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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8월 30일 렘넌트헌신예배 - 하나님을 믿으라(막 11:12~25)

by 별종외계오동 2026. 8. 30.

https://youtu.be/vbrrFAShyY8

 

하나님을 믿으라(11:12~25)

 

오늘 렘넌트 헌신 예배인데 감사합니다. 렘넌트 라는 말은 우리가 남은 자 이런 뜻으로 쓰고 있죠? 이사야 613절에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백성답게 살지 못함으로 징계를 받게 돼요. 그래서 황폐케 된다는 말씀이 나와요. 그럴 때 하나님이 남기신 소수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을 남은 자 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남은 자 그러면 영어로 스텀프도 되는데 우리는 렘넌트 라는 표현을 씁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후대를 가리켜서 렘넌트라는 말을 쓰고 있죠. 원래 뜻이 남은 자, 진짜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죄악에 빠지지 않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을 얘기하는 거예요. 613절에는 거룩한 씨 라고 돼 있죠.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에 그루터기리라앞의 그림이 도끼에 찍혀 지금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 상태죠. 거기에서 새순이 나고 싹이 나서 자라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이 나오죠. 성전 청결케 하는 사건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믿으라.

1) 왜 저주하셨겠습니까?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나무예요. 앞의 사진이 무화과나무고 잎이 무성하죠. 지금 여기에 열매가 있죠? 이게 익으면 이렇게 색깔이 변해요. 남부 지방에 많이 있죠. 굉장히 달죠.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로 가서 열매가 있나 구했는데, 때마침 없는 거예요. 그러자 예수님이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어요. 출애굽기 195~6절에 보면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택하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어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나라 한 나라만 하나님을 잘 믿도록 그렇게 택함을 받은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열방까지 하나님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보면 특권도 있고 사명도 이 메시지 안에는 들어 있거든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건 특권이고 사명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거예요.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선교하는 교회가 되는 거예요.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 게 구별된 거룩한 삶이에요. 거룩한 삶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성경만 보고 기도만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가 이미 말씀 받았던 것처럼 로마서 121절의 삶이 되는 거죠. 우리가 직장 생활하면서도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갈라디아 220절이 되는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알리는 증인의 사명이 있었던 거예요. 이방 민족이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이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이에요.

 

신명기 45~6절 말씀처럼 되는 거예요.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 명령하신 대로 기라 법들을 너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참된 삶을 사는)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여러 민족이 하는 말이 이 큰 나라 사람들은 과연 참된 삶을 사는, 참된 복을 누리는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한다는 겁니다. 사실 이렇게 돼야 맞는 거죠. “화목교회 성도들이 진짜 참 영적인 힘이 있어! 그리고 그리스도 통치받는 삶을 살고 있어!” 이런 소리를 주변 사람들이 해야 하는 거예요. 자녀들이 우리 엄마 아빠가 정말 많이 바뀌었어! 엄마 아빠를 보니까 진짜 성령님이 통치하시는 것 같아!”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 걱정이 많았는데 그리고 다투기도 잘했는데 이제 걱정도 별로 안 하고 다투지도 않고 그리스도 누리는 것 같아.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 같아!” 자녀들이 이렇게 고백한다면 제일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준다면 여러분과 저는 제대로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런 사명이 있었는데, 결과는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어요. 그것도 한두 번 깨뜨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를 뻔질나게 지었어요. 그래서 거룩한 백성 역할을 못 하고 또 사명 감당도 못 했던 겁니다.

 

2)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시점이에요.

