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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7월 12일 주일예배 -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 (약 1:19~27)

by 현상금 2026. 7. 12.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 (1:19~27)

 

여름 성경학교 전 사전 캠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해서 다락방 말씀 운동하는 것이 올해 목표입니다. 영접한 사람이 복음 정립되게 해서 실제 삶의 변화가 있게 만들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도 세워지게 하는 것이 다락방 말씀 운동이죠. 이게 사실 목회 방향입니다그 목적은 재생산을 통해서 지역 복음화, 민족 복음화, 북한 복음화, 세계 복음화를 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 소원에 방향을 맞추고 우리가 그 통로가 될 때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서 이 행복을 못 느끼게 되면 사실 의미가 없는 거죠

오늘 야고보서 본문의 말씀은 짧게 전할 거예요. 그리고 오히려 좀 더 길게 좀 더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이 주제가 오늘 제목처럼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 하는 제목입니다. 여러분도 다락방 안에서 제자를 세우게 될 때 이 사람한테 뭐가 진정한 축복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대로 가르쳐 주는 것이 되거든요. 제목이 뭐라고요?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축복과 오늘 신약 성도들이 누릴 축복의 차이가 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이 보장하셨던 축복과 오늘 신약 성도인 우리에게 보장하고 있는 축복이 좀 다르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축복과 신약의 성도의 축복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할 수 있습니까?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하신 축복의 대표적인 말씀이 신명기 28장과 레위기 26장 말씀이라고 그랬어요.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여부에 따라서 축복과 저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온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축복이 주어져 있는 거예요. 가나안 땅에서 행복한 삶은 그 땅에서 길이길이 장수하고 그 땅에서 현실적인 축복을 다 누리도록 보장하고 있어요.

28:3~7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상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내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가만히 보면 어쨌든 다 복 받겠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자녀의 축복도 받고 당시에는 우 양이런 게 전부 산업이잖아요. 이 모든 걸 축복받게 되고 아무튼 나가도 들어와도 복을 받고 만사 모든 복을 받는다 이 말이에요. 끝내주는 복이죠. 그러면서 또 뭐라고 돼 있어요? 대적이 쳐들어오면 여호와께서 그 대적을 쫓아내 주겠다고 돼 있어요.

26:3~7도 한번 볼까요?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 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오.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 원수들은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짐승도 해하지 못하게 만들고 적군이 일절 너희 땅을 해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런 복을 받으면 우리 성도 중에서 부자 안 될 사람 한 사람도 없겠네요. 맞아요?

 

그래서 구약의 축복과 신약 축복의 차이점을 좀 알아야 하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계명을 지켜야 한다.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건 똑같아요. 그런데 구약에서는 주로 가나안 땅의 축복을 중점적으로 얘기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축복은 육신적인 축복보다 영적인 축복을 더 강조합니다.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처음부터 믿자마자 핍박을 받았어요. 핍박을 받았다는 말은 육신적인 축복, 현실적인 축복을 못 받은 겁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고난과 핍박을 오히려 당했어요. 현실 축복보다는 자연스럽게 예수님 다시 재림하시기를 갈망했어요.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오히려 소망했어요. 서신서에 보면 곳곳마다 하나님 나라 소망을 얘기하고 있어요. 야고보서가 로마 제국 도처에 흩어져 핍박받는 성도에게 쓴 편지라고 그랬죠. 사실 야고보만 아니고 베드로 전후서도 같은 맥락이에요. 베드로 전후서는 야고보보다 시련과 핍박이 더 심할 때 쓴 편지예요. 히브리서도 고난받고 있는 상황 가운데 쓰인 서신이에요. 우리 잘 알고 있는 요한계시록은 진짜 로마 제국에 의한 핍박이 극도로 가게 될 상황이거든요. 그런 상황에 아시아 일곱 교회가 승리하도록 쓴 서신이 요한계시록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지금 봤던 레위기 26장이나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순종만 잘하면 현실 축복받는다고 그랬는데 그게 어떻게 된 거냐 말이에요. 여기에 대한 확실한 답을 여러분이 가지기 바래요. 이게 제자 훈련의 중요한 내용이에요.

 

1. 먼저 구약의 축복과 신약의 축복의 차이점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 구약에서는 율법에 순종하면 가나안 땅에서 범사에 잘 된다는 것이 약속이었습니다.

