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교회메세지

2025년 6월 1일 주일예배 - "교회의 일치 문제"( 엡4:1 ~ 6)

by 별종외계오동 2025. 6. 1.

 

 

교회의 일치 문제(4:1~6)

 

우리가 어떤 사람과 관계에서 마찰이 생겼을 때 우리는 기분이 상하게 됩니다. 우리 본성은 그럴 때 어떻게 합니까? 기분 상하면 어떻게 합니까? 끊임없이 자기를 방어하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상대의 허물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따지게 됩니다. 이게 아주 본능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에 대해서 상처라도 있으면 속에서는 독한 말까지 나오게 됩니다. 이게 우리가 창 3장 태생으로서 창 3장의 본능으로 반응하는 모습이에요. 이게 아주 체질화돼 있거든요. 우리는 주로 상대 탓을 하게 되는데, 나의 창세기 3장 문제부터 먼저 볼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의 창세기 3장의 뿌리와 바닥을 본다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이게 뭐와 같으냐 하면 나무가 뿌리가 있잖아요. 그걸 제거해야 하는 거예요. 잘 제거 안 되거든요. 뿌리까지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포크레인으로 팍 떠내야 되거든요. 돌멩이도 세게 박혀 있으면 인력으로 뽑기가 힘들잖아요. 그럼 포크레인 같은 거로 떠내야 하잖아요. 이 떠내는 게 뭐냐 하니까 내 본성 자체가 얼마나 나 중심의 동기 가운데 빠져 있는지 모르고 모든 일을 행할 때 나를 방어하면서 상대방의 허물에 대해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요. 이런 거는 인력으로 애써서 못 바꾸거든요. 성령님이 깊게 보이게 하시면서 마치 포크레인으로 뜨는 것처럼 내 자신이 바닥까지 확실하게 보여야 하는 거예요. 머리로는 알잖아요. 근데 실제 상대에서 원망스러운 생각이, 성령이 주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세요. 그래서 성령의 생각을 이겨 먹어요. 그건 아직 떠낸 게 아니에요. 떠낸 사람은 성령이 주시는 생각으로 분별이 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되어요. 주님은 나부터 치유 회복하기를 원하셔요. 이것이 안 되는 사람은 발전이 안 되는 거죠.

여러분은 상대방과 마찰이 생겼을 때 나로 반응하는지 성령으로 반응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그게 자식하고 관계에서도, 교인하고 관계에서도 다 적용할 수 있고 점검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게 발전하는 사람이에요. 그만큼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사람이 되고 성령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되는 거죠. 성령께서 나부터 이렇게 치유 갱신 회복하시면서 갈 220절이 되게 하는 거예요. 그래야 여러분이 진정한 망대로 세워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야 777 여정을 가고 이정표를 가는 거예요. 자신이 어떤 불신자 상태였는지를 분명히 보면서 거기서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셨고 또 어떤 신분과 권세의 축복을 받았는지를 알게 되면 성령님은 이 작업을 하게 하시는 거예요. 제자는 개인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과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게 되는 사람이에요. 하는 일에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감당하게 돼요. 그러니까 염려 대신에 주님을 기뻐하면서 의탁하는 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는 일이 되어지면서 현장을 살리는 사명까지 감당하는 제자가 되어요.

지난주에 바울이 교회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는 그게 너무 감격스러워서 하늘과 땅의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에베소 성도를 위해서 세 가지의 기도를 했습니다. 첫째 성령으로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고, 또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고,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도록 기도했어요. 우리가 인격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누리게 되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와닿게 돼요.

오늘은 이어서 교회 일치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어요. 일치라는 것은 교회가 하나 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거예요.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주님의 소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할 때 교회 일치를 놓고 기도했어요.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다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하신 거예요. 그게 새 계명하고도 통하는 거예요. 새 계명이 뭐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게 포도나무 비유하고도 연결이 돼요. 포도나무 비유의 핵심이 뭐예요? 내 안에 거하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거에요. 그리고 내 계명을 지키라는 거에요. 그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했어요. 교회 일치가 중요해요.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거에요. 이게 돼야 교회는 한 방향으로 세상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거예요. 세상을 향한 시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거예요. 현장 살리는 일에 제자가 되고요. 더 나아가서 직장, 국가, 세계까지 살리는 전도 제자가 되는 거예요.

