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고별 설교(20:22~38)
두 주 전에 우리 개혁 교단 총회가 있었다. 총회 때 한기총 회장 목사님(정서영)이 방문해서 축사를 하셨다. 그분 말씀이 세계교회의 특징을 말하면서 세계 어느 곳이든 삶이 어려울 때는 기복신앙으로 교회에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런데 살기 좋아지고 윤택해지면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러나 교회가 사람들이 들어왔을 때 복음으로 확립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교회는 부흥이 되고 재생산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근대화 되기 전 옛날 목사님들은 삶의 환경이 정말 어려웠다. 이때 목사님들의 색깔은 종말론적 신앙을 갖고 있었다. 현실이 어려워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하는 종말론적 신앙이 있었다. 그런 분이 주기철, 손양원 같은 목사님이시다. 바울 사도도 종말론적 신앙을 갖고 있었다. 초대교회는 다 종말론적 신앙을 가졌다. 시대가 윤택해지고 편해지면 종말론적 신앙이 약화된다. 오늘 본문에는 바울 사도의 고별 설교가 나온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오늘 바울의 중심과 그 말씀을 받는 에베소 장로들의 중심이 저와 여러분의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1. 바울 신앙의 핵심은 뭔가?
1)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
빌 2:13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 고 했다. 바울 신앙의 핵심은 자기 안에서 행하시는 이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자기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성도는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할 수 있다. 우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로 원망과 시비하도록 이끌지 않으신다. 어떤 문제나 일도 우리 안의 성령님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일환으로 쓰신다. 돈이 없다면 기도를 하게 만들고 배경 되는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의탁하게 만드신다. 문제가 이 사람에게 선용이 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 걸렸다고 한다면 본성은 싫어하고 미워하지만, 성령님은 하나님의 소원을 위하여 나를 미워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어떤 모범을 보여주셨는지 생각나게 하시면서 그리스도를 본받게 만들어 주신다. 하나님의 소원을 두고 성령님이 행하시기 때문에 모든 문제까지도 활용하신다. 정말 내 남편은 힘든 사람인데, 그것도 선용하실까? 선용하신다. 어떤 문제나 일을 만나도 답이 있고 갱신하며 응답받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육신의 생각으로 반응하면 안 된다. 육신의 생각이 주로 불신앙이고 나 중심의 생각이다. 나 중심의 생각을 하지 말고 믿고 감사하고 기뻐하라는 것이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그리스도와 그의 성령님을 기뻐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승리할 수 있도록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 어려움이나 갈등이 오면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이나 생각에 잡히기 쉽다. 이런 모습이 기도 속에서 보여야 말씀을 적용하고 따를 수 있다. 기도 못하는 사람은 백 프로 진다.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을 받을 수 없으니 진다. 여러분은 계속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생각과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을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승리한다. 바울은 이것이 구분되고 극복이 되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 신앙의 핵심은 자기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행하는 것이다.
2) 바울은 누구보다 주의 일에 열심 냈지만 자기 열심으로 하지 아니했다.
자기 열심으로 일하는 것과 성령으로 일하는 것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골 1:28,29).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했다. 불신자는 언제나 자기 동기를 갖고, 자기 열심으로 일한다. 그러니 잘 안되면 원망과 시비를 한다. 내 동기에 걸리니깐 그렇다. 우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행하면 원망과 시비가 안 된다. 우리도 문제 해결을 위해 자기가 애쓰는 체질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것이 원채 오래되고 깊은 것이기에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언제 바뀌는가?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체험해야 바뀐다. 이게 가능해지면 자기 안에 오래된 사탄의 망대가 무너지게 된다. 고후 4:7의 고백이 가능하게 된다. 저는 참으로 질그릇이라는 사실이 와닿는다. 질그릇이라는 것이 발견되지 않으면 질그릇과 보배가 구분이 잘 안된다. 그리고 자기가 자꾸 보배 행세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사탄의 망대가 무너지겠는가? 모든 불신자는 자기 의를 갖고 산다. 하나님 떠났는데 무슨 자기 의가 있겠는가? 근데도 자기 의를 굉장히 갖고 있다. 그게 사탄의 망대다.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나니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망대가 세워진 사람이다. 바울이 이것이 된 사람이고 이걸 놀랍게 누린 사람이다. 오늘 본문에는 지난주에 이어 바울 사도가 에베소 장로들에게 준 마지막 교훈과 당부의 내용이 나온다.
