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행 26:1~32)
요일 4:4에 보면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다는 말씀이 있다. 왜 그럴까? 우리 안에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이,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모든 상황 가운데서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래서 다윗이나, 다니엘은 국가적 위기나 굉장한 사태를 만나도 그 가운데 승리했다. 모든 능력과 진리의 성령의 인도 받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진리의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공허함이나 마음이 세하거나 하는 것이 없어진다. 큰 문제 앞에서도 두려움이나 압박감 같은 것들도 극복하게 된다.
지난 두 주 동안 우리나라는 혼란과 정치적 격량 속에 있었다. 이럴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불안하고 염려되어도 내 속에 계신 분은 세상보다 크시다. 여러분은 성령님을 의지하여 세상사와 정치와 아 나라를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자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이 나라에 올바른 정치가 시행되고 복음 전파를 위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의 본연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자기 하는 일에 승리하며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다음 주 한 주간 국가와 교단과 내년도를 위해 기도할 예정이다. 여러분은 영적 가나안 정복할 사람들이다. 구약에 보면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이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싸워 주셨다. 대적이 쳐들어와도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위해 싸워 주신다. 그 일에 쓰였던 사람이 여호수아, 갈렙, 옷니엘, 기드온, 다윗 같은 인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가지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며 승리하고 정복할 수 있다. 하나님은 완전한 배경과 책임자 되어 주신다.
1. 또 우리가 그리스도께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1) 지난주에 말씀 드린 베드로에게 주신 세 가지 축복을 누릴 수 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며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대사의 권세와 기도 응답의 권세가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 축복을 가진 사람은 영적 가나안 정복할 수 있다. 민 13장의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지금 계속 사도행전을 보고 있는데 바울은 감옥 속에 있었지만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몇주 전에 누가 전도 제자냐? 하는 메시지를 했다. 첫째, 언약을 굳게 잡은 자라고 했다. 예수님은 아버지 소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1,3,8의 언약을 이루고 계시다. 전도 제자는 주님의 언약을 굳게 잡는 자다. 여러분은 실제 1,3,8의 얼마나 누리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둘째, 보좌 배경을 확실히 믿는 자라고 했다. 보좌 배경을 누릴 때 경제 문제에서 안 밀린다. 자기 동기에 안 빠지고 주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 주의 계명을 지켜 사랑을 베풀면 2가지 축복이 있다. 하나는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충만하리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보좌 배경으로 여러분을 책임져 주신다. 그런데 이같이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순종한다. 없으면 순종 못 한다.
류 목사님은 7 망대에 대한 말씀을 계속 강조하고 계시다. 성삼위 하나님의 축복, 보좌 배경, 삼 시대 축복, 오력, 공중 권세 잡은 자 꺾는 권세, 나의 CVDIP, 그래서 나오는 세 가지 뜰을 갖춘 교회다. 이런 7 망대를 누리면 7 여정을 간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보좌 배경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셋째로 그 결과 전도 제자는 하는 일에 승리하면서 다락방 전도 운동을 하는 자라 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으로 현장 보는 눈이 있게 된다. 생명 없는 현장, 사탄 죄 저주 지옥 운명 속에 있다가 지옥 가는 현장을 보게 된다. 그 현장에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 바울은 전도 제자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기를 변호하는 말을 한다. 변호하는 말을 하는데 실상은 전도하고 있다. 그 내용이 2~23절까지 내용이다. 바울은 자기 출신과 배경을 먼저 얘기했다. 이어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체험과 그가 받은 사명을 따라 살아왔다는 것을 얘기했다. 이 말을 곁에서 듣고 있던 베스도 총독이 24절에 보면,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했다. 이에 바울이 뭐라고 했는가? 25절, 내가 미친 게 아니고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했다. 