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두 번째 기도(엡 3:14~21)
바울의 두 번째 기도(엡 3:14~21)
제가 여러분에게 실수한 부분을 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삶의 체질이 안 될 때 되게 하려고 강단에서 소리치며 푸싱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면 지난번 17차 집중 훈련 마지막 10일 기도회 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제가 소리쳤던 적이 있어요. 혹시 기억해요? 근데 소리쳤는데 거기에 도전받아서 기도에 참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때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여러분의 삶의 틀을 바꾸는 것은 푸싱해서 안 되는구나. 이게 결국 여러분이 은혜 받아야 되는구나. 그래서 제가 복음 누리는 것을 보여주고 힘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구나. 제 안에 그리스도가 누려질수록 여러분에게 더 힘 있는 메시지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증거와 모범을 보여주어야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증거와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면 그 어떤 사람도 힘을 얻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 통로가 되어 주어야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언약 백성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만들어가고 계신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최고의 작품이 되도록 끝까지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고 계셔요. 여러분의 운명이나 소속이나 신분이나 배경이나 여러분의 통치 체제가 이미 지금 바뀌었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이게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십자가의 은혜가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한 것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거거든요. 이걸 알고 믿도록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계속 인도와 응답을 받을 수 있도록 언약 신앙에 더 확실하게 서시면 됩니다. 언약 신앙은 뭐예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님을 통해서 이루실 그 언약을 믿는 게 언약 신앙이죠. 거기에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여 열심을 내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삶의 방식이 내가 힘쓰고 애쓰는 체질에서 그리스도를 힘입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체질로 모든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하면 경험에 의한다면 결국 그리스도를 힘 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기 위해서는 기도 시스템, 기도 체질과 불가피한 관계성을 맺고 있는 거예요. 기도라는 거는 그냥 이해하는 게 아니잖아요. 실제 그리스도가 내 안에 통치하도록 만드는 거죠. 화날 때도, 문제 일어났을 때도 그렇게 만드는 거죠. 오늘 제목이 바울의 두 번째 기도인데 이 말씀을 드리기 전에 제 경험을 먼저 좀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경험한 기도의 발전 단계를 몇 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1. 기도의 발전 단계
1) 첫째는 영이 죽었을 때 100% 내가 주인 되어 살았습니다.
그때는 그야말로 창세기 3,6,11장의 본성과 내 인본주의 합리적 이성으로 살았던 때였습니다. 그때는 기도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삶이 전혀 안 되던 때고 100% ‘내가 체질’이죠. ‘내가 체질’ 그게 불신자 상태였습니다.
2) 두 번째는 구원받고 생명을 얻었어요.
성령이 임하신 거예요. 그때부터 기도가 되기 시작했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영적 교제가 시작된 거예요. 그러나 구원 얻고 구원의 확신도 얻었지만 내가 주인으로 살면서 기도는 조금씩 조금씩 발전됐던 것 같아요. 이게 구원의 체험을 어떻게 강력하게 하느냐에 따라서 기도의 발전은 개인차가 많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더 강한 사람은 더 기도가 잘 되겠죠. 그리고 이 기도로 살아가는 삶이 앞서 간단 말이에요. 저는 기도를 군대 가서 배웠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군대에 하나님이 카츄샤를 갈 수 있었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일반 병으로 가는 걸 더 기뻐한다는 누구의 말씀을 듣고 저는 카추사로 가는 거를 포기하고 일반 병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은 가자마자 이등병 때 군종이 되게 만드시고 대대인데 거기에 예배당이 있더라고요. 근데 군목은 없어요. 군종이 주일날 소집해서 설교해야 하는 거에요. 제가 전도사도 아니었을 때 부대에 군목이 없으니까 군목 역할을 제가 대행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저를 위해서 예배해 놓은 자리죠. 그때부터 기도를 내가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군대에서 보초 시간에 주, 야간 보초 시간에 기도 훈련을 하나님이 시키셨다 하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게 제가 정시 기도가 시스템이 될 수 있었던 그런 상황이 됐던 거죠. 제대할 때 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너는 이제 이 군이라는 눌리는 환경이 제거되는데,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가는데 지금 여기서 네가 기도했던 것처럼 네가 제대해서도 계속 기도할 수 있겠느냐? 이런 말씀을 병장 때 주셨어요. 아무튼 정시 기도를 배우게 된 것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체질 훈련이었죠. 군대에서 정시 기도를 배웠는데도 그래도 생각해 보니까 오랫동안 내가 주인으로 살았어요. 한마디로 창세기 3,6,11장의 본성과 인본주의 이성으로 오랫동안 산 거예요. 그게 태어날 때부터 나의 본성이니까 그래요. 이게 하나님 떠나서 영이 죽어서 사단이 이렇게 함정에 빠뜨렸구나. 그것까지는 안 와닿았던 때였어요. 사실 영적 사실을 지금처럼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내 열심 플러스 믿음이에요. 내 열심과 믿음이 섞이고, 내 동기 가지고 하는 부분과 또 은혜받아서 믿어 하는 부분이 섞여서 신앙생활을 한 거예요.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을까요? 대다수가 그래요. 이게 구분이 되어야 해요. 그 당시에는 확실히 언약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다락방 들어와서 영적 사실 알고 영적 문제에 빠진 인생은 하나님의 언약 신앙을 분명히 가져야 하는 거거든요.
