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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3월 22일 - 죄의 문제를 이기려면(요일 1:5~10)

by 별종외계오동 2026. 3. 22.

 

https://youtu.be/7zPEcOOGyKg

 

 

죄의 문제를 이기려면(요일 1:5~10)

 

지난주에 진정한 사귐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사귐입니다. 그리고 이 사귐의 결과는 누림과 기쁨의 충만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종교적인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죠. 오직 복음을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우리가 압니다. 이 복음에 의한 구원은 단지 여러분을 죄사함 받게 만들고 흑암 세력에서 건져내신 것만이 아니라 이제 참된 교제, 참된 사귐과 누림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언약적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종교나 율법은 그 일을 못 하죠. 율법은 하나님 말씀 맞지만 인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죄의 기능이 있죠. 여러분의 본성이나 여러분의 죄 됨을 드러내는 역할을 오히려 율법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갈보리 산 십자가의 언약을 근거로 해서 구원받았을 뿐입니다. 이게 얼마나 은혜인가 여러분의 진정한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다 끝났다고 해서 우리가 죄의 본성대로 계속 살면 되겠습니까? 그건 아니죠. 우리가 이런 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죽어주셨는지를 진짜로 안다면 결코 그럴 수 없는 거죠. 아버지와 아들과 사귐을 계속 가지면 가질수록 오히려 우리는 죄에 대해서 민감해져요. 오늘 제목이 죄의 문제를 이기려면하는 제목이에요.

 

