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을 만류한 베드로(눅9:20~26)
오늘 본문은 지난 주 오병이어의 기적과 예수님의 질문에 이어지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역이 무르익어갈 때 세상의 그리스도관을 타진해 보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리고 이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냐고 물어 보셨다. 베드로가 정확한 고백을 했던 것이다. 그러자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가지 축복의 말씀을 해 주셨다. 오늘은 그 세 가지 축복과 예수님 죽음을 만류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가질 제자도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1. 세 가지 축복(마16:18~19절)
1)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셨다.
이 말은 예수님에 대해 정확히 고백한 베드로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의미이다. 보통 교회를 건물로 말할 것 같으면 건물을 지을 때 제일 밑에 중심돌을 뭐라고 하는가? 기촛돌 내지 주춧돌이라 한다. 그 위에 건물을 세우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베드로의 이름 자체가 반석이니깐 신앙고백한 베드로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의미가 있다. 둘째는 베드로만 반석이 아니라 베드로가 신앙고백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 중에 반석이시다. 그러니깐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고백한 자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도 된다는 것이다. 정말 그리스도를 올바로 고백하는 자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구원역사를 이루고 계시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고백하고 바로 믿는 여러분을 통해 교회를 세워 주님이 237복음화 하실 것을 믿기 바란다.
2)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다.
음부란 무덤을 말하는 것으로 죽음과 지옥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탄이 범죄케 해서 파생된 결과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사업을 다 이루셨기에 교회는 사탄, 죄, 죽음, 지옥권세를 이기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왜 그런가? 우리에게 이제 삼위 하나님을 누릴 권세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3) 천국 열쇠를 주리니 땅에서 무엇이든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셨다.
이것은 복음전파권, 기도응답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전도하면 천국문을 열어주는 것이 되고 전도하지 않으면 천국을 닫아놓는 것과 같다. 또 열쇠를 갖고 매고 푼다는 것은 기도로 보좌의 배경과 축복을 누릴 절대권한을 가졌다는 말씀이 된다. 여러분은 진짜 보좌 배경과 권세를 누리게 되면 삶의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진짜 보좌 배경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면 여러분이 복을 흘러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만한 여유가 생기고 내면에서는 마르지 않는 원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쫀존하게, 이기적으로 묶여살던 인생이 치유가 된다. 여러분 통해 복이 흘러나갈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의 근원이 안마르게 된다.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주리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아니하다고 하셨다. 그 떡이 뭔가? 복음의 말씀인 것이다. 그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었을 뿐만아니라 계속해서 우리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성령의 통치 인도 역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쫀존하게 살지 말고 묶여살지 말기 바란다. 돈 쓸 때는 쓰기 바란다. 이럴 때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여러분의 돈을 쓸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돌아가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계속 주님의 일에 쓰임받으면서 목마르지 않는 것이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삶이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권세를 사용하기를 바란다. 베드로에게 3가지 축복을 주셨다는 것은 여러분에게도 주셨다는 말이 된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자기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셨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메시야관이 틀렸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맞다고 소문나면 그들의 왕으로 옹립하고자 하게 된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것이였다. 그리고 이어 인자가 장차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제자들이 알았기 때문에 비로소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이유와 목적을 밝히시는 것이였다. 마태복음에 보면 이 말을 듣고 놀라서 베드로가 곧장 만류하는 내용이 나온다.