2. 에베소 장로에게 준 교훈과 당부
1) 3년간 회고
31절에 보면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되어있다. 32절에는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도바울이 자신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의거해서 본인이 살았던 것이다. 그는 다른 서신서에 보면 자기를 본받는 자 되라는 말을 자주 썼다. 뭘 본받으라고 하는 걸까? 그의 인격, 성실, 근면, 업적 이런 것일까?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했다. 바울의 모든 삶의 주체는 자신이 아니었다. 주체는 그리스도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모든 삶의 원리요 방법이요 모든 것이 되었다. 16차 집중훈련은 이것이 되고 이렇게 되도록 바꾸는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고 삶의 원리가 되는가? 여러분이 일 할 때 그리스도가 삶의 방법이 되고 있는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도구요 통로 된 삶을 살았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 15장의 포도나무 가지의 삶을 살았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았다. 그리스도께서 가지를 통해서 열매 맺게 하시는 삶을 살았다. 나를 떠나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그 삶을 실제 살았다. 저는 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와 종종 떠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소원을 행하도록 우리 속에서 성령으로 인도하신다. 제가 구약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가 가나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런데 영적 문제로 실패했다. 그래서 자기 백성의 영적 문제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고 했다. 십자가에서 죗값을 다 치루시고 보좌 통치하시면서 동시에 믿는 자들 속에 성령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여러분의 일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일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일이 주님이 주인 되신다. 일이 잘 안되도 여러분이 이 고백을 해야 한다. 바울이 3년 동안 눈물과 섬김으로 행한 것은 자기 열심히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도록 자기 안에서 행하시는 삶을 살았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삶을 행하는 것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2) 이를 위해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체험을 확실히 했다.
그는 다메섹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히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는 체험을 했다. 삼 일간 앞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했다. 삼일 동안 그는 무엇을 생각했겠는가? 자신은 본다고 안다고 여기면서 살았지만, 사실은 영적 소경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도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사실 율법이 증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제자 아나니아가 와서 주의 말씀을 전달하고 안수했을 때, 바울이 성령 충만해지면서 눈을 떴다. 그때 그의 인생은 180도 전환이 일어났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율법주의자였고 종교인이었고 핍박자였다. 다메섹 체험을 하고 나서 갈 2:20이 체험되기 시작한 것이다. 죽고 사는 체험을 한 것이다. 그 후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을 체험하면서 과거 율법주의자였던 그는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 체험을 근거로 해서 롬 7과 8장을 썼다. 로마교회의 아직 율법에 매여있는 많은 신자를 위해서 쓴 것이었다.
롬 7장과 8장은 자기 체험을 토대로 쓴 것이다. 롬 7장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자기 속에는 또 다른 죄의 법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죄의 법이 창 3,6,11장의 본성이다. 그는 이걸 구원받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율법으로는 죄의 법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내랴” 했다. 그는 이 해결의 답을 알고서 로마서를 썼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했다. 그리고 롬 8장에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죗값을 담당해 주셨고 죄의 법을 이길 수 있는 성령의 법을 주신 것을 알았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지 말고 영으로써 육신을 이기라고 하였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 롬 8장이 롬 7장에 대한 답이다.
그래서 바울의 1,2,3차 선교 여행은 오직 성령에 이끌려서 성령의 충만 속에서 이루어진 사역이었다. 성령님이 바울을 잡고 하신 사역이다. 모든 성도는 롬 8장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롬 8장의 삶은 재미있다. 매주 은혜의 체험을 할 수 있다. 메시지를 안 듣고 있어도 기도 속에서 성령님을 의지하는 삶이 되기 때문에 모든 문제, 사건, 일 처리하는 것이 달라진다. 롬 8장을 체험한 바울이기에 빌 3장의 고백이 가능했다. 빌 3:7~11에 보면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차원에서 순교하길 고백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 당하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자기도 따르기를 원했다.