 

1, 실천 편

1장에서는 구원의 경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어요. 우리가 예정을 입어서, 창세 전에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어요. 2장에서는 불신자 상태를 얘기하면서 이방인이 유대인과 함께 어떻게 교회가 되었는지를 말씀하고 있어요. 3장은 계속 이어 교회의 비밀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계시로 알게 된 교회의 비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지난주에 두 번째 기도가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1~3장까지는 교리 편이라고 해요. 이제 4~6장은 실천 편이라 그래요. 앞서 언급한 교리의 근거로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는 게 4~6장이에요. 그래서 교리 편 첫 번째가 교회의 하나 되는 문제, 곧 교회의 일치 문제예요. 이거는 어느 교회든 필요한 문제예요.

1) 교회 일치 문제

41절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이렇게 돼 있어요. 여기 보면 주 안에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한다 고 했어요. 바울은 어디에 있든지 또 어떤 문제 가운데 있든지 주 안에 있다는 것이 그의 정체성이고 승리의 관건이에요. 여러분 주 안에 있다는 걸 어떻게 느껴요? 성령으로 기도가 되면 주 안에 있다는 걸 느끼는 거예요. 성령으로 기도가 안 되면 내가 주 안에 있다는 것이 안 느껴져요. 주 밖에 있으면 모든 것이 문제 되고 주 밖에 있으면 내가 주인이에요. 반면에 주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가 주인이고 그렇기에 모든 문제가 기회가 됩니다. 왜 기회가 돼요? 그리스도께서는 감당 못 할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그 문제를 언약 성취의 일환으로 삼아 주시니까 모든 문제가 기회가 되는 거예요. 주님이 감당치 못할 문제가 없으니까 정말로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고, 여러분이 하나님 소원에 방향을 맞추었다면 내 문제가 내 문제가 아니에요. 여러분의 질병도 여러분의 질병이 아니고 주님의 질병입니다. 이렇게 고백해야 해요. “주님이 이미 채찍에 맞았음을 믿습니다. 이 질병을 위해서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았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경제 문제도 내 경제 문제가 아니다 이 말이에요. 이렇게 여러분이 직장 일도 내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거예요. 직장을 구하고 있는 사람은 이 직장 구하는 일이 내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입니다. 이렇게 고백하셔야 해요. 왜요? 여러분의 직장을 당연히 주님이 인도하실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경제적 필요를 채워야 할 문제 아닙니까? 그 현장에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켜야 되고 그 현장의 증인으로, 전도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직장을 인도하는 거는 주님의 일이에요. 근데 보통 어떻게 합니까? 이게 본성으로 염려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본성의 생각에 잡히는 거에요.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과 분리를 잘 못하는 거예요. 기도를 잘못하는 사람들은 본성으로 들어오는 염려를 극복하지 못해요. 그걸 그냥 받아요. 잠잠히 생각하고 고민해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이게 다 인본주의 체질이라니까요. 사단이 형성시켜 놓은 거예요. 여러분이 이게 내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이라고 고백하면 주님이 보좌랑 통해요. 내가 성령 안에서 고백하니까 보좌랑 통하잖아요. 그러니까 보좌 통치, 응답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우리가 주 안에서 누려야 될 삶이에요. 바울은 로마 셋집에서 갇혀 있지만 그의 심령은 주 안에서 주의 인도와 확신과 능력과 충만함을 체험하고 있는 거예요.

1절에 보면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이런 말씀이 있어요. 여러분 왜 부르셨어요? 118절에 보면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도록 기도하는 내용 나오거든요. 여러분을 자기 아들, 딸이 되도록 부르신 거예요. 아들, 딸의 신분 권세를 누리도록 부르셨어요. 그리고 영원한 기업을 얻도록 부르신 거예요. 이 기업이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되면서 모든 불의와 죄악을 다 제거하시고 회복된 하나님 나라를 성도에게 허락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르심의 소망에 합당하게 행하라그랬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인생으로 사는 거예요. 그게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거예요. 빌립보서 127절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이런 말씀이 있어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게 뭐예요?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도록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대로 살라 이 말이에요.