무화과나무로 가서 열매를 구한 이후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겁니다. 성전에 들어가서 예수님은 강도의 소굴이 됐다하면서 굉장히 노하시는 거예요. 상인들을 막 쫓아내시고 거기에 있는 짐승도 채찍으로 쫓아내시고 이런 아주 과격한 행동을 하셨어요. 돈 바꾸는 상을 뒤엎었어요. 성전세를 바칠 때 로마 화폐는 황제의 얼굴이 있기 때문에 이걸 그냥 못 바쳤대요. 이걸 유대인 화폐로 바꿔서 바쳐야 하는 거예요. 여기에 상당한 커미션을 받아먹는 거예요. 또 성전에서 쓰이는 제물 있잖아요. 이 제물을 멀리서 가져오면 힘드니까 성전에 와서 샀던 거예요. 여기서도 상당히 남겨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전 제사장들의 관심은 어디 있었던 겁니까? 이권에. 그러니까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장사치들의 소굴로 타락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노하시면서 채찍질하며 다 쫓아내신 것이었습니다. “이곳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앞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거예요. 당시 성전부터 즉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다 타락했다는 얘기입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탄식하며 우셨던 말씀이 성경에 나오거든요.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보면서 주님의 눈물을 흘리신 것이에요. 이 무화과나무 저주는 AD 70년에 유대인들이 독립 전쟁하다가 로마에 의해서 멸망당하는 것으로 성취가 됐어요. 로마 군대가 성을 에워싸고 굶겨 죽이고 성을 뚫고 성에다 불 지르고 성전도 불태우는 그런 사건이 실제 있었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튿날 나가 보니까 무화과나무가 싹 말라버린 거예요. 놀라운 나머지 예수님께 물었어요. 왜 무화과나무가 말랐습니까?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거두절미하고 한마디로 딱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을 믿으라이게 예수님의 대답이에요. 이 한마디 말에 모든 설명이 함축되어 있었던 거예요. 결국, 하나님을 안 믿은 것이 문제고 저주의 이유였다 이 말이에요. 안 믿었기 때문에 불신앙 하는 거고, 당연히 불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명도 못 감당하고 거룩한 백성도 안 되는 거예요. 거꾸로 하자면 하나님만 잘 믿었으면 다 되는 거라는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들은 혈통적으로는 선택받았어도 영적으로 다 선택받은 것이 아니었어요. 영적으로 다 구원받고 거듭난 거는 아니었어요. 사실 이스라엘 백성 중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마치 중세 시대에 왕이 믿으니까 다 믿었어요. 그렇지만 구원받지는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어요. 같은 논리입니다. 거듭나지 않게 되면 어떤 사람도 불신자 상태를 못 면해요. 불신자 상태에 빠져 살아야 하는 거예요. 불신자의 특징이 뭐예요? 시단의 영적 지배를 받아요. 사단의 거짓말에 속고 그 욕심에 빠져 사는지도 모른 채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주인 되어 살아가는 겁니다. 지금 세상은 인본주의가 가장 자연스럽고 올바른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본주의 인생을 살기 때문에 전부 다 자기가 선악의 기준이 되고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 하나님 말씀은 안 믿고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도 겉으로는 믿었으나 속으로는 영적인 삶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되면 믿음이 자라나요. 영적 은혜를 받으면 안 바뀔 사람이 없고 안 자라날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영이 죽고 창세기 3611장의 본성과 그 본성에 영향받는 합리적인 이성으로만 살게 되면 말씀이 안 믿어져요. 불신자 상태에 빠진 것이 지금 전 세계적 현상이에요.

 

오늘 초등부 예배드리면서 민규와 성은이한테 물어봤어요. 반 친구 25명 중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 몇 명이냐? 그랬더니 한두 명밖에 없대요. 얘기해 보면 교회 다닌다는 사람을 못 들었대요. 이거 심하지 않아요? 유정이 반은 3, 하윤이 반은 5. 앞으로 겁나게 탈종교 화 됩니다. 지금 AI 시대가 됐는데 무슨 종교가 필요해요? AI가 모든 것을 책임져주고 판단도 AI 한테 맡겨요. 나보다 더 똘똘하기 때문에 요새 주식을 하는데 주식도 알아서 해줘요. 최근 동향 몇 초 안에 다 분석해 줘요. 그래서 3만 원으로 시작하면 된대요.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성이 있나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셨어요. 선지자 통해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도 그들은 불신앙, 불순종했던 거예요.

 

2. 세 가지 메시지

오늘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사건과 관련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세 가지 메시지를 하셨어요. 첫째가 믿음에 대해, 두 번째가 기도에 대해, 마지막 세 번째로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셔요. 이게 연결되는 메시지예요.