그는 무엇을 본받으라고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는 삶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면 그리스도가 더 소중해지고 존귀해 진다. 내가 주인되어 살면 그리스도가 하나도 소중하지 않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을 그리스도로 다 처리하게 되고 그리스도로 내가 바뀌고 승리하게 되고 제자 삶이 되면 그리스도가 엄청 소중해진다. 그리스도가 너무 소중해지면 지난 주 말씀처럼 자기를 수단으로 드릴 수 있게 된다.
3. 우리에게 적용
1) 우리에게도 그리스도는 삶의 모든 원리요, 방법이요,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이걸 우리에게도 적용하려면 삼 집중이 돼야 한다. 삼 집중 되면 삼 응답이 된다. 그래야 7 망대, 7 여정, 7 이정표를 간다. 7 여정 중에 10가지 비밀(7대 여정의)을 우리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삼 집중, 삼 응답이 되는 사람이 누린다. 그리스도가 원리요 방법이요 모든 것 되는 사람이 체험한다.
① 어디서든 복음의 능력으로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다. ② 영적 사실을 알고 체험하고 누릴 수 있다. 그 결과 증인의 삶을 산다. ③ 반대편을 생각하는 역발상이 된다. 육신의 생각을 성령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어야 가능하다. 어떤 교회가 부흥되면 육신의 본성은 비교 의식으로 들어간다. 성령께서는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천명, 사명이 이루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 가 된다. 매일 역발상이 되어야 한다. ④ 살리는 자가 된다. ⑤ 위기에서도 승리하며 도전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살면 위기 앞에서 시달린다. 미워한다. ⑥ 경쟁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이런 역사가 일어난다. ⑦ 영적 서밋이 된다. ⑧ 오직 유일성 재창조의 축복을 누린다. 이런 축복을 실제 체험하자는 말이다. ⑨ 황무지에서도 승리한다. 노 바디를 통해 에브리바디 현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가 충만해지면 다 살리는 눈이 되고 안 된다는 생각을 안 갖게 된다. 왜? 나를 살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내게 이런 은혜가 없으면 다 부정적으로 보인다. 이 교회는 안 돼. 저 사람은 안 돼. 그리고 율법의 눈으로 본다. 여러분 한 사람이 영향력을 줄 수 있다. ⑩ 절대 사명을 감당 한다. 10가지 비밀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가능하다. 그리스도가 삶의 원리요, 방법이요, 모든 것이 되는 사람이다.
2)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시오, 책임자, 해결자, 언약의 싱취자가 되신다.
빌 2:13이 된다. 주님을 항상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이런 삶을 누리는 사람이 세상 현장을 볼 때 불신자는 전도 대상이 된다. 불신자나 기존 신자 중에 제자 될 사람이 있다. 그들을 세울 수 있는 전도 제자가 여러분이 된다. 지난주에 이런 말씀을 드렸다. 산업인이나 직장인은 목회자 같이 전도에만 올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객과 체질은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여러분이 하는 일에 직업 소명을 가지면 일을 주님이 주신 기능으로 한다. 주의 나라 통치 실현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성실, 근면하게 일하게 된다. 게으르고 무능한 직장 생활을 하는 게 아니다. 주님이 주인 되셔서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직장 생활하게 된다. 내가 주인 되어 직장 생활하면 어떻게 되는가? 짜내야 하고 원망하게 된다. 우리를 세상에 망대로 세우신 것이다.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 집어 넣으신 것이다. 사도바울의 삶의 원리를 본받으면 우리가 세상 현장에서 승리하게 된다. 본부 메시지를 타면서 내가 실제적으로 어느 정도 체험하고 누리고 있는가에 포인트를 두어야 한다.
결론
이번 주 화요일부터 16차 집중훈련이 시작된다. 이번 주제는 삼 집중, 삼 응답, 삼 셋팅이다. 방향은 성경적 전도 운동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에 여러분 개인의 목표를 잡아라. 그리고 삼 집중으로 나의 규례를 확실히 세워라. 주와 그 은혜의 말씀을 붙잡히기 바란다. 강단과 본부 말씀을 녹취 잘하기 바란다. 이 교회가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님이 이 교회에 주인이시다. 저는 사역자요 일꾼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의탁하고 순종 잘하면 주님이 증명, 증거된다. 주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교회가 된다. 하나님의 소원에 합당한 교회가 세워진다. 여러분은 합당한 주의 제자로 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