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성도의 자세(요일 4:1~6)
우리는 성경 말씀 많이 듣고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질 것라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이해하는 거랑 의지하는 거랑 달라요. 신앙생활은 주님이 현재적으로 내 안에 성령으로 오셔서 통치하는 삶을 매 순간 인정하고 의탁하고 순종하는 삶이 어떻게 발전되느냐가 신앙 성장의 핵심이 됩니다. 그러니까 한 주간 멍하게 살고 한 주간의 실질적인 기도 발전이 안 되는 상태에서 오면 똑같아요. 여러분이 일할 때, 말할 때, 인간관계 할 때, 문제 처리할 때, 하루 스케줄 처리할 때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를 인정하시고 그분을 실제 의탁할 때 주님이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통치하시는 삶을 맛보게 됩니다. 이게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그게 발전되는 사람은 영적 성장이 돼요. 매주 성장이 됩니다. 이게 안 되는 사람은 말씀은 이해했잖아요. 근데 내 생각으로 살아요. 말씀을 참고하는 겁니다. 깨달은 것 가지고 내가 살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아니에요. 여러분 안에 실제 성령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주인 되셔서 여러분의 영과 마음과 생각을 잡아주셔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가 유튜브를 통해서 한 번씩 이만갑 프로그램을 봅니다. 이만갑 아시죠? ‘이제 만나러 갑시다.’ 탈북자들이 나와서 탈북 스토리 얘기하는 프로죠.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인권 유린 당하는지 보면 알게 되거든요. 김정은 체제 속에서 얼마나 고통당하는지 모릅니다. 지난번에 보니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김정은이가 태양인데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죽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얼어 죽는다. 이런 말을 해요. 무슨 의미냐 하면 태양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북한 고위층 간부래요. 이 사람들은 한 번 잘못 실수하면 제가닥 목이 날아가는 거예요. 타 죽어요. 그다음 태양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그러고도 사는 것은 어릴 때부터 세뇌 교육 당한 결과에요. 학교에서도, TV에서도, 아이들 노래까지도 전부 다 위대한 아바이 수령님을 찬양하는 것이 일색이에요. 완전 세뇌 당했어요. 사단도 저와 여러분을 그렇게 세뇌 당하게 했다는 것을 좀 오늘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우리는 그냥 정상적인 내 이성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우리가 생각하는 게 철저히 인간 중심이고 인본주의 삶의 체질 속에서 형성된 체질의 생각이에요. 여러분 속에 성령님이 실제 기도가 되게 하시면서 영의 생각으로, 말씀에 입각한 생각으로 여러분을 이끌지 아니하면 이게 구분도 잘 안돼요.
북한 사람들은 생활총화라는 걸 해요. 생활총화 이게 뭐냐 하면 북한 주민들을 통제하고 사상 교육을 하는 그런 시스템이에요. 생활총화라는 거는 북한 주민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에서 회사는 회사, 마을이면 마을 그 단체에서 정기적으로 모여서 반성도 하고 상호 비판도 하고 교육시키는 일종의 정치 제도예요. 그게 반상회처럼 모여서 상호 비판하고 또 교육하고 그런 시스템이에요. 탈북자들은 이런 체제 속에서 살다가 탈북한 거죠. 이들이 대한민국에 오면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속고 살았는지를 완전히 깨닫게 돼요. 그전에는 이 소식으로만 듣잖아요. 근데 이제 와서 확인하니까 완전히 깨닫게 돼요.
우리가 받은 구원도 이 같다는 거예요. 사단의 그 운명 속에서 우리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무지와 왜곡과 거짓 속에서 철저히 눈에 보이는 인본주의 체제 속에서 이걸 가장 정상적으로 알고 살아왔던 거예요. 근데 이게 사람을 속이는 거란 말이에요. 거기서 우리가 구원받고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소속과 운명이 바뀌는 거다. 탈북자처럼 우리도 소속과 운명, 신분, 체제 다 바뀌는 거죠. 이게 예수 영접하는 순간에 단번에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사실이에요. 운명은 한 번에 바뀌는 거고 체질은 평생 바뀌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디에 속했느냐가 참 중요해요. 여러분 소속이 중요해요. 이 소속이 여러분의 정체성이 됩니다.
