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 소속 때문에 오는 시험(약 1:1~8)
지금 세상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매일 수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지요. 근데 이런 범죄가 그동안 우리가 들었던 말씀처럼 단순 윤리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고 그랬어요. 그냥 윤리 도덕적 문제라고만 한다면 우리는 “계속 양심을 잘 지켜라”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양심을 잘 지키는 종교라고 한다면 아무것이나 믿어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이 양심 문제 이전에 영적인 죄 때문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관계에서 범죄한 영적인 죄라고 한다면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의 질서가 파괴됐는데 그것을 회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면 이건 단순한 종교 가지고 안 된다 이 말입니다. 계속 여러분이 이 메시지를 자기 걸로 완전히 정립하면 좋겠어요. 인간이 지금 범한 죄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죄라고 그랬어요. 자기가 선악의 기준이 됐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방향에 선 죄가 본질적인 죄라고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양심적인 죄만 논한다면 우리는 자꾸 이런 얘기를 해요. “저 사람보다 내가 착해”양심적인 죄만 논한다면 그냥 좀 거짓말하고 뭐 조금 잘못 살고 하는 것 가지고는 지옥 갈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 지옥 갈 정도면 진짜 파렴치하고 강력한 죄를 지어서 사형 언도 받은 그 정도는 돼야지 지옥 간다는 생각이 좀 들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처럼 착하게 살았는데 뭔 지옥을 가요? 그리고 더 선하려고 애쓴 사람들도 이 중에 있거든요. 그래서 양심 윤리적인 죄가 본질적인 죄가 아니다 이 말이에요. 무슨 죄가 본질적인 죄예요? 하나님과 관계에서 지은 죄, 하나님을 떠난 죄,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죄! 그래서 이때까지 여러분이 인본주의 자아로 산 게 다 죄예요. 자기가 자기 기준의 의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한 게 죄예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안 돌아가고 계속 자기 의를 세우고 있는 게 지금 세상이에요. 이게 속는 거예요. 어떻게 속아요? 영적인 죄를 모르니까 지금 마귀한테 속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세상 성공자나 세상 실패자나 똑같이 봐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이게 여러분이 똑바로 통찰돼 보이는지 오늘 말씀 들으면서 다시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런 게 안 와닿으면 전도자의 가슴을 못 가지게 돼요. 여러분이 전도자의 삶을 안 살고 주저앉아 있는 것은 아직도 여러분이 이런 세상 보는 눈이 확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 이게 열렸는데 일평생 마귀에게 종노릇 하고 죄의 종노릇 하다가 지옥 가는 영혼을 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오늘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성공자가 많죠?. 이 사람들의 특징이 뭐예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들이에요. 집중력이 좋고 또 머리가 좋아요. 머리가 비상하고 재능도 월등해요. 근데 성실하다면 이런 사람들이 성공하잖아요. 그러나 이들이 갖고 있는 영적인 죄는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이들은 성공했으니까 자기 의나 자기 교만심이 더 강하게 들게 되겠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까? 자기에게 영광을 돌려요. 그리고 자기를 높이고 남을 낮추고 예수님 말씀처럼 남을 대접하는 자가 높은 자라고 했는데 세상 주관자나 세상에 높은 자들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거는 세상 가치관이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죠. 세상 성공한 사람들도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본성에 의한 죄를 끊임없이 짓고 있는 겁니다. 나 중심, 육신 중심이고 육신 중심이니까 성공한 사람도 얼마나 더러운 짓, 음란한 짓 많이 하는지 몰라요. 그리고 명예 권력 때문에 얼마나 사람 죽이는 짓까지 하잖아요. 대량 학살은 성공한 사람들이 합니다. 전쟁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거든요.