2. 베드로의 만류
마16:21~27절을 읽자. 22절에 보면 베드로가 “항변하여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한다는 생각이였지만 한 편으로는 자기 동기도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를 즉각 꾸짖으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고백해 놓고도 책망을 받게 되었다. 왠가? 순간 다시 창3,6,11장의 생각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아마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인식 못한 채 말했을 것이다. 우리도 이러는 수가 참 많다. 기도할 때는 영의 생각을 하다가도 평상시에는 내 중심의 생각, 육신 중심의 생각, 보이는 것과 내 수준과 내 능력 중심으로 계산하는 것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끊임없이 우리는 생각을 돌려야 한다. 창3,6,11장의 육신의 생각이 뭔가? 나중심, 육신중심, 세상성공중심의 중심의 생각이다. 예수님은 이 창3,6,11장의 생각 배후에 역사하는 사탄을 간파하시고 꾸짖으신 것이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우리는 계속해서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구분하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러면 여러분이 필히 기도해야 한다. 기도할 때 여러분의 생각이 바뀌게 된다. 이것이 안되면 보좌 권세를 누리며 하나님의 복을 흘러보내는 삶을 살지 못한다. 영의 생각이란 3,6,11장의 반대인 성령께서 주시는 1,3,8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 생각으로 돌려서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 하나님 나라 중심, 성령의 충만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1,3,8의 생각으로 돌리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하면 영의 생각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영의 생각으로 믿어지는 말씀들이 정립이 된다. 이것이 여러분의 기준과 동기와 삶의 방법과 많은 것들을 바꾸어 버리게 된다. 이렇게 안바뀌면 창3,6,11장의 체질 속에서 그대로 살게 된다. 예수님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제자들의 수준은 완전 3,6,11장의 수준이다. 예수님은 이런 상태인 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바로 제자도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3. 제자도란?
제자가 가야할 길이다. 핵심 두 가지 말씀을 해주셨다.
1) 마16:24절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셨다.
날마다 갈2:20이 되라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으면 창3,6,11장의 내가 다시 주인이 된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유대땅에서 실제 처형당할 죄인이 자기가 죽어야할 십자가를 지고 거리 퍼레이드를 벌린 것을 상상하면 좋다. 그 십자가는 자기가 죽어야할 십자가인 것이다. 핍박하는 남편이 십자가가 아니다. 어려운 문제나 고난이 내 십자가다 라는 말을 종종 쓴다. 그러나 타인이 나의 십자가가 아니다. 창3장의 나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 곧 창3장의 나는 죽었음을 시인하라는 말이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통치하시게 된다. 창3,6,11장의 내가 사탄의 함정에 빠져 산 나임을 알고 내가 주인 행세하는 것을 부인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내 기준, 내 동기, 내 잘못된 믿음의 현주소, 내 방법이 다 3,6,11장에 빠졌다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을 부인하고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현재적인 통치인 성령의 통치를 받도록 하라는 것이다. 기도 생활 안되면 이것이 안된다. 성령님이 이것들을 구분케 하시고 뒤집게 하신다. 이것이 제자도의 첫 번째다.
2) 제자도의 두 번째로 2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하셨다.
조선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일본군 133척을 대항해서 싸웠던 명량해전이 있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이 생득사, 사득생이라는 말을 썼다. 그랬더니 조선군이 대승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강조점은 무엇인가? 나를 위해서라는 말에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제 목숨을 잃는 자는 구원하리라” 앞의 제 목숨은 이 땅에서의 제 목숨이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 땅의 자기 목숨을 위해 산다. 이 땅의 자기 목숨을 위해 좀더 만족한 삶을 살기 위해 생을 건다. 이걸 위해 공부도 하고 취업도 하고 돈도 벌고 성공도 하려 한다. 염려 때문에 그렇다. 사실 인생이라는 것은 이걸 위해 투쟁하는 것이 인생이다. 근데 이게 창3장에 빠졌기 때문에 그렇다. 배경 잃어버렸지요, 내 안에 성령의 통치 잃어버렸지요, 그러니 남는 것은 나 밖에 없다. 그러니 제 목숨을 좀더 만족스럽게 살고 내가 어려움 당하지 않아야 되기 때문에 그걸 위해 목숨 걸고 사는 것이 인생살이이다. 제자들도 이 땅의 자기 목숨을 위해 예수님을 좇아 제자의 길에 나선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면 이 땅의 자기 목숨을 위해 좀더 만족한 삶을 살 줄 알고 따른 것이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면 자기들도 한 자리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3)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뒤집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제 목숨을 잃는 자는 구원하리라. 자기를 위해 돈을 쓰는 자는 잃을 것이고 남을 위해 돈을 쓰는 자를 얻을 것이요 비슷한 말이다. 