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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1월 28일 주일예배-"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전도 운동“( 행 5:17 ~ 42 )-사도행전 시리즈 5-2

by 별종외계오동 2024. 1. 28.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전도 운동(5:17~42)

 

얼마 전에 톱스타 한 분이 마약 조사받다 자살했다. 가족에게도 미안하고,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그런 문제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표면적 이유보다 이면적인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우리 표현대로 한다면 다른 망대가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사탄이 창 3, 6, 11장의 망대를 딱 세워 놓고 그게 무너지니 못 견디게 만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자살 아무나 하나? 아무나 못 한다. 2:14절에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가 있다. 그놈이 그런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평생 속이고 도적질하다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29살에 도박과 도벽에 빠져 반복적으로 무너져 감옥에 간 사람도 있다. 바꾸려고 해도 안 되고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데 안 된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게 계기가 되어서 제대로 된 복음을 받았다. 무너졌던 것이 축복이 되었다. 자신의 문제의 근본 원인이 뭔지를 알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자기 속에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이 사람에게 그 후에도 유혹은 계속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라는 망대가 서게 되니깐 무너져도 자기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탄이 하는 일과 사탄이 이제까지 자기를 어떻게 넘어뜨렸는지 보게 되었다. 그러니 이 사람은 그리스도를 더욱 붙잡게 되었다. 그래서 치유되고 역전이 되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가 뭔가? 주님이 이미 갈보리산 언약을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이었다. 갈보리산 언약을 근거로 행 1:8의 언약을 주님이 이루신다. 여러분이 이번에 사도행전 메세지를 들으면서 갈보리산, 감람산, 마가 다락방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는 축복을 누리기 바란다.

 

1. 사도들의 두 번째 투옥과 석방

1) 사도행전을 보면 백 프로 성령께서 사도들을 장중에 붙잡고 진두지휘하시는 전도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 본문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12절에 보면 성령께서 표적과 기사가 동반된 전도 운동을 하게 하셨다. 병든 자가 낫고 귀신이 나가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래서 믿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했다. 유대 교권자들이 이걸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그들을 또다시 체포해서 가두었다. 다음날 공회를 소집하고 심문하여 이 일을 처리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옥에 있던 사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지키고 있는 사람은 그대로 있는데, 사람만 없어진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지난밤에 주의 사자가 꺼내준 것이었다. 18~20절을 봐라. 주의 사자가 꺼내주면서 멀리 도망가라고 한 게 아니다. 오히려 성전에 가서 담대히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 하였다. 사도들은 성령 충만하여 성전에 가서 가르쳤다.

교권자들은 없어진 이유를 모르고 있었는데 누군가 그들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래서 또 잡아 오게 해서 취조했다(27~32).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답변하는 사도들을 보고 극노하여 없애고자 하였다. 이때 가말리엘이라는 율법사가 조언하였다. 그래서 풀려났다는 내용이다. 교권자들은 사도들을 채찍질하고 위협하며 놓아 주었다. 그때 사도들의 반응이 나온다. 40~42절을 보자.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를 떠났다. 최고 성령 충만한 것이었다. 그들은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이것이 다락방 전도 운동의 모델이다.

2)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이 뭔가?.

능력의 성령이 임하면 우리가 주의 일을 대행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속에도 성령께서 계시므로 한 주간의 삶이, 믿음이 자라나는가를 점검해라. 믿음이 자라나면서 일을 감당하면 승리자가 되고 증인이 된다. 우리에게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면 반드시 시기하는 사랑들도 생긴다. 생명 없는 종교인, 교권자들이 그렇다. 이때 진짜 대적하는 자와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인데 잘 몰라서 그러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것을 판단해서 지혜롭게 해야 한다. 우리는 가능한 적을 만들지 말고 모든 사람을 살려야 한다. 배타적 오직이 되지 말고 살리는 오직이 되어야 한다.

 

2.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적 전도 운동을 해야 하겠는가?

1) 우리는 계속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영의 생각이 강하고 충만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핍박을 감당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평상시 거의 육신의 생각을 하고 산다. 하나님의 관심과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육신의 관심과 생각에 빠진다. 현상적인 것과 오감에 의한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기도로 영의 생각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근거는 갈보리산, 감람산, 마가 다락방 언약이다. 이 언약은 주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갈보리산 언약을 이미 이루어 놓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보좌에 오르신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지금 적용 체험시키시는 일을 하고 계시다. 영의 생각으로 못 돌리면 계속 창 3,6,11장의 내 생각으로 살게 된다. 저는 이걸 너무 많이 느낀다.

