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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5년 7월 16일 수요예배 - 그리스도인의 부부 관계 2 (엡 5:19~33)

by 현상금 2025. 7. 16.

그리스도인의 부부 관계(5:19~33)

 

제가 연예할 때는 조심하는데 결혼하면 조심하지 않고 함부로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더라는 말은 진짜로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해 줄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걸 죄성대로 함부로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부간에 갈등과 고통을 겪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함부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함부로 하지 말고 서로 조심하고 존중히 여겨주어야 한다.

 

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1) 이것은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에, 그 분에게 받은 말씀 가지고 서로에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 그럴 때 피차 복종하는 삶이 된다. 우리가 계명을 사람에게 받은 것이 아니고 주님께 받았다. 그러니 상대방의 조건에 따라 행하는 게 아니다. 인간 관계할 때 그게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주님과 관계에서 해야 한다.

2) 세상에서는 어떻게 하는가? - 보이는 사람만 의식하고 관계한다.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이면 나도 좋게 대하고, 저 사람이 나쁘게 하면 나도 나쁘게 한다. 상대에게 받은 만큼 나도 해 주는 것이 세상 원리다. 왜 그런가? 하나님도 없고 심판도 없고 내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죽고 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 그렇다. 우리는 위에 주인이 계시고 심판주가 계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그 말씀을 따라 피차 복종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행한 행위에 대해서 반드시 상급이 있다. (고후 5:9~10, 고전 15:19)

그러니까 남편이 악했기 때문에 나도 악했다이런 논리가 우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상대의 신분이나 지위나 계급에 따라서 처신하라는 말도 아니다. 우리는 좀 높은 사람이면 조심하고, 좀 무시되는 사람 같으면 함부로 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람만 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항상 의식해야 한다. 우리는 저 사람이 그랬기 때문에 나도 그랬어.”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상대가 그럴지라도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하라.”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행한 것은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보상받기 때문에,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대 원리다. (12:19~21)

 

2. 아내에게 주는 권면(22~24)

1)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시대는 주후 60년대다. 사도바울은 첫 번째 투옥 때인 주후 60~62년 경에 본서를 기록했고 주후 67년경에 순교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 남편은 아내, 자녀, 노예에 대해서 거의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 아내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세상 원리를 가르치는 게 아니고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가지고,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신부와 신랑 관계이기도 하다. 로마 시대에는 남편의 권위 때문에 자의든, 억지든 복종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아내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는 것이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다.

2) 문제는 남편이 죄성과 결격 사유가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 본성은 복종할 마음이 없다. 오늘날은 복종하라는 말 자체가 거부 된다. 그러면 이 교훈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겠는가? 그 답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다. 22절에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이다. 주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는 것은 주께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악한 의도나 거짓이나 내 본성의 욕구대로 못 한다. 선을 행하고 진실히 행하고 사랑으로 행하게 된다. 그것만 아니라 우리는 영적인 사실을 알기에 남편을 창 3장 보는 눈과 복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 저 사람이 왜 저런 죄성에 잡혀 있고, 왜 저런 나쁜 습관과 체질 속에 있는지 이해되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요. 나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요, 그래서 치유된 자로서 그렇지 못한 남편의 상태나 체질을 보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주님이 남편에 대해 자기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 너를 더욱 내게 뿌리내리게 해서 너를 치유하고 세우기 원한다. 너를 통해 내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원한다. 이런 주의 음성을 듣게 만드신다.

벧전 31~4절에는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전한 심령에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구원을 위해서 하라는 것이다.

 

3. 남편에게 주는 권면(25~29)

1) 두 가지 권면

첫째 25,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고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고 한다. 둘째 28,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하라고 한다. 이것은 남편이 군림하던 로마 시대에 가히 혁명적인 사상이라 했다. 근데 이게 본래 하나님이 에덴동산 때부터 주신 부부 원리이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가장 기본 단위가 부부 관계였다. 그다음이 자녀를 포함한 가정이다. 그리고 사회고 국가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가 들어오므로 이것이 다 깨진 것이다. 부부 관계가 깨지고 가정이 깨지고 사회가 깨지고 하나님 나라가 몽땅 깨진 거다.

2) 그러면 오늘 남편들은 이것이 어떻게 적용하겠는가?

첫째 영적 생활 돼야 한다. 그러면 자기 성찰이 계속된다. 사실 부부 관계만큼 나 중심의 나를 깎아내고 고치는 가장 하나님의 강력한 수단이 없다. 근데 깎여야 하는데 안 깎이고, 서로 치고받고 계속 찌르면 가정이 무너지고 사단이 승리한다. 남편이 먼저 영적 생활로 깊게 들어가야 한다. 둘째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해서 기도로 리마인드 해야 한다. “저 사람이 그렇게 안 사는데 내가 왜 살아그런 말은 불신자 논리라고 했다.

(나의 경우)

제가 아내와 살면서 아내가 제일 불평했던 말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는 지적이고 아내는 가슴 형이다. 저는 은혜 받으면 머리로 이해하고 몸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아내는 은혜 받으면 가슴으로 감동하고 몸으로 행동한다. 결혼해 보니깐 남녀 차이, 성향의 차이, 기호의 차이가 크고 가정 배경, 성장 배경도 다르다. 특히 부부는 반대로 만난다. 그러니 주장하다 보면 평행선을 간다. 갈등하고 다투게 된다. 저의 본성과 성향의 취약점이 가슴으로 공감해 주고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고 마음이 가게 못 해 준다. 이걸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이해해서 하는 형이다. 집사람의 성향은 가슴 형이다. 마음으로 공감과 불쌍히 여김이 되고 여기에 민감한 사람이다. 강아지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제게도 이렇게 해 주기를 가장 원하는 사람이다. 성도 중에도 성향상 이런 부분을 많이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가 집사람을 안 만났다면 나의 이런 부족함을 알까? 또 그런 부분을 놓고 지금처럼 고민하겠는가? 반대쪽을 만나서 서로 고치고 보완시키시는 것이 부부다. 성향은 안 바뀌어도 주님은 심령에 은혜를 주시어서 주님을 본받게 하신다. 어느 날 집사람이 고백하더라. 부부 관계는 내 편에서 생각하지 말고 역발상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감사했다.

 

결론 - 오늘 대 원리가 뭔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것이다.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이다. 3장 본성의 나로 반응하지 말고 그리스도로 반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