반면에 세상 실패자는 어떠합니까? 이 사람들은 자기 관리가 약한 사람들이에요. 시간 관리, 돈 관리, 학업 관리 이런 게 잘 안되는 사람들이에요. 거기다가 가정 배경이 안 좋아서 상처받고 애착 관계가 형성 안 돼서 컸다면 이 사람들은 그걸 그대로 갖고 그 인격이 형성되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머리가 좋아도 재능이 있어도 마음에 상처가 있고 마음에 병이 들었으면 무너지기가 쉬워요. 또 이런 사람들이 가문의 우상숭배 배경이 심하다 그러면 거기는 흑암 세력이 더 역사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뜻과 상관없이 마음이 편하지 않고 내면적인 상태가 안 좋다니까요. 그래서 자기 관리가 잘 안되고 내면에 편안함이 없고 뭔가 늘 결핍에 있는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기가 쉬운 거예요. 또 이 사람들이 사회 불만을 갖게 되면 사회 범죄자가 돼요. 그리고 자기 속에 갇혀서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은 자살하게 돼요. 사단은 이렇게 성공자나 실패자나 다 지금 똑같이 종노릇시키고 있다는 거예요.
이 눈이 확 열려야지. “세상의 양심, 종교, 도덕, 윤리 가지고 이 세상 문제 해결 안 되는구나.” “정치와 교육으로 안 되는구나. 돈으로 안 되는구나.”그래서 히든 카드가 예수 그리스도예요. 창세 전에 하나님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이 구원받도록 예정하시고 작정하셨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나타난 결과만 보지 않고 세상 문제의 진정한 이유를 이제 보는 사람들이에요. 나타난 결과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죄 또 그로 말미암은 영적인 문제를 보는 눈이 있는 사람들이 되는 거죠. 이걸 바로 보는 사람들은 내가 구원받은 거에 대해서 안 감사하겠습니까? 감사해요. 그런데 그 구원은 달랑 구원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신 그분이 계속 주인으로 통치하시는 삶을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구원의 감사 감격이 있게 되고 자신의 문제도 치유 받게 되고 그렇게 되니까 주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으로 현장을 보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냥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지는 거예요. 이런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오늘 야고보서에 의한다면 믿음 때문에 오는 외부적 시련의 타켓이 되겠죠. 핍박의 타켓이 되겠죠. 그런 내용을 지금 야고보서에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오늘부터 야고보서를 보게 됩니다. 전도자의 마인드로 야고보서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야고보서를 윤리적으로 보면 절대 안 돼요. 요한일서의 기록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기록됐다고 돼 있어요. 이 영생이 있는 자는 자기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자고 빛 가운데 거하는 자이기 때문에 죄를 지속해서 지을 수 없다는 얘기했잖아요.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들이니까 주님의 새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우리도 그 사랑을 본받아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 야고보서는 진짜로 그 실천 편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야고보서는 실천 편이에요.
1. 야고보서의 개론
야고보서는 믿음보다 나타나는 행위를 강조하고 있어요. 그래서 ‘기독교인의 생활 지침서’라고 말할 수 있어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이 말이 야고보서에 나오거든요. 믿음의 결과로 행위가 나온다는 것을 알면 문제가 없어요. 그렇죠? 믿음의 뿌리를 내리면 행위라는 열매가 나오잖아요. 성령의 통치를 받는데 사랑이 나오지, 계속 미워할 수 없잖아요.
1) 야고보서는 누가 기록했을까요?
사도 야고보도 있고 예수님 형제로 동생 야고보도 있어요. 누가 맞을까요? 형제 야고보예요. 1절을 보면 이렇게 돼 있어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고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12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여기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예수님 육신의 동생인데요. 이 야고보가 예수님이 승천 이후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자가 돼요. 왜 대표자가 되냐 하면 베드로 요한 같은 사람이 사실 대표자가 돼야 하잖아요. 근데 이 사람들은 순회 전도 일을 더 많이 했어요. 실제 예루살렘 총회를 하고 할례 문제 이런 문제가 일어났을 때 의장이 누구였냐 하면 야고보였어요. 왜 야고보냐 하면 이 사람은 예수님의 동생이잖아요.살아계실 때는 형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랬는데 돌아가시고 부활 후 예수님을 야고보가 만났어요. 그때 인생이 뒤집어졌어요. 진짜 그때부터 예수님을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고전 15:15:7을 읽어볼까요? “그 후에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와...” 나중에 바울에게까지 나타내 보이신 거죠. 여기서 나오는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야고보는 그 후에 예루살렘 교회 대표자가 될 뿐만아니라 이 사람의 별명이 기도의 사람이에요. 낙타 무릎이라는 별명을 가졌대요. 그는 맨바닥에 무릎 꿇고 낙타 무릎처럼 굳어질 정도로 자기 동족 유대인을 위해 탄식하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로 영적 싸움을 했던 사람이라고 해요.