얼마 전에 제가 감기가 들린 적이 있다. 한 날 밤에 되게 아프려고 하였다.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니깐 본성적으로 연약해지고 무기력해지고 기도할 여력이 없어진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본성이 그렇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그렇지 않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내 느낌은 그렇지만 주님은 이미 갈보리산 언약을 다 이루어 놓지 않았는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사실 우리의 병을 이미 담당하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제게 어떤 믿음이 오는가 하면, 지금 갈보리산 언약을 믿음으로 취하고, 느낌 생각으로 반응하지 않고 언약의 사실을 붙잡고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시행해 주겠다는 주님의 말씀이 그 밤에 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십자가에서 이미 나의 병을 낫게 하신 것을 믿사오니 주님이 지금 적용 체험 응답 확인시켜 주옵소서 했다. 감사하게도 그날 밤에 감기가 꺾이고 나아버렸다. 제게는 좋은 체험이 되었다. 육신의 생각에 속지 말기 바란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과 오감으로 오는 정보에 의해서 추리하는 합리적 이성의 생각을 이제까지 주로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영적 사실을 믿게 하시고 그게 진리라는 것이다.

2) 갈보리산 언약을 다 이루어 놓으시고 보좌에 오르신 주님이 갈보리산 언약을 현재 적용 응답 체험 확인시켜 주신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기 바란다.

영적 사실을 실제 사실로 붙잡는 것이다. 갈보리산 언약을 이루셨기 때문에 1:8의 언약도 응답하신다. 체험을 자꾸해서 믿음이 자라나야 한다. 합리적 이성으로만 생각하면 회사에서 여러 가지 일로 눌린다. 눌리면 자기 머리로 고민하고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런 방식으로 들어가는 것이 여러분의 뇌에 시스템으로 장착이 되어있다. 인본주의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분별, 극복되면 여러분은 놀랍게 바뀐다.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 우리는 과거에 나에게 잡혀 내 세계 속에 살았고 남에 대한 이해 없이 살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남에 대해 그 사람의 근원적 배경, 가문적 배경, 부모 배경, 성장배경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남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훨씬 이해하게 된다.

 

3. 그런 사람이 1,3,8 언약 가지고 자기 전도 규례를 세우는 거다.

1) 1,3,8 언약은 주님이 이루실 언약이다.

내가 고민하는 전도가 아닌 믿음의 전도를 하는 것이다. 믿음의 전도, 믿음의 사역, 믿음의 일, 믿음의 모든 삶을 사는 것이 맞는 것이다. 전도의 모든 능력을 가지신 주님을 기뻐하고 기뻐하며 믿고 의탁하는 것이다. 주님이 환경과 상황과 만남을 연출하시고 만날 때 내 속에도 역사해 주시고 상대에게도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6:4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하셨다. 믿는 것이 사람의 책임이지만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실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가 있다. 이들 과의 만남을 주님이 주관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전도에 도구 되는 것이다. 전도의 동기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으나 망그러져 있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 육신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면 영의 눈도 뜨게 된다. 성령께서 창 3장 보는 눈(3장의 인생을 이해하는 눈), 복음의 눈(그 사람을 버리지 않고 살리시는 주님의 눈)으로 보게 하신다. 우리를 전도자의 그릇으로 만들어 놓고 주님의 전도에 쓰임 받게 만드신다. 주님은 다메섹에 있었던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갈급한 바울을 준비해서 붙이셨다. 그때 주님은 환경과 상황과 만남을 연출하신다. 그 바울이 세계 복음화할지 아무도 몰랐다. 위에서 보시고 이렇게 만남을 경영하시는 분이 누구신가? 그리스도시다. 저는 믿음의 전도를 계속 실행하고 있다. (지난주 한동대 만난 학생 얘기, 9개월째 다락방 하는 학생 얘기)

류 목사님이 전도 안에 모든 것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은 전도 안에서 만남, 가정, , 미래가 다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전도는 복음 누리는 것이며, 하나님 소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정과 내 일과 업이 전도랑 맞아야 한다. 전도랑 안 맞으면 세상 흐름 따라가게 된다. 여러분의 삶 자체가 전도 속에 있어야 한다. 그걸 위해 일하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여정이 되고 거기서 주님의 이정표가 나오고 따라가게 된다.

2) 세 가지 뜰

지금 류 목사님이 세 가지 뜰을 계속 강조하고 계시다. 이방인의 뜰, 아이들의 뜰, 기도의 뜰(치유의 뜰)을 말한다. 이방인의 뜰(다민족의 뜰)이란 현장에서 불신자 전도가 계속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도의 뜰(치유의 뜰)이란 병든 자가 와서 치유 받아야 하지만 치유의 목적은 그가 전도자로 세워지는 것이다. 치유가 목적이 아니라 치유가 중요한 계기가 되어 미션을 받고 전도자로 세워지는 것이 목적이다. 여러분이 먼저 전도자의 삶을 살므로 이런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다. 우리가 전도자의 삶을 살므로 후대들이 교회 안의 모델을 보고 서밋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들의 뜰이다. 전도자의 삶을 살면 별로 죄지을 일이 없다. 전도하려면 사탄의 통로가 되면 안 된다. 그러니 죄를 안 짓게 된다. 실제 후대들이 모델을 보고 도전받고 훈련되어지는 시스템이 먼저 세워져야 하고 그럴 때 하나님은 시설의 축복을 주신다.

 

결론

올해 여러분은 1,3,8 언약 가지고 자기 전도 규례를 세우는 거다. 여러분이 전도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믿음이 있으면 기도하고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기다리면서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다. 후퇴하지 않는다. 정복하는 신자와 교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