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귐(요일 1:1~4)
몇 주 전에 대구에 있는 한 센터에 다녀왔습니다. 도박 문제 예방치유센터 이거는 공공기관으로 문체부 산하 기관인데 전국에 14개가 있다고 해요. 대구 센터장이 유승훈 장로라는 사람이에요. 이분은 대구에 있는 우리 교단 소속 교회 다니시는 분이에요. 20대부터 복음을 듣는 렘넌트 출신이에요. 이분은 심리 상담을 전공했던 것 같아요. 대학 졸업해서 정신과 병원에도 근무한 경험이 있고 카지노가 있는 강원랜드에 갔다가 도박 중독자들을 보면서 그들을 치유해야 하겠다는 소원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센터에 며칠 전에 갔다 왔는데 미리 장로님이랑 통화하고 갔습니다. 식사도 같이 하고 또 센터 수업에도 참관했어요. 도박 중독자 가족, 주로 부모들이 모여서 포럼하는 그런 모임이에요. 그걸 자조 모임이라고 호칭하거든요. 스스로 돕는다 이 말이에요. 부모들이 아주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모여서 포럼을 하는 거예요. 몇 분이 센터 훈련도 받았고 또 자기도 그 문제를 겪었던 그런 몇 사람이 멘토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 핵심 내용이 뭐냐 하면 도박 빚은 절대 갚아줘서는 안 된다. 그거는 갚아줘도 절대로 못 고친다. 가정 전체 재정 다 파산 난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중독자를 센터에 가능한 같이 데리고 오라고 얘기하더라고요. 부모 자조 모임도 1단계 2단계 3단계가 있고 실제 중독자들 자조도 모임도 하고 있어요. 유승훈 장로님은 이렇게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개인 상담을 하더라고요. 개인 상담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 받은 사람들을 따로 모아서 영적 회복 모임이라는 모임을 하더라고요. 거기서 기초 메시지 다락방 기초 메시지도 하고 복음 편지도 하고 그렇게 운영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 가는 중에 차 안에서 기도했어요. 만날 장로님 놓고 또 만남 일정을 놓고 기도를 했는데 그때 내면에 이런 말씀을 주셨어요. 주님이 “무너진 자들을 위해서 어떻게 낮아지셨고 어떻게 공감해 주셨고 어떻게 그들을 용서해 주셨고 살리셨는지 니가 중독자들을 만나 경험하면서 니가 그걸 배우도록 내가 하고자 한다.” 이런 말씀을 제 마음에 주셨어요. 사실 제 본성은 목회하면서 숫자가 많아지기를 원하고 또 높아지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본성이에요. 그러나 주님은 “주님의 모범을 본받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서기를 원하신다.” 그런 생각과 마음을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렇게 바뀌고 제자로 세워지는 것이 사단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개개인이 변화를 받고 제자로 서는 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거니까 다른 말로 사단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 중독 시대
1) 뇌 신경학적 측면
중독 시대인데 중독 중에 가장 센 중독이 마약 중독이에요. 마약 중독은 뇌 신경 조절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거예요. 그래서 중독자들은 처음에는 “내가 의지력을 가지면 끊을 수 있겠지” 이렇게 대부분 생각을 한대요. 근데 실상 끊지를 못하는 거예요. 마약 센터 운영하는 분들이 힘들겠죠? 그분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마약 치유 재활 센터 운영하는 데가 여러 군데 있거든요. 그렇지만 “한계를 느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이 중독 문제를 보면서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뇌 신경학적으로만 봐서는 안 되고 사단이 하나님 떠난 결핍된 상태에 인간을 어떻게 약물에 걸려서 파괴 유린하는지 그런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거예요. 다른 말로 근원적인 이유와 함께 영적, 의학적 두 가지 관점을 같이 통합적으로 봐야 한다 이 말입니다. 약물이 들어가면 사실 뇌의 조절 시스템이 무너져요. 그건 사실이거든요. 근데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약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내면의 상태, 마음과 생각의 상태를 사단이 얼마든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말이에요. 그 사람의 영적 문제, 가문의 영적인 문제에다가 환경의 문제를 접하면서 상처를 받게 만들고 그게 약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런 배경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거를 근원적인 이유로부터 영적인 면과 의학적인 면을 함께 통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근본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다 이 말이에요. 이번에 집중 훈련 녹취 메시지를 여러분 보시면 이런 영적인 눈이 열리도록 하는 그런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녹취 메시지를 꼭 제대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는 과학적으로 보면서도 영적으로 봐야 합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면 약물만 아니라 사단 귀신의 실체 인간의 마음과 생각에 얼마든지 영향을 준다 이 말입니다. 약물에 딱 걸려들게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과 그 아들 그리스도와 진정한 사귐이 중독자조차 치료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이렇게 실제로 우리는 확인하고 그 답을 확신해야 합니다.
