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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3월 4일 수요예배 - 전도자의 마지막 고백(딤후 4:6~8)

by 현상금 2026. 3. 4.

전도자의 마지막 고백(딤후 4:6~8)

 

여러분은 바울이라는 한 전도자의 마지막 고백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1) 6떠날 시각이 가까이 왔다” - 자기 죽음을 예감한다.

2)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저는 이 구절이 제일 와닿는다. 나의 달려갈 길이란 사명을 말하는 거죠? 20:24에 보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했다. 바울은 자기의 사명을 바로 알고 그 부여된 사명 감당을 위해 일심, 전심했고 이제 그걸 다 마쳤다고 얘기하는 거다. 1:12에 보면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했다. 바울에게 역경과 고난이 많이 있었는데도 주님을 믿었고 의탁했고 힘입어 살았다. 이제 죽음 앞에서도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상 주심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3)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선다는 걸 너무나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은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전도자로, 사역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론)

1. 자기 영적 상태를 관리해야 한다.

영적 상태에 따라서 환경이 문제가 안 될 수 있고 영적 상태에 따라서 조그만 문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1) 내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하는 걸 계속 성령님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 어떤 일에 대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 돈에 대해서, 문제에 대해서 내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하느냐 아니면 내 안에 성령으로 반응하느냐 이게 계속 점검되어야 한다. (교회 경제)

2) 사람도 육신의 관점이 아닌 성령의 관점으로 보는 영적 상태가 되어야 한다. - 교인을 볼 때도 숫자로 보지 말고 각 사람이 얼마나 주 안에 세워지고 있느냐를 봐야 한다. 숫자로 보는 것은 사람의 관점이고 영적 상태로 보는 것은 주님의 관점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뿌리내리고 세워졌는지, 얼마나 주객이 전환되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승리하고 증인 되는지를 봐야 한다. 성도가 무너지는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요, 그 사람의 영적 상태 때문이다. 영적 상태가 안 좋은데 환경이 맞물리면 밀리고 지게 된다. 여러분이 이런 사실을 바로 알고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참된 전도자로, 제자로 세워지게 된다.

 

2. 영적인 눈으로 보고 살리는 자가 돼야 한다.

1) 자녀나 교회 후대나 어떤 신자가 무슨 잘못한 일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보고 있으면 답답하니깐 우리 본성은 고쳐주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말하고 싶고 책망하고 싶어진다. 정확히 알아듣도록 확실히 말해 주고 싶어진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3,6,11장의 본성을 갖고 있고 이게 본성화, 체질화, 습관화돼 있다. 그러니까 내가 답답해서 지적하면 본능적으로 기분 나빠한다. 실제 고치고자하는 사람이 없다.

2) 상태를 보고 영의 말씀이 들어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 상대의 영적인 상태를 보지 않고 내가 답답해서 소리 질러버리면 안 된다. 저도 그런 적이 많다. 그 사람을 이해해 주는 게 먼저 필요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본성으로 반응하지 않고 성령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사람의 세 가지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 사람의 근원적 배경, 가문적 배경, 성장 배경에서 습관적 배경이 생긴다. 이걸 이해하면 우리가 덜 답답해진다. 복음의 관점으로 본다. 결국 그 사람의 문제도 그리스도께서만 해결할 수 있으시다.

3) 각 사람이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도록 도와주는 게 사역자가 해야 할 일이다. - 율법은 이 역할을 못한다. 우리가 사람들이 어떤 영적 문제에 빠졌는지를 바르게 알면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다. 사역자가 되려면 그 사람이 계속 영적 문제와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 그리스도께 뿌리내리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냥 지적하면 고쳐지는가? 신뢰 관계가 필요하고 이해해 주면서 그리스도를 의지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3. 이걸 실제 하려면 여러분이 전도 현장이 있어야 하고 다락방 해야 이런 관점을 배운다.

- 불신자 중에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1)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나름 바르게 살아서 인정받는 사람들이 있다. -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 의가 세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는 의, 성공했다는 의가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 인정받을수록 자기 의가 있다. 근데 자신이 하나님을 반역한 사단의 운명 속에 있다는 거는 모른다. 자기 의를 세우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치 않는다. 자기 바벨탑을 쌓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판단자 자리에 앉아 있다.

2) 반면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이 있다. - 삶이 무너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인간 관계적으로 무너진 사람이다. 이들의 특징은 자기 관리가 안 된다. 이 사람들이 중독이나 타락이나 범죄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사람들은 세상 원망하고 남 원망하고 자기 인생에 대해서 건강한 정체성이 없다. 그래서 무능력, 타락, 중독, 사회 범죄에 빠지기 쉽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포자기 하면 자살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두 종류의 사람을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하겠는가? 둘 다 사탄에게 종 노릇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탄은 도둑과 같은 존재이다.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하셨다.

한쪽은 무너질 바벨탑을 쌓으면서 자기 의를 치켜 세우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다. 바벨탑을 쌓으면서 반역하는 거다. 한쪽은 무너지고 실패하고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거다. 자기를 사랑치 않는 사람은 남 사랑 못 한다. 딴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다. 근데 이 두 종류 배후에 누가 있는가? 사단이 있다. 사탄은 하나님 떠나게 해놓고 속이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원하는 거다.

 

결론)

1. 사도 바울의 모범을 따르는 자 되어야 한다.

2. 저와 여러분을 왜 부르셨는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 것처럼 따르도록 부르셨다. 사람의 상태를 보면서 사람 살리고 세우는 제자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