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경제관(약 5:1~6)
지난주에 직업과 경제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도 경제에 대한 말씀이 또 나오고 있거든요. 성경은 부에 대해서 부정적인 메시지가 주로 많아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돈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에요. 인간이 불신앙과 욕심에 빠져서 돈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돈이 절대 목적이 아니거든요. 돈 자체가 우상이 되기 쉽습니다. 돈을 많이 벌기는 원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관리해야 되고 경영해야 하는지, 이 부분을 잘해야 합니다. 돈을 우상화하는 것을 ‘맘모니즘’그렇게 얘기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필요하고 올바른 경제 교육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렘넌트한테 오히려 더 필요한 메시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디모데전서 6장 17절~18절에 보면 경제에 대한 올바른 자세가 나와 있어요. “네가 이 시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게 성경적인 경제에 대한 자세예요. 절대 돈에다가 마음을 두지 말라고 했고 정함이 없는 돈이라고 돼 있죠. 하나님께 마음을 두며 선한 사업을 많이 하라고 돼 있어요. 우리는 돈을 가지고 선한 사업과 복음을 위해서 돈을 써야 할 줄 믿습니다.
1. 오늘 본문에는 부자에 대해서 강한 질책이 나와요.
이게 지금 성도들한테 하는 말씀인가? 의아할 정도로 말씀하고 있어요. 그 시대상이 이랬고 이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까지 교훈을 받으라는 거예요. 인간은 두 가지 기본 욕구가 있습니다. 안전의 욕구와 또 이 명예를 추구하는 자존심의 욕구가 있죠. 근데 이것 자체가 문제가 됩니까? 이것 자체는 잘못된 거 아니에요. 인간에게 당연히 있어야 할 거예요. 문제는 창세기 3장 사건의 결과로 인간에게 마귀가 넣어준 욕심이 들어갔고 또 하나님을 상실한 불안이 생긴 게 문제예요. 불안과 욕심이 겹친 거예요. 사람이, 자기가 막 죽을 것 같은 그런 불안이 올 때는 남도 죽일 수 있어요. 세상은 창세기 3장 사건의 결과로 환경과 죽음의 저주가 왔기 때문에 지금 인간의 최대 관심사는 안전과 생존이에요. 먹고사는 문제예요. 역사 이래로 전쟁이 없었던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어요. 가장 치열한 것이 경제 전쟁이에요. 경제를 획득하기 위해서 욕심을 내고 남 죽이는 것이 인류 역사였어요.
1) 오늘 본문은 불신자를 향한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 대상은 성도에게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고하는 이유는 뭘까요? 성도들조차도 올바른 돈 관리와 사용을 하지 못하여 죄의 본성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하는 거예요. 1세기 교회가 처했던 현실 상황을 좀 알아야 해요.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고대는 더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항상 착취와 억압이 있었어요. 팔레스타인과 또 로마 제국에는 소수의 대지주가 있었어요. 그리고 대다수의 소작인과 품꾼과 종들이 있었습니다. 소작인, 품군, 종들은 착취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부자들은 노동력을 착취하고 품삯을 주지 않거나 떼먹었어요. 이 때문에 고통당하고 굶어 죽는 경우가 허다했던 거예요. 그런 사회에 대해서 야고보가 심판을 강력히 경고하는 메시지에요. 1절에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여기서 단순히 고생이 아니라 그들에게 임할 진노와 심판을 두고 하는 얘기예요. 부자들은 사실 사회적 책임이 있거든요. “내 돈 내가 내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상관이 있어!” 이거는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 하는 얘기고 부자는 사회적 책임이 있고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갖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2절~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너희 재물을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 쓸었으니 이 녹이 너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의 재물을 쌓았도다.” 무슨 말이에요? 부자들이 나눠주지 않고 축적만 열심히 하는 거예요. 축적해 놓았기 때문에 이 돈이 썩고 좀 먹고 녹 쓸었다는 거예요. 이런 말씀도 있잖아요. “땅의 재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라. 이 땅에는 쌓으면 녹슬게 되고 도적질 당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말세 재물을 쌓았다는 것은 심판 날이 다가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물욕에 빠져서 죄를 지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4절 읽어볼까요?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를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또 5절을 읽어볼까요?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조하여 살육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여기 살육의 말은 뭐예요? 마치 짐승 도살하는 것처럼 심판의 날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런 날이 지금 이르렀는데 사치하고 방종하고 자기 마음만 살지게 했다는 거예요. 자기 마음만 위로받고 자기가 부요한 것 때문에 즐거워하는 게 살찌우는 거예요. 그래서 6절에 보면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의인은 죄 없는 소작인이나 품꾼들입니다. 부자들은 돈 떼먹었을 뿐만 아니라 돈을 빌려주고 금리를 받아먹는 거예요. 그거를 제때 못 내면 어떡하겠어요? 고소하는 거예요. 고소해서 정죄하고 죽게 만드는 일까지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1절로 돌아가서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심판)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2) 우리는 부자들이 왜 탐욕에 빠지는지 영적으로 봐야 해요.
