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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5년 6월 11일 수요예배 - 우리 교회 나갈 방향(엡 4:7~16)

by 현상금 2025. 6. 11.

교회의 성장 문제(4:7~16) - 우리 교회 나갈 방향

 

서론)

1. 2: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살아주시는 것을 실제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을 24시로 발전시키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신앙생활이 단순하다.

2. 이게 실제 되면 점점 주님의 통치를 받기 때문에 눌림과 억압이 사리지고 영적 상태가 항상 좋다..- 주님의 생각, 주님의 마음, 주님의 눈으로 사는 것이 된다. 주님의 말을 하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다 성령의 역사다. 성령으로 1번이 되어야 가능하다. 평상시에도 본성의 소욕과 성령님의 통치가 구분이 되며 내 안에 주님이 사시니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3. 이게 되면 주님 때문에 행복해진다. - 염려 대신 기쁨과 감사와 희열과 확신과 담대함과 당당함과 능력과 아가페 사랑과 불쌍히 여김이 된다.

4. 주님이 주신 권세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 초대교회는 성령의 충만이 임하자 성령님이 생각을 강하게 잡으시면서 말씀의 권세, 기도의 권세, 명령의 권세, 축사의 권세, 병 고침의 권세, 능력 행함의 권세, 전도 제자 선교의 권세, 일과 경제의 권세 누렸다.

5. 진정한 망대로 7,7,7로 나가게 된다. - 교회는 6가지 권위가 나타난다. 말씀의 권위, 강단의 권위, 삼위 하나님의 권위, 주의 종의 권위, 예배의 권위, 교회의 권위가 나타난다. 초대교회는 이것이 되어졌다.

 

본론)

1. 이것을 위해 계속 되어져야 할 것

1) 2:20 위해 창 3장의 뿌리 바닥까지 보면서 그리스도 의지하는 것이 돼야 한다.

제가 창 3장의 본성을 뿌리 바닥까지 봐버려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 이해가 아니다. 성령님이 심령적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신자로 살아온 만큼 창 3장의 욕구로 살아왔다. 내가 체질로 살고 내 인본주의 자존심을 갖고 사는 게 당연했다. 이게 나이 들수록 굳어진다. 하나님 떠났기에 불신자는 생존(안전)의 욕구와 자존심의 욕구로 산다. 이걸 위해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자기 성취를 위해 애쓴다.

 이게 잘 안되면 불안과 위기감을 느끼고 갈등과 눌림과 상처받는다. 안간힘을 썼던 일이 많았던 만큼 인본주의 자존심이 세지고 더 자기에게 묶이고 방어적이 된다. 이렇게 형성된 자아가 3,6,11장의 본성과 영이 죽은 이성으로 산다. 여기에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이런 나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런데 갈 2:20이 되기까지 이게 잘 안 보인다. 구원받아놓고도 여전히 인본주의 자아가 주인되고 3,6,11장의 본성과 인본주의 이성으로 산다. 여전히 염려하면서 자기가 이루려고 애쓰는 인생을 산다. 살아온 인생이 쉽지 않았다면 인본주의 자존심이 더 강하고 묶이고 방어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생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겠는가? 성령님의 조명으로 창 3장 뿌리 바닥까지 봐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봐야 한다. 이게 바닥까지 보이면서 비로소 내 기준, 내 동기, 내 방법, 내 욕구가 내려지게 된다. 나를 제대로 부인하고 주객을 바꿀 수 있게 된다. 2:20의 인생으로 뒤집어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체질이 계속 치유 회복된다

2) 그래서 우리에게 계속 필요한 것이 언약 신앙이다.

내가 구원받은 것도 은혜고, 내가 발견되고 치유 회복 쓰임 받는 것도 주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나를 인도하실 것을 믿는 언약 신앙이 필요하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12 제자, 바울 사도 다 하나님이 뒤집어 쓰신 사람이다. 우리와 똑같은 창 3, 6, 11장의 본성의 사람이었다. 많은 시행착오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언약으로 그들을 인도하신 거다.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고 시행착오 거칠 때마다 깨닫게 하시고 고쳐서 쓰신 것이다. 그래서 고쳐진 사람은 다른 사람 보는 눈이 바뀐다. 다른 사람을 내 기준에서 보는 게 아니고 주님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 한 사람을 주님이 어떻게 창 3장에서 건져내서 치유하고 회복해서 쓰시게 되는지 보는 관점을 갖는 거다. 여러분이 이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나의 목회는 여러분이 이런 제자가 되고 다른 사람을 이런 제자로 만드는 제자 되게 하는 것이다.

 

2. 이 일을 하도록 하나님은 먼저 사역자들을 세우셨다.

1) 초대교회 때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가 있었다.

여기에는 빠졌지만, 감독과 장로와 집사의 직분도 있다.

(1) 감독 감독하는 자, 돌보는 자란 뜻이다. 목양, 교리 수호, 가르치는 사역하였다.

2~3세기에 이단이 발생하면서 교리 수호 입장에서 지역을 총괄하는 감독이 생겼다. 그걸 감독제라고 하는데, 지금도 감리교는 이런 감독 제도를 따르고 있다.

(2) 장로 연장자, 나이 든 사람이라는 뜻인데, 초대교회에서는 감독과 목사와 장로가 같은 역할을 했다. 감독, 장로, 목사가 이름만 다를 뿐이지 역할은 같았다.

(3) 집사 봉사자, 섬기는 자란 뜻이다. 재정 관리와 구제와 봉사 활동을 주로 했다. 사 도들이 말씀 사역을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2) , 현대 - 목사, 장로, 안수 집사, 권사(여성 중 신앙 연륜이 있는 자)

장로 목사를 보필하며 교회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역할(교회 중요한 정책과 방향은 당회에서 결정), 교인을 보살피며 위로 격려하는 일을 한다. 목사와 성도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는 중재의 역할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강단 말씀의 흐름을 타는 장로가 되어야 한다. 중재할 때 성도가 말씀의 흐름을 타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장로는 강단 말씀의 흐름을 타는 1호 제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장로는 제자를 재생산하는 장로가 된다.

 

3. 사역자와 중직자의 역할

1) 사역자를 세우신 목적 -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 교회 강단의 흐름은 영적 문제와 그로 말미암아 초래된 문제의 답을 주고, 한 개인을 복음으로 치유 회복해서 제자 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세우는 방법 13~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래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이걸 위해 최고로 좋은 방법은 성도를 그리스도께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3) 중직자와 교사가 해야 할 일 저와 함께 이 일을 하는 거다.

여러분이 먼저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모델이 돼라. 강단의 말씀 성취의 제자가 돼라. 그럴 때 목회자와 비젼과 마인드와 생각이 통한다. 불신자 상태에서 빠져나와서 체질까지 치유, 회복, 승리하는 제자 된다.

 

결론) - (상도제일교회 간증)

 그리스도 24시 제자가 되어 교회 제자, 현장 제자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