전도란 여러분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사람을 설득시키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고린도전서 2장에서 전도란 삼위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리스도 보내시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사역을 성령님이 증거하고 믿게 하셔서 믿는 사람에게 생명 얻게 만드시는 거예요. 그러니 진짜 전도는 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과 소속과 신분을 바꿔주는 거예요. 주님이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이 빨리빨리 안 한다고 여러분이 낙심할 이유가 없어요. 그건 믿음의 전도가 아니고 자꾸 내 동기와 내가 되게 해야 한다는 힘이 들어가서 그래요. 힘 빼셔야 해요. “진짜로 내가 오늘도 믿음의 전도를 했구나, 하나님이 받아주시는구나” 이런 주님이 인정하시는 전도를 배우셔야 해요. 우리가 전도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게 정말 성경이 말하는 세상 본질을 정확하게 아는 겁니다.
1. 성경이 말하는 세상의 본질
1) 이미 보았던 요일 2:15~16에는 세상의 본질을 말하면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던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오.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여기서 세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서 죄에 빠진 세상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는 세상을 말하는 거예요. 세상의 모든 가치관, 기준, 문화가 다 포함되는 거예요. 이게 영적 문제에 빠진 세상이다. 사단의 권세 하에 있는 세상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TV 볼 때도 그런 생각을 하고 TV 보고 계십니까? 여러분 사람 만날 때도 진짜 이런 영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람 보십니까?
그런 면에서 복음과 종교는 달라요. 우리는 종교가 아니잖아요. 종교는 영적으로 세상을 보지 않습니다. 자연적인 세상으로만 보지. 지금 우리가 말한 것처럼 죄악에 빠진 세상, 사단의 권세에 빠진 세상, 영적 문제에 빠진 세상으로 안 봐요. 뿐만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 영적인 죄, 영적 문제를 종교는 몰라요. 그러니까 출발부터가 다르잖아요. 하나님께 지금 반역하고 있다는 것을 종교는 인정 안 해요. 그러면서 양심대로 살면 된다. 모든 종교는 양심대로 살면 된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건 영적인 걸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지금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고 있다는 걸 인정을 안 한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서 자기 자신이 선악의 기준이 돼서 양심을 가지고 판단하고 옹호하며 살고 있는 겁니다. 북한 체제 속에서 살면 거기서 선악의 기준은 뭐예요? 양심도 되지만.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북한 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법은 철저히 그 체제를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거든요. 북한 법이 선악의 기준이에요. 그리고 그 법 위에 초법적인 존재가 김정은이에요. 김정은이가 선악의 기준이에요. 죽이라고 하면 죽입니다. 지금 세상은 기준이 왜곡됐어요. 소속이 잘못됐어요. 지금 사단이 거짓과 속임수에 빠뜨려서 하나님의 기준은 알지 못하게 만들고 인간 기준으로 살게 만들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면서 열심히 살면 돼, 착하게 살면 돼, 양심대로 살면 돼 이렇게 가르친다고요.
2)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알려주는 죄의 성격과 죄의 본질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어요.
