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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8월 16일 주일예배 - 성령께서 시기하기까지 사모하는 자 (야고보서 4:5)

by 현상금 2026. 8. 16.

성령께서 시기하기까지 사모하는 자 (야고보서 4:5)

https://www.youtube.com/watch?v=kMcuuKktSLY

 

 

우리 권사님들은 수요 예배에 또 나오셔서 말씀을 듣지만, 보통 청년들이나 직장인들은 주일 예배만 드리기가 참 쉽지 않죠. 그래서 이 주일 예배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주일 예배가 6일간의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한 주간 6일간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가가 매주 점검되면서 “아, 내가 지난주보다 이번 주에 더 주님과 함께했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았구나” 하는 부분이 점검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로마서 1장에서 8장까지는 복음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9장, 10장, 11장에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스라엘 민족이 과연 어떻게 되는지 그들의 장래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고요, 12장부터는 실천 편입니다. 1절에 이런 말씀이 나와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한다’는 말씀은 1장에서 8장까지 복음을 주신 그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면한다는 말씀입니다. 권하는 핵심이 무엇이냐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예배, 공식적인 예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예배’, 곧 그것을 ‘영적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통 제물은 죽여서 드리잖아요. 도살해서 각을 떠서 드려야 하는데, 여러분의 몸을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산 제물이 될까요? 결국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삶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되는 삶입니다. 그게 산 제물입니다.

영적 예배라는 것은 여러분이 주일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직장 생활 가운데 인간관계를 맺고, 또 직장에서 불의를 행해야 하는지 아니면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지 선택해야 할 때,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되는 것을 영적 예배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같이 외워보실까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이게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여러분이 언행심사, 즉 말하고 행동하고 마음에 품고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삶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늘 의식해야 가능합니다. 내가 늘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지금 내 마음과 생각을 지배해 주세요” 하고 기도해야 하지, 의식하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가장 본능적으로 사는 모습이 어떤 것일까요? 창세기 3장의 ‘나 중심’, 6장의 ‘육신 중심’, 11장의 ‘세상 보이는 것 중심’으로 사는데, 그 본성의 욕구를 받아서 여러분의 이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적 이성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대부분 다 자기 본성에 충실하고, 그 본성에 지배받는 이성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삶이 아닙니다. 거기서 짜증도 내고, 자기 동기에 잡히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이루지 못하면 걱정에 잡히게 되는데, 이것이 전부 다 본성에 근거한 이성에 의한 삶입니다.

이제 이 삶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으면 여러분 속에 주님이 성령으로 와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이 주시는 그 통치를 받아 주님이 주시는 생각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게 그냥 자동으로 되지는 않잖아요. 사실 저 같은 경우도 자동으로 안 됩니다. 의식해야 합니다.

1.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삶

1)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삶은 의도적으로 기도의 루틴을 만들어야 합니다.

장로님이라도 기도의 루틴이 없으면 이 삶을 못 삽니다. 새벽 기도에 지금 장로님, 강 권사님, 류성옥 권사님이 늘 나오시거든요. 한 45분 정도 새벽에 기도하고 가시는 것 같아요. 45분을 그냥 기도하려면 기도가 되겠습니까? 성령께서 생각이 떠오르게 하시는 거죠. 계속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으로 끌어주시니까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발전합니다. 여러분의 하루 시작부터 주인을 바꾸셔야 합니다. 저는 어떻게 기도하냐면,

  • “오늘도 영계와 만유와 만사와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나와 상관된 모든 삶을 오늘도 다스리시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나의 모든 스케줄에 주님이 주인 되어 주옵소서. 그리고 내 안에 성령으로 통치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니까 하루의 일정과 내가 행하는 일이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을 자꾸 맞추게 됩니다. 맞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구하면서 내가 하나님 소원에 방향을 맞추지 않으면 언밸런스(불균형)잖아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데, 도와달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제 표현으로 하자면 ‘도와달라’는 식의 말을 하지 말고 ‘살아달라’고 해야 맞는 것입니다. 주님이시니까 살아주시는 게 맞잖아요. 주님이 여러분 안에 살아주시는 방식은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으로 정말 우리 속에서 살아주시는 것입니다.