바울이 27절,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이런 말을 하니깐, 아그립바 왕이“네가 적은 말로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는가?”라고 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더욱 담대히 말한다. 29절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얼마나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 왕 앞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도 그런지 점검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있으면 죄의 본성을 갖고는 있지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더 나가서 극복할 힘을 주신다. 나와 걸리는 사람 있으면 미워하고 욕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자가 된다. 저는 어떤 사람이 제게 걸릴 때 그 사람이 버릇도 없고 상식도 없을 때 저건 가르쳐야 하지 않는가 생각이 된다. “내가 화나서 그런 게 아니야, 이건 올바른 것을 가르쳐야 해”. 하고 화를 내면서 가르치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 후 성령께서 내게 잠잠히 말씀하시기를, “너는 성령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너는 네 본성에 걸려서 가르치는 말을 네 본성으로 한 것이라”고 하셨다. 성령님은 이런 것까지도 분별케 하신다. 우리가 말할 때 분해서 하는 말인지, 상대방을 생각해서 하는지 상대방이 느낀다. 절대 그 말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저 사람 나를 치네. 어떻게 저렇게 성질낼 수 있어” 절대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령님은 여러분의 본성과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깊게 보게 하신다. “아니, 인간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니다. 성령께서 정말 24시 통치하길 원하신다. 이렇게 성령의 통치를 받는 사람은 계속 발전하게 된다. 인생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여러분과 제가 주객이 바뀌어야 한다. 믿음과 의탁과 순종의 24 체질로 바뀌어야 한다. 그럴 때 누가 나타나는가? 성령님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된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한 것은 자기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자기가 알고 체험하고 누리고 있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상소를 한 것이다.
2. 여러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으로 일에 승리하고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믿음이 전제가 안 되면 이 삶이 안 된다. 이론이 아니라 여러분 심령에 성령으로 깨달아지고 확신 되고 자기 것이 되는 그 믿음이다. 문제를 이길 수 있는 그 믿음이다. 수년 동안 교회 표어를 말하고 있다. 지속 되어야 한다. 될 때까지 해야 한다. 내년에도 지속될 목표이다. 영적 가나안 정복을 해야 한다.
1) 전도는 영이 죽은 인본주의 이성에 설득하거나 호소해서 그 사람을 믿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성에 잘 납득시키면 믿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 성령님이 영을 살려야 믿을 수 있다. 사모님이 공대 전도를 함께 하고 있다. 공대 전도를 처음 하면서 고민했다고 한다.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지 몰라서... 몇 주 기도 중에 성령님이 담대함을 주셨다. 처음부터 교회 사모라고 밝히고 전도하러 왔다고 말하기로 했다. 전도는 영적으로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은 못 듣고,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듣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공대생들 눈치를 봤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들이 머리가 좋아 공부는 잘해도 영적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불안하고 눌릴 게 아니라 그들이 불안하고 눌릴 자들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현장에 들어갈 때 당당함과 담대함으로 들어갈 수 있다.
2) 전도는 사람 열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일은 사람의 열심으로 하면 된다. 영을 살리는 일은 사람 열심으로 안 된다.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하시는 일에 우리가 도구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포항공대니깐 안 된다가 아니라 포항공대니깐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은 성삼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보내셔서 구속 사업을 다 이루게 하셨고 보좌에 오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전도자와 피 전도자에게 동시에 역사하신다. 여러분이 전도 현장에 그리스도를 믿고 의탁하고 들어갈 때 연출하시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된다. 만남을 연출하신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있었다. 여러분이 전도의 시간표가 되어서 이 메시지가 심령에 부닥쳐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시간표가 아닐까 봐 염려했다.
