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금식(사58:3~11)
한주간도 염려, 걱정 들어올 때 그걸 기회로 삼는 삶을 살았는가? 주님이 싸워주실 것이라는 언약이 없다면 모든 것이 기회가 될 수 없다. 모든 능력이 있으신 주님이 함께, 그것도 우리 속에 함께 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기회가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을 맞추지 못한다면 기회가 될 수 없다. 이제는 우리의 연약함, 사탄의 공격, 문제가 다 기회가 된다. 역전시키고 뒤집고 영의 생각을 하고 그리스도 권세 누릴 기회이다.
오늘은 우리가 잘 다루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제목이 참된 금식이다. 우리 교단은 금식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런데 진짜 식음을 전폐할 정도의 문제 만났다면 금식해야 한다. 금식하면서 땡깡 부리라는 게 아니다. 나를 완전 내려놓고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에 나를 맞추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과 주권과 언약을 철저히 믿고 의탁하는 거다. 기존 교회에서 금식의 단골 본문은 눅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다. 오늘 본문은 좀 다른 내용이다. 당시 어떤 배경에서 이런 말씀이 나온 줄 알아야 한다.
1. 유대인의 금식
1) 유대인은 언제 금식하는가?
대속죄일에는 반드시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들이 위기 상황에 놓일 때 금식했다. 오늘 본문의 요지는 자기의 기막힌 문제를 갖고 그걸 응답받기 위해 금식하라는 말이 아니다. 참된 금식의 정신이 뭔지를 말하고 있는 말씀이다. 참된 금식이란 하나님의 율법의 계명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그것을 바로 실천하는 금식을 하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율법의 제일 가는 계명이 뭔가?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장 책망받고 징벌받은 죄가 뭔가? 첫째가 우상숭배 죄고 둘째가 이웃에 대해 정의와 사랑을 실천치 않는 죄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소유 삼으셔서 유일하게 거룩한 나라, 의로운 나라, 제사장 나라 삼으셨다. 거룩한 나라, 의로운 나라 라는 것은 자기 필요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하고 개인 경건만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다. 유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그 공동체에 실현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에는 사회적 약자인 고아 과부 나그네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야 된다. 그들을 위한 사회 정의를 실천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야 의로운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셨던 하나님 나라였다. 이걸 구약에서 얼마나 많이 강조하는지 모른다. 율법에는 이것의 제도적 장치(사회복지 제도)가 마련되어 있었다.
2)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계명을 잘 지켰겠는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나 전 세계 모습과 똑같다. 어디든 경제 부조리와 불평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사회 정의와 사랑이 실천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이것의 대안으로 나온 것이 다양한 사회주의다. 북유럽의 나라(스웨덴, 핀란드)들이 민주주의 하면서도 사회주의하는 나라들이다. 제도가 좋아도 어느 사회든 창3장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약자들이 자신이 부당한 대우와 불평등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서 보통 사회정의를 주장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위치가 바뀌어 사회적 강자가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안뺏기기 위해서 자기 이권을 방어한다. 내로남불이 된다. 창3장 문제가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본문 6절을 보면 사회 내의 약한 자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압제를 멈추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라고 되어있다. 7절에 더 적극적으로 해야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8~9절에 보면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말씀해 주고 있다. 9~11절에도 같은 권면이 나온다. 너희 중에서 (압제하는) 멍에와 (경멸하는) 손가락질과 (남 흉보는) 허망한 말을 버리고 반대 것을 하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율법의 제일 되는 1,2계명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나라가 멸망하게 된 것이다. 호세아서, 아모스, 미가서, 이사야서 등 모든 선지서들이 이걸 다 책망한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게 아니라 우상 혼합주의 나라가 되고 불의한 나라로 전락하니 하나님께 징벌 받게 된 것이였다.
2. 왜 이스라엘은 사회 정의와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는가?
왜 의로운 나라, 거룩한 나라,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치 못한 것일까? 왜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종의 역할을 하지 못했는가?
1) 자기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주의 능력과 그분의 언약을 현실 상황 속에서 심령으로 믿지 못해서 그렇다.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간 제가 이사야서를 통해 어떤 메세지를 했는지 생각해 보라. 사40장의 내 백성을 위로하라, 비교 불가능한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의 권세, 이사야서의 메시야 예언, 여호와의 증인인 이스라엘,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만민을 위해 깃발을 들어라, 일어나 빛을 발하라, 오늘 참된 금식이다. 이 말씀이 다 그들의 회복과 사명에 관계된 말씀들이다.
2) 그들이 보장받고 있는 축복과 권세를 못믿었기 때문이다.
이걸 믿고 누리면 하나님의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축복이 보장된 것이다. 응답받는 비결이 된다. 나는 가난한데, 나는 어려운데 하는 생각을 바꾸어라. 우리 믿음을 사용할수록 믿음은 자라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과 권세 알고 누리면 당당하고 말씀 실천의 삶을 살 수가 있게 된다. 이걸 모르면 돈이 없으면 당연 문제고, 돈이 있어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3. 우리는 어떻게 참된 금식을 실천할 수 있는가?
1)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못누렸던 것을 누려야 한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문제가 기회인 줄 알아야 한다. 여러분 가난도, 병듬도, 연약함도, 다 기회임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오히려 치유, 갱신의 기회, 영적 역량을 기르는 기회다. 그리스도 권세 누릴 기회가 된다. 우리는 과거 두려움, 불안함, 연약함, 이기심을 깔고 창3장의 렌즈로 보고 육신의 생각으로 반응했던 인생들이였다. 이제 이걸 치유받아야 한다. 이유는 완전하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이걸 알 때 주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2) 자기 맡은 일, 현장에서 불의를 행치 않고 사회정의와 사랑 실천하며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다.
지난 주의 말씀처럼 일어나 빛을 발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아니였더라도 이제부터는 내가 청문회 나간다는 생각을 갖고 살기 바란다. 오히려 우리는 불의를 행치 않고 사회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이 전도운동과 연결된다.
결론
1. 우리 육신의 생각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신다. 하나님 통치를 실현시키고자 하신다. 거기에 능력과 축복으 보장하고 계시다. 미6:8에 보면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은 축복의 기회인 것이다. 여러분 깨어 있어야 한다. 안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육신의 본성으로 현실따라 가기 쉬운가?
2. 마6:33에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행1:8에는‘오직 성령이..’이런 언약을 꼭 잡으라. 이번 주간에도 주님이 주인되시고 주님이 싸워주시는 인생을 살기 바란다. 오늘 말씀을 말로만 듣지 말고 말씀의 실천이 축복의 기회인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육신의 생각을 계속 뒤집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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