무당 속에도 귀신이 살아줍니다. 귀신이 무당이 딱 되게 만든 다음 뭐라고 이야기하는 줄 아십니까? “내가 너 돈 벌게 해줄게. 내가 너 부자 되게 해줄게.” 어떻게 부자 되게 합니까? “너를 용한 무당으로, 이름날리는 무당으로 만들어 줄게. 복채 받아서 네가 부자 되게 해줄게.” 그 말입니다. 이렇게 귀신도 사람 속에 살아주고 지배하잖아요. 성령께서는 우리 영에 임하셔서 영의 생각으로, 또 영의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험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영적 상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눌려 있고 막혀 있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뚫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늘 제가 하는 말이지만 이게 왜 필요합니까? 우리는 날마다 이 원리로 살아야 하니까, 이게 안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메시지를 들어도 기도가 뚫려서 성령님이 더 세밀하고 깊게 인도하시는 그 기쁨과 힘을 누리지 못하면 신앙생활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영적 상태를 회복해서 일 처리를 하게 되면 잘 됩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육신의 본성에 입각한 이성으로 살게 되면, 그것은 믿음의 생각과 맞지 않습니다. 이것이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욕심이나 나 중심, 이기심, 미움 같은 것들을 극복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할 때 우리 이성은 불안해하고 염려하잖아요. 그 불안과 염려를 극복하게 하시고 지혜와 아이디어를 주십니다. 이런 것은 여러분이 직접 맛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도적으로 기도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 루틴을 만들어야 합니다.

  • 아침: 하루를 주님이 살아달라고 기도하고 영적 상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고 오늘 일정을 쭉 기도로 생각하면서 맡기는 것입니다. 제가 잘하는 기도가 무엇이냐면, 어떤 걱정이 들 때 기도를 이렇게 바꿉니다.
    • “주님, 이 걱정은 제가 할 게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주인이시니까 걱정을 해도 주님이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걱정하시는 분이 아니고 모든 지혜와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를 이렇게 바꾸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 공대생들과 경주 투어를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현석이가 이야기를 제일 많이 했어요. 현석이가 카이스트 1차 합격이 되었다고 합니다. 축하도 해주었는데, 이제 최종 발표가 남았습니다. 주님은 현석이의 인생 전체를 가장 정확하게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 믿을 때는 “안 되면 큰일 납니다. 안 되면 안 됩니다” 이런 식이지만, 저는 카이스트에 합격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세워 나가시면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과정이 없잖아요. 그저 잘되기만 바라죠. 그러니까 기도하면 이런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집니다. 그리고 영적인 믿음이 더 생기게 됩니다.