2) 원래 인간은 처음부터 가장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지으셨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계약적이고 책임적 존재로 하나님이 지으셨어요.
대리 통치자니까 이 계약 관계를 깨뜨리도록 유혹한 놈이 사단인 거죠. 이놈은 인간을 속임수와 욕심으로 범죄케 만든 거죠. 그래서 이놈은 구약에서부터 신약에까지 다 나와요. 예수님의 생애에도 등장하고요. 요한계시록까지 등장하는 영적인 대적이 사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 존재가 인간의 영을 죽이고 또 인간의 혼과 뇌까지 얼마나 얼마든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 영적인 존재가 가문과 또 부모 인생에 영향을 주고 그다음에 나의 가정과 성장 배경에 영향을 준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영접해서 하나님 만나게 되면 환경은 안 바뀌는데 그 사람이 바뀌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거든요. 오늘 오후 시간에도 그런 분 얘기를 잠시 하게 될 텐데요. 환경은 똑같은데 사람이 확 살아나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독 문제를 영적인 것과 뇌 적인 것을 통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고,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이 대적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기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뿌리내리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림과 진정한 누림이 되도록 지금 생명을 얻은 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경험하면서 다른 사람이 생명 얻고 누리도록 하는 일에 일꾼이 되는 거예요.
2. 여러분은 주님과 사귐으로 인해서 오는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까?
1) 주님과 사귐으로 오는 진정한 누림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이 그런 내용이에요. 이러한 주님과의 또 아버지와의 진정한 누림이나 기쁨은 세상에 줄 수 없는 거예요.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뭘 준다고 그랬어요? 평안을 준다고 얘기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본문 3~4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도 전도자의 삶에 쓰임 받으면 기쁨이 와요. 여러분의 가장 큰 기쁨은 영혼의 기쁨이거든요. 영혼의 기쁨은 기도할 때 맛볼 수 있고 가장 큰 기쁨은 생명이 살아나서 세워지고 변화하는 거 볼 때 여러분 참 기쁨을 갖게 되는 거죠. 우리가 주님과 진정한 사귐이 더 깊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깊어지려면 나의 근본 영적인 문제와 또 내 본성과 내 체질을 보는 눈을 갖고 먼저 나부터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문제를 잘 모르면 그리스도가 정확하게 적용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나를 보는 눈이 먼저 열려야 되고 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나 왜 그런지 모르겠어. 왜 나는 안 되지?”이러고만 있으면 안 되는 거죠. 왜 안 되는지 이유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내가 모르겠으면 “정말 주님 내가 왜 이렇습니까?” 하고 물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진정한 신앙생활의 시작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부터 시작되지만 사실은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도 시작이 되는 겁니다. 나의 영적 문제를 알수록 어떻게 됩니까? 자기를 내려놓게 돼요. 자기를 부인하게 돼요.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구나. 내가 안 되기 때문에 복음이 필요한 거구나. 복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좌절하면 안 되는구나.” 나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만이 주인 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출 수 있도록 주님은 우리를 부르신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원에 딱 방향을 맞추면 이 하나님의 소원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거예요. 내게 오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건져내고 나를 치유 회복하고 나에게 능력 주시어서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만드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첫 번째가 내가 올바로 치유되고 회복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맛보고 체험하는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생명 얻고 사단의 권세에서 빠져나오고 그 사람이 치유 회복되는 것에 나의 관심과 생각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의 관심을 하나님의 소원과 그걸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관심과 생각에 맞추는 거예요. 육신적인 관심과 생각에 맞추는 게 아니고 정말 일 하면서도 일의 진정한 목적이 사람 살리는 거가 됩니다. 여기에 나의 관심과 생각을 맞추게 되는 거죠. 이때부터 어떻게 됩니까?