부자들 역시 창세기 3장 6장 11장 중심이기 때문에 그래요. 죄와 사단에게 종 노릇하는 인생을 사는 거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보좌 배경과 실제 임마누엘을 기도로 누림으로써 돈을 벌기도 하고 관리도 해야 하는 거예요. 경제가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우리는 청지기의 삶을 살고 하나님 나라 통치의 실현자가 돼야 하고 전도자가 돼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청소년 때나 대학 청년 때 경제 훈련을 받은 사람이 사회적 성공을 했을 때 성경적 경제관을 가지고 성경적 경제 경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참 어른들은 잘 안 바뀌어요. 물론 성령이 못 바꾸는 사람은 없는데 그만큼 나이가 들수록 자기 가치 기준이 굳어져 있는 거예요. 머리로 알아듣는데도 생각을 틀기는 참 힘들어요. 만약에 이 바른 성경적 경제관이 청년 때, 대학생 때, 또 청소년 때, 초등학교 때 들어가는 것이 축복이에요. 그러면 정말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도 알고 부자가 되었어도 교만하지 않고 사치하지 않고 돈으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섬길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전문인 제자로 헌신하게 돼요. 하나님 말씀에 서지 못하면 절대 이 삶을 살 수가 없어요. 신명기 8장 3절은 진짜 중요한 말씀이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사실은 하나님 나라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훈련을 시켰던 핵심이 신명기 8장 3절이에요. 신 8:16~18에는 이런 말씀도 하고 있어요.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내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니라.” 아멘! 광야에서 경제 훈련을 꽤 시키거든요. 근데 마침내 복을 주려는 게 목적이에요.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얻도록 하는 거예요. 가나안 땅에서 실제 물질적, 육신적 축복을 받고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을 시키는 사람들이 되도록 만드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보세요.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이제 가나안 땅에서 잘살게 되니까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재물을 얻었다”고 얘기할 거라는 거예요.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돈 때문에 교만해져요. “내가 그래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래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너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느니라.” 이 말씀 꼭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민규야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불신자 때 과거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과거에 우리가 불신자 시절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때 여러분의 경제적인 삶이 어땠습니까? 사실 그때 들어간 가치관이 지금 여러분을 상당히 잡고 있어요. 불신자 때 영적 문제가 뭔지 이런 거 몰랐잖아요. 과거 믿음 없었을 때 받은 경제의 상처와 한은 평생 경제에 대한 묶임과 왜곡된 판단을 갖게 합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을 믿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 이렇게 들어가요. 실제 삶과 돈 앞에서 벌벌 떠는 겁니다. 세상 경제 교육을 받은 거예요. 돈 버는 경영은 잘하는데 돈이 의지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잖아요. 재물 많은 청년 부자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선생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질문해요. 그랬더니 “계명을 지켜라” 그랬더니 ‘나는 이 계명도 지키고 저 계명도 지키고 다 지켰습니다.’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그랬더니 “근심하며 가니라”(마 19:16~22). 이렇게 돼 있어요. 뭐에 묶여 있어요? “돈이 없으면 안 돼!. 절대 안 돼!. 이 돈은 내 생명이야” 그 불안 염려에 묶여 있는 거예요.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사 이 부분을, 치유하기 원하세요. 하나님이 쓰실 사람은 반드시 경제 훈련시키십니다. 왜냐하면 사단이 제일 공격하는 부분이니까 그렇습니다.