제 간증을 좀 하겠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제가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는 말씀드렸잖아요.  니가 갖고 있는 인본주의 자존심이 죄다이 말씀을 제게 주면서 구원의 체험을 하게 됐거든요. 근데 대학교 2학년 때 그 구원 확신이 아주 공격당하고 흔들리는 경험이 있었어요분명히 구원받아서 내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에 확신과 은혜를 받고 살았는데 2학년 때 거듭 짓는 죄의 문제에 걸렸어요. 내가 하나님 자녀면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소원이 당연히 오잖아요. 근데 사랑이 실천이 안 되는 겁니다. 실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게 처음에는 제 의지력, 정신력의 부족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노력을 안 해봤으니까, 그렇지만 저는 노력해 본 결과 습관적인 죄, 거듭 짓는 죄를 못 이긴다는 것을 그때 체험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어디까지 갔냐 하면 내가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 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다시 해도 또 무너지니까. 그래서 그때 제가 그런 고백을 했어요. “이런 저를 그래도 주님이 받아주시면 저는 사는 것이고, 이런 저를 만약에 안 받아주시면 저는 그래도 저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이런 고백을 하게 됐어요. 그랬을 때 여러분 잘 아는 롬 81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그때 이런 깨달음을 주셨어요. “저는 거듭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나는 정작 나의 죄의 본성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구나. 내 체질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구나.” 이제 해보려고 하니까 문제가 드러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걸 깨닫게 해 주시는 기회가 대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래서 로마서와 히브리서 말씀을 통해서 이런 저를 주님이 받아주셨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정말 다시 구원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또 3학년 때 있었어요. 거듭 짓는 죄까지도 용서받았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죄에 대해서 이기는 건 아니지 않냐? 니가 정죄는 안 당하지만 계속 연약하고 자꾸 죄 짓는 삶을 살면 그건 또 합당치 않는 거 아니냐그게 또 숙제였어요. 대학교 3학년 마치고 제가 군대를 가게 됐는데 한 8월에 가게 됐어요. 훈련소로 들어가는 거죠. 그런데 그전에 카투사 시험이 있었어요. 당시에 대학생들이 그 시험 봐서 들어갔거든요. 저도 지원을 했어요. 용케 1차 합격이 됐어요. 그래서 2차 합격이 되면 제가 카투사로 들어갈 상황이에요. 입영일은 나와 있지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최종 합격 확인이 되면 일반 병으로 안 가고 카투사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연기 신청하고 입영 날짜는 한 몇 주 남았어요. 그 기간에 내가 뭘 해야 할까? 군대 가기 전에 여행하면서 좀 쉬고 즐기는 시간을 가질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제 마음에 아니다. 군대 가면 신앙생활 하기가 더 어렵다고 하더라. 그러면 내가 더 영적인 은혜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저는 그 당시에 기도원을 다녔어요. 한얼산 기도원이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 갔다 왔고 그다음에 오산리 금식 기도원을 갔어요. 순복음교회 기도원이죠. 근데 그 기도원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만남이 있었어요. 그 만남이 제 인생의 방향을 틀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예배드리는데 근처에 앉아 있는 어떤 자매인데 이 자매가 은사가 많았어요. 방언은 기본적으로 하고 상대방의 영적 상태를 그냥 알아 맞추는 거예요. 영적 상태를 그냥 말을 해줘요. 전혀 내가 얘기를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분이 맞추는 거예요. 제가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서 나의 어머니하고 아버지의 영적 상태를 물어봤어요. 저희 아버지의 영적 상태를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이분이 그대로 직통 계시를 받아서 그대로 답변하는 거예요. “아버지 큰일 났대. 아버지 지금 그렇게 사시면 정말 안 된다고 막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때 아버지는 장로님이었고 아버지는 교회에서는 재정 부장이었지만 세상적으로, 육신적으로 그냥 살았던 분이에요. 아버지 큰일 났다는 거예요.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우리 어머니에 대해서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그 당시에 장로교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방언을 받았어요. 집에서 따따따 랄랄라방언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막 방언 찬송도 해요. 어머니가 그러고 있는 참인데 어머니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이분이 하는 말이 어머니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기도 줄이 강대상으로 쫙 연결이 돼 있대요. 그런데 어머니의 기도 줄이 아직은 너무 약하다는 겁니다. 어머니가 더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생각해도 이게 다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 사람 더 물어봤어요. 당시에 제가 섬기는 교회 대학부 전도사님에 대해서 물어봤어요. 이 대학부 전도사님이 서울대 사범대를 나오고 신학대학원을 갔어요. 이분은 지식이 많대요. 그런데 지식이 머리에 올라타고 있는 게 아니라 지식을 엉덩이에 눌러앉아 있더래요. 하나님이 보여주시기를 이분은 참 겸손하대요. 이분은 나중에 신학 박사가 돼서 아세아 연합신학원 교수까지 하셨어요. 그거 맞잖아요. 그다음에 내 친구 하나를 물어봤거든요. 아주 절친이고 동기로 내가 신학교 갈 때 이 친구도 신학대를 갔거든요. 그 친구에 대해 물어봤더니 이분이 뭐라고 얘기하냐면 왜 부르지도 않았는데 갔네요. 내가 소명하지 않았는데 갔냐는 겁니다. 저는 충격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저에 대해서 물어봤어요. “제 영적 상태가 어때요?” 이렇게 물어봤더니 이분이 하는 말이 겉모습은 환한데 하나님이 영적인 얼굴을 보여주는데, 영적인 얼굴이 새까맣다는 거에요. 지적 교만이 너무 세다는 겁니다. 자기 머리로 말씀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이해되면 은혜를 받고 이해 안 되면 은혜 못 받고 이런 식이라는 거예요. 제가 제 성향을 알잖아요. 그 당시에 정말 그랬거든요. 큐티도 열심히 했어요. 근데 머리로 이해가 되면 시원하고 머리로 이해가 안 되면 답답한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머리로 다 이해가 되냐?” 안 되는 부분 많아요. 나보고 하는 말이 그게 깨지는 만큼 은혜를 받는다는 거예요. 그때 그 말을 듣고 제 심령이 애통한 거예요. 나는 은혜 받으러 갔는데 저런 소리를 하니까 그때 회개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뭘 얘기했냐 하면 카투사 1차 합격 발표가 됐는데 나 얼마 있다가 이제 군대 가게 된다고 얘기했어요. 이렇게 얘기했더니 자기가 기도해 보겠대요. 그리고 다시 만나서 대답해 주기를 제가 카투사 군복을 딱 입고 있는 걸 하나님이 보여주시더래요. 카투사가 됐대요. 아직 발표 안 됐거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러나 신 형제가 카투사 가는 것보다 일반 병으로 가는 걸 하나님이 더 기뻐해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뭐라고요? 그때 내게 어떤 깨달음이 왔냐 하면 카투사면 좀 편할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영어 공부도 하려고 그런 마음을 먹었는데 하나님은 그것보다도 환경이 어려운 한국 군대를 보내서 나를 마치 광야 훈련처럼 연단시키려고 하시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과감히 카투사를 안 가고 일반 병으로 그냥 입대했어요. 근데 제가 입대한 이후에 최종 카투사 합격자 통지서가 왔어요. 카투사 됐다고 근데 저는 이미 군대 갔어요. 군대 가면서 저는 기도 제목이 있었어요. 무슨 기도 제목이 있었냐 하면 머리로만 알지 말게 하시고 이 군 기간 동안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의탁하는 법을 배우게 해 주옵소서