  • 점심: 밥을 먹고 오후 일과를 놓고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안과 염려가 꺾이고 무기력도 꺾입니다. 여러분, 영적 생활을 하면 무기력이 꺾입니다. 마음의 공허함, 허망한 것이 사라집니다. 우울함이 없어집니다.
  • 저녁/밤: 하루 일정을 다 보내고 저녁에 집에 돌아옵니다. 만약 하루 일정을 주님께 의탁해서 살았다면 밤 시간도 그냥 육신적으로 보낼 수 없습니다. 기도 생활이 되면 내가 영적으로 살았는지 육신적으로 살았는지 점검이 됩니다. 그래서 밤 시간에도 일과를 돌아보며 점검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어떻게 살아주셨는지 감사 고백을 드립니다.
    • “주님이 오늘도 살아주셨습니다. 오늘도 내 힘으로 살지 않고, 그때마다 주님의 영감도 주시고 감동도 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일을 처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이런 삶이 계속 쌓이면 어떻게 될까요? 영적 성장이 일어납니다. 예민하고, 짜증 많고, 답답하고, 눌리고, 피로했던 것들이 날아갑니다. 이런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맨날 “힘들어 죽겠다” 하는 것은 아직 이 삶을 맛보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해내기 위해서 애를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진짜 힘듭니다. 제가 과거에 그렇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밤 시간에는 조금 더 여유가 있으니까, 저 같은 경우에는 성경을 읽습니다. 보통 평신도는 많이 못 읽으실 수 있습니다. 복음서 같은 경우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함축적이라 한 장도 많습니다. 한 단락만 깊게 묵상해도 됩니다. 사도행전처럼 스토리 있는 것은 하루에 한 장을 정독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은 말씀을 메모합니다. 그것을 일반 교회에서는 Q.T.(큐티)라고 하지요. 성경 읽는 시간을 밤에 갖고, 그러고 나서 중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전도 대상자를 놓고, 나라와 교회를 놓고, 여러분과 관계된 사람들을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경건에만 맞추지 말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로서 중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새벽에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새벽에 성경도 읽고 중보 기도도 하는 분들이 계시죠. 이번 달 마지막 주가 렘넌트 헌신 예배인데, 그때 ‘제임스 투어’라는 분에 대한 간증을 좀 할 것입니다. 그분은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45분 정도 기도하고 1시간 이상 성경을 읽습니다. 그분은 손가락 안에 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인데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아침에 충분히 기도하고 출근합니다. 낮 시간에도 기도하고, 연구실 팀원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참 대단한 평신도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살게 되면 영적 리듬이 생깁니다. 영적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6일간 전혀 이런 삶이 없다가 주일에 와서 달랑 예배만 드린다면 영적 성장이 안 됩니다. 신앙은 ‘삶’이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야고보서 저자에게 혼납니다. 믿음과 삶이 따로 놀면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이 통치하시는 삶을 살수록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아까 말씀드린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본성과 그것을 근거로 한 이성으로 사는 삶이 확실히 구별되어 보입니다. ‘아, 이것이 사탄의 함정에 빠진 채 사탄이 그동안 형성시켜 놓은 체질이구나’ 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사람을 더 키우고 싶으실 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음에도 문제나 사건을 허락하십니다. 집중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건을 터뜨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때 ‘무시 기도’와 ‘24시 기도’를 배우게 하십니다. 영으로부터 나오는 무시 기도가 되어야지, 그저 몇 마디 중얼거리는 무시 기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집중 기도를 시키기 위해 문제와 사건을 허락하신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그 사람을 성장시키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 사람을 키워서 하나님의 소원에 쓰시려는 것입니다. 세상 살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일에 쓰시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성령께서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시기하신답니다. ‘시기’라는 말은 보통 좋지 않은 뜻이지만, 여기서는 여러분을 끔찍이 사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나 예수님보다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있는 것을 질투하신다는 뜻입니다.

‘기도란 주인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기도란 주님이 살아주시는 삶’이라고 정의하시면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서 24시 성령으로 통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이런 것이 느껴집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서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그것이 과거 불신자 때 살았던 삶 아닙마까? 그러나 이제 24시 주님이 통치하시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삶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부분에 성령께서 통치하시기를 원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세밀하게 통치하십니다. 부부 관계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까지 다 관여하십니다. 대충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로 말미암아 살았던 삶을 ‘성령’으로 사는 삶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으로 살았던 삶을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삶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 순간의 선택입니다. 내가 사느냐 그리스도께서 사시느냐, 내 본성으로 사느냐 성령으로 사느냐, 매 순간 선택입니다. 내가 단순히 믿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24시 아버지와 연합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단 하나도 자기 뜻이나 자기 욕구대로 살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이 항상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시므로 혼자 두지 않으셨다고 하십니다. 이 삶은 우리에게 표본(모델)입니다. 이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서도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저와 집사람은 성장 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참 다릅니다. 그래서 서로를 파악하고 맞춰가는 과정에서 부부간의 갈등도 있고 다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24시 주님이 성령으로 통치하시니까, 그 다툼과 갈등이 마이너스만 되지 않았습니다. 둘 다 주님 앞에 나아가 자기 자신을 깨닫고 바꾸어 가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부 관계는 한쪽만 잘못되는 법은 없습니다.