2. 성경적 경제 교육
지금까지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했고 이제 성경적인 올바른 경제 교육을 좀 받을 수 있기 바래요.
1) 구약의 문화 명령과 신약의 청지기 삶
구약 창세기 1장에는 문화 명령이 나와요. 신약에서는 청지기 삶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세상을 다스리고 경영하는 사명을 주셨어요. 창세기 1장 28절을 문화 명령이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생물만 다스리라는 얘기가 아니라 모든 학문, 기술 이런 것도 포함하는 겁니다. 이것들도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런 소재로 삼으라 이 말이에요. 인간은 지적인 능력이 있고 다스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피조물을 통해서 문화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질서를 더 세우고 그 문화를 누리도록 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구약에서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부자였어요. 족장들이고 그 당시에 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어요. 다윗, 다니엘 전부 부자였어요. 신약에서 보면 바나바는 부자잖아요. 재산을 다 바쳤다고 돼 있어요. 루디아 자주 장사잖아요. 부자예요.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자였어요. 이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기 업을 경영하는 거룩한 부자였어요. 크리스천 경제관은 가난을 미덕으로 삼지 않습니다. ‘청빈 사상’ 이거는 기독교의 사상이 아니에요. 우리가 검소하게 사는 건 맞아요. 우리는 어떤 경제관을 가져야 하냐? 하면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자원을 성경적으로 관리하고 경영해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겁니다.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의 원리에 따라서 관리하고 경영해서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시키는 거예요. 불신자에게까지도 선한 영향력이 미치도록 하는 겁니다. 여러분 직장에 지금 신자들이 몇 명 있는 것 같아요? 직장에 있는 신자들이 바로 살고 있는 것 같나요? 비난하는 게 아니고 나부터 점검하고, 직장이 선교지인데 이 현장에서 진짜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누리라는 겁니다. 주님이 성령으로 내게 와 있으신 임마누엘을 누리라는 거예요. 우리가 아침 기도가 왜 중요한가요? 직장 나가기 전에 영적 상태를 충만하게 회복하고 하루 경영할 스케줄을 놓고 기도하고, 관계된 사람 놓고 기도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하루 생활이 달라요. 주님이 살아주신다니까요. 주님이 보좌 배경이 되어 주시면서 내 안에 성령으로 영의 생각과 영의 말씀과 영의 음성을 들으며 살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말이에요. 우리에게 주신 것들의 청지기로 살라고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어요.
2) 유대인의 경제관
유대인 경제관에 관한 글들이 많아요. 유대인은 지금 전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서 있거든요. 이 사람들은 경제에 대해서 눈을 뜨고 경제 교육을 어릴 때부터 시키거든요. 사실 그들의 경제 교육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교육이 많아요. 그리고 실용적 경제 교육을 시켜요.
(1)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주권을 인정하는 것처럼 이 사람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유대인 경제 교육의 출발점은 레위기 25장 23절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지를 하나님의 것으로 철저히 인식하는 거예요. 토지는 못 팔게 돼 있어요. 정말 가난해서 토지까지 팔게 되면 언제 회복되죠? 50년째마다 자기 토지가 다시 돌아오게 돼요. 그때부터 다시 경제 평등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왜요? 하나님의 사회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지금 부동산 투기해서 돈 버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부동산 때문에 거품 경제가 일어나서 무너져 버리고, 일본이 그랬잖아요. 그런데 지금 뭐라고 얘기하냐면 ‘내가 이 토지의 주인이기 때문에 너희는 거류민이다.’내가 마치 세 준 것처럼 너희가 살고 있는 거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는 토지가 제일의 재산이었고 지금은 주식? “그 주식 내 거다. 니 건강 내 거다.” 이런 말씀하시는 거예요. 성도는 소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이에요. 청지기는 주인을 위해서 자산을 지혜롭게 관리하고 운용해서 주인에게 유익을 끼쳐야 해요. 결산할 때 주인이 칭찬과 보상을 하는 거예요. 지금 사는 날 동안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것들을 주님이 계산하시고 칭찬하고 보상한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첫째 하나님의 뭐를 인정했다고요? 소유권을 인정했어요.