반면에 신약의 축복은 그렇지 않고 예수님 믿고 핍박당하고 순교 당해도 기뻐하고 기뻐하라고 돼 있어요. 이유는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이렇게 돼 있어요.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 나라의 차원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래요. 구약에서는 가나안 땅에 세워진 이스라엘 나라가 곧 하나님 나라였어요. 그러니까 땅의 축복을 딴 데 가서 받는 게 아니라 말씀과 계명 순종하면 그 땅에서 그대로 축복을 받는 거예요. 신약에서는 가나안 땅이 더 이상 영토적, 장소적인 하나님 나라가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좀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서 불순종해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어요. 70년 만에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온 후에 그들은 계속 고난당했어요. 그게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 전부 포로 후 시대의 구약 성경들이거든요. 돌아와서도 결코 삶은 녹록지 않았어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고 로마 시대가 다스리기 전에는 헬라의 지배를 받았어요. 그리고 예수님 올 때는 로마의 속국 상태였어요. 속국이 행복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오직 이스라엘 나라 회복에 관심이 있었잖아요. 그 회복이 그들은 하나님 나라 회복으로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러나 신약에서는 어디도 장소적이고 영토적인 하나님 나라는 없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니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지금 유대인들은 볼 수 있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지금 고대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예수님은 이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는 이제 멀어지고. 현재는 볼 수 있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가 믿는 자 속에 임한다는 거예요. 성령으로 믿는 자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겁니다. 이게 먼저 1단계적으로 돼야 한다는 거예요. 구원이 먼저 필요한 겁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나라는 엄밀히 말하자고 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었어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그게 하나님 나라 라는 걸 설명한 거였어요. 근데 이스라엘 민족이 불순종하고 불신앙하니까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될 수가 없는 거였죠. 그렇듯 지금 지구상에 어떤 나라도 하나님 나라는 없어요. 영국, 미국, 독일 세속 나라죠. 세속 나라는 전부 다 죄 많은 세상이라고 얘기해요. 음란하고 죄 많고 패역했다. 이런 표현을 성경이 쓴다고요. 일본은 패역했어요. 일본은 원래 성문화가 문란했어요. 옛날부터 문란했어요. 태국 같은 경우도 가면 참 조심해야 할 나라에요. 얼마나 음란한지 모르고 거기서는 마약을 그냥 일상적으로 하도록 돼 있어요. 사실 뭐 태국만 그래요. 동남아 다 그렇지, 서남아 그렇지, 어디 안 그런 나라가 없어요. 미국이 유토피아입니까? 아니요. 미국은 진짜 대한민국보다 훨씬 어려운 나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관광객이 막 밀려 들어오고 있잖아요. 문화 강국 때문에 그렇고 이제 선진국이 되어서, 우리나라에 문화 체험하려고 막 들어와요.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까? 전부 다 죄 많은 세상 나라예요. 그곳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거예요. 그곳에서 성도는 성령님을 모셨지만, 불신자와 함께 살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갈등이 있어요.

 