여러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라. 우리가 정확하고 완전한 복음을 받았다고 자부하는데 우리보다 복음의 균형과 확신을 갖고 있지 않은 교회가 더 전도 잘하는 이유는 뭐겠는가? 우리는 오래 믿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짧게 믿은 사람이 전도를 더 잘하는 이유는 뭐겠는가? 어느 것이 더 좋은 건가? 복음도 정확하면서 거기에다 전도력이 있어야 한다. 성령의 확신과 능력이 붙어야 한다. 근데 이것은 그냥 지식으로, 이해력으로 복음을 듣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믿음과 의탁과 순종이 필요하다. 그것에 따라서 성령님의 통치가 달라진다. 제가 말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그냥 생기지 않는다. 물론 믿음이 은혜로 주시지만, 그러나 주객을 바꾸고 믿음과 의탁과 순종의 체질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평상시에 삼 집중하는 거다. 문제 있을 때 더 집중하는 거다. 그럴 때 영적 상태를 확 바꾸어 주신다. 이것도 중요한 복음의 내용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 말만 잘 해서 복음의 능력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에게 주셨던 세 가지 축복을 실제 누려야 한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님은 능력도 주시고 전도 운동의 문도 여신다. 10가지 비밀의 첫 번째가 독립이다. 어딜 가든지 혼자 살아남는다. 실제적으로 누려야 한다.
3. 고전 2:2~5을 다시 붙잡기를 바란다.
1) 전도할 메시지와 전도 방법을 점검하라.
전도의 핵심 메시지는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인간의 진짜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 떠난 문제라는 것과 그로 말미암아 파생된 결과와 그 해결책이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인 것을 전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도 이것을 믿어 구원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 구원의 큰 은혜와 은사를 받아 놓고도 파당을 만들어 서로 판단하며 분쟁했다. 복음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들 속에 있는 죄의 본성과 그 속에서 형성된 체질을 잘 못 봐서 그렇다. 그래서 이들은 교만했다. 자기들의 지혜로 믿은 줄 알고 은사를 받은 줄로 생각했다. 하나님의 은혜받은 자로서 서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했고 파당을 만들어서 자기들이 진정으로 깨달은 자라고 생각했다. 서로 판단하고 분쟁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알게 하려고 내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했다. 너희가 너희 지혜로 믿은 것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으로 믿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나는 것은 여러분 속에 와 계신 성령님이 믿음이 자라게 하시는 것이다. 문제를 만나서 집중하게 만들어서 믿음이 자라게 하신다. 평상시에 기도하는 사람은 문제 만나면 반드시 집중하게 되어있다. 문제가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아니야 그게 은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성도는 그렇게 된다.
2) 여러분 전도의 주체는 성령이시다.
고전 2:10에 보니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신다고 되어 있다. 고전 2:12에는 “우리가 세상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도록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셨고 치유 갱신 회복하시는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전도하는 여러분에게도 성령님이 역사하고 복음 받는 대상에게도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고린도 교인은 구원을 은혜로 받고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해 놓고도 아직 체질은 창 3,6,11장의 본성과 인본주의 이성으로 판단하며 사고, 처세하는 체질이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와 기도에 대해서 모르면 항상 이렇게 살아야 한다.
결론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 창조주에 대한 믿음,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성령님께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이 바르게 될 때 7 망대로 세워지게 된다. 성삼위 하나님을 믿으므로 보좌 배경 누리게 된다. 삼 시대인 과거 현재 미래 다 승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오력이 오게 되고 흑암 권세를 꺾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주님의 비젼이 나의 비젼이 되기 때문에 나의 CVDIP가 나온다. 그런 사람이 모인 교회는 후대와 다민족 살리고 치유하며 기도하는 교회가 된다. 세 뜰을 갖추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나오면 지금도 하나님이 얼마든지 싸워 주신다. 그 일에 내가 통로가 되면 행복해진다. 불신자가 행복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육신적으로 평안하고 만족되어서 행복한 것이다. 육신적인 평안이다. 없어질 평안이고 다운될 평안이고 하나님 앞에서는 의미가 없는 평안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기가 받은 사명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18절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다 영적인 얘기다. 저와 여러분이 할 일도 이것이다. 내년도에 삼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실제적으로 회복되길 축원한다. 실제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기를 축원한다. 그래서 하는 일에 승리하면 다락방 전도 운동으로 들어가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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