1)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 백성에게 필수 조건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에요. 이사야 43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사실 다른 민족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몰라요. 하나님이 다른 민족 역사 속에 개입 통치를 안 하셨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통치하셔서 많은 일을 행해 주셨고 많은 말씀을 주셨어요. “너희는 나의 종이다. 나의 증인이다.” 이렇게 얘기하신 거예요. 그래서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너희가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택했다는 거예요.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믿음을 강조하시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믿음이 적은 자들아”“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갈릴리 호수를 배 타고 건너가실 때 갑자기 돌풍이 불었어요. 그때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고 완전 위기일발의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제자들이 다급해서 예수님을 깨웠잖아요. 예수님은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믿음 어디 있어요? 눈에 보이는 거에 있고 환경에 있죠? 저의 믿음은 환경 아니면 제 자신의 능력에 있었어요. 우리는 주로 내 능력으로 사는 거죠. 근데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지금 어디 있느냐?” 이렇게 물으시고 계시는 겁니다. 찬송가에 보면 나 두려움 없네. 두려움 없도다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432장에 보면 이 작은 배의 사공은 주님이시라로 되어있습니다. 여러분도 인생 풍랑을 만나요. 돌풍도 만나요. 그때 예수님과 운명 공동체라면 어떨까요? 예수님이 그 배에 진짜 핸들을 잡고 있는 주인이시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주무셔도 돼요. 근데 우리 본성과 이성은 그렇게 할 수 없게 만들어요. 본성의 반응과 성령으로 반응하는 것을 여러분이 구분하셔야 해요. 본성은 이성과 연결되어서 보이는 것들에 대해 갖는 느낌과 감정과 계산에 잡히게 만들어요. 이런 것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훈련되고 각인 되고 뿌리내려서 지금 이성에 의한 계산의 체질로 사는 거예요. 이 계산과는 상관없이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믿으려고 하면 그게 믿어지나요? 그동안 그렇게 불안해하고 안간힘 쓰면서 자기가 살아보려고 했던 그 체질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겠습니까? 메시지 듣기는 쉬워요. 이해는 쉬워요. 그러나 여러분이 본성에서 이미 체질 되어 있는 삶의 습관은 정말 안 바뀌어요. 계속 성령님이 터치하셔야 해요. 여러분 기도할 때 정말 자신이 보이면서 여러분이 왜 그렇게밖에 살 수밖에 없었는지가 보이면서 이게 창세기 3장 문제에서부터 시작된 문제고 가문의 문제고 내 성장 배경의 문제였구나 라고 인정이 돼야 해요. 그래서 여러분의 믿음의 현주소를 보이는 곳과 여러분의 이성에 두지 않고 삼위 하나님과 그 언약의 말씀에 두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해야 해요.

 

배 탔는데 돌풍이 불면 얼마나 염려가 되고 불안이 되겠습니까? 우리 인생 살 때 환경 문제, 인간관계 문제, 돈 문제 이런 문제들이 터지잖아요. 이런 돌풍이 불잖아요. 그때 이렇게 고백하셔야 해요. 염려해도 내가 염려할 게 아니라 이거는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염려할 거리입니다. 염려되어도 내 인생의 지금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시잖아요? “이 염려는 주님이 하셔야 마땅합니다!” 이렇게 바꾸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꾸 생각을 돌려야 해요. 여러분이 할 일은 예수님이 이 문제의 주인이시라고 고백하셔야 해요. “나는 주님을 끝까지 잘 믿고 말씀 따라갈 테니까 주님이 처리해 주옵소서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또 왔나요? 예전에도 믿음의 싸움을 했던 적이 있는 그런 종목의 문제가 또 왔어요. 그러나 본성은 똑같고 성화가 안 돼요. 내가 전에 믿음으로 기도해서 이겼는데 또 문제가 오면 쉽게 이겨야 할 텐데, 본성은 여전히 똑같이 반응해요. 그때 여러분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냐면 주님, 끝까지 믿음의 싸움을 하겠습니다. 내 본성으로 반응 안 하고 성령으로 반응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하셨어요. 1427, “평안을 너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호수아가 전쟁할 때 계속 하나님이 강조해 주셨던 게 뭐예요? “두려워하지 말라. 극히 담대하라.” 예수님도 똑같이 얘기하시네요. 그렇죠? 바울은 뭐라고 얘기했어요?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의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성령의 생각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겁니다.