우리는 구약의 축복과 신약의 축복이 다르다는 거예요. 구약 이스라엘 나라는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였기 때문에 순종만 하면 그 땅에서 그냥 축복을 누리는 거예요. 현실적인 모든 축복을 누려요. 거기서는 대학을 어디로 갈까? 어딜 취업할까? 이런 걱정 안 해도 됐어요순종만 잘하면 돼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세상 나라 속에 살고 있고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저 멀리, 그러나 언제인지 몰라요. 지금 곧 될 수도 있어요. 예수 재림 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 과도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지금 신약 성도의 축복은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축복이 절대 기준이 아니고 오히려 영적인 기준으로 차원이 바뀌게 된 거예요. 신자는 물질적인 축복을 위해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죠.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축복도 하나님의 축복이 맞아요. 우리는 일용할 양식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모든 삶을 그리스도께 의지하는 거예요. 그분이 형통케 하시는 것을 분명히 믿고 우리의 모든 삶에서 의탁해야 해요. 생사 화복이 주님께 있다는 걸 믿고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나 불신자는 기도 안 하고 살죠. 자기 머리로 사는데 일이 잘 돼요. 이건 일반 은총이라고 그래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축복도 지금 하나님이 주고 계시지만 절대 기준은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돈이 많다고 자랑할 게 아니에요. 내가 성공했다고 까불 게 아니라고요. 우리가 보면 불신자가 물질적인 축복을 더 많이 받고 있어요. 우리는 물질적인 축복도 받지만 그게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고 기준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왜 그럴까요? 이 땅이 하나님 나라면 물질적인 축복이 기준이 될 수 있어요. 이 땅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고 한다면 지금 세상 나라고 심판받을 나라고 지나갈 나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아무리 부자고, 아무리 성공했더라도 이거는 썩어질 것이 된다는 말이에요. 하나님 나라 차원이 달라졌다는 말이에요. 앞으로 이 세상은 불 심판이 있다고 분명히 얘기하고 있어요. 노아 시대에 물로 심판받았던 것처럼 마지막에는 불로 심판받는다고 돼 있어요. 지금 세상은 지나가는 세상이에요. 이 세상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 속해 있지만 우리가 영적 전투해야 할 세상이에요. 두 계열의 싸움을 해야 할 세상이에요. 직장 들어가도 우리는 축복하고 영적으로 볼 수 있잖아요. 진짜 전도자의 마인드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일 잘하면서도 그걸 수단으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섬겨야 할 때 섬겨야 하고 돈 써야 할 때 써야 하고 복음 전해야 할 때 복음 전해야 해요. 지금 우리는 사실은 이 땅에서 사명 감당해야 할 삶을 살아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 보세요. 물질이 사단에게 쓰임 받기도 합니까? 악당이 돈 쓰면 전부 다 악한 일에 쓰일 거 아니겠습니까?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 돈 쓰면 그 전부 우상숭배에 쓰이는 돈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물질 가지고 사단이 예수님도 유혹했어요. 예수님 40일 동안 시험당할 때 처음에 떡 시험, 먹는 시험 그다음에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명예 시험했어요. 그다음에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 준다고 했어요. 물질 가지고 여러분을 넘어뜨릴 수만 있다면 그거는 사단에게 기쁨이에요. 마귀가 예수님께 한 세 번째 시험이에요. 4:8~9,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한 왕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내게 주리라.” 여러분, 사단이 저 모든 걸 주겠다고 그랬는데 실제 줄 수 있을까요? 사단이 돈 벌게 할 수 있을까요? 돈 벌게 할 수 있어요. 능력 있어요. 얼마든지 있어요. 사단이 여러분한테 돼지꿈을 꾸게 만들고 복권이 당첨되게 할 수 있을까요? 그 정도는 해요. 사단 귀신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정도는 한다니까요. 욥의 재물을 다 뺏어갔잖아요. 그런데 복을 줄 수도 있어요. 물질적인 복 그것도 관리할 수 있다니까요. 하나님 것이지만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이놈도 통치할 수 있다니까요. 근데 보세요. 세상은 지금 전부 창세기 3611장의 소욕을 따라가고 있잖아요. 나 중심의 소욕을 따라가고 있고 또 6장에 육신 중심의 소욕 따라가고 있고 세상 성공 중심의 11장 그 소욕 따라가고 있잖아요. 이게 지금 사단에게 종 노릇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우리는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해요. 성도는 이 세상에서 보좌 배경을 누리고 임마누엘로 살아야 하는 거예요. 보좌에서 만물을 복종시키시고 모든 부와 귀가 다 그분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우리는 그분과 늘 소통하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고 있는, 성령으로 함께하고 있는 이 축복을 누려야 된단 말이에요. 우리는 환경만 믿는 게 아니고 돈만 믿는 게 아니라 돈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거예요. 그리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받들어 그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명 감당하는 게 진정한 축복이 됩니다. 지금 세상은 지나갈 것이고 세상은 물질과 함께 심판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눈과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이 땅을 살아야 하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의 진정한 사명이 나온다는 말이에요. 지금 저랑 이렇게 다락방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잖아요. 한동대 학생도 있고 공대 학생들도 있는데 이들한테 제자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 강조하는 거예요. 제가 복음 먼저 깨닫고 그다음에 이 친구들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그 부분을 제대로 전달하는 거예요.

 

2. 지금 성도의 진정한 축복의 기준은 뭡니까?

1)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지금 살아야 되는 거예요.

