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씀을 전해야 하는가? (행 8:26~40)
고민 없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어떤 이는 하는 일 때문에 고민한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 때문에, 남편이나 자식 때문에 고민한다. 목회자도 고민한다. 전도 때문에, 부흥 때문에 고민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봐라. 성경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주인이 아니기 때문아다. 문제는 전부 창 3장에 근거한 내 생각, 육신의 생각에 빠지는 것이 문제다. 여러분 속에는 전능하신 주의 성령이 계시다. 어떤 상황이든 창 3장의 육신의 생각에 빠지지 않고 영의 생각만 바르게 하면 승리한다. 왜 주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는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다. 지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각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인도받고 응답받는다. 불안한 느낌과 생각이 들어와도 괜찮다. 육신의 본성에 입각해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 속에는 이걸 분별하며 극복할 수 있게 하시는 주의 성령께서 계시다. 기도는 육신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다. 주의 성령께서는 모든 진리와 생명과 지혜와 의와 사랑과 능력과 치유와 권능의 근원이고 원천이시다. 경제 문제든, 직장 일이든, 인간관계든 육신의 생각에 빠지지 말라. 영의 생각(진리에 입각한 생각, 주님이 주시는 생각)을 하면 승리한다. 그래서 기도로 생각을 돌리는 것이 계속 필요하다. 이런 사람은 믿음의 사역, 믿음의 일을 할 수 있다. 믿음의 전도도 할 수 있다. 전부 주님이 여러분 속에서 하시는 것이다.
오늘 내용은 제자 빌립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이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한 내용이다. 성령께서는 만남도 연출해 주시고 답도 줄 수 있게 해 주셨다. 여러분이 불신자나 기존 신자를 만났을 때 성령께서 그 사람을 진단하며 문제의 원인에 대한 진정한 답과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줄 수 있게 하신다. 여러분 속에서 주님이 이루시니깐 이것이 믿음의 전도다.
1. 성령님과 동행한 빌립
1) 주의 사자가 지시하였다.
오늘 본문에 보면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지시하여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갔다. 거기서 이디오피아 내시를 만났다. 얼마나 절묘하게 만나게 하셨는지 모른다. 장소, 시간, 전할 메세지까지 얼마나 절묘한지 모른다. 29절에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하셨다. 그때 내시는 이사야의 53:7~8절을 읽고 있었다. 빌립이 그리스도를 전하기가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리스도에 대해 자세히 풀어 증거하였다. 이 전도의 주인은 누구신가? 그리스도시고 그의 성령이시다. 여러분이 기도가 발전될수록 여러분이 고민하는 체질에서 벗어나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생각으로 살게 된다.
믿음의 전도라 해서 열심을 안 내는 것이 아니다. 사도바울은 골 1:28~29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나도 내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였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하였다. 믿음의 전도는 믿음의 열심을 내게 만든다.
기독교 교회 역사를 보면 믿음이냐, 행위냐에 대해 항상 갈등과 싸움이 있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느냐,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느냐의 논쟁이기도 하다. 그 답은 로마서와 야고보서에서 찾아야 한다. 로마서는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반론으로 믿음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야고보서는 믿음을 말로만 얘기하고 행동이 없는 신자들에 대해 진짜 믿음의 결과로 행위를 강조한 것이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이해하고 동의만 하는 것이다. 그것만 가지고는 사탄도 자기 본성이나 체질도 못 이긴다. 성령님을 의지하면 성령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행위를 다 유발시키신다. 사탄과 자기 본성과 체질을 이기게 하신다. 확신을 주시고 감동과 힘을 주시기 때문에 그렇다. 여러분은 이런 삶을 체험하므로 믿음의 전도를 해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도 성령께서 여러분을 쓰시는 전도를 할 수 있다.
2. 여러분은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하겠는가?
1) 당신은 행복한가?
이것도 항상 성령님을 의지하기 바란다. 좀 아는 관계이면 당신은 행복한가 물어볼 수 있다. 행복하지 않다고 하면 그 이유를 물어본다. 행복하다고 하면 그것이 참된 행복의 이유가 아닌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지금 행복의 조건을 환경과 현실 조건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흔들리면 같이 흔들린다. 인간은 또 누구든지 내면에 근본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마음 상하거나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나 중심의 자존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참된 행복이 없다. 대부분은 자기 내면의 상태는 잘 모른 채 외부 요인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는다. 행복지 않는 이유도 보이는 것에서 찾고 주로 환경 탓, 남 탓 한다. 인간이 행복하지 못한 진정한 이유를 몰라서 그렇다. 그것은 부모를 잘못 만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집안이 가난해서가 아니다. 불신자 말대로 사주팔자가 안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 운명이 잘못되게 만든 놈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통과 불행으로 몰고 가는 존재가 있다.