그래서 2절에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그랬어요. 여기서 먼저 나오는 게 겸손이거든요.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살려는 마음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쉽게 창 3장의 본성으로 너무 잘 반응합니다. 그만큼 이게 태생적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창 3장에 나 중심의 내 기준과 내 동기와 내 욕구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뿌리박혀 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이게 포크레인으로 퍼내야 되는데 잘 안 퍼내진다니까요 지식으로 아닌 심령적으로 이게 보이면서 탁 떠내야 되거든요. 여러분 문제는 내가 창 3장의 본성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중요한 기회가 돼요. 그때 성령님이 자기를 보여주신다니까요. 평상시에는 나 중심 아닌 것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거든요. 근데 문제 딱 만나면 즉각 방어 시스템으로 들어가거든요. 그리고 불안, 염려, 나 중심 이런 것이 다 입으로 다 나와요. 항상 자기 기준 있죠? 이런 걸 성령님이 보게 하시는 거예요. 솔직히 창 3장의 본성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참 많아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했는데 여기서 겸손은 창 3장의 근본 뿌리 본질 바닥을 확실히 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겸손이에요. 도덕 항목에도 겸손이라는 게 있잖아요. 도덕적으로 살자, 겸손하게 살자, 잘난 체하지 말고 살자. 이거는 여러분이 3,6,11장의 본성을 가진 채 여러분의 양심과 윤리성을 가지고 애쓰는 차원밖에 안 돼요. 그것 가지고 겸손 안 돼요. 어떻게 겸손이 돼요? 창세기 3장에 본성의 뿌리 본질 바닥까지 봐버리면 내가 진짜 교만할 거리가 없는데 교만하면서 살았구나 이렇게 느껴져요. 그럴 때 내 심령에서 깨달음이 와서 겸손해져요.

여러분이 자신을 가만히 한번 살펴보세요. 여러분이 구원받은 거 여러분의 창 3장 본성으로 구원받았습니까? 아니죠. 여러분이 구원받고 치유 갱신 회복된 거 창 3장 본성으로 애써서 치유 갱신 회복된 겁니까? 아니죠. 여러분이 계명 지킬 수 있게 된 거 또 주의 일을 할 수 있게 된 거 여러분의 창 3장 본성으로 애쓰고 노력했더니 그렇게 된 겁니까? 아니요. 3장은 오히려 발견되고 죽었음이 인정될수록 좋은 거예요. 그래서 더 이상 창 3장에 내가 주인 되면 안 되겠구나 라고 분별 될수록 승리하는 삶이 시작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가 지금 계시거든요. 내가 창 3장에 빠져서 주인 노릇으로 어떻게 했는지가 진짜 인정되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인정하게 될 때 나는 그리스도 아니면은 안 된다는 사실을 이제 바르게 고백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삶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야 내 안에 주님이 들어오셔서 통치하시는 삶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보세요. 만약에 주님이 성령으로 여러분 안에 안 계시면 여러분의 영은 시체와 같아요. 시체면 감각이 없어요. 영적인 감각도 없고요. 영적인 믿음도 안 생기고요. 영적인 눈도 안 열리고요. 영적인 기도도 안 돼요. 정말로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을 생명 주시고 치유하시고 회복하시고 일하게 만드시고 열매 맺게 하는 거지 여러분의 노력과 열심으로 그거 되는 거 아니에요. 세상 일은 그걸로 돼요. 육신의 일이기 때문에 가능해요. 그러나 구원은 생명 주시고 영아 살게 해서 근본을 뒤집는 거에요. 성령으로만 이게 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아는 사람이 겸손해야 할 이유를 아는 거예요. 만일 나를 통해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면 창 3장의 본성은 반드시 교만이 올라와요. 그래서 일이 잘될 때 항상 교만을 경계해야 해요. 자기 부인이 계속 필요해요. 모든 것이 은혜지 내가 잘나서 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근데 우리가 잘 되면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됐다는 생각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형상이가 그동안 회사 일 열심히 해서 회사에서 탑도 하고 했단 말이에요. 그때 본인이 고백하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했을 때는, 이게 내가 했다는 생각이 항상 있다는 거예요. 내가 그래도 이만큼 했으니까. 근데 이제 기도해서 성령님이 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여기에 대한 판단이 이제 달라지는 거거든요. 세상 사람들은 다 교만해요. 교만한데 겸손 하려고 처세하는 거죠. 성향적으로 겸손한 사람도 있기는 있어요. 아무튼 자기 부인이 계속 필요합니다. 이렇게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창세기 3장의 눈과 복음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렇죠. 저 사람이 창세기 3장에 빠졌기 때문에 저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보고 그러나 주님은 살릴 수 있다는 복음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겸손이 돼야 다음에 온유가 돼요. 안 그렇겠어요? 겸손 온유 오래 참음과 그다음에 용납함 이렇게 되거든요. 진짜로 자기 부인이 되어져서 자기가 교만할 건덕지가 없다는 게 알아져야지. 내가 딴 사람의 잘못도 온유하게 대할 수 있고 오래 참을 수도 있어요. 주님도 나를 얼마나 오래 참았어요. 그리고 용납도 가능한 거예요. 죄인을 주님이 받아줬잖아요. 내가 나를 모르면, 자꾸 가르치려고 그래요. 근데 가르침 받는 건 싫어해요.