2) 내 삶의 주님이 진짜 주인 되시는 거예요.
진짜 해결자가 되시고 또 언약 성취자가 되시는 겁니다. 언약 성취한다는 것은 어떤 말이에요? 지금 내 안에서 성령으로 임재 통치 인도 역사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기도할 때마다 성령님이 임재 통치하시니까 기도 문을 열어주시고 영의 생각이 나고 영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자꾸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시고 교훈을 주시며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진정한 누림과 기쁨을 얻게 되는 거예요. 주님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기쁨과 누림이 있으면 그 기쁨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복음의 눈으로 쳐다보면서 사명자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지난주 말씀에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배신 또 외로움 죽음을 직면하고 있었지만,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내게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최고 하나님과 그 아들과의 교제에서 오는 누림과 기쁨을 맛봤던 거예요. 지금 이 기쁨을 알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너무너무 많아요.
지금 그들은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에 의존하거나 집착하거나 그러다가 중독에 빠지는 거예요.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그 결핍과 그 갈망을 어디에 의존하냐 하면 어떤 사람은 돈에다가 의존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명예, 권력에 의존할 수 있는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은 오락이나 게임에 의존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게 기쁨과 재미를 주잖아요. 또 어떤 사람은 술이나 여자나 음란이나 마약이 의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이런 현상의 뿌리는 하나님 떠나 사탄에게 잡힌 영적 문제 때문에 그래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못 고칠 사람이 없고 못 해결할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주님이 인간을 대속하시고 속죄받도록 해 주시고 그 사람 속에 성령으로 그 영과 혼과 뇌까지 살릴 수 있습니다. 몸과 생활 습관까지 고칠 수 있다는 말이에요.
3. 오늘 본문
1) 1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여 눈으로 본 바여 자세히 보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런 말씀이 있죠.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거죠. 요한복음에서도 유사한 말씀이 나오죠. 요한복음 1장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이라 그래요. 왜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그럴까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려주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과 뜻, 하나님의 소원 이거를 예수님이 정확하게 알려주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
사도 요한은 오늘 1절에 보면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해서 들었고 보았고 자세히 보았고 만졌다. 이렇게 강조하거든요. 왜 이런 표현을 세게 할까요? 그거는 이유가 있어요. 당시에 그노시스 영지주의 이단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요. 영지주의라는 초기 이단이 있었어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런 이단인데 영은 선하고 물질은 무조건 악하다. 그래서 신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올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이단이 영지주의예요. 그러면 예수님의 3년 동안 공생애는 뭐냐? 그거는 그래 눈에 보였을 뿐이지 실제가 아니다. 그걸 가현설이라고 합니다. 그게 말이 안 되는 주장이잖아요. 그 당시에 목격자들이 아직 존재했을 때였어요. 그래서 지금 사도 요한이 뭐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나는 그 말씀 곧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고 보았고 자세히 보았고 만졌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가현설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실제를 나는 경험했다. 그분의 역사성을 얘기하는 거예요. 지금 2절에도 그런 말씀이 나오죠.