 

오늘 민규가 기도했죠? 민규가 안 보고 기도했어요. 얼마나 차분하게 기도를 잘하는지 평상시 기도를 한 거예요. 평상시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신앙생활의 발전은 뭐예요? 성령께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역량이 길러지는 겁니다. 오늘 23절 다시 한번 볼까요? “내가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이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이 말씀은 무슨 뜻이라고 그랬어요? 인간으로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 가능케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그렇게 말씀하셨던 주님이 지금 너희가 이 산이 들려 저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하신 겁니다. “이 산이 바다에 던져지라.” 이거는 사실 이성적으로 볼 때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그러니까 기도 안 하고 생각하면 이성이 합리적인 생각을 계속 하게 만들어요. 상황이 이런데 지금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 합리적인 어떤 방법론을 찾기 위해서 막 생각이 돌아간단 말이에요. 근데 이 산에 들려 저 바다에전혀 불가능한 것을 기도해 놓고 그것이 이룰 줄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되리라고 그랬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계속 이성으로는 저항이 올라오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게 본성과 이성에 입각한 생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성령이 주시는 생각으로 들어가는 기도가 계속 되어야 하는 거예요. 성령께서는 영의 생각으로 하나님 말씀을 붙잡게 만드시잖아요. “이번에 진짜 하나님을 바로 믿어 봐라이렇게 성령께서 이끄시잖아요. 맞아요? 이런 경우가 우리 삶에 얼마나 많지 않나요? 기도하나 자꾸 염려돼요. 그렇지만 성령님은 절대 염려하는 법이 없어요. 성령님은 이번에야말로 여러분이 성령께서 주신 영의 생각으로, 영의 능력으로 기도가 되어 영의 역량이 길러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문제도 해결 받고 응답도 받고 여러분이 세워지도록 하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보고 탄식하시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바르게 믿고 순종했으면 진짜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수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민족이 됐을 거라 이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 따라서 제대로 살고 믿었으면 하나님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그 역사를 수도 없이 체험할 수 있었던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근데 지금 저주받는 상태가 돼버렸잖아요. 오늘 크리스천이 된 우리에게 역시 적용해야 할 말씀이에요. 권사님이 늘 염려에 시달린다면 권사님도 참 힘들고 주변 사람들도 힘들어져요. 여기에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잖아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성령으로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셔서 응답이 가능하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래서 첫째는 믿음에 대해서 얘기하시고 두 번째는 기도에 대해서 얘기하시는 겁니다.

 

2) 기도에 대해서

기도는 주인을 바꾸는 거고 기도는 주님이 성령으로 살아주시는 겁니다. 이전에는 여러분이 본성과 이성으로 살았거든요. 근데 이제 성령으로 살아주시는 삶을 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방향을 맞추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방향을 맞췄으면 주님이 책임자가 되어 주시는 거예요. 방향을 맞추었을 때 여러분이 염려하고 긴장하고 여러분의 힘으로 이루려고 하는 그 체질을 이제 주님은 싹 바꾸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믿고 의탁하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남들은 못 믿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여러분이 체험하도록 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응답하실 수밖에 없는 필요 충분 조건을 붙잡으라는 말씀을 드렸어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밖에 없는 응답하실 수밖에 없는 필요 충분 조건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 내가 하는 일이 정말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일인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소원에 맞는가? 내가 공부하는데 진짜 하나님 통치 실현과 전도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그 목적으로 공부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필요에 맞죠? 이거는 기도 응답할 조건이 된다 이 말이에요.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는데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그 일은 주님이 주인이시고 책임지셔야 하는 겁니다. 첫째가 하나님 필요에 맞느냐? 하나님의 소원에 맞느냐? 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말씀에 순종하면 손해 보는데 내가 손해 보면 손해 보리라 하고 순종할 때 이거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됩니다. 이건 뭐를 보여주는 거예요? 내 믿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첫 번째 필요에도 안 맞고 두 번째 믿음도 없고 그러면 응답 못 받는 거죠. 이 두 번째가 참 중요하잖아요. 내가 말씀 순종하면 내 돈 나가는데 예를 들어서 헌금하면 내 돈 나가는데, 지금 내가 딴 사람 섬기려면 돈 나가는데 그러면 내 돈 없어지는데, 마음에 걸리잖아요. 이성적인 생각에 걸리잖아요. 근데 내가 손해 보더라도 난 말씀에 순종할 거야. 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이럴 때 하나님 응답하신다 이 말이에요.