 

제가 3학년 때 갈등했다는 게 뭐예요? 정죄함이 없어도 계속 죄를 짓고 삶에 승리 못 하면 그것도 문제 아닙니까?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에요. 머리로 의지하지 말고 실제 의탁하는 기도 훈련을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군대 가서 저는 주간 보초, 야간 보초 시간이 정시 기도 훈련받는 시간이 되었어요. 눈 뜨고 기도하는 거예요. 그 시간이 제 인생을 기도 체질로 바꾸시는 시작이 되었어요. 군대 가서 군종이 됐고 군종이 되니까 설교도 하고 그리했거든요. 그런 가운데 제대할 때 하나님이 제게 내면의 음성으로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이 환경의 어려움이 없어지는데도 네가 제대한 이후에도 영적인 긴장을 하고 지금처럼 기도할 수 있겠냐하시는 거예요. “군대에서 환경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기도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면 니가 진짜 편안해져도 지금처럼 기도할 수 있겠냐이게 주님의 말씀이었어요. 기도 훈련이 되니까 내 영적 상태가 좋아지잖아요. 그게 죄를 이기는 방법이에요. 머리로는 안 되고 실제 성령께서 얼마만큼 저와 여러분을 통치하느냐에 따라서 계속해서 영적인 감각이 회복되고 믿음이 회복되는 겁니다. 죄의 본성은 남아 있지만 그걸 이길 수 있는 힘을 성령께서 주시는 거예요. 오늘 본문과 관계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1. 오늘 말씀은 불신자 대상이 아니고 신자에게 주시는 말씀이죠.

1) 5~6절을 한번 다시 읽겠습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우리는 구원받았으면 이제는 빛 가운데 행하도록 우리 신분을 바꿔주신 거잖아요. 빛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빛 가운데서 사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둠에 거하는 삶을 피하게 되잖아요. 어둠이 뭐예요? 죄 짓는 거잖아요. 마귀의 종노릇 하는 거잖아요.

7절에 보면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오그랬는데 여기서 모든 죄를 깨끗게 하신다는 것은 구원받을 때 죄 용서함 받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구원받고 나서 우리가 살면서 또 짓는 죄에 대해서 용서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9절에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오여기서 깨끗해 하신다는 것은 구원의 차원에서 말하는 게 아니고 교제의 차원에서 용서를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과 교제가 막힐 때가 언제입니까? 죄를 지으면 교제가 막히죠? 성령님이 근심하시잖아요. 성령님이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는 것이 소멸당하잖아요.

 

2) 우리는 사실 주님과 교제가 막히고는 살 수 없는 존재예요.