여러분, 정말 성경이 말하고 있는 죄의 성격과 본질을 정말로 알게 된다면 진짜 전도 마인드가 생겨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죄의 성격이 뭐예요? 영적인 죄예요.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 말씀의 권위를 거역한 죄예요. 그래서 지금 모든 사람은 양심대로 살면 되지 않느냐 얘기하면서 자기가 선악의 기준이 되고 또 영이 죽은 이성을 가지고 판단과 진리의 기준으로 삼아요. 순전히 인간의 기준이에요. 따라서 제가 강조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리에 있단 말이에요. 지금 인간이 세상에서 이걸 죄라고 인정합니까? 전혀 알지도 못하고 감각도 없어요. 그래서 정말 여러분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이 죄의 본질과 죄의 성격을 바로 알게 되면 왜 지금 인간이 사단에게 종 노릇하고 있고 심판 가운데 있는 줄 알게 되는 겁니다. 이걸 바로 알면 사도바울이 세상을 향해서 평가했던 말씀이 진짜로 와닿는다니까요. 엡 2:1~3,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정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 아들 너희 가운데 역사는 영이라. 전에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이게 지금 양심적으로, 윤리적으로 얘기하는 겁니까? 이게 지금 종교적으로 얘기하는 거 아니란 말이에요. 이게 종교적인 관점 아니죠? 양심 윤리적인 기준은 아니잖아요. 영적인 죄, 영적 문제에 빠진 걸 증거하고 있는 거예요. 이거는 공부해서 이 운명에서 못 빠져나와요. 양심적으로 근면 성실하게 살았다고 이 운명에서 빠져나옵니까? 사도바울에게 준 사명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행 26:17~18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에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기업을 얻게 하리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하시겠다는 거예요. 그 일에 사도바울을 쓰시겠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전도하러 나갈 때 주님이 안 하시면 못하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전도하는데 전도 안 되어서 풀이 죽는다면 그건 자기 동기잖아요. 성취하려고 하는데 안 되니까 낙심하잖아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전도하는 게 아니에요. 성령님이 그 사람 인생에 개입, 간섭하셔요. 그 사람 마음에 성령님께서 임하십니다. 그리고 말씀 들을 때 그 말씀이 심령에 와닿게 만드시는 겁니다. 그걸 우리가 표현하기를 ‘마음 문이 열렸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동기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거기서 항상 내가 못 하면 어떡하나? 내가 또 안 되면 어떡하나? 자기 염려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세상은 육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만 다인 줄로 여기고 있어요. 전부 다 세상은 육신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물질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무종교가 60%가 넘는데 종교를 아예 안 갖고 있는 퍼센테이지가 날로 많아진다는 겁니다. 20~30대는 무종교가 80%래. 만약에 그렇다면 지금 초등부 아이들은 무종교가 몇 프로일까요? 90%까지 갈 수 있어요. 그러니 교회에도 관심 없는 거죠. 세상 사람들은 윤리적인 잣대로 교회를 판단해요. 지금 무종교가 이렇게 많아진다는 말은 기술과 과학과 경제만 있으면 좋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거예요. 기술, 과학, 경제만 족하면 된다. 더 이상 종교는 필요 없다고 여기는 거예요. 세상은 영이 죽었기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창세기 3장에 나 중심으로 가고 6장에 육신 중심으로, 11장에 세상 성공 중심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 끝에는 점점 더 그게 심화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영적인 사실을 아는 저와 여러분은 세상이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온 세상이 사단에게 완전히 속고 있구나!” 이렇게 판단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베트남 갔다 왔지만, 베트남도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공산당은 철저히 무신론적 이념 교육 속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단이 그렇게 한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이 말씀이에요. 여러분은 주의 눈과 주의 마음과 주의 생각을 갖고 전도자의 눈을 떠야 하는 거예요.
오늘 성경에 보면 영 분별하라.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믿는 자마다 이거는 성령의 역사고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마다 적 그리스도의 영이다’라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누구에게 속했냐 그 얘기를 오늘 본문에 굉장히 많이 하고 있거든요. 그 당시에 영지주의자는 “육체는 악하기에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온 것은 아니다,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뭐 이런 식으로 거짓 가르침을 영지주의에서 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냥 철학 같잖아요. 그런데 사도 요한은 철학으로 보는 게 아니고 그게 어떤 영에 속했는지 영적으로 보고 있다는 거예요. 사실 여러분 말고 영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성삼위 하나님의 소원이 구원 역사에 있어요. 이 땅에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게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말씀을 드렸어요.
2. 그러면 여러분은 세상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지금 여러분이 한평생을 살고 있잖아요. 우리도 세상 안정과 세상 성공을 위해서 참 많이 살았어요. 기도하는 거 보면 거의 그런 기도를 많이 해요. 포럼할 때도 그런 중심의 포럼을 많이 한다고요. 이제는 그런 포럼 하지 말고 한 사람이 어떻게 생명을 얻어서 그리스도화 되고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인생으로 바뀌는지, 또 제자로 세워지는지 그런 포럼을 하시라고요.
