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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5년 1월 19일 주일예배 - 두 종류의 일꾼(빌 1:12~18)

by 현상금 2025. 1. 19.

두 종류의 일꾼(1:12~18)

 

 

 

 

 

지난주의 제목이 심장으로 사모한 교회였다. 오늘 제목은 두 종류의 일꾼이다. 여러분이 참된 일꾼으로 계속 성장하려면 평상시 지속해서 해야 할 것이 있다. 참된 일꾼이 되기 위해 여러분은 먹고 사는 것에 늘 매여 있으면 안 된다. 경제 문제에 대해 주님은 보장하고 계시다. 경제 문제를 해결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뚫려야 한다. 경제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 먹고 사는 것에 묶이는 게 아니라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누리므로 그것이 수단이 되는 전환이 필요하다. 이걸 기억하며 참된 일꾼으로서 여러분이 다음 것을 지속해야 한다.

1. 내가 빠졌던 사탄의 함정과 체질 속에서 계속 빠져나와야 한다.

3,6,11장의 본성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영적 상태가 안 좋으면 언제든지 본성과 엣 체질로 돌아간다. 기도 못하고 있으면 그렇게 된다. 기도되는 사람은 기도할 때와 안 할 때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우리는 3,6,11장의 본성과 영이 죽은 인본주의 이성으로 오래 살아왔다. 3,6,11장의 본성이 다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 중심이 다 나쁜 것이 아니다. 자기 보호 본능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자기 자존감도 있어야 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 살리는 일을 그만큼 못한다. 육신이 있으니, 육신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세상도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다. 그런데 영이 죽으니깐 이것이 사탄의 통로로 쓰이게 된다. 우리가 가진 이성도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인간만큼 이성이 탁월한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이성도 영이 죽으니깐 사탄의 통로로 쓰이는 거다.

북한 사람들이 외부 정보는 차단된 채 북한 체제 속에서 거짓 선동과 교육을 받아 살아왔다. 그 체제 속에 있으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탈북해서 한국으로 오면 완전히 속은 줄 알게 된다. 구원받은 것도 똑같다. 영이 죽어 인본주의 체제로 살다가 거듭나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인생이 돼보라.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된다. 우리가 과거 사탄의 지배하의 인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았다. 3,6,11장의 내가 주인 되어 산 것이 근본 뿌리 본질로부터 잘못된 것을 몰랐다. 그래서 여전히 나, , 나 하면서 살고 있다. 이게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삶의 체제 전체가 인본주의 내 기준, 동기, 방법으로 살아왔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 성령님의 통치받는 방법으로 살지 않았다. 항상 내가 삶을 염려하면서 내 머리와 내 능력으로 해결하려는 삶을 살았다. 근본적으로 하나님 떠난 불안으로 살았다. 그러니 염려하는 것이 당연한 줄로 생각하며 살았다. 이제 성령의 통치받는 삶을 살게 되면 , 그거 염려하는 삶은 틀린 거네. 나 중심으로 산 게 틀린 거네깨닫게 된다. 이게 보여야 한다. 불신자는 이게 안 보인다. 구원받은 신자라도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이게 보인다.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생각과 영의 말씀으로 인도받아야 내면에 빛이 비춰 진다. 그러면서 , 내가 창 3,6,11장의 본성에서부터 올라오는 느낌, 감정, 생각에 참 많이 빠져 살았구나깨달아진다. 성령님이 주시는 느낌과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수록 성령님을 의지할 수 있다. 의지할수록 치유 회복과 전환을 체험하게 된다. 이것을 뚜렷이 느껴야 한다. 그러면 과거부터 내가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보이게 된다. 보이는 만큼 전환이 일어난다. 저도 영적 상태가 안 좋으면 3,6,11장의 본성으로 반응한다. 예를 들어 주일에 성도가 많이 빠지면 왜 이렇게 안 오는가 하면서 성도 개인을 염려하기 보다 오늘 예배 자리가 빌 것에 대해 염려한다. 나를 위해 염려한느 거다. 주님은 너를 위해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너는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로 내 사랑으로 살면 된다고 하신다. 보통 인간 관계에서 상처받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내 동기에 걸리니깐 상처받는다. 내 동기에 안 걸리면 상대가 잘못했을 때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체제가 이미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의 기준, 동기, 방법이 다 바뀌어져야 한다. 누가 우리 안에 통치하시는 건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거다. 나는 믿음의 인생으로 바뀌는 거다.