더 심하게 얘기한다면 말씀 순종할 때 내가 망하는데 내가 망해도 망해라.” 만약에 이렇게 들어가게 되면 이건 더 강력해지는 거죠. 여러분이 인생 사는데 이런 경험을 안 해보셨을 수도 있어요. 청년들,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손해 보는데도 내가 손해 보면 손해 보겠습니다. ? 이게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그런 경험과 기도 응답들을 체험하고 있습니까? 청년들에게 이런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들입니다.

 

죠지 뮬러가 자기의 한계를 겪고 실패할 수 있는데도 고아 사업을 시작한 거잖아요. 자기 자산이 없는데 고아 사업을 했고 만약에 기도 응답을 못 받으면 애들이 굶잖아요. 고아원 해체해야 하잖아요. 그런 위기를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100% 믿음으로 한 거죠. 두 가지 필요 충분 조건이 맞았기 때문에 그는 계속 응답을 받았던 거예요. 그럴 때 누가 증명됩니까? 하나님이 증명됩니다. 그럼, 뭐가 됩니까? 증인이 되는 겁니다. 이런 믿음으로 행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거고 우리는 증인이 되고 전도자가 되는 겁니다. 이 체험을 하는 렘넌트는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 수 있어요. 이런 체험을 하는 렘넌트는 하나님의 나라 통치 실현자로 살 수 있어요. 이런 체험이 안 되기 때문에 기독교 인구는 많은데 실제 현장에서는 기독교인이 별로 없어요. 전부 다 합리적 이성에 걸려서 그래요. 끊임없이 걱정하고 염려했던 그 체질을 주님은 이제 벗어나도록 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내 능력이 좋기에 난 염려 걱정 안 해도 내 머리로 충분히 살 수 있어!”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근데 그 사람은 진짜 은혜받기 힘든 사람이고 구원받기도 힘든 사람이에요. 렘넌트는 물질이 목적이 아니고 수단입니다. 여러분의 경제 사용을 통해서 믿음을 나타내 보이셔야 해요.

 