1) 영적인 죄 아래 있는 세상을 보고 애통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을 보면서 주님의 마음을 갖는 거예요. 주님은 탄식하셨거든요. 애통하셨거든요. 여러분 구약에 선지서라고 있어요. 호세아, 아모스 또 대선지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이런 거 있잖아요. 그 선지서에 보면 심판과 회복에 대한 메시지가 자주 나와요. 항상 패턴이 이스라엘 죄 유다의 죄에 대한 심판을 먼저 얘기합니다. 그다음에는 그 회복에 대한 말씀이 나와요. 그러면서 그다음에는 주변 이방 나라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가 나와요. 그래서 종국에는 온 세상과 땅의 모든 것이 심판받을 거라는 말씀이 선지서에 많이 나와요.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가 올 때 세상 끝난다고 생각했어요. 초림과 재림으로 나눠서 생각을 못 했어요. 지금 하나님 나라가 두 단계에 걸쳐서 오거든요. 초림을 통해서 우리가 죄 사함 받고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잖아요. 이게 첫 단계예요. 두 번째 단계는 복음이 다 전파되면 그때 재림주로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우주적으로 임하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근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나라가 이중적으로 임하는 것을 몰랐어요. 그런 이해가 없었어요. 그래서 메시아가 오면 초림과 함께 하나님 나라가 곧바로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에요. 초림이 먼저 있은 다음에 마지막 재림시 세상 심판과 함께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지서에는 이 땅의 심판과 세상 모든 민족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AI 시대가 지금 발전하고 있는데 AI 시대를 전망하는 학자들이 이런 말을 해요. 앞으로 오는 세상이 진짜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 디스토피아는 굉장히 암울하고 어두운 세상, 억압과 감시와 독재 사회 이런 걸 디스토피아 라고 얘기하거든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미 성경이 말씀을 다 하고 있어요. 세례 요한은 이런 말씀을 했어요. 바리새인들한테 했던 말인데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이 말은 이미 심판이 와 있다는 말이죠. 지금 세상이 그런 거예요. 우리가 아는 디모데후서 3장에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온다’ 이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계시록에는 마지막에 적 그리스도 통치 체제가 온다고 돼 있어요. 그래서 겁먹으라는 게 아니라 어린 양과 그 고백하는 말로써 사단을 교회가 이긴다는 말씀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세상의 성격을 영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과학을 등한히 여기라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우리는 정말로 실력과 전문성을 갖춰야 하거든요. 근데 오히려 보면 항상 불신자가 앞서가요. 이 부분에 대해서 불신자는 하나님 안 믿는 대신에 죽도록 공부하거든요. 그러니까 앞서가요. 신자는 잘못하면 공부도 못하고 믿음도 별로고 이러기 쉬워요.
2) 우리는 세상과 불신자를 보면서 주님의 눈으로 전도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에요.
사도바울의 관점 여러분의 관점 되기바래요. 행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느니라” 여기서 정하신 사람이 누구예요?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을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셨다는 거예요. 성경은 일관성 있는 말씀을 하고 있어요. 디모데전서 2장 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느니라” 했어요. 또 베드로후서 3:9~10에도 이런 말씀이 있죠.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함과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거는 재림에 대한 말씀이죠?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를 오래 참으신다. 이렇게 돼 있어요. 지금 우리가 그 시기를 내다보면서 살고 있어요. 지금 세상은 육신적인 거, 물질적인 것을 다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개발하고 발전해서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하는 그런 시도를 하는 거죠. 근데 우리는 과학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전문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그걸 수단으로 여기면서 전도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죠. 우리는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게 아니고 세상 가치관에 속한 인생을 사는 게 아니고 1, 3, 8 언약을 붙들고 살아야 해요. 그리스도 중심, 하나님과 그 나라 중심, 성령 충만 중심으로 사는 겁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전권대사로 부름을 받은 거예요.