2) 기록 시기와 대상
이 야고보서는 언제 썼냐 하면 주후 45년에서 48년경에 기록했다고 해요. 예수님이 한 29년경에 돌아가셨다고 보통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그러니까 한 20년 후에 기록이 된 거네요. 그런데 스데반 순교 직후 예루살렘 교회는 박해를 직면한 거예요. 성도는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진 거예요. 야고보서는 이 흩어진 성도에게 쓴 서신이에요. 그 흩어진 성도들이 보통 유대인이면서 그리스도 믿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들을 ‘흩어져 있는 12지파’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박해받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다 이 말입니다.
기록 목적은 세 가지 핵심을 말씀하고 있어요. 첫째가 시련에 대하여 지지 말고 승리해라. 믿음의 시련을 이기라는 거예요. 두 번째는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사랑을 실천해라. 이게 야고보서의 핵심 메시지예요. 세 번째는 참된 영적인 갱신과 믿음을 회복해라. 이것이 야고보서의 세 가지 핵심 메시지예요. 그래서 신앙생활은 머리 이해와 지적 동의만 하면 안 돼요. 계속 강조하지만,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살아주셔야 해요. 그래서 여러분이 기도가 안 되면 살아주실 수가 없어요. 여러분은 기도를 얼마만큼 하고 어떻게 하고 있어요? 기도하라는 얘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잖아요. 우리 성민 형제한테도 처음부 기도하라는 오더를 자꾸 주는데, 오후에 얘기하겠지만 기도 자체가 영적 호흡이에요. 생명이 끊어진 사람은 호흡이 안 돼요. 생명이 있으면 누구나 호흡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생명이 없는 사람은 죽어도 기도 안 돼요. 그리고 생명이 있는 사람은 기도를 당연히 할 수 있는 겁니다. 영적인 호흡이니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해요. 말씀은 일주일에 한 번 먹어도 살아날 수 있어요. 근데 기도는 하루만 안 해도 영적으로 가라앉아요. 매일 기도가 필요해요. 저 같은 경우는 매일 기도가 필요한 게 아니라 매시간 기도가 필요해요. 그래서 제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제가 기도가 안 될 때가 너무 많았던 거예요. 하다가 안 되면 안 하기 쉽잖아요. 근데 안 해서 영적 상태가 만회되는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당연히 기도를 뚫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영적 싸움을 한 거죠.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의 성령이 계시는데 성령이 마귀보다 세고, 나를 누르는 어떤 세력보다도 센데 내가 기도가 안 된다는 건 아니지 않냐? 제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주님께 집중하게 되니까 기도가 되더라고요. 기도의 루틴을 만드는 게 여러분이 성장하는 방법이에요. 더 깊은 교제를 하는 거예요. 제가 본다고요. 기도의 발전을 보는 거예요. 기도가 발전하면 기도의 내용도 바뀌게 되거든요.