이 땅에 사는 성도는 지금 언약 성취 과정 속에 있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했어요. 아직 몸의 부활과 이 땅에서 회복될 하나님 나라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순례자로 말씀 따라 계명을 지킵니다. 새 계명을 지키며 전도자의 삶을 살 사명이 있다는 말이에요. 이게 영적 상태가 회복돼야 이 삶이 계속 더 향상이 됩니다. 우리는 기도를 놓치면 안 돼요. 하나님과 교제를 놓치면 안 돼요. 교제가 계속되면 하나님을 아는 거, 믿는 게 점점 더 깊어지고 더 세진다고요. 여러분 하나님 아는 거 믿는 것이 더 강해지면 가치관이 달라져요. 옛날에 물질 없으면 큰일 나요. 내가 성공 못하면, 사람들한테 성공했다는 소리 못 들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성장 배경에 이런 부분에 상처 있는 사람은 더 물질이나 성공 거기에 더 집착할 수 있어요. 근데 하나님 말씀이 들어오면서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 아는 거 믿는 것이 회복되는 거예요. 그리스도 아는 거 믿는 것이 회복돼요. 그러면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이 풀립니다. 예전에는 내가 붙잡은 거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거는 영원한 축복이 안 되잖아요. 지금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없으란 말이 아니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성공시키기 원하셔요. 근데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영적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영적 회복이 안 되면 돈 벌어서 사탄 통로 노릇 한다니까요. 그렇게 되면 돈 가지고 자기 육신을 위해서 산다고요 그것 가지고 자랑하면서 그것 가지고 인정받고 산다고요. 거만 떨고 산다고요. 돈이 많아도 헌신 못 해요. 그럼 얼마나 잡혀 있는 거예요. 있는 돈 거 놓칠까 봐 아주 벌벌 떨어요. 성도에게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약속하고 있어요.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고 계셔요. 그냥 끝 날까지 함께 계시는 게 아니라, 14:20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저기 보좌에만 계시는 게 아니라 지금 내 안에 지금 왕이 되시고 주인이 되시고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거예요. 내 마음과 생각을 주장해 주셔 육신의 생각에 안 빠지고 하나님을 바로 믿고 말씀을 바로 따라갈 수 있도록 마음과 생각을 잡아주시는 거예요. 우리는 점점 더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누리고 사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말씀 실천했을 때 하나님이 또 증거를 보여주셔요. 경제도 건강도 환경의 축복도 당연히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어요. 보좌 배경을 믿으니까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어요. 믿음으로 물질의 축복, 기능의 축복, 직업의 축복 이런 기도를 우리는 얼마든지 하고 응답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물질적 축복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겁니다. 그걸 하나님 나라 위에 얼마나 썼느냐가 복의 기준이 돼요. 말씀 따라 살며 청지기의 삶을 얼마나 살았느냐가 복의 기준이 돼요. 하나님은 지금 신자나 불신자나 공이 생명과 건강과 기능과 재물의 복을 주고 있어요.

 

지금 예은이가 말씀 잘 듣고 있는데 예은이 회사에 지금 불신자 얼마나 많아요. 이 사람들 이 잘 살잖아요. 물론 걱정, 근심, 스트레스 공허함을 술로 때워야 하는 그런 상황이 불신자들에게 늘 있지만 나름대로 경제적인 목을 누리면서 그걸 가지고 어떻게 재미있게 살까 궁리한다고요. 불신자나 신자나 건강과 기능과 물질의 축복을 공이 주시는 걸 일반 은총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불신자는 이걸 하나님 주셨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생명까지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시작과 끝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골인 지점인 줄 알고 믿음의 경주를 하는 거예요. 지금 불신 세상은 어둠이 깔려 있잖아요. 그래서 빛의 망대로 부르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건 매일 매일 똑같은 삶을 반복하지만, 내 영적 상태가 계속 회복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 아는 거 믿는 것이 회복되어서 하나님의 뜻 행하는 것이 발전되게 돼 있어요. 그게 안 돼 면 이건 아닌 거예요. 그냥 문제없기를 바라는 종교인하고 똑같은 거예요.