우리가 메시지 많이 듣는데 많이 이해하잖아요. 근데 왜 여전히 전도 현장에서 눌려버리고 전도에 대해서 부담 갖고 전도 못 하죠. 그거는 이해력하고 또 다르잖아요. 현실에 들어갈 때 현실에 딱 부닥치면 부담 돼 버리고 눌리고 사람 의식되고 이런 것 때문에 못 하는 거잖아요? 내가 이것도 못해? 하면서 열심히 내라는 게 아니고 처음에 말한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삶이 계속 발전이 되면 그리스도가 진짜 누려져요. 내가 살면 염려 체질로 살아요. 일이 안 되면 거기에 대해서 고민하고 시달려요. 그리고 비교식으로 들어가요. 이게 지금 사단의 함정 속에서 형성된 체질이에요. 이거를 주님이 치유하시는 거예요. 성령님이 염려하시나요? 불안해하시나요? 비교 의식에 빠지고 교만 열등감에 빠지나요?
여러분이 이미 형성돼 있는 그 부분이 사실 영이 죽었고 사단의 거짓과 욕심 속에서 형성된 체질이란 말이에요. 근데 그게 이제 영적인 메시지 복음 메시지가 들어가니까 자기가 발견하는 겁니다. 기도해서 성령의 통치 받을 때와 통치 안 받을 때의 차이를 느끼는 거예요. 제가 성령의 통치 안 받으면 생각이 정말 180도 달라요. 제가 성령의 통치 안 받으면 저도 나의 안전의 욕구, 나의 명예의 욕구 이거를 깔고 인간관계를 하는 거예요. 근데 내 안에 성령의 통치를 받게 되면 진짜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기 때문에 내 안전의 동기와 명예의 동기를 갖고 사람을 안 대해도 돼요. 나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하나님이 보장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 편에서 보게 되어요. 그 사람이 어떻게 형성되어졌고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를 통찰하면서 그 사람 속에 복음이 제대로 들어가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서 그 사람이 바르게 세워질 것을 기대하면서 중보 기도하는 관점으로 그 사람을 대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실제 아까도 얘기했지만, 여러분이 얼마나 평상시에 육신의 생각으로 사는지 몰라요. 이성의 계산으로 얼마나 사는지 몰라요. 근데 정시 기도가 되고 이 기도의 삶이 발전되어서 실제 성령의 통치를 받으면 생각 하나하나를 터치하기 시작해요. 여러분의 느낌, 감정 이런 것도 성령이 주신 것인지 아니면 내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낀 감정인지가 구분이 돼요. 그래서 진짜 내 내면에서부터 뒤집기가 돼요. 변화가 되고 치유가 되고 회복이 돼요. 내 속에서 기쁨이 올라오고 내 안에 성령의 능력이 믿어지는 삶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성령님을 의지했더니 나를 붙잡고 일 처리하는 게 계속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전도를 프로그램으로 배우는 게 절대로 아니에요. 우리는 실제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을 바꾸는 겁니다. 승리하게 만드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고 계시죠?
근데 이럴 때 있어요. 잘 가는데도 한 번씩 또 자존심 상하게 누가 말을 하거나 누가 말로씹으면 거기에 딱 걸려요. 옛날 것이 확 올라와요. 근데 성령님 어떻게 하십니까? 정죄하시는 게 아니라 나의 상태를 다시 보여주시는 겁니다. 아직 그 부분이 그리스도로 안 바뀌었다고 깨닫게 해 주시는 거예요. 우리를 향한 애정이나 사랑이 안 바뀌셔요.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져도 사단은 정죄하려고 하지만 주님은 정죄 못 하게 만드세요.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너는 존귀한 자다. 나의 애정은 네가 실수해도 변함없다.” 깨닫게 하시고 주님을 인정 안 하고, 주님을 의지 안 했던 체질을 자꾸 바꾸게 하시는 겁니다. “네가 주인 되니까 계속 부부 싸움하는 거 아니냐? 네가 주인이다 보니까 계속 돈 때문에 잡히는 거 아니냐?” 세밀하게 들어가신단 말이에요. 이런 작업이 없이 메시지 들으면 머리로만 받는다니까요. 삶의 변화 없어요. 여러분 안에 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네. 하나님이 살아주시네. 그분이 책임져 주시네. 그분이 역사해 주시네.” 이걸 맛보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면 오 장로님이 안 바뀌겠습니까? 신 목사가 안 바뀌겠습니까? 실수해 또 해요. 그때마다 또 깨닫게 해 주시는 겁니다.