(2) 이들은 11조와 구제를 생활화 했어요.
유대인들은 11조와 구제를 생활화했는데 이게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소유권을 인정하는 믿음에서 시작한 거고 11조나 구제를 ‘거룩한 투자’로 봤어요. 여러분 투자하잖아요. 어떤 권사님도 투자하고 있고 주식하고 있고 주식이 대세다 보니까 지금 거의 다 많이해요. 근데 헌금과 구제가 투자 래요. 구제는 남에게 선을 베푸는 거잖아요. 유대인에게는 단지 선을 베푸는 게 아니라 공의의 실천이에요. 하나님 말씀의 준행이에요. 근데 이런 얘기할 수 있잖아요? “내가 없는데 어떻게 해! 항상 그 소리 하잖아요. “있으면 하지” 이 소리 하잖아요. 근데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너의 배경이기 때문에 “내 계명을 순종해 봐라. 그럴 때 내가 너에게 원천이 되고 근원이 되어 준다.”그러니까 우리가 구제한다고 우리가 망하거나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이게 원리예요.
여러분이 헌금이나 구제를 하게 되면 지난번에 얘기했잖아요. 네 가지 효과가 있다니까요. 첫째 하나님이 내 믿음을 받아주시잖아요. 기쁘게 받아주시잖아요. 둘째 그러면서 하나님이 배경인 것을 증명해 주세요. 내가 또 기도 응답을 받아요. 내가 했을 때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걸 경험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돼요? 믿음이 자라나요. 믿음은 자꾸 써야 자라난다고 그랬잖아요. 희한하고 놀랍게도 자기 소유권을 100% 맡긴 사람들을 하나님이 굉장하게 쓰시는 경우들이 교회사에 여러 번 나타납니다. 100% 다 맡기는 것 자체가 안 되잖아요. 수요 예배 때 제가 한 사람을 소개할 거예요. 이 사람도 사업가예요. 하나님의 비즈니스를 하는 거예요. 자기 소유를 완전히 100% 다 맡기는 거예요.
지난번에 스탠리 템도 그렇게 했잖아요. 이 사람도 그렇게 했는데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는 겁니다. 셋째 구제를 하게 되면 구제를 받은 사람이 감사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내가 믿음의 고백을 한단 말이에요. “이거 내가 한 거 아니고 하나님의 것으로 한 것이고 나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면 넷째 상대가 도전을 받아요. 그걸 본받아요. 그래서 이게 안타를 4개 치는 거예요. 사실 여러분이 자녀들한테 가르쳐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이 자녀를 크게 쓸 수 있잖아요.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재정을 맡기시는 겁니다. 잠 11장 24~26절입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오.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잠언서 말씀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쌀 파동이 난 거예요. 쌀값이 굉장히 오르는 거예요. 그때 사재기를 하면서 안 파는 거예요. 왜? 더 값이 오르거든 팔려고 꼬부쳐 놓고 있는 겁니다. 지금 사람들은 당장 죽어 가는데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 안 내놓는 거예요. 이 사람은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반면 자기 이익을 보려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지금 이웃이 힘드니까 자기 곳간까지도 열어서 팔고 나눠주는 거예요. 누가 보고 계세요? 하나님이 보고 계셔요. 그러니까 돈에 매여 있는 건 믿음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 진짜 이렇게 나눠준다고 가난해집니까? 안 가난해진다고 돼 있잖아요. 하나님 배경이 없다면 가난해져야 해요. 하나님이 창조주시기 때문에 문을 열면 문이에요. 길을 열면 길이에요. 사실 우리는 합리적 이성에 딱 갇혀 있잖아요. “내가 쌔가 빠지게 일해서 벌었는데, 그래서 이 정도 벌었는데 내가 어떻게 허틀케 써!” 성실히 산 건 잘한 거예요. 그러나 묶여 있는 거는 잘한 거 아니에요. 그거는 경제 상처예요. 경제에 대한 두려움이에요. “내가 가난해서 나중에라도 없으면 나는? 내 자식은?” 거기에 대해서 사단이 두려움으로 공격하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교회에도 경제 헌신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거든요. 맞죠? 이때 여러분의 믿음을 사용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셔야 해요. 가난한 분들을 놓고 지금 이렇게 쪼는 얘기를 하니까 힘들죠? 돈 있는 사람한테 얘기를 하면 그래도 넉넉하니까 “오늘 말씀 좋아” 이렇게 받을 수 있을 텐데, “없는데 나보고 뭘 하라고, 목사님은 자꾸 믿음, 믿음 그러면서 경제를 자꾸 말씀하노?”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굳어진 대로 산다니까요. 지난번 권사님들한테 얘기했잖아요. 잘못하면 이 믿음을 확장 안시키면 이대로 살다가 죽는다고요. 전도도 못해 요. 내가 그리스도를 풍성히 누릴 때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요. 그렇죠? 지금 유대인들 경제관 얘기하다가 얘기한 거에요. 11조와 구제를 생활화했다는 거.