3) 세 번째 그러던 제가 이제는 문제, 일, 사역, 전도, 경제, 모든 것을 매사 맡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나의 기쁨이 내 안에 그리스도에게 있어요. 나의 기쁨이 돈에 있지 않고 환경에 있지 아니하고 사람에게 있지 않아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 있어요. 왜냐하면 그분이 진짜 살아주시니깐 그래요. 감사하게도 저의 주객과 체질이 바뀌고 믿음과 의탁과 순종의 체질이 되도록 주님이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게 여러분과 집중 훈련하면서 이런 체질로 하나님이 바뀌도록 해 주셨어요. 물론 지금도 뻔질나게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본능적으로 올라오고 본능적으로 빠지는 습관들이 있거든요. 거기에 시행착오를 아직도 겪습니다. 그런데도 그거를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거예요. 성령께서 그것조차도 선용 되게 만들어 주셔요. 나의 잘못까지도, 나의 넘어짐까지도 그걸 통해서 나는 더 그리스도께 뿌리내리는 기회로 바꾸어 주시더라 이 말이에요.
4) 네 번째 그래서 지금은 쉴 때도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추고 주님으로 말미암는 삶을 살고자 그렇게 인도받고 있어요.
사실 예전에 쉴 때는, 내가 하루 종일 애썼으니까 쉬자 그럴 때가 있잖아요. 쉴 때 보통 어떻게 쉬어요? 보통 육신적으로 쉬어요. 육신적으로 재미있는 거, 호기심 거리, 감각적인 거 그걸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그러거든요. 인본주의로 내가 애쓰면서 살다가 스트레스 받은 거를 인본주의적 방법으로 푸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영적 상태는 안 좋아져요. 그래서 이제는 쉴 때 그렇게 푸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에 관심을 맞추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한 영혼인데,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중한데 그 영혼의 구원과 회복에 나의 관심과 생각을 늘 갖는 거에요. 그것을 위하여서 내가 준비해야 할 것들, 거기에 필요한 것들을 위한 시간으로 쓰는 거예요. 이렇게 살면 재미 되게 없겠죠? 사실 육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이거는 말이 안 되는 삶이거든요. 근데 성경에 나오는 렘넌트 7명이 다 이런 삶을 살았어요. 그렇게 하나님이 24시로 몰아가셨어요. 그래서 주님과 동행하도록 만들었어요. 주님으로 사는 삶이 행복합니다. 주의 성령께서 모든 진리와 생명과 지혜의 근원이 되시잖아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삶을 사는 것이 회복해야 할 삶이에요. 이게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너졌던 삶인데 그리스도에게까지 다시 회복되게 하기를 원하세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되도록 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영적인 삶을 살고 그리스도가 주인 되는 인생 전환이 되어져서 24시로 발전하게 되면, 그분의 통치받는 삶이 행복한 삶이 돼버려요. 저는 여러분이 이 삶을 동일하게 배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게 되면 행복해지고, 이 비밀을 답 줄 수 있는 제자가 돼요.