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2) 3절에 보면 이 사귐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3절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아들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여러분, 우리가 영적 생활을 하게 되고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되면 따라오는 것이 누림이고 기쁨이에요. 하나님을 알고 믿어 실제 의지해서 체험하는 거 여기서 누림과 기쁨이 오는 거예요. 주님과의 사귐이 되면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기쁨이 있잖아요. 뇌에서 그때 도파민이 분출돼요. 이게 나중에 한 번 설명하겠지만 우리의 영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관이고 우리의 혼은 지정의 인격의 중심인데, 영과 혼은 항상 붙어 있어요. 기능은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어요. 혼은 우리의 인격 자체를 말하는 것인데 이게 작동하는 물질적으로, 신경학적으로 작동하는 기관은 뇌예요. 그래서 일반 불신자 과학자들은 뇌가 죽으면 다 끝난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냐 하면 뇌가 죽으면 영과 혼이 죽은 건 아니라는 겁니다. 뇌에 문제가 와서 치매가 왔다든지, 뇌졸증으로 무슨 마비가 왔어도 혼이 마비가 온 게 아니에요. 피아노를 보게 되면 피아노 줄이 끊어지거나 피아노에 이상이 있으면 소리가 이상한 소리 나잖아요. 피아노가 안 쳐지잖아요. 그게 뇌 손상하고 같은 거예요. 그렇지만 연주자는 따로 있어요. 그래서 피아노는 우리의 몸과 뇌로 표현하고 연주자는 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불신 과학자들은 뇌에 손상이 되면 영혼 자체가 없기에 인간은 끝나는 거다 라고 보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치매가 오더라도 그 사람의 혼에 치매가 온 게 아니에요. 뇌에 치매가 온 거기 때문에 우리는 치매가 온 사람도 그 사람의 영과 혼은 온전하다고 봐야 돼요. 이게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 영에 기쁨이 오면 우리 마음에 행복이 오잖아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물리적인 기관인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이 분출이 됩니다. 그래서 삶의 의욕이 생겨요. 이런 사귐이 있으면 중독자가 마약을 안 해도 보상이 돼요. 중독자들은 이 마약이 얼마만큼 센지 오늘 오후에 또 얘기할 텐데 이게 일반 어떤 기쁨보다도 측량할 수 없는 도파민이 분출돼서 굉장한 기쁨과 함께 또 다시 하고 싶은 거예요. 이거는 사실 정상적인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먹어서 기쁨이 온다든지, 뭐 재밌는 걸 봐서 기쁨이 온다든지, 누구랑 사귀어서, 또 칭찬을 들어서 도파민이 분출되거든요. 그건 정상적인 건데 메스암페타인 그런 게 있는데 이게 필로폰이에요. 필로폰 이거는 일반 도파민보다 천 배가 나온대요. 천 배가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그야말로 황홀 그 자체죠. 근데 이게 왜 이상이 오게 되냐 하면 도파민이 뇌에서 나오게 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체라는 게 있대요. 근데 너무 과다하게 나오니까 뇌는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용체의 수를 줄여버린다는 거예요. 이게 한 번 줄어들면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 달 이상, 또 1년 이상 간다고 합니다. 수용체가 줄어들어서 도파민을 받아들이는 기능을 막으면 이 사람은 마약을 안 하면 굉장히 우울해지는 겁니다. 무기력해지고 못 견디는 겁니다. 심하면 근육 경련이 와요. 심한 사람은 몸에서 벌레가 막 돌아다닌 것 같은 증상을 경험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이제는 즐거워서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못 견디겠으니까 또 마약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중독이 되는 거예요. 이게 심하면 어떤 장소만 가도, 마약했던 장소라든지, 마약과 관계된 사람이라든지, 거기에 관계된 그림만 봐도 뇌에서 도파민이 확 나와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영접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와 사귐이 있게 되면 성령께서 기쁨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뇌에서 도파민이 나와요.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게 되면 우리의 모든 기능이 회복되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제대로 받으면 정체성의 확신 또 나 인생의 사명이 생기고 승리의 확신 이런 게 오잖아요. 그러면 이게 뇌 과학적으로 보면 뇌에 손상된 기능이 회복이 된대요. 사단도 약물을 이용해서 우리의 뇌 기능을 무너뜨릴 수 있고요, 성령님은 그걸 회복시켜요. 모든 인간은 하나님 떠난 결핍과 목마름이 있죠.