3. 본문 내용
1) 1절에서 8절을 보면 교회가 여러 시험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절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여기서 여러 가지 시험은 뭐라고요? 예수 그리스도 믿는 이유 때문에 오는 시련을 말하는 거예요. 박해를 말하는 거예요. 근데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기쁘게 여기래요.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하면 시련을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근데 영적으로 보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당하는 시련이란 말이에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겪는 시련이란 말이에요. 이건 예수님이 일찍이 예고를 했던 거예요. 요 15:19~20, ‘너희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세상이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에 너희를 핍박한다. 세상이 나를 핍박했다면 너희도 핍박한다’ 이런 말씀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영적으로 믿음이 회복되면 기쁘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근데 믿음이 회복 안 되면 두려움 증에 잡혀버려요. 요한일서에서 이런 말씀 했잖아요. 세 가지 확신 붙잡으라고 그랬어요. 첫째 기도 응답의 확신, 두 번째 승리의 확신, 세 번째 소속 신분의 확신. 이게 되는 사람은 시험을 이겨요. 이거 안 되는 사람은 시험 들어요. 교회 박해 오면 떠날 사람들 많이 있을 겁니다. 사실 이 야고보서나 베드로 전후서나 히브리서나 요한계시록 전부 다 박해 상황에서 주어진 서신들이에요. 우리가 별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현실감 없이 읽거든요. 근데 전부 그게 믿음의 시련을 겪고 있는 초대교회를 향해서 준 서신들이에요. 야고보서를 본 다음에 빠르면 다음에는 요한계시록을 보고 싶어요. 왜요? 지금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단 말이에요.
지금 AI 시대 아닙니까? 지난번에 얘기했지만 범용 인공지능이라는 게 이제 나오고 그다음에는 인간보다 수백 배, 수천 배보다 월등한 AI들이 나오게 되거든요. 그러면 인간은 AI의 도구가 돼요. 오히려 우리가 “AI가 결정하는 게 더 맞아” 하며 내가 잘 모르면 다 거기에 묻고 주식을 어떻게 투자할 건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AI를 다 의존하게 돼요. 금방 이 런 시대가 지금 오게 돼 있어요. 그러면 전 세계가 AI의 지배권 속에 들어가요. 그러면 주님 오실 날이 가까이 오지 않았겠습니까? 전 세계가 지금 기술, 경제, 생활이 다 통합이 돼버려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 전초전으로 오늘 야고보서의 메시지를 여러분 잘 받으시기 바래요. 세 가지 확신이 있어야 된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이 시험 속에서도 사실은 주님은 주인이셔요. 이 시험 속에서도 주님은 이 문제의 책임자고 언약 성취자가 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시험이 와도 이 시험도 하나님이 세상 마지막 진행을 이루기 위해서 허락하시는 시험입니다. 이 세상이 마지막에 심판받아야 하잖아요. 그 죄를 쌓기 위해서 이 세상이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불의에 불의를 더하게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믿음의 눈으로 보면 지금 사단이 발악하는 때고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차곡차곡 쌓게 되는 그런 시대가 되는 거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에 시험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절대 계획과 절대 목표 속에 성도는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 믿음이 회복돼야 해요.
2) 2절 3절에,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아니라”했어요.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기 보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낸다고 그랬어요. 이 인내는 자기 자신을 의탁하는 것 가지고는 안 돼요. 자기 참을성, 자기 인내력 가지고 안 된다고요. 이 인내는 오히려 자신을 의탁하지 않게 만들어요. 주님을 붙잡게 만들어요. 그리고 성령께서 소망을 붙잡게 만들어요. 초대교회 때는 정말 다 그랬어요. 주님을 더 붙잡게 만들고 약속돼 있는 소망을 더 붙잡게 만들면서 인내를 갖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랬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불순물이 제거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신앙이 나 중심이고, 육신 중심인 것이 다 불순물들이거든요. 인간이 교만했던 것이 다 불순물이거든요. 이런 것들이 제거되고 정련된 믿음으로 들어가게 만들어요. 그리고 자기 동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요. 종교는 내 동기 때문에 우상을 믿는 셈이잖아요. 우리도 종교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동기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을 구하는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잖아요. 근데 이제 신앙이 깊게 들어가면 자기 동기 때문에 믿지 않고 주님 때문에 주님을 믿는 신앙으로 들어가요. 내가 동기가 안 채워지니까 주님을 버리는 게 아니고 오히려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주님이 높임을 받으시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을 믿는다 이 말이에요.