핵심이 뭔가 하면 창3장의 동기에 빠져 살지 말고 그리스도의 동기로 살으라는 말이다. 이것이 참된 제자도의 두 번째 말씀이다. 한동대에서는 공부해서 남주자는 슬로건과 왜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가 라는 슬로건이 있다. 이것이 초대 총장이셨던 김영길 총장님의 교육 이념과 글로벌 리더쉽이였다. 글로벌 리더가 되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김영길 총장님의 이념 이전에 성경의 이념이다. 김영길 총장님이 성경의 이념을 따랐을 뿐이다. 공부해서 남주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고 돈 벌어서 남주기 위해서 돈 벌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기심의 인생이 아닌 이타심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래야 배경과 계속해서 생수의 원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굉장히 중요한 원리이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데 배경도 못누리고 내 속의 성령의 기쁨과 감사와 희열도 못누리면 이 삶을 전혀 못산다. 그런데 주님은 이 삶을 보장하면서 살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을 실제 세상 리더로 세우기 원하시는 것이다. 배경과 원천의 축복을 못누리니깐 쫀존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배경과 원천의 축복을 누리므로 이 삶을 살면 계속 기도응답을 주님이 주신다. 증거를 주신다. 이렇게 살게 되면 계속 자기 속에 계신 주님이 귀하고 귀하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인생 아닌데. 자기가 자기를 봐도 변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점점 더 예수 사랑이 진해진다. 그 예수 사랑 때문에 드디어 예수 이름 때문에 목숨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면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드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북한 간증을 보면 자기 목숨을 드리는 사람 여러 명 나온다. 자기 안에서 능력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가능하냐? 가능하고 여러분이 진짜 삼위 하나님의 배경과 능력을 누리므로 가능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제자는 그 속으로 자꾸는 들어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제 목숨과 그 만족을 위해 산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가 수고한 것들이 가치 없이 되고 다 잃는 것이 될 것이다. 상이 없고 부끄러운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시는 성령의 역사를 못누리면 이것이 절대 바뀌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도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배경과 받은 신분과 권세를 바로 믿을 때 가능한 것이다. 기도로 누릴 때 가능한 것이다. 삼위 하나님을 누릴 신분과 권세를 가졌기에 나를 따르라는 것이다. 율법적으로 따르라는 말씀이 아니다. 뭘 열심히 하기 전에 제대로 믿어야 한다. 대부분 불가능한 이유는 바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3,6,11장의 내가 주인되어 육신의 생각대로 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나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이 오순절 이후에는 다 따랐다.
4) 26절에 “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를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는가”하였다. 이 말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진리가 된다. 온 천하를 얻은 나폴레옹이나 징키스칸과 같은 사람이 되었어도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과 상급(면류관)을 잃어버린다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하는 대로 갚으리라” 하였다. 로마황제가 되든, 시진핑과 같은 중국 주석이 되어 온 천하를 얻는다 해도 영생을 잃는다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이 말이다. 그러므로 눅9:26절의 말씀처럼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의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하셨다. 우리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에 당당하고 감사하고 그래야 한다. 목숨을 걸만큼 그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하셨다.
결론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의 고백에 대한 세 가지 축복을 먼저 해주신 것이다. 이것부터 누려야 하겠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우리도 최고의 고백을 했다가도 근방 육신의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체질이기 때문에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기도시스템이 없으면 절대 안된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제자도를 따르게 된다. 오순절 이후에 이 제자도를 다 따랐다. 정말로 자기 부인하는 삶이 되었고 제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되었던 것이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잃으면 구원하리라 하였는데 제자들이 정말로 이런 삶을 살았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제자도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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