지 모르면 잘 믿자고 결단해도 인간이 주체가 되어 열심 내기 쉽다.

2) 영적인 죄와 영적 문제를 제대로 알면 인간의 열심을 더 내는 것으로 안 된다. 인간 열심히 아닌 더 정확히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열심을 내야 한다. 저는 이걸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의 열심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영적인 죄와 영적 문제와 초래된 결과까지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면이 우리 교단이 기여해야 할 부분이고 이게 복음 회복 운동이다.

→ 물론 우리도 영적인 죄가 뭔지, 영적 문제가 뭔지 듣고 있으면서도 이해력으로만 듣는다면 그것도 변화가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반드시 성령님을 통해 깨달음과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의지하면 매주 변화를 받을 수 있다. 사탄이 빠뜨려 놓은 함정과 그 속에서 형성시켜 놓은 체질을 알고 거기서 빠져나오고 치유 회복 승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증인된다.

→ 그 사람이 전도 현장을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이 시대는 영적 문제와 현실 문제가 겹치면서 어두움이 더 깊어지는 시대가 된다. 그러나 답을 가진 자에게는 기회라고 했다. 정말 진짜 이유를 알고 그 해결책을 아는 사람은 세상 현장을 믿음의 눈, 정복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보았다. 우리도 그렇게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전도 제자로 자신의 천명,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1. 이런 전도 제자가 가질 자세

1) 13절 -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야 한다.

(1) 베드로전서 시대 상황 – 로마 황제 하의 고난의 상황

(2) 지금 우리 상황 - 세상 풍속과 문화에 빠지기 쉬운 상황

편안하면 사람들은 긴장치 않기에 더 죄짓기 쉽다. 우리에게 여전히 육신의 본성이 남아 있기에 세상 문화에 빠지기 쉽다. 세상 문화가 맘몬 주의 문화, 인본주의 문화, 육신 문화, 우상숭배 문화라고 했다. 세상이 편할수록 사람들은 앞엣 것에 빠져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다. 과학 시대일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 이성으로 바벨탑을 쌓게 된다.

→ 이런 상황에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야 한다. 영적 싸움 태세를 갖춰야 한다. 시대 파수꾼으로 살며 전도자로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래야 한다.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골인 지점으로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

2) 14~15절 – 사욕을 좇지 않고 부르심에 따라 구별되어서 사명 감당해야 한다.

사욕이란 창세기 3장, 6장, 11장에서 나오는 욕구를 말하는 거다. 이기적인 욕심, 물질적 탐심, 세상 명예와 가치를 추구하는 욕심을 말한다. 이것을 좇지 말고 너희를 부르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하라고 한다. 거룩이라는 말은 속되고 죄악 된 모든 것에서 구별돼라는 말이다.

→ 모든 인간은 영적인 죄가 뿌리가 되어서 윤리, 도덕적인 죄도 짓는다고 했다. 영적인 죄란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앉는 것이고 기준점을 옮긴 거라 했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창 3, 6, 11장의 본성을 갖고 자기 이성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 사는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의 왕권과 그의 말씀을 거부하게 된다. 자기 이성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 인간은 시대마다 기준이 자꾸 바뀐다. 사사기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기 때문이다.

→ 세상은 이 영적인 죄를 인식조차 못 한다. 영이 죽었기에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가 모든 죄의 뿌리라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한다.

3) 17절 -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전인을 보시는 거다. 우리는 지금 나그네 인생이고 과도기적 인생을 사는 자라 했다.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골인 지점이다. 그러니 세상 것은 상대적 가치로 여겨야 하고 절대 가치로 여기면 안 된다고 했다. 돈이나 지위나 명예나 수단일 뿐이지 영원한 것이 못 된다. 우리는 전도 제자로 살며 7포인트 제자로 살아야 한다. (남은 자, 순례자, 정복자, 흩어진 자, 파수꾼, 정탐꾼, 기를 든 자).

 

2. 전도 제자로 살아야 할 근거

1) 첫 번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 받았기 때문이다.

18~19절 우리는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다. 대속(代贖), 구속(救贖), 속량(贖良)의 의미를 잘 알기 바란다. 로마 시대에 노예를 돈 지불하고 자유케 하는 것을 속량이라고 했다. 조선 시대에 천민을 돈을 주어 양민으로 신분을 바꿀 때 그것도 속량이라고 했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바로 알면 세상을 티미하게 살 수가 없다고 했다.

이것을 제대로 알면 사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게 된다. 사는 이유와 목적이 새롭게 안 바뀐다면 그 사람은 세상 본질을 모르는 자고 여전히 육신에 속한 자다. 우리가 전도 제자로 살아야 할 근거는 보배로운 피다.

2) 두 번째 근거가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와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와 소망의 현주소가 있다.

 

결론) 여러분은 전도 운동을 하는데 두 가지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1) 첫 번째 나의 영적인 상태가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영적 상태와 육신의 열심 상태와는 다르다고 했다. 영이 죽은 사람도 육신의 열심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영적인 죄와 영적 문제와 그로 초래된 결과를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의 영적 상태가 갈 2:20, 살전 5:16~18 되면 전도 운동의 플랫폼이 된다.

2) 두 번째는 교회의 영적 상태가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영적 문제와 현실 문제가 겹쳐서 무너지는 사람들이 지금도 너무 많다. (김시온 모친)

여러분 개인과 교회의 영적 상태가 플랫폼이 돼야 한다. 그러면 그런 사람을 주님이 붙이신다. 내일부터 10일 기도회의 축복을 누리기 바란다. 세 가지 기도 제목을 잡고 기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