(3) 이 사람들이 생명같이 여겼던 게 신용이에요.
유대인은 신용의 가치를 경제의 가장 큰 자산으로 봤어요. 정직한 거래를 하는 거예요. 약속 이행을 철저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 유대인 사업가는 계약을 맺을 만해” 이렇게 신용을 인정받는 거예요. 신용을 얻게 되면. 신용이 돈을 만들어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연결되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평판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가 사실은 경제 최빈국이었잖아요. 이제 남의 나라에다가 원조하는 나라가 됐잖아요. 우리나라가 아프리카나 중동이나 제3 세계에 신용을 많이 얻었어요. 중국 사람들은 많은 자산을 가지고 인프라를 깔아주고 그걸 빌미로 해서 그 나라 경제를 피 빨아 먹어요. 근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고, 우리나라도 어려웠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여러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나라가 이걸 잘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가 신용을 많이 얻었어요. 아프리카에서 코리아 굉장히 신용 있는 나라로 여겨요. 중동에서도 그렇고 그게 지금 우리나라에 유익으로 다 옵니다. 지금까지 유대인의 경제관을 얘기했고 이제 성도가 갖춰야 할 경제관을 말씀드립니다.
3. 성도가 갖추어야 할 경제관
1) 성경은 부자 된 크리스챤이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어요.
성경은 절대 부자를 증오하거나 저주하지 않습니다. 다만 동기와 목적을 중요하게 얘기해요. “왜 사십니까?” 이렇게 사람들한테 물어봤더니 자기 목표 달성을 위해서 산다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렇죠? 그 사람들이 성실하고 열심히 살겠죠. 자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렇지만 그게 창세기 3장의 목표죠. 자기 바벨탑을 위해서 쌓는 거죠. 또 반대로 아주 비관적인 사람들은 뭐라고 얘기하는 줄 아세요? “죽지 못해서 삽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도 꽤 많대요. 그러면 성도는 왜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왜 살아야 합니까? 여러분 목적 있죠? “몰라 그냥 사니까 살지, 애새끼들 잘 키우고, 게네들 좀 성공하고 호강하면 됐지.” 그거는 진짜 말씀 하나도 안 들어간 사람이고 우리는 왜 삽니까? 하나님 소원을 위해서 사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소원을 위해서 산다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거예요. 여러분이 청지기의 삶,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의 삶, 전도자의 삶을 통해서 여러분의 천명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거예요. 근데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의 소원을 위해서 살면 결국 나 자신에게 가장 이롭다는 사실이에요. 말씀대로 살면 그게 나에게 가장 복이 돼요. 희한하죠. 이게 우리의 원리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비즈니스를 하고 투자할 때 가장 행복한 결실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2) 프랑스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개신교들을 위그노라고 그랬어요.
위그노 이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부를 축적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부를 축적한 거예요.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부를 축적한 거예요. 그래서 위그노 중에서 기술자, 상공인, 전문인들이 많았대요. 이 사람들이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사회 공헌을 하는 거예요. 사회 공헌한 사람은 자기도 복을 받아요. 이들은 올바른 성경적 경제관을 가진 크리스쳔으로서 살았던 거예요. 예전에도 한번 예를 들었죠. 이정훈 교수님이라는 분이 이걸 굉장히 강조해요.