주님이 오히려 이 교제를 회복하며 우리를 언약적 인도를 계속해 주기를 원하시거든요. 그 언약적 인도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회개가 필요한 거예요. 우리가 정말로 나의 내면을 살펴보고 내가 어디서 또 넘어졌는지를 살펴보면서 회개하는 거예요. 그러면 다시 우리를 용서하시고 성령께서 임재 통치 인도 역사해 주시는 겁니다. 이게 늘 우리한테 지금 반복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신자는 사실 죄에 대해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바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죄까지 범했잖아요. 순식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죄로 빠져가는 것을 보게 돼요. 저도 다윗과 같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다윗이 밧세바만 안 봤으면 됐잖아요. 그냥 봤는데 마침 또 그 장면이목욕하는 장면이야.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본능이 올라오고 그걸 다스리지 못하니까 밧세바를 범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밧세바가 임신하니까 그거를 가리기 위해서 우리야를 결국 죽이는 자리까지 가잖아요. 사단이 이렇게 함정에 빠뜨린 거죠.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다윗이 이런 죄를 범했을 때 그의 영적 상태는 어떠했겠습니까? 완전히 어둠에 거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죠. 교제의 모든 기쁨을 상실하게 되죠. 사실 이게 성도에게는 최악인 거죠. 밧세바가 낳은 아기가 죽잖아요. 하나님이 그 죄값에 대한 징계를 하신 거죠. 근데 다윗을 하나님이 버리지는 않으세요. 시편 51편을 찾아 보세요. 그 제목 보면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지은 시로 되어있습니다.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다윗이 범죄 이후에 나단이 책망할 때 자기가 회개하면서 깨달은 거예요. “내가 죄악 중에 출생했구나.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낳았구나.” 자기 원죄를 인정하는 거예요. 그리고 1112절을 봅시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주의 성령으로 교제하는 기쁨이 뭔지를 다윗은 알았던 거예요. 그는 골리앗도 이기고 그랬잖아요. 주의 성령과의 교제의 기쁨이 뭔지 아는 사람이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구약에서는 아직 대속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말로 예수님이 아직 오셔서 십자가를 안 지셨기 때문에 완전한 속죄의 보장이 안 돼 있는 거예요. 그때는 계속 제사를 드려야 됐잖아요. 죄 지으면 또 제사 드려야 되고 죄 지으면 또 제사 드려야 하잖아요. 구약의 속죄는 임시적이었어요. 그렇기에 성령의 내주도 보장이 안 되어 있었어요. 구약 성도에게 성령 내주라는 단어가 없어요. 영원히 우리 속에 오시고 안 떠나신다는 것은 신약에 와서 십자가의 사건이 완성됨으로 우리에게만 주어진 축복이에요. 여러분은 성령님이 끝까지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고 상속자입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17절에 다윗이 깊은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다.” 다윗의 진짜 회개하면서 나오는 고백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깊은 회개를 원하셔요. 그러면서 우리 바닥까지 보게 만드시는 거예요.

 

시편 32편을 찾아보십시오. 32편도 밧세바 범죄 사건과 관계된 시편입니다. 3~4,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이게 무슨 말이에요?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셨다. 이 말씀은 무슨 말일까요? 입을 열지 않을 때 곧 회개하지 않을 때 주의 손이 계속 억압하시는 거예요. 심령이 굉장히 답답하도록 억압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 진액이 빠져서 진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다는 거예요. 이게 영적 상태가 억눌림과 무기력과 탈진 상태 된 것을 말하는 거예요. 사단은 성도가 죄에 빠져서 회개치 못하고 이렇게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5~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에게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라.” 이거 뭐예요? 깊은 회개와 그에 따른 용서의 축복을 말하는 거예요. 구약에서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회개한 거예요. 완전한 죄 사함이 보장되지 않았지만, 구약 성도는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던 거예요. 우리보다 훨씬 불리한 거죠. 오늘 우리는 이미 오셔서 구속 사업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구약에서 속죄는 임시적인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완전한 속죄가 주어진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81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통치하시는 인생이 되었다 이 말이에요. 이 성령님이 우리의 모든 영적인 삶을 인도하시는 거예요. 요한일서 1장 오늘 본문의 내용을 여러분은 기도하시면서 잡기 바래요. 특별히 거듭 짓는 죄, 습관적인 죄로 인해서 마음 아파하는 사람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꽉 잡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둠 가운데 계속 머물 수 없는 존재예요.

 

2. 예수님이 7번씩 70번이라도 죄를 회개하면 용서하라 이런 말씀하셨죠.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주님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우리도 죄 짓고 회개하고 죄 짓고 회개해도 우리가 정말로 아파하면서 회개하게 될 때 언제든지 받아주십니다.

1)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다음 우리가 기도 체질로 바꾸는 게 승리의 관건입니다.