바울 사도가 늘 강조했던 18번(지론)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포도나무 가지의 삶입니다. 포도나무는 가지와 항상 붙어 있습니다. 가지는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부부 관계, 자녀 관계, 직장 생활, 인간관계의 모든 일과 문제에 있어서 전부 주님이 사시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아멘이십니까? 초신자에게는 이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루틴이 만들어지면 이 삶이 발전합니다. 현석이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현석이가 지금 연구실에서 많이 힘들어하지만, 나중에는 어떤 연구실에 가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어떤 곳에 가든지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신 뜻이 무엇이지?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지?” 그저 “저런 사람을 만나서 죽겠다”라고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사느냐 그리스도께서 사시느냐를 매 순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사시면 승리하게 됩니다. 기도의 루틴 없이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다시 한번 이 도표의 흐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적 문제] →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 / 외부 문제] → [영적 상태] → [마음 상태] → [생각 상태] → [말과 행동]

우리는 이미 영적 문제에 빠져 있었습니다. 영적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탄의 속임수와 욕심에 빠져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것입니다. 영이 죽었고 사탄의 지배를 받는 상태였습니다. 불신자 때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영적 지배를 받는 상태였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본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 본성이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이것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외부 조건인 현실의 문제도 다분히 영향을 줍니다. 이 본성과 현실의 문제가 마음 상태에 편안함, 불편함, 답답함, 갑갑함을 가져다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영적 상태’입니다. 영적 상태가 죽어 있으면 본성과 외부 문제가 마음 상태에 곧바로 직접적인 영향을 줘버립니다. 힘든 문제를 당하면 그대로 마음이 눌려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영적 상태가 살아납니다. 성령님이 통치하셔서 본성에 지배받는 이성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영적 상태가 바뀌어 영의 생각이 나면 마음 상태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마음 상태가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마음 상태가 바뀌면 생각 상태에 영향을 주고, 생각에 영향을 주니 결과적으로 말과 행동까지 변화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통치하시고 인도하시니 우리 내면이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도 잡아주십니다. 그러니까 오판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결정도 안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영적 상태를 관리하는 기도의 루틴이 없으면 맨날 머리로만 살아야 합니다. 머리로 살면 본성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 자신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주일 예배는 기본이고, 더 중요한 것은 내일의 삶 속에서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되면, 야고보서를 읽으며 너무 어렵게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이루어지면 야고보서의 삶은 자연스럽게 실천됩니다. 야고보서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말씀하며,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 책망하고 있죠. 여러분의 영적 상태, 마음 상태, 생각 상태가 바뀌어야 삶이 성공으로 인도받습니다. 이것이 바뀌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대인관계의 성패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2. 성도가 실천해야 할 삶 (야고보서 4장)

성도가 실천해야 할 삶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정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약 4:1)

여기서 다툼과 싸움이 ‘정욕’에서부터 난다고 합니다. 이 정욕은 단순한 육신의 욕구나 욕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본성’을 의미합니다. 사탄이 인간에게 집어넣은 죄의 본성,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욕심입니다. 사람에게는 타인을 낮춰보고 자기를 높이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나는 잘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욕심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뜻대로 안 되면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서부터 시작된, 마귀가 준 죄의 본성입니다.

2절과 3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 4:2-3)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시기해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니까 다투고 싸우고, 심지어 살인까지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지금 세상의 모습입니다. 전부 자기 생존의 욕구와 인본주의적 자존심의 욕구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사탄이 준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을 근거로 이성으로 살면서, 자기 생존과 자존심 때문에 욕심을 내고 싸우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 두 가지를 말합니다.