근데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 근원이 다시 채워지는 겁니다. 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번 40일 집중 훈련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삼위 하나님과 사귐을 통해서 진정한 누림과 기쁨을 체험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버지와 아들과 진정한 사귐 이게 핵심이에요. 요한일서의 중요한 핵심이 아버지와 아들과 진정한 사귐이에요. 사귐과 누림과 기쁨 있으면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이 믿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언약 주시고 언약 이루실 것이 기대가 되는 겁니다. 이게 계속 기도해서 응답받고, 기도해서 응답받고 해서 계속 기쁨과 누림이 있으면 이 사람은 현장 보는 전도자의 눈을 뜨게 되는 거예요.
왜 나는 이 은혜를 맛보고 있는데 현장은 저렇지? 그냥 불신자 상태가 이론으로 보이는 게 아니에요. 실제로 사람들을 통찰하고 이해하는 단계로 들어간다 이 말이에요. 불신자나 확신 없는 신자를 보면 전도하고 답 줄 수 있는 말씀 운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일하는 목적이 뭡니까? 돈 버는 목적이 뭡니까? 여러분이 만약에 일해서 돈 벌고 어떻게 하든지 내 안전과 승진을 위해서,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자존심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단은 날마다 그걸 이용해 그 부분을 공격하겠죠. 조금 내 삶이 불안정해지면 염려가 들어오잖아요. 그걸 참고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만큼 스트레스예요. 거기에다가 또 문제 사건이 일어나면 더 스트레스 받는 거죠. 상처까지 받게 되는 거죠. 내 인생 왜 이래? 왜 이렇게 꼬여? 이렇게 들어가는 거죠.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어떡하든지 성공해야 돼! 또 이렇게 반작용으로 나올 수 있게 되겠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성공한 사람이나 무너진 사람이나 본질상 똑같아요. 영적인 본질은 똑같아요. 똑같이 마귀가 속이고 욕심에 빠뜨려서 자기가 주인 되고 자기 이성을 가지고 만물의 척도 삼고요. 인본주의 자아가 주인인 상태에서 그 양심을 가지고 선악의 기준을 삼는 거예요. 그리고 그 기준에 나는 의롭다고 내세우기를 원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 부분에 대해서 눈이 열리게 되고 공감이 되면 여러분이 전도자의 마인드를 정말로 갖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현장에서 어떤 눌림이 있고 전도에 대한 부담이 올 수 있잖아요. 내 본성은 그럴 수 있다 이 말이에요. 근데 여러분의 영을 통해서 성령이 주시는 생각은 그렇지 않아요. 성령이 주시는 생각으로 내 영적 상태를 바꾸는 거예요. 성령님은 계속 더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고 말씀이 더 정립되게 만드시고 주님과 사귐이 깊어지게 만드시는 거죠. 우리가 돈 버는 것만 목적으로 한다면 항상 돈에 묶여 살아야 되겠죠. 우리는 왜 돈을 벌어요? 그 돈을 벌어서 하나님 계명 지키기 위해서 돈 버는 거예요. 하나님의 통치 실현과 그 나라와 전도 선교를 위해서 돈 버는 거예요. 목적이 다른 거죠. 주님과 사귐을 놓치면 사단이라는 놈이 여러분을 장악하기 원해요. 구원받았는데도 여러분을 장악하고 또 속이려고 그래요. 여러분 인생의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게 만들어요
결론
요셉 다윗 다니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두 가지 욕구를 위해서 살지 않았어요. 돈 때문에 자리 때문에 살지 않았다 이 말이에요. 그들은 높은 위치에 올라갔던 사람들입니다. 왕이고 총리들이잖아요.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와 그 통치 실현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진정한 렘넌트였고 전도자요 선교사들이었어요. 진정한 기쁨과 누림이 요한일서의 핵심이에요. 아침 낮 밤 기도의 깊이와 질을 향상시키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간도 여러분에게 주님은 언약적 인도 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여러분이 어디에 관심을 갖고,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그 따르는 자의 종이 될 수 있어요.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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