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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2년 12월 18일 주일예배 - 기도 시 성령께서 하시는 일(눅11:5~26)

by 별종외계오동 2022. 12. 18.

 

 

기도 시 성령께서 하시는 일(11:5~26)

 

집사람이 몇 주 전에 저와 같이 대구에 있는 병원에 갔다 온 적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집사람이 하는 말이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기도했다는 것이다. 병원 갈 때마다 오는 불안감, 두근거림이 있는데 출발부터 기도했는데 그것이 가라앉더니 오늘 괜찮았다는 것이다. 집사람에게는 이것이 장난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정서 속으로 들어온 병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갈려고만 하면 생각도 하기 전에 불안감이 먼저 와 있는 것이다. 그 날 기도할 때 성령께서 이걸 잡아주신 것이다. 그래서 제가 집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희한하게 영과 마음과 생각과 신경과 몸이 연결되어있는데 성령께서 우리 영과 마음과 생각과 몸에까지 잡아주실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분명히 우리 영과 마음과 생각과 몸은 연결되어 있고 흑암세력도 여기에 역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가 집사람에게 얘기했다. 불안감이나 두근거림이 한 번에 안 꺾이는 경우가 많다. 다음에 이런 것이 또 올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성령께 대한 믿음이 오면 그때부터 이것이 꺽이는 기회가 된다. 분수령이 된다.

) 이종선 장로님은 서울대 출신인데 학창시절부터 대인 공포증에 시달렸다. 사람의 눈을 못 마주쳤고 사람 앞에 서면 죽을 것 같은 압박감과 가슴 두근거림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표기도를 못한다. 미국 유학시절에 한인교회에 나갔었는데 대표기도 순서를 맞게 되었다고 한다. 교회를 그만 다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금식기도를 작정했다고 한다. 주일에 순서가 다가오는데 가슴 두근거림이 시작되는데 죽을 것 같은 것이였다. 또 그 증상이 오는 것이였다. 그런데 누가 가슴에 손을 딱 대주는데 그 두근거림이 딱 멈추더라는 것이었다. 그 날 무슨 기도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했다고 한다. 성령께서 어떻게 마음과 정신과 생각과 무의식, 잠재의식에까지, 신경과 세포에까지 역사해 주실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기도 시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온다. 기도에 대한 교훈과 바알세불 논쟁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을 의미한다.

 

1. 집중 기도의 중요성

1) 간청하는 친구의 비유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이후에 간청하는 친구 비유를 해 주셨다. 이 간청하는 친구 비유의 강조점은 간곡한 집중기도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요식적인 기도를 하거나 한두 번 하고 마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를 해야 하고 진짜 마음이 실리는 기도를 해야 한다. 성령께서 기도가 되게 하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 성령께서 기도가 되게 하는 것은 실제로 믿음과 연결되어진다. 심령에 깨닫게 하고 믿어지게 해서 자기 것이 되어지게 하신다. 머리로 아는 것은 아직 체험은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간곡히 집중기도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떤 벗이 여행 중에 집에 찾아왔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옆집 친구에게 떡 세 덩이만 빌려달라고 했다. 자리에 누웠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 간청 함을 인해서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예수님은 다 알고 계신데 왜 간청하라고 하시는가? 정말로 믿는 것이 아닌 사람은 이런 간청을 안한다. 별로 안 믿는 사람은 중심을 들여서 기도하지 않는다. 그 만큼 마음을 다할 정도로 주님과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교훈하는 말씀이 9~13절이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는 말씀은 단순히 반복하라는 말이 아니다. 간곡하게 더 깊게 들어가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이 필요할 때 구해야 하겠다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그다음에는 막 찾아다닌다. 그리고 찾는 것이 어느 집에 있다고 한다면 막 두드리게 된다. 기도가 진전되고 더 깊게 들어가는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이런 자세로, 이런 심정으로 기도해야 한다.

2) 그러면 악한 아버지라도 좋은 것을 줄 줄 안다고 하신다.

만약 여러분이 복음이 정립되어 이미 보장된 것을 알고서 이렇게 집중기도한다면 금상첨화(비단 위에 꽃을 얻는다)이다. 11~12절의 말씀이 마7:11절에는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로 되어있다. 저자 누가는 좋은 것 중에 최고 좋은 것이 성령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계시의 영으로 마음과 생각을 잡아주시고 하나님과 통하도록 하시는 영이신 것이다.

