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 입다(삿10:6~11:11)
지난 주 강단에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창3장 근본배경과 성장배경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3,6,11장 속에서 형성된 것을 보는 눈을 가져야 사람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상대가 말하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이제부터 사람을 4가지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 바란다. 첫째 모든 사람을 원래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로 보기 바란다. 둘째 주님이 죽어 주신 사람으로 보기 바란다. 세째 결코 지옥가서는 안될 사람으로 보기 바란다. 네째 주님이 역사하시면 못고칠 사람이 없는 사람으로 보기 바란다. 이 눈을 가지면 여러분이 중보기도가 되고 사람 살리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오늘은 8번째 사사 입다에 대한 말씀이다. 입다 시대 배경 설명이 10장에 나와있다.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라는 말이 6번째 반복해서 나온 말이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면 또 본래 상태로 돌아가고 구원해 주시면 또 돌아가는 것이 사사기 싸이클이다. 그리고 갈수록 상황이 더 심해진다. 오늘 본문에 보면 가나안 주신인 바알과 아스다롯만 섬기는 것이 아니다. 주변 나라들의 온갖 신을 섬긴다. 여호와는 버렸다고 되어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블레셋과 암몬족속에 의해서 18년동안 침략과 압제를 당한다. 그런 배경 가운데 하나님이 불러 쓰신 사람이 8번째 사사 입다이다. 오늘 주는 교훈을 잡기 바란다.
1. 사사 입다
1) 출생 배경과 한 일
그는 기생 아들이다. 본 부인의 자식들에게 내침을 당했다. 그도 출생배경, 성장배경이 안좋았다. 상한 감정과 상처가 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본 자식들에게서 쫒겨나서 잡류들과 어울리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암몬족속과 전쟁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이 다급한 상황이 되니깐 그를 불러 우리의 장관이 되아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그가 암몬 족속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하였다. 그렇지만 그에게도 두 가지 잘못한 일이 있었다.
2) 두 가지 과오
첫째는 자기 딸을 인신제사한 잘못이다. 이것이 왜 그런가? 그가 암몬전에 나갈 때 하나님께 서원을 했다. 11:30~31절을 보자. 전쟁에서 이기고 평안히 돌아올 때 누구든지 내 집문에서 나와 나를 영접한 그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서원이였다. 근데 누가 나왔는가? 11:34~35절에 보면 자기 딸인 무남독녀가 나왔다. 하나님께 서원한 거니깐 할 수 없이 딸을 번제로 바쳤던 것이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가나안 우상숭배 풍속을 좇은 것이였다. 신12:31에 보면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행위였던 것이다. 입다의 사건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지가 나은 비극이였다. 하나님도 그런 걸 좋아하시는 줄 착각한 것이다.
둘째는 에브라임 지파와 전쟁에서 동족 42,000명을 죽인 일인 것이다. 시비를 먼저 건거는 에브라임 지파였다. 기드온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전쟁에 함께 나가도록 하지 않았다고 시비를 거는 것이였다. 그러면서 너와 네 집을 불지르겠다는 것이였다. 에브라임은 원래 요셉의 둘째 아들인데 므낫세지파처럼 이스라엘의 독립적인 한 지파가 되었다. 이들은 늘 자기 지파에 대한 자부심과 교만심이 있었다. 12:4절에 보면 입다의 심기를 건드는 말을 한다. 길르앗 사람을 마치 도망자처럼 무시하는 말을 하였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해도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입다는 이런 무시와 거부당함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이였다. 게다가 딸을 번제로 바친 상처가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다. 분노를 참지 못한 것이였다. 그래서 전쟁해서 에브라임 사람 42,000명이나 죽였던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12가지 체질과 상처를 치유받고 승리하고 증인될 수 있겠는가?