 

2) 신약 성도는 축복의 기준이 육신적인 것에서 더 영적인 것으로 옮겨졌다는 말씀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가 많은 핍박을 당했어요. 지금도 핍박을 당하는 나라가 있어요. 그 나라 속에 사는 성도들은 그 핍박을 이기며 감사하며 때로는 순교하고 있어요. 하나님 나라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이 진정한 복의 사람이에요. 지금 이란 미국하고 아직도 전쟁 안 끝나고 있잖아요. 그 이란 속에 기독교인이 많이 생겼다고 지난번 얘기했잖아요. 그들이 탄식하면서 눈물로 기도하고 있단 말이에요. 지난 보니까 테헤란 사람인데 여자분이 한국에 와서 여목사가 됐어요. 뭐라고 설교를 하냐 하면, “여러분, 이란이 회복되면 이스라엘에게 복음으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란이 옛날에 어디예요? 페르시아 잖아요? 페르시아의 속국이 이스라엘이었잖아요. 관계성을 갖고 있어요. 이란이 복음화되면 이스라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여목사님이 이란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지금 이 란에서 또 이스라엘 나라에서 핍박을 당하면서도 믿음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복의 사람이에요. 지금 우리가 믿음의 싸움,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하느냐가 진정한 복의 기준이에요. 주님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이 어떻게 올바로 세워지는가가 대단히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 왜 우리 집에는 이런, 이런 문제들이 이렇게 많아?” 질문이 있을 수 있어요. 답은 제자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많은지는 정말 영적 문제가 뭐고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되는 그 답을 갖도록 하기 원하시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어떻게 사람을 회복시키고 치유하시는지 경험자로 세우기 원하시는 거예요. 증인으로 세우기를 원하는 거예요. 만약에 회복이 되면 이 사람이 진짜 하나님 소원의 방향을 맞출 수 있거든요. 그리고 자기 경험이 다 쓰이게 됩니다. 우리는 예전에 주님의 눈이 없었어요. 영적인 눈이 없었어요. 그냥 현상만 바라봤지, 주님이 주신 마음도 없었어요. 어떻게 인생이 사단에게 종노릇하고 있는지 그거 보는 눈이 없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애통한 마음도 없었고요. 우리 생각이 얼마나 창 3, 6, 11장에 속한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았는지 몰라요. 근데 이제는 말씀에 입각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신약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과 전도자의 삶을 사는 거예요. 거기에 여러분의 모든 건강이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거기에 물질, 경제가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직장이 쓰임 받기 바래요. 그런 역량을 가지고 만약에 산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당연히 실천해요. 오늘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실천적인 삶을 얘기하고 있거든요.

 

3. 실천 사항

1)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는 것은 더디 하고 성 내기도 더디 하라.

듣기는 속히 하고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잘 들으라 이 말이에요. 남의 말할 때 경청하고 그 의미가 뭔지 잘 들으라 이 말이에요. 그냥 남 얘기는 별로 안 듣고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거 하지 말라는 거예요. 말하는 건 더 디하고 왜 더디 해야 해요? 말 빨리 하다가 실수 많이 하잖아요. 그다음에 성 내기도 더디 하고 했어요. 20절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랬어요. 여러분 성 내면 상대 감정이 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적대감을 갖게 만들어요.

 

2)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라.

더러운 게 어디서부터 나와요. 마음에서부터 나오죠. 이기심에서부터 나오고 악한 생각에서 나와요. 남을 인신공격하는 것도 더러운 것이고 또 더러운 말 음란한 말도 다 더러운 말이고 그다음에 넘치는 악 악을 내버리라 했어요. 이건 진짜 그리스도인과 안 맞는 거예요. 우리가 구원받고 주님이 우리 안에서 성령으로 통치하는 삶을 날마다 살면 어떻게 돼요? 언어생활이 바뀌어요. 믿음의 말을 해요. 살리는 말을 해요. 남 까는 말 안 해요. 남 흉보고 비판하는 말 참 잘 안 하게 돼요. 집사람이 저한테 인정하는 거 있어요. 비판하는 말 목사님은 참 안 한다고 해요. 살리기도 바쁜데 언제 비판하고 있어요?