성령님은 회개하게 만들면서 어디서 넘어졌는지를 보게 하시는 거예요. 어떤 부분에서 주님을 의탁하지 않고 내 육신의 본성대로 사는지를 보게 하시는 거예요.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이제 깨어 있어야 하겠구나. 내가 주님을 더 의지하고 있어야 하겠구나.” 이렇게 깨닫도록 이끄십니다. 한 번 기도했던 사람은 두 번 기도하게 만들고, 두 번 기도했던 사람은 세 번 기도하게 만들고, 여러분 기도의 질과 깊이가 점점 발전하고 또 횟수까지도 늘어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늘 고백했던 것처럼 주 안에서의 삶이 회복되게 만드시는 거예요. 주 안에서 살게 되면 더 이상 여러분이 주인이 아니고 여러분이 책임자가 아니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이 사단과 죄와의 상관성을 잘 알아야 해요. 죄는 내가 짓는 거지만 항상 죄의 배후에는 죄를 부추기는 놈이 있어요. 죄에 빠질 수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공격하는 놈이 있어요. 우리 초등부 애들도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가 편안하대요. 기도를 안 하고 하루를 살게 되면 시비도 붙고 문제도 터지고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돼요. 우리가 기도하면 주의 천사를 보내시고 보호하시는 일을 하시잖아요. 우리가 사단과의 연관성을 바로 알게 되면 죄의 문제를 단지 내 힘으로 이기려 하지 않게 됩니다. 내 힘으로 죄 안 짓겠다 하면 백전백패합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싸우는 게 아니에요. “성령님이 나의 영적 상태를 붙들고 기도 권세를 누리게 하옵소서이렇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지 참 교제와 누림의 기쁨이 있게 돼요. 여러분에게 누림이 오면 올수록 현장에서 승리하는 현장 제자가 됩니다. 이번 집중 훈련의 목표가 개인 전도와 다락방 사역자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런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연약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게 돼요.

 

2) 이제 사역자로서 여러분이 갖춰야 할 부분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역할 때 현장에 무너진 자, 연약한 자들이 참 많아요. 범죄자, 중독자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 전해서 생명을 얻었어요. 그러면 이 사람을 데리고 말씀 운동, 다락방 운동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중요한 자세 두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첫째는 연약한 사람일수록 끊임없이 넘어집니다. 반복적인 죄를 또 짓습니다. 시행착오 많이 해요. 우리도 그랬잖아요. 이 사람들을 여러분이 용납하고 받아줄 수 있어야 해요. 여러분이 생각하지 못하는 죄를 짓고 있을 수도 있어요. 여러분 입장에서 선악의 기준으로 잘라버리면 안 돼요. 그가 짓는 죄에 대해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그 죄 지으면 되겠냐고 푸싱하게 됩니다. 근데 이 사람은 그 문제가 오래된 거거든요. 거기에 대한 개념이 안 잡혔을 때부터 그 죄를 진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을 이해하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해요. 기다려 주는데도 자기가 넘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누가복음 171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하게 할지인데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이건 무슨 말씀이에요? 실종시키는 죄의 중차대함을 얘기하고 있는 거죠. 근데 여기 보면 이 작은 자 중에 하나그랬는데 작은 자가 누굴까요? 여기서는 믿음이 약한 자를 말하는 거예요. 육신적으로 신나게 살다가 이제 구원받고 돌아왔어요. 그럼 육신적으로 이미 체질화돼 있는 게 얼마나 많겠어요. 육신적으로 즐기고 재미있어 하는 그게 그리워 구원은 받았지만 술 먹던 사람 또 술 먹어요. 반복적인 죄를 또 지어요. 음란한 행위를 또 해요.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보게 되면 이 사람들의 그 연약한 부분을 우리가 말로써 실족시킬 수 있어요. 17장에 보면 그냥 죄를 덮어두라고 말하고 있지 않고 권면하라는 말씀이 뒤에 나와요. 근데 어떻게 권면해야 하는지 그거는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만약에 복음 받아들인 사람이 중독자나 전과자나 정신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이들을 작은 자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들을 이해하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첫 번째 사역자가 가질 자세고요.

두 번째 사역자는 복음을 그가 바로 알도록 도와주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단번에, 완전히, 영원한 대속이기 때문에 그가 진짜 영접하게 되면 한순간에 구원을 받는 거예요. 운명과 소속과 신분과 통치 체제가 한 번에 바뀌게 돼요. 소속과 운명이 바뀌는 거는 결코 점진적인 게 아니에요. 성령님이 딱 믿어지게 하는 그 순간에 한꺼번에 소속이 바뀌는 거예요. 그 사람의 죄의 본성과 체질과 상관없이 바뀌어요.