  1.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버리면 기도 응답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2. 구하여도 정욕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구분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여러 필요(돈, 건강 등)를 구하는 것도 정욕일까요?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의지하듯 하늘 아버지께 우리의 필요를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목적’이 올바라야 합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해야지, 하나님의 소원과 관계없이 그저 나의 성공과 유익만을 위해 구한다면 그것이 정욕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려면 하나님의 소원에 계속 방향을 맞춰야 합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간음한 여자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약 4:4)

여기서 ‘간음한 여자들아’라는 말은 여성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신랑, 이스라엘 백성은 신부였습니다. 신약에서도 그리스도가 신랑, 교회가 신부입니다. 여기서 간음한 여인들이란 세상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성도 전체를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과 짝하여 영적 간음을 행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책망입니다.

세상과 벗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할 때, 이 ‘세상’은 자연만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역하는 세상 체계를 의미합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죠.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물질과 육신만을 좇아가며 성공과 지위 상승만을 위해 세상을 따라간다면, 그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며 아버지의 사랑과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약 4:5)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 방향을 맞추지 못하면 성령께서 탄식하십니다. 성령님은 철저히 인격적으로 우리와 관계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을 맞추어 나아가면 영적 생활은 계속 성장합니다. 어디까지 성장합니까?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실제 거기까지 나아간 사람입니다.

주님은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 성공하더라도 그것으로 자기 만족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해서 남 주는’ 청지기의 삶, 하나님 통치의 실현자, 전도자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라

6절부터 1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6-10)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원리들이 나옵니다.

  1. 겸손하십시오 (6, 10절)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최근에 만난 31살 공대 대학원생이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교회를 다녔지만 이성적으로 믿어지지 않아 방황하던 친구였습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가진 이성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는 없다. 너의 이성을 낮춰야 한다. 이성으로는 눈에 보이는 것, 실험할 수 있는 것만 파악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증명되는 분이 아니다. 성령께서 은혜를 주시고 마음을 터치하셔야 믿어진다. 교만한 자세로 이성으로만 판단하려 하면 절대 주님을 못 만난다. '내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니 은혜를 주세요' 하고 자신을 낮추면 주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이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고전 1:21). 마음을 낮추고 엎드릴 때, 은혜는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2.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7절) 내 안에 계신 그분이 내 인생을 이끌어가실 때 잘 순종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우리 주위에 항상 도사리고 있는 마귀의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피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두 마음을 품지 마십시오 (8절) 기도 생활을 통해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손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깨끗이 하고, 세상과 하나님 양쪽에 다리를 걸치는 ‘두 마음’을 버리십시오. 세상의 유혹을 확실히 끊어내지 못하면 그것이 사탄의 통로가 되고 발목을 잡게 됩니다.
  4. 나 자신의 본성에 대해 애통해하십시오 (9절) 맨날 울고 다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창세기 3, 6, 11장의 죄의 본성을 가진 나 자신, 그동안 사탄의 통로가 되었던 인본주의적인 나 자신을 바라보며 슬퍼하고 애통해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진실하게 발견하고 애통해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결론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령께서 시기하기까지 사모하는 자’입니다.

종교인처럼 자신의 영적 문제와 본성도 모른 채, 그저 말씀만 실천하려고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침, 낮, 밤 기도의 루틴을 만드셔야 합니다. 루틴을 만들지 않으면 영적 발전은 없습니다. 10년, 20년을 믿어도 자기 자아가 살아있으면 주님과 가까워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면 훨씬 죄를 안 짓게 되고, 죄를 지을 확률이 줄어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이런 삶을 살도록 십자가에서 죽어주셨고, 여러분을 이렇게 세우기를 그토록 원하십니다.

먼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대사로, 증인으로 서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세밀한 통치 속에서 날마다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