2. 지금 세상은 고통의 원인이 뭔지도 모르고 살고 있어요.
1) 주로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 찾아요.
외부 환경이나 외부 문제의 문제만 이유인 줄 알고 산다 이 말이에요. 외부 문제가 크죠? 창 3장의 범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면서 환경의 저주, 육신의 저주가 왔기 때문에 이 외부 문제는 필연적이에요. 그런데 그게 결과적인 문제죠. 세상에는 전문인이 굉장히 많아요. 과학자, 의사, 기술자, 각종 전문인이 지금 수없이 많죠. 박사들이 너무너무 많죠. 근데 물질적인 부분에서만 전문인이지 영적 사실은 모르는 거예요. 도대체 왜 세상의 고통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의료인들은 육신의 질병과 정신에 대한 연구, 뇌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발전시켰어요. 뇌과학이 굉장히 지금 발전되고 있거든요. 이 의료인들이 뇌와 육신의 질병의 상관성을 밝히는 일도 많이 하고 있어요. 근데 뭘 몰라요? 근본적으로 인간이 영적 존재라는 사실을 일반 의료인들이 몰라요. 그렇기에 진정한 원인을 모른단 말이에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죠. 그래서 답답하기도 하고 그게 심화 하면 우울이 올 수 있잖아요. 그게 암이 될 수도 있잖아요.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 인간관계 스트레스로 우울이 오고 또 암으로 진행될 수 있어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왜 인간이 왜 불안한지를 몰라요.
어떤 사람이 답답함과 또 하도 성질이 나서 화병이 생겼어요. 이 사람 위로받는 방법이 뭘까요? 어떤 사람은 잠자는 게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먹는 게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TV 보는 거, 영화 보는 거, 음악 듣는 거 이런 거 할 수 있잖아요. 근데 빠질수록 몸에 아주 안 좋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은 뭐 있어요? 담배 술 게임 마약 이런 것들은 자기도 망하고 주변도 망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거죠? 근데 이런 걸 왜 계속해요? 그걸 하니까 해소되니까, 마음에 위안을 얻을 수 있고, 스트레스가 풀리니까 그걸 자꾸 한다고요. 이런 것들이 이 사람에게는 쉬는 것이고 즐거움이 됩니다. 그러나 공허하거나 많이 우울하거나, 많이 답답하거나 하는 사람은 그냥 대충 해 갖고 이게 안 풀리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일수록 답답한 것을 풀 수 있는 거라면 중독될 때까지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왜 사람이 우울하고, 왜 답답할 수밖에 없고, 왜 화병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줄 수 있어야 해요. 그게 단지 외부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닌 것이다.
암이 문제가 아니라 암이 올 수밖에 없는 그 내면의 상태가 더 문제예요. 술이 문제가 아니라 술을 먹을 수밖에 없는 그의 영적 상태와 빈 마음이 더 문제예요. 마땅히 기쁘고 행복이 충만해야 할 마음이 지금 비어 있고 눌려 있는 거예요. 근데 그 사람은 자기는 원래 어릴 때부터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연한 줄로 생각하는 거예요. 원래 그랬는데 저놈이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에 나는 그래서 힘들었어어. 저 놈 때문이야 이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아니죠. 그게 근본 문제가 아니죠.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져야 할 영적 상태가 무너졌기 때문에 그래요.
사단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빈 마음과 빈집이에요. 빈 마음과 빈집. 여러분 아는 성경 구절이 있죠? 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느니라”. 비고 청소되어 빈 집이잖아요. 그리스도가 딱 주인으로 모셔지지 아니한 사람의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아무리 종교 생활하고 아무리 율법적인 생활을 해도 그거는 그냥 수행이고 수양일 뿐이에요. 여전히 비어 있어. 그러니까 좋다, 귀신이 들어가요. 오히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한테 귀신 얼마든지 들어가요.