2) 원래 상태
인간은 본래 아픈 것이나 괴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행복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그게 원래 에덴동산에 있을 때 인간의 상태였다. 생명의 탄생 영상 보면 신비하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세포 분열을 이룬다. 심장이 생기고 머리가 생긴다. 우연히 저절로 이렇게 만들어질 수 없다. 본래 인간은 최고 행복한 상태로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이라는 곳에 두셨다. 그들이 아담과 하와이다. 그들에겐 죽음도 없었고 아픈 것, 괴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절대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하면 되었다. 그 조건으로 에덴동산에 모든 것을 누리며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간의 운명을 저주와 죽음의 상태로 몰고 간 놈이 있었다. 그놈을 성경에서 사탄 또는 마귀라고 한다. 이 사탄이 인간을 꾀어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거역하고 불순종하게 만들었다. 범죄 함으로 에덴에서 쫓겨났고 환경의 저주와 죽을 운명 속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인간은 12가지 운명에 빠져 살다가 죽어 지옥에 갈 운명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 인간은 환경의 재앙과 죽음과 지옥 운명에 빠진 상태로 근본 불안과 두려움 속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나 중심의 자존심을 갖고 살고 있다. 이게 영적으로 사람 보는 눈이다. 사탄이 이렇게 빠지게 한 것이다. 창 3,6,11장과 행 13,16,19장 속에 빠뜨려서 그 속에서 인본주의와 우상숭배로 살게 만들고 그래서 불신자 6가지 상태로 살게 만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영적 문제에 빠져 믿음이 잘못되고 근본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문제 오면 상처나 충격이나 트라우마에 걸릴 수 있다. 근데 이걸 영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렇다. 부모가 잘못해서 그렇다 이런 식으로 보이는 것만 탓하게 된다. 이 문제의 진정한 원인이 영적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것은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여기서 빠져나오는 길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그 해결책인 그리스도를 확신가지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진짜 사탄이 떠나가게 된다. 그 사람 속에 진리와 생명과 능력의 성령께서 들어가셔서 치유 회복시키는 일이 시작된다. 그리스도가 영접되는 순간 운명 소속 신분 통치체제가 통째로 바뀐다. 자녀의 7가지 권세가 주어진다. 그래서 이 사람이 기도를 배우면 성령의 통치를 날마다 받게 된다. 이것을 우리가 확신을 갖고 전달해야 한다. 이것은 열심히 살고 근면 성실하게 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들어 이것을 북한 주민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북한 주민이 열심히 살아도 그 정권의 지배를 받는 한 불행하다. 탈북자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은 지금 하나의 거대한 감옥과 같다. 인권이 없는 나라, 굶주려 죽는데도 어쩌지를 못하는 나라이다. 70여 년 동안 그 주민들은 속고 거짓 선동과 정보에 속아 살았다. 근데 속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다.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오면 철저히 속은 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불신자는 마귀의 운명에서 속고 있다. 이 사람이 영이 거듭나서 영으로 자꾸 인도받으면 눈이 열리게 된다. 육신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게 되면 이제까지 살아온 인본주의 삶의 체제가 믿음이 삶의 체제로 바뀌게 된다. 선악의 기준이 내가 되고 내가 주인 되어 보이는 것에 꽂혀서 보이는 것에서만 행복의 조건을 찾고 내 열심과 내 노력으로만 이루려고 했던 인본주의 체질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여러분이 이런 영적인 눈으로 불신자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불신자가 멸망의 운명 속에 있구나, 그렇게 보여야 한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여러분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 줄 모른다. 불신자는 마귀 운명 속에서 분명히 속고 있다.
3) 해결의 길
여기서 빠져나오는 길이 뭔가? 그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마음에 모시는 것이다. 그러면 마치 탈북자처럼 운명과 신분과 소속과 통치 체제가 통채로 바뀌게 된다. 그때부터 하나님 자녀되어 주의 성령께서 영의 생각과 영의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여러분은 복음 듣는 상대가 그리스도를 영으로 영접하면 그 사람의 운명과 소속과 신분과 통치 체제가 통채로 바뀐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전하여야 한다. 자녀의 7가지 권세가 분명히 주어진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락방을 권유하고 다락방하면서 기도 권세를 실제 누리도록 가르쳐야 한다. 여러분이 전도 대열에 서 있다는 것 자체로 기뻐해야 한다.
3. 전도의 유익점
1) 전도는 자기 믿는 바를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에게 유익하다.
마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자를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하셨다. 여러분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주는 사람이다. 영적 사실을 알고 불신자의 상태를 진단하며 답 줄 수 있는 사람이다.
2) 전도자는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자기 삶을 거룩게 해야 하므로 자기에게 유익하다.
전도하려면 죄를 멀리하고 죄를 피하게 된다. 하나님의 소원을 위해 살게 된다.
3) 전도는 영적 싸움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1:8의 능력을 더욱 구하게 된다.
주님이 1:8의 언약을 이루신다. 주님은 우리보다도 우리를 주의 형상으로 바꾸길 원하신다. 최고의 자녀로 치유 회복시키고 열매 맺도록 하길 원하신다. 보좌 배경을 누리면서 아버지의 소원의 도구되길 원하신다. 우리의 소원과 관심과 생각이 하나님의 소원과 관심과 생각에 맞추어졌으면 우리보다 주님이 우리로 행 1:8이 이루어지길 원하신다, 생각하길 바란다. 여러분이 누구를 만날지, 어떻게 복음을 전할지, 어떻게 영접시키고 다락방 문 열지, 어떻게 말씀 운동하며 제자 세울지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일인 것을 믿고 여러분 속에서 주님의 성령으로 역사하실 것을 기뻐하고 기뻐해라. 우리는 눌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뒤집을 수도 있다.
결론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이 제일 중요하다. 언제든지 육신의 생각에 빠지지 말고 영의 생각을 해야 한다. 그 체질이 되기 위해 기도체질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육신의 생각에 빠지지 않고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전도 규례를 정하고 실천하기 바란다. 이번 달 예비 캠프하고 대상자를 3월 31일에 제출해라. 그리고 4월 15차 집중훈련 기간에 본 캠프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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