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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5년 1월 22일 수요예배 - 두 종류의 일꾼2 (빌 1:12~18)

by 현상금 2025. 1. 22.

두 종류의 일꾼(1:12~18)

 

제목이 두 종류의 일꾼인데 여러분이 주님의 일꾼으로 성장하려면 계속 지속해야 할 것이 있다.

1) 내가 빠졌던 사탄의 함정과 체질 속에서 계속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는 기도 안 하면 이 본성과 체질로 살게 된다. 우리 과거 체질이 3,6,11장의 본성과 영이 죽은 인본주의 이성으로 살아온 체질이다. 이게 문제라는 것이 얼마나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

북한 주민의 예를 들었다. 그들은 북한 정권의 거짓 선동과 교육을 받아 살고 있다. 그 체제에 적응하며 거기서 잘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들은 남조선 보다는 더 잘 산다고 믿었고 남조선을 우리가 해방해야 한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 체제 속에 있으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탈북해서 한국으로 와야 완전히 속은 줄 알게 된다.

우리의 구원도 이와 같다고 했다. 영이 죽어 인본주의 체제로 살다가 거듭나서 보좌 배경을 누리며 임마누엘을 누리는 체질이 되면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된다. 3,6,11장의 내가 주인 되어 산 것이 근본 뿌리 본질로부터 잘못된 것을 알게 된다.

2)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삶 전체가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 체질로 살았음을 알아야 한다.

영이 죽음으로 인본주의 기준, 동기, 방법으로 살아왔다. 하나님이 살아계심도, 그의 주권도, 그 배경도, 그 성령님의 인도로 사는 법도 모르고 살았다. 보이는 것과 내 능력만 믿고 살았다. 내가 염려하면서 항상 내 머리와 노력으로 해결하려는 삶을 살았다. 그러니 염려하는 것이 당연한 줄로 생각하며 살았다. 이게 틀렸다는 것이 보여야 한다. 내가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보여야 한다. 보이는 만큼 전환이 일어난다. 내 힘으로 사는 체질에서 믿음의 체질로 바뀌어야 한다.

3) 그래서 결국 주객과 체질이 180도 전환이 되어야 한다.

3,6,11장의 내가 주인 되지 않고 그리스도가 주인 되어야 한다. 내가 살지 않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인생으로 바꾸는 거다. 이걸 점점 발전시켜 24시 기도가 된다. 바울은 실제 삶의 주객과 체질이 180도 전환된 사람이었다.

 

본론

1. 바울은 갇혀 있었고 빌립보 성도들은 걱정하고 있었다.

1) 그런데 바울은 복음의 전파의 진전을 이루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게 12절 말씀이다. 형제 중에는 그의 투옥이 복음의 퇴보가 된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었다. 이에 반해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13절에,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에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제가 드렸다. 로마 오는 항해 중에 276명이 다 복음을 들었고 상당수가 구원받았다고 여겨진다. 로마에 도착해서도 2년 동안 계속 찾아오는 사람들, 자기를 지키던 시위대 병사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다고 여겨진다. 적은 수가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다.

2) 형제들에게 미친 효과

14절에,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고 했다. 바울의 의연한 믿음의 태도에 형제 중 다수가 도전을 받았다. 그 결과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이것도 복음 전파의 진전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두 종류의 일꾼이 나온다.

 

2. 두 종류의 일꾼(15~18)

1) 투기, 분쟁으로 복음을 전한 일꾼

15,16절에 보면,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 되어있다.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한 사람은 누구겠는가? 로마 교회는 유대인 신자라고 했다. 이들은 로마교회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율법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이 바울을 견제하고 투기했다. 교회 앞에서 자기 위치를 세우고자 했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거다. 바울을 비방하면서 전도했다. 열심은 있었으나 이들의 열심은 바른 열심이 아니었다. 자신의 3,6,11장의 본성과 체질을 못 이기는 자라고 했다. 안 보이니깐 그렇다고 했다. 17절에, 바울은 자기를 투기한 사람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하였다.

2)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일꾼

이들은 바울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전도한 일꾼들이다.

 

3. 이에 대한 바울의 자세

18절에,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 바울이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 - 성격이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참을성이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라 했다. 바울은 3,6,11장의 본성의 내가 주인 되지 않고 거기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3,6,11장의 본성과 분리가 되어서 성령으로 반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그는 세례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 6:3~4, 11 세례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았음을 의미한다. 3,6,11장의 본성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런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2:20이 되는 것이다.

3) 이런 사람은 남에게 평가받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못 견디지 않는다. 자존심에 걸릴 수 있지만, 이런 내가 죽었음을 인정하면 쉬워진다. 바울은 사람에게 어떻게 평가받느냐는 것에는 초연했고 그리스도로 사는 것에 집중했다. JOY의 삶이 되었다.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백하였다.

3,6,11장의 본성 속에 있는 자신이 아직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못 산다. 남의 평가를 견디지 못한다. 자기 안전의 동기, 자존심의 동기에 잡혀있는 사람도 이렇게 못 산다.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누리면서 이게 해결되어야 한다. 이게 되면 사람 살리는 사람이 된다.

 

결론 바울은 우리의 모델이 된다.

우리가 바울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서론에 답이 있다. 내가 빠졌던 사탄의 함정과 체질 속에서 계속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는 구원 받은 것만 하더라도 감사해야 한다. 치유 갱신 회복까지 되면 더 감사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했다. 주님은 그 사람을 사람 살리는 영적 가나안 정복의 일꾼으로 쓰인다. 3,6,11장의 본성과 그 체질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현장 보는 눈이 열린다. 그래서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