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불가능한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의 권세(사40:12~31)
우리는 매주마다 강단말씀을 받을 때 우리가 듣는 복음을 누리는 정도를 측정해 봐야 한다. 말씀을 이해만 하면 안되고 복음 누리는 정도를 점검해 봐야 한다. 제가 지난 주 토욜에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몸살기로 동네 의원 갔는데 코로나 검사에 양성이 나와서 황당했다. 그동안 시91편 말씀 잡고 설교하고 기도하였는데 제가 걸렸다. 이래서 말씀의 권위가 서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주가 심선교사님 오시는 중국선교헌신예배인데 선교사님도 못만나고 예배 참여도 못하고 10일 기도회도 참여 못하고 참 난감했다. 복잡한 생각이 들더라. 그러나 내 생각에 빠지지 말고 주님의 생각으로 인도를 받아야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 전환이 되더라. 그래서 기도하는데 생각 나기를 나는 이해가 안되도 주님은 얼마든지 선용하실 수 있고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나는 주님을 기뻐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고백이 되었다. 이런 고백이 된다는 것 자체가 사탄이 패배한다는 믿음을 주셨다. 다행히 지난 주일 설교는 선교사닙이 맡아 잘 해주셨고 10일 기도회는 참여는 못했지만 같은 시간에 기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코로나가 경미했고 4일째 정상이 되어버렸다. 감기보다 괜찮았던 것같다. 여러분의 기도로 그렇게 된 줄 알고 감사드린다. 우리는 지식신앙, 머리신앙, 이해력 신앙 가지고는 안된다. 반드시 기도로 주님을 체험해야 한다. 주님이 아버지 소원을 이루시는데 저와 여러분을 쓰시는 것이다. 오늘은 부활절이다. 메시야를 보내신 하나님은 과연 어떠한 분이신가? 이사야서는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증명해 주고 계시다. 오늘 이사야서에 통해 비교 불가능한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의 권세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1.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자기를 증명하신다
1) 하나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신 분이시다.
너희가 나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신다.(18절, 25절) 남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가 된 이유가 뭔가? 비교가 안되시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해서 그렇다. 하나님의 능력과 언약을 믿지 못하는 영적문제 때문이다. 사40장 전반부에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신다. 후반부에서는 인간의 연약성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무한성을 말씀하고 있다. 15,16절에 보라. 열방이 한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다고 하신다. 22절에는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셔서 땅에 사는 자들을 메뚜기같이 여기신다 하셨다. 26절에는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눈을 들어 별들과 끝도 없이 펼쳐진 우주를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27절에 보면 야곱아 어찌하여 너희는 내 길(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고 내 송사(억울함)는 내 하나님께 벗어난다 하느냐? 이것은 유다 백성이 오랜 포로생활에서 낙심되어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사정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다. 명철과 능력이 한이 없으신 분이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게 된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육신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연약함과 무기력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런 자기 상태에 믿음의 현주소를 두지 말고 여러분 속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령께 믿음의 현주소를 두라. 그 분은 절대 무기력하지 않고 전능하시다. 심령과 생각을 잡아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하신다.
2) 절대 주권의 하나님이시다.
(1) 45:6~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셨다. 강대국들의 흥망성쇠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 사10:5~7,15에는 앗수르를 자기의 몸둥이로 쓰신다고 하셨다. 44:28부터 보면 고레스를 나의 목자로 쓰신다고 하셨다. 이렇게 되도록 만세로부터 하나님이 정하셨다고 말씀 하신다.
(2) 그래서 나외에 다른 이(신)가 없다고 하신다.(44:6, 45:5~6, 18, 21~22, 46:9) 이것을 40장~48장까지 집중적으로 말씀하신다. 이것을 하나님의 자기 증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너희는 알아 들으라는 말씀이다.
2. 그러면서 우상과의 차이를 말씀하신다
1) 너희 우상들은 소송해 보라고 하신다.(41:21~24)
야곱의 왕이 말하노라 우상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래사와 과거사를 진술해 보라. 나처럼 복과 화를 내려보라 하신다. 그리하면 너희가 신들인 줄 인정해 주겠다고 하신다. 우상들은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이렇게 할 수 있으시다.