이런 걸 전문인도 박사님도 모릅니다. 보이는 문제만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 세상은 굉장히 애쓰고 있는 거예요. 그 노력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고 그것도 성령 충만해 갖고 해야 해요. 하나님이 사실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거잖아요. 과학 할 수 있고 기술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거예요. 근데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간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거예요. 결국 사단이 12가지 전략으로 모든 사람을 몰아넣고 있는 거예요. 지금 이런 12가지 운명의 문제에 빠져있는 불신자에게 그 답과 해결책을 알려주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을 완성하셨고 성령을 보내셔서 빈 마음 눌린 마음, 불안한 마음을 치유해 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영 교제하는 영, 하나님을 알고 믿고 충만한 영적 상태로 바꿔주시는 그 일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완전한 신분 권세와 보좌의 축복과 임마누엘을 허락하시는 거예요. 성령으로 임마누엘을 허락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이 더 이상 불신자 소속, 불신자 운명, 불신자 상태에 있지 않도록 거기서 빼내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불신자 운명은 끝났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성령으로 오시는 그 순간에 운명, 소속 끝났어요. 그런데도 아직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그게 사단의 통로가 되어서 아직 빠질 수 있어요.
영적 삶의 시스템이 없는 사람들은 문제 있을 때만 하나님 찾고 평상시에는 룰룰 랄랄 산단 말이에요. 근데 우리가 이 영적인 사실과 복음의 말씀이 딱 정립되면 인생 가치관이 달라지잖아요. 인생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 다 달라져요. 그래서 그냥 평안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니까요. 그냥 안정권이 들었으면 세상적으로 좀 더 놀면서 살자. 그게 아닌 거예요. 여전히 우리는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과 그 체질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지금 다락방에서 권세의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근데 우리 속에 죄의 본성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에 죄와의 싸움도 많이 얘기해야 해요. 어떤 사람은 권세 얘기 듣는 것만 기뻐하고 세밀한 내적 통찰과 이 영적인 싸움과 죄와의 싸움은 별로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의외로 다락방에 많아요.
우리가 사단의 통로에 빠질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조차 선용됩니다. 낙심 좌절할 이유가 안 돼요. 왜요? 이런 거랑 같아요. 배에 탔어요. 이 배가 미국 가거든요. 미국 가면 거기에 모든 것이 다 준비 되어졌다고 칩시다. 우리는 이제 천국선에 탄 거죠. 천국선에 탔는데 배 안에서 넘어져도 괜찮아요. 배 안에서 코 깨져도 괜찮아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습니까? 근데 왜 하나님이 넘어짐을 허락하나요? 자신을 보게 하시는 거예요.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될 이유를 보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넘어짐이 우리한테 선용 된다니까요. 낙심 좌절하지 마세요. 얼른 깨닫고 회개하고 관계 회복하고 그리스도께 계속 뿌리내리는 기회가 되는 거예요. 뿌리내려서 24시 될 기회로 만들어야 해요. 여러분의 문제는 이 세상과 이 세계의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해결 받고 치유되고 회복되게 만든 복음은 세상에 답이 된다니까요. 드러난 문제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손 가락질 당할 수 있는 있지만 그 문제가 그 사람에게는 복음 받을 기회예요.
여러분은 나타나는 문제, 드러난 문제를 가진 자를 볼 때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중에서도 저 사람은 안 돼, 저 사람 이미 아주 굳었어. 그래도 계속 우리가 복음의 관점을 가지고 그 사람 눈높이에 맞춰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힘들어요. 그분이 제일 원하는 거 그 마음 알아주는 거 제일 원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이 율법적으로 볼 게 아니고 복음적으로 보면서 답 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제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제자들로 딱 서야 해요. 그렇죠? 그러면 이 사람은 계속 살릴 수 있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요. 이 사람은 환경이나 주변 보면서 자기가 나자빠지지 않는다고요. 딴 사람 눈치 보면서 딴 사람 잘 되면 거기에 편승하고, 딴 사람이 힘 빠져 있으면 같이 힘 빠지고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3. 오늘 본문에는 바울의 두 번째 기도가 나옵니다.
