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시현형제 특송
2.남인애집사 간증
3.강미희권사 간증
4. 김선영집사 간증
5. 렘넌트 특송
6.유성은 간증
오병이어의 사건과 예수님의 질문(눅9:10~20)
어제까지 교회가 렘넌트들까지 참여하여 10일 기도회를 가져서 감사했다. 기도회 하신 소감이 어떠한가? 어린이들도 어른들이 기도할 때 자모실에서 사모님과 기도했다. 통성기도도 하고 찬양도 하고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기도도 했다. 어린이들도 기도하면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기도 말이 생각나고 기도가 되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참 이상한 것은 그냥 머리로 아는 것 하고 성령께서 기도가 되어지면서 믿어지는 것 하고는 다르다. 머리로 아는 것은 단지 우리 뇌로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지식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믿어지고 깨달아지는 것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작용한다. 평안을 주고 기쁨을 주고 감동을 주어 더욱 믿음이 자라나게 한다. 그래서 기도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기도란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현재적 통치를 누리는 것을 말한다. 기도는 문제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에서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창3,6,11장의 내가 내 머리, 내 능력, 내 방법으로 살아왔다. 이걸 그리스도께서 주인되어 성령으로 통치해 주시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 자녀 되었기 때문에 기도만 발전시키면 된다. 기도의 발전이 믿음의 삶의 발전이 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오병이어 사건은 너무나 유명한 사건으로 전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이 사건을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 질문하신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 질문의 시기는 갈릴리 전도의 마지막 시기였다.(지도) 그 때에 너무나 중요한 질문을 던지신 것이였다. 갈릴리 사역의 결론으로 질문하신 것이다. 여러분에게는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그분과 동행하고 있는가? 몇 프로 주인이신가? 오늘 추수감사절인데 자신이 점검되기 바란다. 오늘 본문에 먼저 오병이어의 사건이 나온다.
1. 오병이어의 사건
1) 먹는 부분은 육신의 생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모든 사람의 관심사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예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창조자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보여주신 사건이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보면서도 미끼지 아니했을 것이다. 신기하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했을 것이다. 그런데 구약에도 이런 유사한 사건이 나온다. 엘리야 선지자와 엘리사 선지자도 이런 일들을 일으켰다. 왕상17장에 보면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유사한 기적을 일으켰다. 통에 가루 조금과 병에 기름 조금 남아있었는데 사르밧 과부와 그 아들이 그걸 먹고 죽을려고 했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 통과 병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던 것이다. 또 왕하4장에 보면 엘리사가 선지생도의 과부를 위해서 유사한 기적을 일으켰다. 기름 한 그릇밖에 안남았는데 그릇을 있는데로 빌려오게 했다. 그리고 거기에다 기름을 붓기 시작했는데 모든 그릇에 다 차기까지 계속 기름이 흘러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기적이 일어나면 대박이 나겠지요? 이들은 선지자들이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도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른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직접 창조주의 능력을 나타내신 것이였다.
2)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했을 때 제자들은 얼른 수학적 머리가 돌아갔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 많은 사람들이 먹을려면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했다. 우리는 그간 3,6.911장의 본성에 입각한 감정, 논리, 계산으로 너무 익숙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내 계산은 분명히 있지만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육신의 생각은 내 수준의 생각,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생각이다. 보통 생각에 잡히면 영의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계속 육신의 생각에 잡히는 경향이 있다. 이 두 생각을 구분하고 영의 생각으로 바꾸라 했다. 그게 기도이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든지 영의 생각을 끝까지 하면 참 승리와 응답을 받게 된다. 왜냐? 예수님은 창조자시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육신의 생각이냐 영의 생각이냐에서 판가름 난다. 우리는 합리적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 위에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일하실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실려고 물어보신 것이였다. 교회 재정 운영할 때, 여러분의 가정의 경제, 사업 경제 운영할 때 대 전제가 있다. 첫째가 여러분 인생 방향과 관심과 생각을 하나님의 소원과 관심과 생각에 맞추라는 것이다. 둘째가 여러분 하는 모든 일을 자기 일로 여기지 말고 주님의 일이요 주님이 주인이신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도 보좌통치하시면서 동시에 여러분 속에 성령인도하시는 주님의 응답의 역사를 맛보게 된다. 구약에서 이걸 수없이 체험했던 인물이 다윗이다. 그래서 그는 대상29:11~12(자막)의 위대한 고백을 했던 것이다. 우리가 기도시간에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 영의 생각이다. 라비가 실험실에서 이 고백을 하기 바란다. 우리 육신의 본성은 염려하면서 눌리고 고민하지만 우리 속에 계신 주의 성령께서는 염려하거나 눌리거나 고민하시는 법이 없다. 모든 지혜와 능력과 기능의 근원이요 원천이 되신다. 그 성령께서 여러분 속에 역사하셔서 다윗처럼 보좌의 배경과 축복을 누리기 바란다.