3) 용서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예수님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믿음을 얘기했고 기도를 얘기했어요. 그다음에 용서는 조금 잘 연결이 안 되는 것 같죠. 근데 이게 굉장히 연결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의 방향은 사람 살리는 방향이에요. 사람 살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뭘까요? 용서예요. 사랑을 용납하고 용서하고 기다려주고 그 사람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고 그 사람 세우는 일을 하는 거예요.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용서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도 우리의 본성으로만 안 되고 성령으로 됩니다. 사람에게 딱 걸리면 잘 안 푸는 사람들 많아요. 걸리는 것 자체가 영적 문제라는 인식 자체도 안 돼요. 왜 그래요? 내 기준으로 보니까 그래요. 주님의 눈으로 복음의 눈으로 볼 때 용서가 가능해요. 그때 이해도 되고요. 불쌍히 여기도 되는 거예요. 정말 사람들이 성령의 통치를 안 받으면 내 동기와 내 기준은 안 바뀌어요. 그래서 내 동기와 기준으로 사람 보는 것이 문제예요. 주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으로 보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살리는 자가 돼요. 근데 보세요. 앞에 믿음 없는데 뭔 용서가 돼요? 기도 응답 안 되는데 뭔 용서가 돼요? 누굴 살려요? 이스라엘 같으면 이게 되면 최종적으로는 제사장 나라가 되는 거예요. 전도 제자가 되는 거예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하셨어요.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게 뭐예요? 성령님이 내 마음에 말씀이 믿어지게 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산이 들려 저 바다에 던져지라고 명령해도 그것이 이룰 줄 믿으면 응답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생에 정말 이거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 지금 형편에, 이 상황 가운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해?”그렇게 생각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 소원에 방향 맞췄고 진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필요 충분 조건이 맞는다면 하나님은 기적과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다는 겁니다. 오늘 이런 것들을 믿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한 사람을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세계 50대 과학자 중 한 사람, 세계적인 과학자 제임스 투어 교수에 대해 소개합니다. 이 사람은 분자 원자를 결합해서 세상에서 제일 작은 자동차를 만든 사람입니다. 분자가 뭔지 아세요? 물 분자 그러면 H2 0 잖아요. H2는 분자죠? H는 원자인가요? 원자 이거 얼마나 클까요? 눈에 안 보여요. 이거를 과학적으로 결합시켜 분자 자동차를 만들고 트럭을 만든대요. 그래서 혈관을 뚫고 나가게 만들고 이 분자에다가 드릴 기능을 만들어서 암세포를 뚫어버린데요. 그래서 치료한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나노 과학자로 유명한 분이에요. 지금도 살아계세요. 1 나노미터는 100만 분의 1 밀리미터래요. 그러면 얼마나 작은 걸까요? 이거를 떼었다 붙였다 해서 자동차를 만든다. 우리 생각에는 상상이 안 됩니다. 이분이 이걸 응용해서 많은 연구를 해낸 사람이거든요. 근데 이분이 하는 말이 이 원자, 분자를 결합시키고 떼고 하는 걸 해보니까 이 자연에서 세포가 만들어지는 거는 경이로운 일이라는 거예요. 절대 이거는 자연 상태에서 조작하지 않는 한 되어질 확률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은 진화론자들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일을 많이 했어요. 이분이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과학자 중에 한 사람이지만, 새벽 330분에 일어나요. 그래서 하루 일과를 놓고 45분 기도한 다음에 1시간 이상 성경을 읽어요. 이걸 매일 해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전도를 해요. 이분은 복음 전하는 과학재단을 세웠어요. 과학 재단을 세웠는데 이분의 고백이 뭐냐 하면 과학을 어렴풋이 알면 과학으로 하나님을 부정하지만, 과학의 최선봉으로 들어가면 과학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고 고백하는 분이에요. 그래서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복음 전해요. 이 사람은 일주일에 한 명 정도 영접을 시킨대요. 왜 이렇게 살아요? 목사 아니에요. 가장 바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보세요. 이게 확신의 문제에요. 확신의 문제! 시간의 문제가 아니고 여러분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확신하게 될 때 여러분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뀌어버려요. 하나님 만나는 시간을 최고로 중요하게 여기게 돼요. 거기서 모든 연구가 나와요. 모든 일이 나와요. 그래서 자기가 알아요. 내 지혜로 지금 공부하고 내 지혜로 일하는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공부하고 일하는지 자기가 알아요. 그래서 제가 지금 초등부 아이들한테는 5, 5, 10기도를 권장하고 있어요. 아침에 5, 낮에 5, 밤에 10분 기도하라고 청년들은 얼마나 하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5분부터 해야죠. 나중에는 10, 10, 30분 이렇게 할 수 있어요중보 기도가 들어가면 기도가 길어져요. 이게 아까운 시간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모든 영적인 상태, 여러분의 모든 기능 상태가 최고로 회복되는 시간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삶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에요. 하나님의 능력이 체험되고 성령의 확신이 임하면 전도 못 할 사람이 없어요. 저 사람도 지금 생명이 없는데, 아무리 저 사람이 돈 많아도, 아무리 저 사람이 지금 의사고, 변호사고, 과학자고, 교수라고 하더라도 생명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탄식하게 돼요. 그래서 여러분이 세 가지가 진짜 가능해져요. 청지기의 삶과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의 삶과 전도자의 삶이 가능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렘넌트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