복음 적용시키고 각인시키는 편집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 내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창3장의 배경을 깔고 성장하면서 겪은 문제들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어떻게 반응하고 처세했는지가 보여야 한다. 그게 우리의 기준과 동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 뿌리내릴 때 주의 성령께서 우리의 각인 뿌리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은혜와 힘을 주신다. 복음 누리는 정시기도로부터 24시 기도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면 점점 내 체질과 내 생각에 빠지지 않고 주님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 신자들도 보면 거의 평상시 3,6,11장의 내 생각으로 산다. 정시기도하면 내 생각을 주님의 생각으로 바꾸게 되고 성령의 생각으로 인도받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계속 발전해서 24시 체질로 바뀌어지면 놀라운 인생 전환을 체험하게 된다.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게 된다. 입다같은 상처가 있다해도 치유되고 살리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통해 실현되는 삶을 살게 된다. 여러분이 그 만큼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으면서 성령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기대하는 신앙생활 할 수 있게 된다.
3. 기대신앙
1) 우리 속에 와 계신 성령께서 복음의 언약을 성취시키신다.
가나안 정복시 이스라엘이 믿고 순종만하면 어떤 가나안 세력도 정복할 수 있었다. 왜냐?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였기에 하나님이 싸워주셨기 때문이다. 그처럼 이제는 성령께서 어떤 흑암세력도 정복하시고 12가지 운명 속에 있는 사람을 건지시는 일을 하신다. 거기에 우리를 쓰신다. 우리의 힘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이를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겨놓으셨다. 골2:14~15에 보면 우릴 정죄하던 율법의 증서를 폐하시고 사탄은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 삼으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은 로마 개선장군이 돌아올 때 개선 퍼레이드를 벌릴 때를 생각하면 된다. 그 때 적군의 포로들을 줄줄이 묶어서 끌고오면서 구경거리 삼는다. 이처럼 사탄을 패배시켰고 드러내어 구경거리 삼았다는 말씀이다. 사탄의 권세는 깨졌기 때문에 여러분이 믿음과 순종만 제대로 하면 주 성령께서 사탄의 세력을 계속 정복해 주신다. 이런 성령님의 실제성을 기도로 자꾸 체험해야 된다. 이것이 정시기도로부터 24시 기도로 발전시키는 사람이 누릴 축복이다. 우리가 어떤 흑암세력도 꺽고 어떤 12가지 운명 속에 있는 사람을 건지시는 성령님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기대신앙이다. 이것이 일 앞에서도, 문제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 우리 연약함, 무능함이 문제가 안된다.
우리는 아이디어가 안생기고 일이 염려될 때 주로 내가 이룰려고 짜내거나 답답하니깐 딴 짓을 하게 된다. 기도보다는 딴 짓을 하게 된다. 그게 사탄이 만들어 놓은 사탄의 통로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디어가 안생기고 일에 염려가 될 때 오히려 더 주님을 인정하고 기뻐하며 뿌리내리는 것이 가장 잘하는 것이다. 최상의 방법이다. 그러면 여러분 속에서 진짜 성령님이 인도하신다. 이걸 체험할수록 염려체질이 아니라 기대신앙이 된다.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함이 문제가 안된다. 오히려 육신의 본성을 인정하고 연약한 것, 안되는 것, 무능할수록 그리스도께 뿌리내리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자기 머리로 할려고 하지 말라. 성령께서 우리의 영적문제도 해결하시고 흑암은 꺽고 사람은 살리는 정복의 시간표 속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성령께서만이 어떤 사탄의 세력도 정복하시고 인생 현실 3저주와 영원한 저주에서 건져내시고 치유할 수 있으시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일을 대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나안 정복하셨듯이 성령께서 정복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복음의 능력이 동반된 복음이 전파되게 하신다. 거기에 쓰임받게 하신다. 여러분이 연약하고 무능함을 느낄 때 기분과 상태와 느낌에 속지 마라. 영적 사실을 붙잡기 바란다. 그러면 사탄이 깨진다.
결론
여러분 올해 복음을 실제 삶 속에 적용 각인 뿌리내리는 편집이 계속 된다면 놀라운 일들이 생긴다. 지금 시대는 사사시대 보다 더 심한 시대이다. 영적으로 보면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이다. 두 가지 계열의 싸움이 첨예한 시대이다. 사탄을 정복하고 12가지 문제에 빠진 사람들을 건지는 일에 여러분이 쓰임받는 제자가 되기 바란다. 이것이 성령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보내시고 성령님 보내셔서 이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여러분의 능력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정시기도로부터 24시 체질로 발전시키는 것이 여러분이 할 일이다. 실제 성령님의 능력을 믿는 기대신앙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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