3장 14절에 보면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모든 만민에게, 모든 피조물에게 이름을 주신 분이에요. 그분은 하늘과 땅의 대 주재가 되십니다. 그분 앞에 지금 바울이 기도하는 거예요. 대 주재 되시는 하나님이 바울에게 놀라운 구원의 비밀을 가르쳐 주신 거예요. 구원의 비밀이 그리스도의 비밀이죠. 그리고 또 교회의 비밀을 게시해 주셨어요. 그래서 그 은혜에 대해서 벅차오름을 가지고 지금 에베소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1) 첫째 16절,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게 제일 필요한 기도고 제일 중요한 기도예요. 속 사람이 강건해지면 어떻게 돼요? 영적 상태가 강건해져요. 마음의 공허함 마음의 불안함 연약함 눌림 각종 목마름 해소돼 버려요. 이거 TV로 해소 안 해도 돼요. 게임으로, 술로 해소 안 해도 돼요. 게임, 술은 부작용이 따라요. 이거는 부작용이 없어요. 근원적인 목마름을 해소해요. 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내가 주는 물은 다시 목마르지 않는다. 이 물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게 우리 안에서 생수로 올라오는 거에요. 그게 성령 안에서의 삶이에요. 해소되면 정신과 생각에 그대로 전달돼요. 사람들은 답답하고 눌리고 염려는 많은데 일 처리하려고 막 애쓴단 말이에요. 그건 병드는 거예요. 근데 그게 아니고 눌림이나 불안이나 걱정이나 이게 해소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과 그분을 믿는 믿음이 충만한 거에요. 말씀의 권세, 기도 권세를 누리면서 일 처리를 하는 거예요. 그게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방법이에요.
사단 귀신도 마음과 생각에 공격할 수 있어요. 환경이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누르는 것만 아니라, 영적 존재도 얼마든지 누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양쪽으로 다 누르는 거죠. 문제에 눌리고 흑암에게 눌리고 그럽니다. 이 사람이 계속 그 마음이 허하고 비어 있으면 귀신이 들어가서 집 지을 수 있어요. 그런데 병원 가면 영적 사설을 모르니까 그걸 단순히 뇌의 문제, 정신 문제로만 본단 말이에요. 그래서 약으로 치료하려고 합니다. 약물 치료합니다. 또 환경 치료도 시도하겠죠. 당신 환경이 지금 너무 힘들어, 남편 때문에 너무 지금 어려운데 거기에 대한 방책을 얘기할 수도 있겠죠.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뒤틀려서 스트레스 받고 있다면 그 관계에 대한 부분을 건드리면서 들어주고 거기에 대해서 지혜로운 말을 해주겠죠.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치유가 그 사람의 영이 살아나야 하는 거에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충만하게 만나면 모든 걸 이겨버려요. 영적 상태가 회복되면 인간의 마음과 생각에 집 짓고 있던 사단 귀신이 내쫓겨버립니다. 성령이 임재하시는데 귀신이 함께 역사 못 하는 거죠. 공허, 불안함 눌림 대신에 기쁨, 평안, 감사, 영의 말씀 영의 생각이 오게 되는 거예요. 엘리트이고 사회적인 성공을 했더라도 이런 빈 마음은 얼마든지 가지고 있거든요. 얼마든지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시달리는지 몰라요.
그렇기에 마음의 회복의 첫 단추가 영이 살아나는 거예요. 영적 상태가 회복되는 거예요. 성령님은 뇌에 있는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미쳐버려요. 마음과 생각이 어디 있어요? 뇌에 있죠? 이게 계속 스트레스 받으면 뇌가 병들어요. 근데 성령님이 마음과 생각이 있는 이 뇌를 건강하게 회복한다니까요. 첫 번째가 속 사람을 성령으로 그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입니다.
2) 두 번째는 17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에요.
그래서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여러분 속 사람이 강건하도록 하기 위해 뭐가 필요해요? 먼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항상 계시고 주인 되셔야 되잖아요. 사실 2번이 더 먼저일 수 있어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속사람이 강건케 되는 걸 먼저 기도하고요. 그다음에 그것을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믿음으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항상 계시옵고 이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이 사람이 딱 확립되라 이 말이에요. 여러분이 계속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신뢰하고 기뻐하고 의탁하면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 문제가 생겨서 불안한데도 이제 불안에 쉽게 안 넘어가고, 이 사람이 성령님은 불안하지 않으시다는 걸 아는 거예요. 내가 불안하지, 성령님이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성령님을 통해서 그게 더 믿어지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게 잘 안 믿어지니까 문제가 생기면 그 불안이 확 사로잡는 게 세게 들어와요. 근데 그거를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는 거예요. 터가 굳어지는 거에요.