속죄와 칭의가 이루어져요. 그게 기독교의 구원이에요. 그러나 죄의 본성과 체질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습관성은 아직도 남아 있어요. 넘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예요. 그러나 그래도 괜찮은 겁니다. 나 죄 안 지었다 하면서 뻔뻔해지라는 말이 아니고 주님은 그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때 그를 받아주신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피로 그 사람을 용서해 주신 거예요. 이미 그 사람 속에는 성령께서 와 계신 거예요. 넘어짐이 자신을 깨닫고 부인하는 기회가 돼야 하는 겁니다. 사람은 넘어지면서도 자기 자존심을 가지고 자기 의를 세우고자 하는 게 있어요. 모든 사람의 공통점이거든요. 근데 넘어질 때 할 수 있는 게 뭐예요? 내가 진짜 죄인이구나 이걸 계속 발견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은 넘어짐을 통해서 그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아 진짜 내 속에 있는 영적 문제를 내가 못 이기는구나이걸 알고 더 복음을 붙잡게 만드시고 그래서 성령님을 의지해서 그리스도께 뿌리내릴 기회로 삼으시는 겁니다. 넘어지면 뿌리내리는 기회예요. 자기 발견하는 기회에요.

 

3. 왜 주님은 성도에게 죄의 본성을 남겨두셨을까요?

우리 본성까지 그냥 거둬가시면 참 좋을 텐데 본성을 여전히 남겨놨어요. 이 구원이 은혜인 줄 알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여러분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보라는 말이에요. 너에게 의로움이 있는가 보란 말이에요. 결코 니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주시는 거예요. 갈보리 산 십자가의 은혜라는 거를 주님은 계속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영적 문제가 뭐고, 왜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되는지 더 깊이 알도록 해 주시는 거예요. 너를 제대로 부인하고 오직 오직 의 체질이 되라는 거예요. 우리에게 죄의 본성을 남겨놓은 게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의 체질이 되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망대로 서라는 거예요. 남아 있는 문제 때문에 구원이 정말 은혜인 줄 알고 더욱 나를 버리고 오직 복음에 집중하라는 거예요. 왜 넘어져요? 내가 연약해서 넘어지는 게 아니라 영적 상태가 약해져서 넘어지는 거예요. 거꾸로 얘기한다면 나의 죄의 본성이 있고 체질이 있지만 영적 상태가 바뀌면 되어요. 그래서 그리스도께 뿌리내리는 것이 깊어지고 의지하고 인정하는 것이 쉬지 않고 될수록 영적 상태를 성령님이 붙잡아 주셔서 승리케 해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똑같은 문제를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문제에 감당할 능력이 있게 되는 겁니다. 죄의 본성에 대해서 이길 능력을 주시는 거예요. 남아 있는 문제 때문에 24 체질이 되라는 거예요. 또 남아 있는 문제를 통해서 언제나 겸손케 하시는 거예요. 질그릇 속의 보배를 증명하는 자가 되라는 거예요. 거꾸로 생각하세요. “나는 안 돼가 아니고 그렇기에 그리스도가 증명되는 인생으로 부르셨구나.”이렇게 고백하라는 겁니다. 사단이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지지 말고 또 습관성에 그대로 눌러앉아 있지 말고 빠져나와서 나같이 연약한 자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사역자가 되라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계획이에요.

 

결론

강력한 은혜를 체험했던 웨슬리조차 남아 있는 문제 때문에 늘 고민했어요. 그게 제2의 은혜를 체험하는 이유가 된 거예요. 그는 회심 이후에 구원받은 이후에 계속 점진적 성화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점진적 성화의 과정이 다 있잖아요.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할수록 죄와의 싸움에서 점점 이기고 믿음이 자라나요. 그리고 내 본성은 사랑이 없지만주님의 사랑이 와닿다 보니까 딴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증가하게 돼요.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게 되는 겁니다. 웨슬리도 이걸 체험하는 거예요. 그런데 웨슬리는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더 큰 성화를 갈구했어요. 죄의 본성은 없어지지 않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완전히 통치함을 받고 싶었던 거예요. “하나님 내게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충만하게 해 주옵소서이거를 갈망하면서 집중했어요. 이게 그가 두 번째 은혜 곧 성령의 부어주심을 받게 되는 기회가 됐어요. 저는 현장을 가면서 이 성령의 부어주심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이 더 붙잡혀져요. 그러지 않고는 흑암 세력이 무너지지 않고 연쇄적인 구원의 문이 안 열리거든요. 사실은 내 힘은 필요 없어요. 정말로 주님을 기뻐하고 믿으시면 돼요. 근데 믿고 의탁하는 걸 안 하고 육신의 본성대로 자꾸 사는 경우가 많아요. 웨슬리는 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영적 나태함을 극히 경계 했어요. 이번에 집중 훈련이 24시 체질로 들어가는 아주 귀중한 과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죄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고 이기게 되는지 자세히 얘기했어요. 여러분의 이정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