울산대 법학과 교수님으로 불교 신자였다가 돌아온 사람 있잖아요. 지금도 성경적인 경제관, 성경적인 정치관, 성경적인 문화관 등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삶에 대해서 많이 강의하고 있어요. 이분이 항상 강조하는 게 이런 거예요. 만약에 내가 제과점을 한다면 최고의 빵을 만드는 거예요. 어떡하든지 이익을 얻기 위해서 재료도 부실하게 넣고 빵은 그냥 부풀려 서 어떻게 하든지 남는 장사하기 위해서 머리 쓰는 게 아니고 빵을 만드는데 하나님께 바치는 빵을 만든다는 겁니다. 이 빵을 통해서 이웃이 복을 누릴 수 있는 빵을 만든다는 겁니다. 나쁜 재료도 쓰지 않고 아주 몸에 좋은 빵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돈 벌기 위해서 몸에 좋지 않은 재료도 넣고 막 그러잖아요. 이런 짓을 안 하는 거예요.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근데 이걸 성령님이 기뻐하셔요. 성령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축복하실 수 있잖아요. 가난해지고 망하게 하시겠습니까? 그랬더니 이 빵집이 맛도 괜찮고 질도 좋으니까, 소문이 나는 거예요. “이 빵집은 빵을 제대로 만든대. 양심껏 한 대.” 이게 소문이 나고 맛도 좋으니까, 신용이 생겼어. 그렇게 되니까 “저 빵집에 가자” 손님들이 자꾸 느는 거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비즈니스예요. 그들은 자신의 사업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며 청지기 경영을 하는 거예요.
결론
세상에 복이 되는 거룩한 부자로 결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난 부자가 아니라서 오늘 말씀은 나한테 안 맞아.” 그러지 마시고, 여러분 자녀들한테 이런 교육을 해야 하잖아요.
1. 부정적 경제관이 아닌 경제의 사명감을 가지셔야 해요.
돈 버는 일에 대해서 성경적 마인드를 가지셔야 해요. 거룩한 청지기로, 하나님 나라 통치의 실현자로, 전도자로 살기 위해서 경제 실력을 갖추는 거예요.
2. 지갑이 회심해야 합니다.
통장이 회심해야 합니다. 내 기도 제목에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을 위한 재정 관리가 들어가야 해요. 지갑 관리, 통장 관리가 들어가야 한단 말이에요. 뭐를 위해서요?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을 위한 재정 관리가 들어가야 한다 이 말이에요. 자녀들에게 단순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라.” “니가 성공해야 하지 않냐?” 이게 아니라 ‘왜 성공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줘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경제 자립과 기술력을 갖추어서 세상을 섬기는 인재가 돼라.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 포럼 속에 아이들한테 스며 들어가는 거 무시 못 합니다. 이런 토론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오직 내가 돈을 위해 열심히 사는 것만 보여줬어. 그러면 자녀들이 뭐 배웠을까요? “나도 저렇게 엄마처럼 열심히 돈만 벌어야 하겠구나” 이것만 배우겠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경제 자립하고 기술력을 축적해서 세상 섬기는 인재가 되라고 가르쳐야 해요. 여러분 물질의 욕심가가 아니라 청지기로 사셔야 해요. 그게 지갑이 회심하는 거예요.
3. 재정의 11조와 구제의 기준을 세우기 바랍니다.
나는 11조를 이런 식으로 해야 하겠다. 이미 지금 했던 방식이기 때문에 그 방식을 아마 벗어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이 갖고 있는 기준을 다시 재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11조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중심에서 11조를 하고 있는가? 점검하기 바라고요. 구제에 대한 기준을 세워야 해요. 구제에 대한 기준은 거의 안 세워놓아요. 지금 내가 없는데, 항상 내가 없다는 애기합니다. 구제에 대한 기준, 돈을 벌면 어떻게 딴 사람을 위해서 쓸까? 이거에 대한 기준도 세워야 한다 이 말이에요. 오늘 이 말씀을 붙잡기 바랍니다. 통성으로 합심해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