3. 그래서 결국 주객과 체질이 180도 전환 될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여러분은 전환이 많이 되었는가? 드디어 3,6,11장의 내가 주인 되지 않고 성령님이 주인 되시는 거다. 내가 살지 않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인생으로 바꾸는 거다.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의 기준, 믿음의 동기, 믿음의 방법으로 살게 된다. 내 생각이 아닌 성령의 생각으로 살게 된다. 이걸 발전시키기 위해 24시 기도가 된다. 이런 축복이 있는 사람은 행복해진다. 희열이 생긴다. 오늘 제목이 두 종류의 일꾼이라고 했다. 두 종류의 일꾼의 차이를 여러분이 분명히 깨닫기를 바란다.

 

본론

1. 복음의 전파의 진전

1) 바울은 갇혀 있었고 빌립보 성도들은 걱정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12절에,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고 했다. 형제 중에는 그의 투옥이 복음의 퇴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일수록 현실에 민감하다. 불안과 염려를 가지고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불신앙 하기 쉽다. 이에 반해 바울은 자기가 당한 일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13절에,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에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했다. 바울이 자기가 갇힌 것이 실제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로마로 오는 항해 중에 백부장과 그 배에 탄 276명의 사람이 복음을 듣고 믿었다. 로마에 도착해서도 계속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강론했다. 자기를 지키던 시위대 병사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이들은 가이사 궁궐 시위대 병사들이다. 한 명씩 돌아가며 보초를 섰는데 그들이 복음을 들었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진전인 것이다. 2년이나 이렇게 했으니 적은 수가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다.

2) 형제들에게 미친 효과

14절에,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고 했다. 다수의 형제가 바울의 의연한 믿음의 태도에 도전을 받았다. 주님이 그에게 하신 일과 그의 믿음을 듣고 담대해졌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놀랍게 역사하시는구나감동받은 것이었다. 그 결과 그들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복음 전파의 진전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두 종류의 일꾼이 있었다.

 

2. 두 종류의 일꾼(15~18)

1) 투기, 분쟁으로 또는 착한 뜻으로 복음 전함

15,16절에 보면,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 되어있다.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한 사람은 누구겠는가? 로마 교회는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유대인 신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그들은 아직 율법적 신앙을 가진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바울을 견제하고 투기했다. 교회 앞에서 자기 위치를 세우고자 이들도 열심히 전도했다.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거다. 이런 사람들은 열심은 있으나 자신의 3,6,11장의 본성과 체질을 못 이기는 거다. 안 보이니깐 그렇다. 거기에 빠지는데도 못 의식한다.

그러면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바울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따르며, 믿음이 고취되어 전도한 사람들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전도한 일꾼들이다. 17절에, 바울은 자기를 투기한 사람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하였다. 이 사람들은 바울을 비방하면서 전도했다. 그러나 바울의 중심과 자세는 어떠했는가? 본성으로는 속상한 일이다.

2) 바울의 중심과 자세

18절에,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바울이 성격이 좋아서 이런 것인가? 참을성이 좋아서 이런 것인가? 아니다. 3,6,11장의 본성의 내가 주인 되어서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 체질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셔서 성령으로 반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기도의 삶으로 들어가면 가능하다.

영성이 없으면 먹고 사는 것에 걸린다. 눌리고 은혜도 안된다. 기독교는 환경을 이기는 신앙이다. 환경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믿어지므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 극복하는 가운데 기도해서 응답받는 것이다. 물론 초신자는 이게 어렵지만 여러분이 이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 때문에 눌리고 예민해지는 것을 극복하는 기도가 먼저 되어야 한다. 영적 상태를 뒤바꾸고 믿음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염려하지 아니하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대부분 걸리는 이유는 나 때문에 걸린다. 성령님이 통치하시면 나 때문에 걸리지 않는다.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가 된다.