 

3) 말씀을 온유(순종)함으로 받고 듣기만 하지 말고 실천해라.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것은 야생마를 길들여서 주인에게 순종하도록 만드는 그런 의미에서 나온 말이 온유라고 합니다. 순종으로 바꾸시면 돼요. 말씀을 순종으로 받고 듣기만 하여 자기를 속이는 자 되지 말고 실천하라고 했어요. 23절에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사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 곧 잊어버리거니와여러분 지금 맨날 거울 보니까 여러분 자기 얼굴 안 잊어버리죠. 옛날에는 희미한 구리거울이었어요. 옛날 우리 어릴 때도 경상도 말인가요? 민경 그랬는데 구리거울이니까 흐릿해요. 지금처럼 맨날 찍어 바르고 거울 보겠어요. 그러니까 자기 얼굴을 까먹어요.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얼굴 까먹는 것과 같다는 그런 뜻입니다. 사람들이 말씀에 동의는 하는데 생활 속에서는 언어도 안 바뀌고 생각도 안 바뀌고 삶의 습관도 안 바뀌어요. 인간관계도 똑같이 해요. 그런 경우를 말하는 겁니다.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린 자가 아니며 실천하는 자니그랬어요. 이 사람은 행하는 일에 복을 받는다고 돼 있어요. 여기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는 건 원래 율법 자유롭게 못 하죠. 구속하잖아요. 그러면 이 자유롭게 하는 율법은 뭐냐 하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성령을 받아 성령께서 행하도록 하는 율법을 말하는 겁니다. 그 성령께서 행하게 하는 율법은 자원해서 하게 되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어요. 그런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면 하나님은 복을 약속하고 있어요. “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이렇게 돼 있어요.

 

마지막으로 26절 보세요.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며 경건하다 하면서경건한 폼은 다 잡고 자기 경건에 대해서는 마음을 다듬고 굉장히 신경을 써요. 그런데 말은 함부로 해요. 그러면 자기 속이는 자라는 거예요. “이 사람은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정결은 자기 내면을 단지 더럽히지 않는 그 정도의 경건이 아니라 실천적인 삶을 통해서 고아와 과부를 돕는 거래요. 이해되십니까? 당시에 다 경건 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자기 경건에만 빠져 있고 옆에 있는 고아 과부는 돌보지 않는 거예요. 그걸 지금 까는 얘기예요. 과부를 돌보려면 돈도 들고 힘도 들고 하니까 그건 안 해요. 그러면서 난 경건하다. 나는 거룩하다이렇게 얘기한다는 거예요. 진정한 경건은 실천이 있어야 하고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거래요. 진정한 경건 경건의 기준은 혀를 제하는 것과 이웃 사랑 실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거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제일 많이 다루어지는 부분이 언어생활과 말씀 실천을 강조하고 있어요. 언어 생활이나 말씀 실천은 전부 이 마음에서 올라와야 해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게 역시 영적 상태예요. 영적 상태가 바뀌지 않은 사람은 삶의 진정한 변화가 안 돼요. 영적 상태가 안 좋으면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대로 살아요. 우리가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마음과 생각을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바꿔야 되잖아요. 근데 여러분 가만히 보세요. 모든 상황 가운데서 이 두 가지가 같이 올라와요. 남편 대할 때도 이 두 가지가 같이 나와요. 본성으로 반응하냐 성령으로 반응하냐, 자식 대할 때도, 직장에서 인간 관계할 때도 항상 본성으로 행하냐, 성령으로 행하냐 두 가지가 같이 나와요. 은혜를 받고 영적 상태가 바뀌면 성령께서 내 마음과 생각을 붙들어 주셔요. 그래서 본성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분별하고 그것을 극복하게 됩니다. 사람이 바뀌어요. 여러분 이렇게 바뀌면 내면이 행복해지거든 요. 주와 동행하는 느낌을 갖게 되거든요. 내 삶에 주님이 간섭한다는 걸 매번 느끼게 된다고요. 이 사람은 전도자로, 증인의 삶을 살아요. 본성은 전도하는데 부끄럽고 부담이 있지만 성령님은 기뻐하신다는 거예요.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게 더 강해지는 거예요.

 

결론

오늘 진정한 축복이 뭐냐? 신약 성도들에게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 나라를 골인 지점으로 여기고 사는 거예요. 여러분 다 그렇게 살고 있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 그게 말씀 따라 살아가는 거예요. 통치 실현과 사람을 건지는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인 줄 믿습니다. 이런 축복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