예전에 암에 걸려서 어떤 성도 간증을 영화화한 적이 있어요. 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그분이 암이 걸렸는데 대장암 4기였어요. 결국 그분 돌아가셨어요. 그분은 자기 본성으로 반응하지 않았던 거예요. 4기면 말기잖아요. 말기 그 힘든 상황 가운데서 자기 본성으로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암 병을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로 삼아버렸어요. 본성으로 하면 다 불 신앙할 거 아니겠어요? 원망할 거 아니겠어요? “왜 하나님. 내가 하필이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근데 성령께서는 그걸 뒤집으셔요. “본성적으로 반응하면 불 신앙할 수 있고 불평할 수 있는데 오히려 찬양하자.” “오히려 마귀 통로가 안 되고 완전히 불신앙을 꺾어버리고,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나 때문에 예수 믿는 게 아니고 주님 때문에 주님을 온전히 믿고 고백하자” 이렇게 들어간 겁니다. 이분이 이걸로 승리한 거예요. 그 영화 제목 기억나요? “교회 오빠”예요. 이관희 집사님과 오은주 집사인데요. 이관희 집사님 돌아가셨고 오은주 집사님은 ‘새롭게 하소서’ 방송에 나와서 간증했어요. 간증을 한번 들어보세요. 이게 본성으로 반응하면 원망해야 해요. “왜 하나님 하필이면 내게?” 이런 식으로 시험 들고 갈등해요. 본성으로 반응하면 “왜 예수님이 이런 일을 허락하셨습니까? 이 시험을 어떻게 벗어나야 합니까?” 그리고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잖아요. 여러분 그동안 우리가 삼 응답에 대해 많이 얘기했잖아요. ‘문제는 기회고 인간관계 갈등은 갱신의 기회고 위기는 하나님 능력 체험하는 기회’라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 능력이 아니고 그걸 감당해 버리는 것도 능력이에요. 오늘 야고보서를 보는데 이 성경이 얼마나 본질적인 신앙을 얘기하고 있는지 몰라요. 여러분에게 증거하고 있는 거예요. 오늘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세상 본질을 알아버려야지. 그리스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인지 알아요. “이 그리스도 믿는 것도 내 이성의 능력으로 믿어진 겁니까?” “주님이 찾아오신 거지, 성령으로 역사해 주신 거 아니겠습니까?”
2) 이 야고보서에서 강조하는 건 뭐냐 하면 시험이 왔을 때 그걸 네 머리로, 자기 지혜로, 자기 꾀로 그것을 감당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 머리로, 꾀로 감당하려고 하면 감당 안 돼요. 5, 6절에 말씀하고 있어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랬어요. 이게 무슨 지혜냐 하면 보통 야고보서의 배경을 모르면 그냥 공부하는 지혜인가 보다, 무슨 일 잘하는 지혜인가 보다 이렇게 보기 쉬워요. 근데 오늘 이게 어떤 배경 속에서 나온 말씀이냐 하면 예수 믿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것 때문에 오는 시련 앞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는 거예요. 말씀의 지혜를 구하라는 거예요. 성령의 지혜를 구하라는 거예요. 그 지혜를 구하되 오직 믿음으로 구하라는 거예요. 시험 앞에서 나로 반응하면 100% 지거든요. 근데 성령께 지혜를 구하면 성령께서 그때 반드시 개입하시고 기도 중에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게 돼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박효진 장로님 간증을 보면 사형수의 목에다가 밧줄 걸고 발판을 빼잖아요. 그러면 떨어져서 죽잖아요. 그 직전 상황의 간증을 우리가 봤잖아요. 정말 믿음이 없었던 용팔인가? 그런 사람이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잡아주시잖아요. 박효진 장로님은 “내가 장로인데 나는 저렇게 할 수 있겠는가?” 이런 표현들 하잖아요. 성령님이 그 죽음의 순간에 불신자와 신자를 확 갈라버리는 내용을 봤잖아요. 초대교회가 승리했던 게 이들의 지혜가 아니고 이들의 능력도 아니었어요. 그때 생명 있는 성도가 기도할 때 성령님이 100% 간섭하시는 거예요. 100% 그에게 역사해 주시는 거예요. 그렇기에 그렇게 해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지 말고 갖고 지혜를 구하라는 거예요. 이 시험을 통해서 성도를 온전케 하실 것을 확신하라는 거예요. 시험 중에도 이길 수 있는 지혜의 말씀을 주셔요. 하나님의 내면 터치가 있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한 번 경험하고 안 하고는 큰 차이가 나요. 막 불안한데도 내 심령에 내면적인 말씀이 딱 임해버리면 그 불안이 확 내려가 버려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생명 없는 종교인과 생명 있는 신자는 분리돼 버려요. 이런 시험이 오면 진짜 생명 없는 종교인들은 견디지 못하고 배도 해요. 진짜 성령이 있는 사람은 성령님이 잡아주시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6절에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하나님이 잡아주실까? 하나님이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실까?” 이렇게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의심하면 바다 물결에 요동하는 것과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7절에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두 내려 정함이 없는 자라” 불신앙과 믿음이 왔다 갔다 하는 그 두 마음을 품지 말라는 거예요. 이 시험을 이기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믿음이에요. 하나님은 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절대 계획, 절대 목표를 이루시는 거예요.