3. 여러분은 진짜 문제의 이유와 거기에 대한 진짜 답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이를 위해 늘 기도할 수 있는 영적 상태와 전도할 수 있는 영적 상태를 만들기 바랍니다.
나의 전도 규례가 있어야 이게 가능합니다. 시간, 장소, 방법을 정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늘 자기 영적 관리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이것을 위한 수단이 되기 바랍니다. 그 일을 주님이 주시는 역량으로 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을 항상 하나님 소원에 맞추는 겁니다. 그럴 때 나의 모든 일과 나의 모든 문제는 주님의 일, 주님의 문제가 됩니다. 주님이 성령으로 24시 인도하시게 됩니다. 주님이 주인이 되시고 책임자 되시고 해결자와 언약 성취자 되십니다.
2) 사위와 대화
지난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반영이 내외가 왔었습니다. 같이 식사하고 까페에 가서 대화하며 포럼했습니다. 제가 전도 포럼을 했습니다. 사위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전도 못 하는 이유는 바쁜 게 이유가 아니라 영적 상태가 안 좋아서 그렇다고 하더라. 전도 한다고 많은 시간이 꼭 드는 것도 아니고 어떨 때는 10분만 복음 전해도 되는데 자기 일에 빠지다 보니깐 전도 못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니 감사했어요. 제가 말하길 하나님의 소원에 항상 방향 맞추어야 일도 주님의 일이 되고 계속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날 돌아간 후 사위에게 카톡했어요.“일주일에 학생 상담하면서 복음 전해봐라.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것으로 시작해 봐라.” 그랬더니 사위가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아버님, 전도 스케쥴을 계속 놓치고 있는 것 같아 그 부분을 두고 실천해 보겠습니다. 나의 업을 영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주님이 주인 되신 삶을 살지 않을 때, 일에 대한 부담과 압박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것 이전에 영적 생활과 전도 스케줄을 회복하여 학원을 운영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외형적으로는 똑같은 신앙생활을 합니다. 근데 지금 어디서 판가름이 납니까? 여러분 삶 속에서 여러분 생각하는 그 생각에서부터 영의 생각을 하는지 육의 생각을 하는지 판단이 들어가기 바래요. 성령님을 의지하면 영적 상태를 잡아주시면서 이상하게 여유가 생기고 편안하게 말이 나가고 그래요. 그럴 때 사람이 이해도 되고 수용도 돼요. 여러분이 답답하고 눌려 있으면 절대 수용 안 돼요. 예민해져요. 그때 누가 나를 건드려 재차 건드려요. 그러면 “야 새끼야,” 이렇게 나가요. 여러분 패턴을 바꾸셔야 해요. 똑같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작년이랑 올해랑 별 다를 바가 없다. 아는 것만 커졌다. 잘못 신앙생활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시는 삶을 살면서 더 세밀하게 들어가길 바래요. 그러면 계속 발전합니다.
결론
오늘 제목이 세상에 대한 성도의 자세입니다. 요 15:18~19절에 보면 예수님은 세상과 성도 간의 관계를 긴장, 적대 관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고 핍박하게 될 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소속이 요 8:44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소속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소속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4:4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전도자가 확실히 붙잡아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어떤 이가 계신가? 마귀보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 크신 분이 계십니다. 그렇기에 나로 반응하거나 나로 살면 안 됩니다. 나는 늘 걱정합니다. 눌리고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능력이 있으십니다. 이런 주님을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4:4의 말씀을 실제로 누리므로 여러분은 사람의 소속을 바꾸어 주는 일에 쓰임 받기 바랍니다. 나의 전도 규례를 세우고 실천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살아주시는 역량을 계속 누리게 되면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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