인간은 원래 보좌 배경과 성령의 축복을 누리도록 지음 받은 존재이다. 최고 영적 상태와 마음과 정신과 육신의 상태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 하나님 형상이다. 이런 상태로 에덴동산에서 영육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살도록 지음 받았다. 그런데 창3장 사건으로 인해 인간은 보좌 배경과 성령의 축복을 다 잃어버렸다. 영이 죽고 사탄에게 지배받고 눌리고 속는 내가 된 것이다. 이제 보이는 것과 이성의 능력과 인간 수단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염려할 것이 없었던 인생인데 이제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인생이 된 것이다. 이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바꾸신다. 구원받은 자는 이제 사탄에게 빼앗긴 것을 찾고 이 함정과 체질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안타까운 것은 그 빠진 체질 그대로 살고 있는 실정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보좌 배경과 성령의 축복을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에 이제 이걸 알고 주인과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까지 내가 주체가 되어 창3,6,11장의 본성에 입각한 감정과 기분과 생각과 판단으로 얼마나 빠져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제 여기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성령을 힘입어 이것을 극복하고 뒤집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님이 무엇을 다 이루셨는지, 이미 주어진 축복이 뭔지 알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 중에 최고 좋은 것이 성령이신 것이다.

 

2. 귀신에게 잡혀있는 세상

1) 지난 주에 70인 제자는 현장을 영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오늘 이어지는 본문에는 예수님이 벙어리 되게 하는 한 귀신을 쫓아 내어주신 사건이 나온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냈다고 주장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20~22절에 내가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하나님의 손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12:28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로 되어있다. 강한 자는 누구라고 했는가? 사탄이고 집은 사탄에게 장악되어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이고 더 강한 자는 예수님이시다. 23절에 보면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는 말은 사탄 편이라는 말이다. 영적 세계에서는 주님 편이 아니면 사탄의 편이지 중립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24~25절의 말씀은 귀신이 나갔다고 해도 그 사람이 비어 있는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나간 귀신이 더 악한 7 귀신을 데리고 다시 들어온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최대로 사탄을 이기는 방법이 뭔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탄을 돕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항상 나를 강조하는 사람, 내 기분, 내 주장, 내 동기, 내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성령으로 통치받는 정시기도 시간이 없다면 이런 것을 극복할 수 없다. 다니엘처럼 정시기도 시간이 있어야 한다. 영적 생활이 안되면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여러분의 육신의 논리와 계산으로만 살게 된다. 엄청난 영적 사실을 배제하고 살게 된다. 우리는 나타난 현상만 보면 문제 앞에서 얼마든지 불안할 수 있다. 이것이 다 사탄의 함정에 빠져서 그 속에서 형성된 체질로 반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2) 기도 시 성령이 하시는 일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의 영이 눌리거나 약해질 때 우리는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하게 된다. 나 중심의 감정이 나온다. 돈 없으면 근방 돈 없는 것 때문에 눌린다. 자동으로 창3,6,11장의 육신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 감정, 생각으로 반응한다. 영이 약해지면 문제에 대해 불안, 염려, 긴장, 답답, 짜증, 조임, 연약, 무기력이 온다. 이럴 때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이 안된다. 긍정적으로 사람 보는 눈도 안된다. 긍정적으로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안된다. 실제 인간관계에서 순식간에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갔버린다. 이익 중심으로 들어간다. 자기 기분 중심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전부 영적 상태와 연결이 되어있다. 영적 상태가 약하면 문제 앞에서 영의 생각 못하고 합리적, 이성적인 생각만 한다. 불신앙의 생각, 부정적 생각, 비판. 원망하는 생각이 올라오게 된다. 그러니 인간관계 문제나 상처가 되는 문제 앞에서 내 영적 상태가 불안하고 조이고 눌릴 때 어떻게 되겠는가? 정서적 상처나, 마음의 병이나, 잘못된 생각이나 습관이 체질되는 것이다. 사탄, 귀신이 분명히 여기에 역사한다. 사탄이 근본적으로 앞서 말한 상태에 빠뜨려 놓은 놈이니깐 이런 문제 걸려 더 깊게 정서적인 상처를 받고 마음의 병이 걸리고 잘못된 체질에 빠지고 중독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어떻게 사탄의 함정과 체질에 빠지게 되었는지가 보여야 한다. 근데 단지 설명으로 듣고 이해하는 것 말고 기도하면서 보여야 한다. 여러분이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것이 어떤 것이 내게 타격을 주었고 그 때 내가 어떤 식으로 반응했고 그 때 내 속에 이런 것들이 깊게 들어왔버렸구나. 그래서 부정적인 것들, 정서적인 것들이 형성되었구나 이렇게 보이고 분별이 되어야 승리할 수 있다. 내가 왜 이런 식으로 말을 항상 하는 지, 문제 앞에서 왜 이런 식으로 처세를 하는지 보여야 한다.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하는 분들이 공명 정대한 발언을 많이 한다. 이 부패한 세상, 정의롭지 못한 사회 그러면서 공정한 얘기를 많이 한다. 근데 뭐가 문제인가? 말한 것에 자기가 다 걸리게 된다. 왜 그런가? 자기가 치유 안된 상태에서 남이 잘못하는 것은 겁나게 잘 보인다. 그러니 고쳐야 돼, 고쳐야 돼 말은 기가차게 잘 하면서 자기가 걸리고 남 살리는 것이 안된다. 살리는 능력은 없다. 보이고 분별할 수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이것이 보이면 어떻게 하라고 했는가? 나의 육신의 본성은 언제나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해라. 그리고 낙심하거나 속거나 빠질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어주신 줄 알고 나를 위해 보좌 배경을 회복해 주시고 성령으로 내 속에 와 계신 줄 알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내 영과 마음과 생각과 잠재의식과 신경과 세포까지 치유할 수 있어 이렇게 고백을 해야 한다. 여러분 안에 통치하시는 그리스도를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문제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제 주님이 역사하실 기회로 여겨라. 나는 불안하고 염려하고 조이고 연약해질 수 있으나 주의 성령께서는 결코 그러시는 법이 없으시며 모든 능력이 있으심을 고백해라.