그래서 기도하는 성도한테는 문제는 이 사람이 더 뿌리내리게 돼요. 기도 안 하는 사람은 뿌리 안 내리죠. 기도 안 하는 사람은 맨날 문제 생기면 불평하고요. 옛날로 돌아가고요. 사람 탓하고요. 영적 성장이 안 돼요. 그러나 뿌리를 내리는 단계가 되면 그리스도로 행복해져요. 그분이 또 보좌에서 응답하시는 분도 되시는 거예요. 그래서 행복해질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느껴지는 거예요. 이걸 계속 체험하면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거예요. 여러분이 범사에 그분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고 인정하시고 의탁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 훈련이 안 돼 있는 사람은 문제 만나면 문제에 눌리니까 기도 잘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평상시에 기도할 줄 알아야지 문제가 와도 뚫리는 기도할 수 있는 거예요. 설교는 말씀을 깨닫는 시간이에요. 깨닫고 그 말씀이 심령에 부닥치는 시간이에요. 그러니까 설교 들으면서도 은혜받는다고요. 그런데 실제 그리스도가 삶의 문제의 주인 되도록 만드는 거는 기도예요. 여러분이 그리스도가 주인 되어져서 여러분의 심령을 강건케 하고 실제 기도 권세를 누리는 영적 상태가 되어져서 일 처리 다 해야 해요. 문제 처리를 다 해야 해요. 인간관계 다 해야 해요. 그걸 하나님은 지금 회복시키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계속 주격과 체질을 바꾸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세 번째로 18절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의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도록 기도하는 거에요.
19절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거는 사실 결과적인 부분이에요.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라는 것은 자기만 아니고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의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기도하는 거예요. 좀 전에도 얘기했지만, 설교만 들어서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의 사랑을 몰라요. 내가 문제 속에서도 진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의탁했더니,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시네. 이때까지 하나님 떠나서 수많은 날 염려가 각인되고 체질 되었던 것이 ‘다 사단의 작품이었구나’ 이렇게 아셔야 해요. 여러분은 고아가 아니고 완벽한 보호자, 완전한 주인, 완전한 창조자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신 거예요. 내 아버지가 되신 거예요. 지난번에 뭐라고 그랬어요? 믿음의 싸움을 붙으라고 했어요. 내가 어떻게? 가 아니에요. 나는 지죠. 나는 돈 문제 앞에서도 맨날 눌려요. 본성은 믿음 없어요. 근데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안 눌리시거든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생각을 받는 게 기도예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각,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마음 그리스도의 눈 그걸 받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는 실제 이게 경험되거든요. 이거 여러분이 같이 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돈에 대해 눌려도 이기는 힘이 있어요. 여러분의 본성도 이기고, 체질도 이기고, 문제도 이기게 됩니다. 주님이 통치해 주시는 것을 매일 맛보면서 행복해집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능력 이게 다 하나님 충만의 내용이거든요. 이 모든 것으로 충만케 된다 이 말이에요. 우리는 이런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 기도하셔야 해요.
바울은 이것을 체험한 바예요. 바울에게 이게 이론이 아니란 말이에요. 바울이 전도 여행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영적 싸움하면서 이기지 않았습니까? 지금 갇혀 있는 상태에서도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20절 21절을 읽겠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되도록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지금 이런 거를 제대로 못 누리고 영적인 삶의 시스템과 영적 성장이 안 되는 사람은 빨리 수술하셔야 해요.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예요. 껍데기만 교인데요. 실제 살리는 능력은 없고 답 주지는 못하고 판단만 잘해요.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 그 이상으로 넘치게 하실 분이에요. 지금 사도 바울이 기도하면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하실 하나님께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되도록 하나님께 무궁하기를 기도하고 있는 거에요.
결론
바울은 두 번째 기도를 오늘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지식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실제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능력과 행복을 가지고 세상에 답 줄 수 있어요. 진짜 세상의 고통의 원인이 뭔지, 드러난 문제, 또 그 내면에 숨겨진 문제, 그 근본적인 영적 문제가 뭔지 정확히 그리스도로 답 줄 수 있는 그런 제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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