2) 하나님은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알리고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이시다.
(43:10~13, 44:7, 46:9~10, 48:3~5)
고레스를 통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케 하실 것을 150년 전에 알려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도 700년 전에 알려 주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시100:3에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하였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그 누구에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없다. 올바로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모든 언약적 축복을 받게 된다.(사48:17~19) 실제 문제 앞에서, 위기 상황이라도 정말 믿음과 순종을 택해 봐라. 하나님이 자기를 증명해 주신다. 그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바벨론 시키신 것이다.
3. 출바벨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죄와 사탄과 저주와 지옥권세에 종되고 포로된 백성을 그리스도께서 해방시키신 것이다. 그래서 시온의 회복 곧 교회 회복의 축복을 주신 것이다. 마16:18~19의 축복을 실제 누리게 하신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보장해 놓으신 신분 권세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의 머리를 주님이 깨놓으셨기 때문에 이긴 싸움을 할 수 있게 된다. 직장에서 이긴 싸움을 하라는 것이다. 보통 이긴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 싸움을 한다. 자기가 염려하고 고민하며 기도보다는 자기가 허덕거리는 인생을 산다. 기도권세, 보좌권세 못누리고 산다. 영적으로 눌리고 헷갈리면서 산다. 여러분이 참된 전환이 왜 필요한가? 이 주님을 누리기 위해서다. 주님이 갖고 계신 왕적 권세, 제사장적 권세, 선지자적 권세를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신다. 이것에 대한 진짜 믿음이 오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참된 전환을 계속하면 주님의 사역을 대행할 수 있게 된다. 주님의 정복과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데 거기에 쓰임받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복음화, 전세계 복음화하는 하나님의 완전한 방법이다. 복음화하기 위해서 실제 뭐가 꺽여야 하는가? 현장의 사탄 권세, 저주 권세, 지옥 권세가 꺽여야 한다. 머리 신앙, 지식신앙으로 되지 않는다. 실제 그리스도 이름 부를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흑암 저주가 꺽이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의 말씀이 들어가고 주님의 권세가 나타난다. 영적문제로 파생된 환경의 저주, 육신의 저주가 그리스도의 권세있는 이름으로 치유되므로 복음이 능력있게 증거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부 가능한 이유가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에 그렇다. 이겨놓으셨기 때문에 그렇다. 무엇을 이겨놓으셨는가? 전인류를 지배하던 사탄의 권세가 깨졌고 전 세상 지배권이 깨지게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이제 패배하고 내쫒겨나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환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누릴 권세이다. 참된 전환된 교회를 통해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왜 성립되는지 여러분에게 확실히 정립되기 바란다. 이 권세를 모르고 그냥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가 이룰려고 하는 것으로는 안된다. 그것은 종교생활이다. 기도할 때도 내 노력으로 하려고 하면 잘 안된다. 성령께서 기도권세도, 말씀의 권세도, 명령하는 권세도 누려지게 하신다. 기도할 때 우리의 권세를 믿고 고백하므로 기도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의 염려나 힘이 더 이상 필요없다.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이 인본주의고 육신의 힘을 짜내서 사는 방식이기 때문에 신앙생활도 그렇게 할려고 한다. 그게 아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시고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 속에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것을 믿기 바란다. 여러분 속에서 성령으로 통치해 주시는 그리스도를 힘입어 이긴 싸움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여러분이 누릴 권세다. 심재문 선교사님이 이 싸움을 현장에서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영적 근육이 생긴다고 하셨다. 이긴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보장받았는데도 사탄의 통로가 자꾸 되어 주면 성도는 지게 된다. 집중훈련을 마치지만 여러분은 진정한 성도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축복을 완전히 누릴 수 있다.
결론
오늘 제목이 비교 불가능한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의 권세다.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 절대 주권의 하나님이시다. 자기 백성의 사정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시다. 자기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긴 싸움을 하게 하시고 신분 권세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 가능해야 정복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실제 전도권세 반드시 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