2) 3절에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그랬어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했는데 이게 교회에 주시는 실천 편의 첫 번째 항목이에요. 그리스도 복음의 특징이 평안이거든요. 성령이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한 것을 힘써 지키라는 거예요. 편안하지 않으면 하나 안 돼요. 성질나지, 맞아요?. 복음의 특징이 평안이고. 주님이 주시는 게 평안입니다. 그래서 요 1427절에 보면 주님이 평안을 너에게 준다는 말씀을 하고 있어요. 1427평안을 너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이 평안을 주세요. 내가 너희 안에 있기 때문에 영의 생각과 영의 말씀과 영의 믿음과 영의 확신으로 너희를 인도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지금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주님이 못 감당할 일이 없고 성령님이 못 감당할 일이 없는 거예요. 46~7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어떻게 하라고 그랬어요. 다만 모든 일의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이렇게 돼 있어요. 그 말은 너희가 평안 가운데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된다 이 말씀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께 뿌리내릴수록 평안한 거예요. 실천 편 첫 번째가 뭐라고요? 평안에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된 것을 힘써 지키라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면서 이거 누구에게 하는 말이에요? 하나 될 수 없었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지금 합쳐진 교회에다가 이 말을 하는 거예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갈등하지 말고 하나 돼라. 이들은 지금 근원적인 갈등이 있거든요. 그러지 말고 성령의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4~6절 보면 7가지 하나인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몸이 하나고요. 두 번째 성령도 한 분이고요. 세 번째 부르심의 소망도, 한 소망이요, 네 번째 주님도 한 분이요, 다섯 번째 믿음도 하나, 여섯 번째 세례도 하나, 일곱 번째 하나님도 한 분이에요. 여기서 하나 될 수 있는 이유가 이 7가지가 하나라는 거예요. 여러분과 제가 주님이 한 분이에요. 하나님이 한 분이에요. 성령님이 같은 분이에요. 한 부르심의 소망을 받았어요. 한 몸이에요. 한 세례를 받았어요. 같은 세례를 받았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교인과의 관계는 진짜 연합의 관계예요. 6절에 보면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그 말은 초월해서 계시다 이 말이에요. 만유를 통일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이 통일되게 하시는 분이시고요.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이 말은 만물을 통치하고 계시다 이 말이에요. 그런 하나님이 같은 아버지가 되셨다 이 말씀입니다.

 

2. 우리는 어떻게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수 있겠는가?

이게 이 지역에 있는 한 교회만 국한된 말씀이 아니죠. 세계 교회에 다 같이 적용하라고 주신 말씀이에요.

1) 우리가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를 보는 눈을 우리는 제대로 가져야 해요.