2. 오병이어에 이어지는 영적 메시지
요6장에도 오병이어의 사건이 나온다. 여기서 보면 오병이어에 이어 영적 메시지를 해주셨다. 오병이어의 사건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자 요6:26~27절의 말씀을 해셨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으로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하셨다. 모든 사람이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고 있다. 썩을 양식은 무엇인가? 육신을 위해 배로 들어가는 양식을 말한다. 이걸 위해 일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 일 하라고 하시는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하셨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무엇인가? 영혼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인 것이다. 복음의 말씀을 따라 살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누리게 하신다. 삶에 성령의 능력과 승리를 허락하신다. 그래서 여러분 은 하는 일에 성공하면서 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 하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급까지 받게 된다. 그래서 복음의 말씀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인 것이다.
3.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갈릴리 사역의 총결산하는 즈음에 한 질문이라 했다. 이 질문 이전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를 먼저 물어보셨다. 세상의 그리스도관을 타진한 것이다. 대다수의 견해가 대단한 선지자가 나타났다고 간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죽은 엘리야나 세례요한이 부활했다고 여겼던 것이다. 엘리야가 다시 온다는 말씀이 말라기에 나와있다. 이들은 실제 로마를 타도할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었다.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셨다. 이에 대해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대답했다. 마태복음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대답했다. 베드로는 어떻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그리스도라고 대답 할 수 있었을까? 그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수많은 표적을 체험했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고치시고, 갈릴리 광풍을 잔잔케 하시고, 군대 귀신을 내쫒으신 것을 목격했다. 12년된 혈루병 든 여자가 고침받고, 야이로의 죽은 딸을 고치시는 것도 목격했다. 거기다 개인적인 특별한 체험도 했다.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 물 위로 걸어오실 때 베드로는 “주 시거든 나로 물 위로 걷게 하소서”했다. 걷다가 바람이 불자 빠져들게 되었고 그 때 예수님이 잡아 주시는 체험도 했었다. 우리 어린이들도 아는 내용이지요? 이런 사건들이 그를 깊게 생각하게 하였을 것이다. 이때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령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는 결론을 얻게 하셨던 것이다.
결론
예수님을 누구라고 여기느냐가 여러분 인생의 운명과 판도를 결정짓게 된다. 그 분을 어느 정도로 아느냐가 여러분 인생을 180도 전환시킨다. 자기 인생을 걸고 질문하기 바란다. 한 번은 이 질문을 제대로 해야 한다. 한동대 고 김영길 총장께서는 이 질문을 깊게 해서 인생이 바뀌셨다. 과학도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믿게 되고 예수님이 자기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셨던 것이다. 이 질문을 제대로 한 사람은 그 인생의 운명과 판도가 바뀐다. 기도생활로 주인과 체질이 바뀌어지게 된다. 여러분 인생에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신 것이 맞다면 아침 점심 밤 기도 시스템을 만들어 계속 발전시키기를 바란다. 거기서 학업과 일과 연구가 나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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