결론
이거는 소속의 싸움이에요. 이거는 신분의 싸움이에요. 그래서 이 싸움은 주님이 대장이 되시는 거예요. 이 싸움은 주님이 싸워주시는 싸움입니다. 성령의 지혜의 말씀과 능력으로 붙들어 주시는 싸움이에요. 우리 강단에서 많이 얘기했잖아요. “우리는 두 계열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두 계열이 갈라지잖아요. 하나는 불신자 계열이고 하나는 신자의 계열이 세상을 영적으로 보면 갈라진다고요. 세상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사단에게 잡히게 돼 있어요. 근데 우리는 가면 갈수록 전도자로 서야 돼요. 맞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두 가지 두 종류의 믿음이 있다고 그랬어요. 아까 교회 오빠처럼 암 병이 안 나았는데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찬송하는 믿음이 있고요. 또 하나는 기도했는데 암 병이 낫는 믿음이 있어요. 두 종류의 믿음이 있어요. 맞잖아요? 북한에서 탈북해 중국에서 예수 믿고 성경 통독 반에 참가한 간증을 우리가 봤잖아요. 그중에서 대한민국으로 무사히 온 사람이 있고 다시 잡혀서 북송돼서 북한에서 순교한 사람들도 있어요. 그 두 종류의 믿음 중 우리는 어느 믿음에 속하고 싶어요? 살아남고 응답받는 믿음을 좋아하잖아요? 그렇지만 성령 충만하면 두 가지가 다 가능해요. 그래서 “성령 충만 주세요. 두 가지 믿음을 다 주시옵소서.” 기도하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2장 6~7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받아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주로 받았으니 영접 단계, 그 안에서 행하되 성령으로 기도하는 단계예요. 그 안에 뿌리 박아 세움을 입는 거는 확립 단계죠. 모든 문제, 사건 앞에서도 안 흔들리고 기도 권세 누리는 그게 뿌리 박은 단계잖아요. 마지막으로 교훈을 받은 대로 즉 복음의 진리의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건 뭐예요? 누림과 증인의 단계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뿌리 받고 누림과 증인의 단계 속에서 야고보서를 보셔야 해요. 예전에 이런 내용도 모르고 저는 야고보서 많이 봤거든요. 근데 지금 보니까 “이 야고보서가 이런 내용이구나” 다시 보이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기도할 때마다 영적인 죄와 그 죄의 성격과 세상 본질을 여러분이 통찰하기 바래요.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오게 하시는 오직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 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보장을 하고, 어떤 축복을 지금 누리게 하는지 알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한 운명이 바뀌고 그리스도 제자 된다는 겁니다. 이걸 기도로 계속 고백하는 거예요. 그럼 성령님이 여러분을 막 가르치고 깨닫게 하시고 여러분이 머리 신앙이 아니라 심령에 성령이 가르치고 깨닫게 하시고 확신 주는 믿음으로 계속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과 그 나라, 오직 성령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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