몇 주 전에 제가 교역자 부부 수양회를 갔다 왔어요. 속초에서 했어요. 류 목사님이 늘 하시던 대로 세 번 메시지를 하셨어요. 근데 수양회에 목사님, 사모님들만 모였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 류 목사님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각종 문제에 대한 입장을 좀 말씀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왜요? 뭘 따져서 지금 밝히기 위해서 그런 입장이 아니고. 정말 류 목사님이 복음 가진 사람이잖아요. 24시를 늘 얘기하시잖아요. 그렇다면 목사님 메시지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복음 가진 자의 중심과 자세를 보여주시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가 됩니다. 그래서 다락방인 우리가 겸손해야 할 부분도 있고, 우리가 깨달아야 할 부분도 있고 또 우리가 정말로 류 목사님을 위해서 진정으로 기도도 하고, 문제가 있으면 같이 갱신하고 이런 것이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분이에요. 이런 자세는 안 좋은 거예요. 우리 편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냥 방어하는 거, 하나님 편이 돼야 하지 우리 편이 되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의리 때문에 변호하려는 입장에 서는 사람도 있어요. 제일 좋은 건 뭐예요? 하나님 편에 서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쓰실 수 있는 단체가 되고 진짜 그리스도가 실제적인 주인 되셔서 통치받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거든요. 근데 아쉽게 류 목사님이 일체 거기에 대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저는 아쉬움을 가졌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강조하셨던 말씀이 전 세계 교회가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이 복음의 유일성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지금 계속 나오는 말씀인데 얼마나 지당한 말씀이에요 여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에베소서 말씀을 근거한다면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해야 해요. 균형이 필요하다 이 말이에요. 한국과 전 세계 교회가 복음 회복이 절실합니다. 복음이 늘 회복돼야 해요. 그러면서도 복음주의 교단과 교회가 한 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복음주의 교회들을 인정하고 피차 약한 부분을 기도해 주는 자세가 필요한 거예요. 또 우리가 배울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거예요. 기존 교회에 우리가 없는 것들이 많아요. 우리가 안 다루고 안 가르치고 있는 부분들이 기존 교회에서는 또 많이 가르치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배울 것은 배울 수 있는 자세가 항상 필요한 거예요. 이런 면에서 제가 강조하는 것은 메시지의 균형이 중요해요. 본의 아니게 기존 교회를 다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게 메시지를 하면 이단이 됩니다. 진짜 이단 말고는 자기 메시지만 강조하는 단체는 없어요. 일반 교회에서는 절대 그러지 않아요.

저는 류 목사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류 목사님이 거친 교회들이 다 싸움하던 교회였어요. 목사님이 부산 노회에서 억울하게 면직당했고 지금까지 한국 교회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당해 왔단 말이에요. 이런 경험은 무시 못 해요. 여러분이 평생 성장했던 교회가 싸우는 교회에서 컸다고 그래봐요. 그러면 정내미가 떨어지겠죠? 여러분 날 선 비판력만 생기겠죠. 그러니까 경험을 무시 못 해요. 진짜 하나님이 요한계시록에 있는 일곱 교회 책망하듯이 지금 책망받아야 할 교회 목사님 성도님들이 수두룩하게 있겠죠. 근데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여기까지 오도록 그때마다 하나님이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정말로 하나님께서 그 시대마다 다양하게 쓰시거든요. 그 사람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이 지도자들을 쓰시는 거예요. 거기에 류 목사님도 쓰임 받고있는 거거든요. 근데 류 목사님만 쓰임 받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균형과 중심을 가져야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굉장히 균형과 중심을 갖고 있는 분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과 제가 정말 가져야 할 자세는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 교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한국 교회는 율법주의 흐름과 신비주의 흐름과 자유주의에 빠진 교회들이 적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류 목사님은 초창기 때부터 율법주의 배격하고 신비주의 배격하고 자유주의에 대해서 배격하시면서 복음의 유일성을 강조하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쪽을 강조하면서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어요. 율법주의는 안 되지만 율법의 효용성과 가치까지 약화해서는 안 돼요. 율법에 중요한 효용성이 있단 말이에요. 죄를 알게 하잖아요. 그리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잖아요. 그리고 구원받은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율법의 본질은 우리가 여전히 성령으로 지켜야 하는 부분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죄에 대해서 민감해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러라고 신분과 배경과 임마누엘을 주신 거예요. 우리에게 그래서 대속의 은혜와 성령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2) 우리 교단 누구보다도 영적 문제를 잘 알고 불신자 상태 보는 눈을 말씀하고 있어요.