대부분 성장 배경을 보면 성령을 못누리면서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하며 살아왔다. 눌리면 눌리는 대로, 무서우면 무서운 대로, 졸리고 조이면 조이는 대로 살아왔다. 안 그러면 그걸 자기 자존심으로, 자기 의지로 이겨 보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그러니 불안이 체질이 되거나 더 긴장하거나 경직되거나 인본주의 자존심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자아가 죽으라고 하면 죽기가 어렵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라 하셨는데 이런 내가 깊게 안보면 부인 안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정서적으로나 마음적으로 심한 일을 당하게 되면 쓴 뿌리(상처)가 생겨 그것이 일평생 사탄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 때 분노가 일어났으면 그런 문제를 또 접할 때 또 분노가 일어난다. 거기에 여러분이 심하게 우울감을 겪었다면 그 계절에는 그 우울감이 계속 온다. 자기가 강한 사람들은 별로 상처가 없다고 여긴다. 상처가 없다고 해도 느껴지는 것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사실 상처받은 것들이 있고 거기에서 만들어진 인본주의 체질이 강하다. 자기가 이겨볼려고 애쓴 사람은 얼마나 자기가 경직되고 긴장하고 자기를 강하게 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대게 안바뀌는 사람이다. 아주 속이 너무 센 사람이기 때문에 바뀌기가 어렵다. 그 사람이 약한 것은 다른 사람 사랑하는 것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이겨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아가페 영이 들어오셔서 임재 통치하시는 것을 의지해야 한다. 믿음과 순종으로 들어가서 주의 영이 마음 껏 통치하시는 인생으로 바뀌어야 한다. 성령께서 이런 것들을 보는 눈을 열어주시고 치유하신다. “, 내가 그랬었구나”. 자기를 방어하지 말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극복게 해 주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심령을 터치하시면 아무리 깊은 쓴 뿌리라도 치유하신다. 정서적 불안이나 마음의 상처나 부정적인 생각도 치유하시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드신다. 얼굴에 나타난다. 더 나아가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으로 성도의 권세를 누리게 하신다. 여러분을 증인으로 세우신다.

 

결론

주님은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고 나보다 더 내가 치유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나보다 더 자녀 신분 권세를 누리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대속하셨기 때문이다. 최고 자녀로 회복되어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도록 하길 원하신다. 여러분이 제자가 되어 성령의 권능으로 성경적 전도 운동의 모델로 세우기를 원하신다. 그 분에게 맡겨 보라. 성령님을 주인되게 만들어 보라. 연말 전교인 기도회가 한 주 남았다. 오늘 주님이 구하고 찾고 두르리라고 하셨다. 성령을 주지 않겠는가 하셨다. 성령충만을 주지 않겠느냐로 받기 바란다. 기도 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풍성히 체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