사도 바울은 롬 6:3,4에서 세례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세례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구원받았어도 3,6,11장의 본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그런 본성의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6:11절을 고백하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어떻게 남에게 평가받느냐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못 견디는 것이 아니다. 2:20이 되었다. 인본주의 자존심이 아니라 믿음의 자존심으로 사는 거다. 자존심에 걸릴 수 있지만 이런 내가 죽었음을 인정하면 쉬워진다. 바울은 사람에게 어떻게 평가받느냐는 것에는 초연했고 그리스도께 집중했다. JOY의 삶이 되었다.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백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으로 말미암는 삶이다.

3,6,11장의 본성 속에 있는 자신이 아직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못 산다. 남의 평가를 견디지 못한다. 여러분은 안전의 동기, 자존심의 동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 받아 버려야 한다. 이게 되면 사람 살리는 삶으로 들어간다. 바울은 항상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누렸기에 이런 부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임마누엘을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누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아가페 사랑이 누려지면 남편이 덜 사랑해 줘도 극복이 된다. 목사님이 사랑을 덜 해줘도 극복이 된다. 근데 자존감도 없고 사람한테 사랑을 받아야 만족하고 사람에게 의존적인 사람은 사람한테 잘 걸린다. 걸리는 사람은 자기도 남을 막 비판하는 사람이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만 전파된다면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할 수 있었다. 바울의 중심과 자세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이다.

 

3. 바울과 같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1) 내가 빠졌던 사탄의 함정과 체질 속에서 계속 빠져나와야 한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것만 하더라도 감사해야 한다. 이 구원은 영벌에서 영생이다. 지옥에서 천국이다. 그런데 치유 갱신 회복까지 되면 더 감사해야 한다. 이렇게만 되어도 감사한데 주님은 거기서 끝이 아니시다. 광야에서 체질 훈련시키신 후에 그냥 두지 않으신다. 믿음과 의탁과 순종의 체질이 된 사람은 가나안 정복에 쓰였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쓰였다. 마찬가지다. 우리도 영적 체질 훈련이 되어서 치유 갱신 회복된 사람은 사람 살리는 영적 가나안 정복의 일꾼으로 쓰인다.

2)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사탄의 함정과 체질 속에서 빠져나오면 내가 거기에 살았기에 현장을 영적으로 보는 눈이 열린다. 내가 복음으로 빠져나왔기에 저들도 복음이 아니면 빠져나올 수 없다. 그래서 나를 전도자로 삼으셨다고 여겨진다.

 

결론

바울의 중심과 자세를 우리도 가질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소원에 오직 통로가 되고 있다. 사람의 평가에는 그렇게 연연하지 않는다. 왜요? 자기가 살지 않고 그리스도가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에 그것을 더 확실히 얘기하겠다. 갇히게 된 것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는 3,6,11장의 본성으로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만큼 실제 성령님의 임재 통치 인도 역사를 체험했던 것이다. 여러분을 바울처럼 세우실 능력이 그리스도께 있으시다.

강단에서 하는 이런 메시지를 여러분이 잘 잡아야 한다. 제가 이런 부분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하는데 대부분 이렇게 잘 강조하지 않는다. 이 메시지만 옳고 이 메시지만 잡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 강단 메시지의 흐름을 타면 이 메시지의 응답을 받는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세상이 타락한 것은 인간 타락이 원인이다. 하나님의 최고 관심사는 뭔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회복이다. 인간이 회복되면 그가 하는 일, 경제가 회복된다.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 나라 위해 사는 사람이 된다. 신명기에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부요케 되면 내 능력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염려한다고 되어있다. 광야 때 낮추신 것을 기억하고 재물 얻을 능력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축복하셔서도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되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