이게 우리에게 강점이라고 그랬잖아요. 우리는 정말로 영적 문제를 제대로 모르고 이 불신자 상태를 제대로 모르면 왜 그리스도가 절대 그리스도인지 이 부분이 약화 돼요. 그래서 우리는 이 그리스도가 왜 절대적인지를 분명히 알고 진짜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맞아요. 여러분의 과거 현재 미래 문제가 다 해결이 됐어요. 왜 해결됐는지 아세요? 진짜 과거 문제가 억울하거나 상처 속에 있을 필요가 없다니까요. 그게 속는 거예요. 우리는 과거 운명에서 완전히 하나님이 바꿔줬잖아요. 근데 왜 과거 경험 때문에 그거 타령하고 있어요. 완전히 과거 문제는 진짜 발판 되셔야 해요. 현재 문제는 전부 다 기회예요. 진짜로 미래는 보장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 해결이 맞아요. 그리스도가 아니면 영적 문제가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그렇게 강조하는 거예요.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도 운동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런데 메시지의 중심과 균형을 잡아줘야 된다는 말이에요. 교회를 세우는 일에,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힘쓰는 제자가 돼야 해요. 그러니까 복음의 유일성을 말하면서도 살리는 중심이 되셔야 해요. 진짜로 그냥 까버리고 무너뜨리는 중심이 되면 안 된단 말이에요. 맞잖아요. 우리는 과거에 율법주의 안 했습니까? 우리가 기존 교회에서 온 사람들은 과거에 우리가 복음 없이 종교적인 신앙생활을 했잖아요.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사람을 도와줘야 할 사람들 아닙니까? 그 중심을 가지란 말이에요. 이러면 하나님 싫어하실까요? 여러분이 성경 전체에 대한 균형과 중심을 가진 신학을 안 하고 그냥 계속 한 메시지만 들으면 그 메시지밖에는 여러분이 판단할 기준이 없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성경을 중심으로 계속 말씀하고 있는 거거든요.

 

결론

사실 우리나라를 하나님이 축복하시느냐, 징계하시냐의 여부는 정치인보다요. 교회에 달려 있어요. 한국 교회에 달려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생각해야 된다니까요. 교회가 어떻게 복음이 회복되느냐, 어떻게 복음으로 하나 되느냐,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느냐가 관건입니다. 한국 교회에 기여하라고 우리 교단이 있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을 살리는 자가 되셔야 되는 거예요. 아니 뭐 조그마하고 내 신앙은 그런데 아니요. 그래도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해요.

선거 얘기까지 해볼게요. 내일 모레가 이제 대통령 본 선거예요. 하나님 손에 달려있어요.

역대하 714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면 기도하며 내 얼굴을 구하면하늘에서 듣는데요. 그리고 그 죄를 사하시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 땅을 고친다는 건 뭐예요? 나라를 회복한다는 거예요. 구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재앙 저주로 내리쳤거든요. 그거를 하나님이 치유하시고 회복하신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정치도 회복하고 경제도 회복하고 이 땅, 이 사회가 하나님이 축복하는 사회가 되도록 회복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이 대선을 앞두고 교회가 역대하 714절에 중심을 가지는데 우리는 복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중심 갖기가 너무 쉬워요. 복음 회복, 교회 회복 그러면 전도 회복,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 회복 가능하잖아요. 교회가 이번 대선을 두고 역대하 714절의 자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음 가진 교회가 당연히 이것이 가능하고 사명까지 감당이 가능한 거예요. 그리고 진짜 지금 일반 교회 중에서도 전도 운동이 되어지고 모델적인 교회들이 있어요. 없는 게 아니에요. 훨씬 부흥하고 있는 교회들이 있어요. 하나님이 쓰시는 거지, 저건 복음도 없는데 저게 뭐야 그렇잖아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이 저렇게도 쓰시는구나 이렇게 여겨야 한단 말이에요. 우리는 대통령 후보의 사상과 됨됨이를 잘 봐야 해요. 여러분 정치에 관심 가지셔야 해요. 우리 20대도 반드시 투표하셔야 해요. 대통령 후보가 거짓말 잘하고, 범죄 사실이 많고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교회가 다 기도해야 하고 여러분이 투표권을 바로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교회가 중요하단 말이에요. 교회 회복 운동이 중요하다 이 말이에요. 오늘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