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전도 (행 8:1~8)
지난주 주중에 이발소에 갔는데 이발소의 사장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 자기는 그런 것을 잘 안 믿는데 첫 손님이 외상을 하면 이상하게 그날은 장사가 잘 안된다는 것이다. 불신자 하는 말로 일진이 안 좋다는 것이다. 사장님 눈치를 보니깐 자기는 그런 것 안 믿는다고 해놓고 은근히 거기에 잡히는 눈치더라. 제가 들으면서 불신자는 저런 생각에 얼마든지 잡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영적 지식이 없고 영적 사실을 모르지 않는가? 그러니 그런 생각이 들면 잡히는 것이다. 사탄, 귀신이 생각을 얼마든지 넣어줄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신자는 그런 생각이 들어와도 영적 진리에 근거하고 분별하고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왜냐, 우리 안에 진리의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모든 진리로 여러분을 인도하시며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으시다. 불안과 두려움이 와도 괜찮다. 꺾게 하시고 대신 평안을 주신다. 영과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
오늘 제목이 기도와 전도다. 전도를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 속에서 전도해야 한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교회가 핍박받는 상황이 나오고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가 나온다. 예루살렘의 교권자들은 이전에도 핍박을 가하려 했으나 군중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스데반을 죽인 여세를 몰아 기독교인들을 잔멸하려 하였다. 그 주동에 선 사람이 사울(바울의 본명)이다. 사도들은 잡혀 죽을 수 있었지만,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외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이 흩어진 제자들이 한편으로는 두려웠지만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였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계속 전하였고 제자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거기서 큰 역사가 일어났다. 그도 스데반처럼 전도자로 쓰였다. 핍박과 순교를 감당하는 믿음이 있었고 능력의 도구로 쓰이는 믿음도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두 가지 믿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두 가지가 다 성령 충만함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에 대해 결단하기 바란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는가?
1. 먼저 성경은 왜 항상 기도하라고 가르치는가?
1) 영적 상태를 바꾸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해야 하지만, 일단은 영적 상태를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한다. 영적 상태란 성령께서 통치하시는 상태를 말한다. 영적 상태가 안 좋으면 눌리고 짜증 내거나 화내기가 쉽다. 여러분이 눌리고 기도 안 되면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다. 성령의 사람들은 기도 안 되는 상태에서 살 수가 없다. 3,6,11장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과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니 기도는 필수고 기도의 노하우가 없는 상태에서는 전도할 수가 없다. 기도가 된다는 것은 성령께서 영의 생각과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눌림과 답답함이 사라지고 영적 상태가 바뀌게 된다. 기쁨과 희열이 생긴다. 육신의 생각이 영의 생각으로 바뀐다. 그래서 기도가 되고 안 되고는 큰 차이가 난다. 이걸 경험하면 항상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문제나 어려움이 와도 내 생각에 안 잡히고 영의 생각을 할 수 있으니 승리한다. 문제와 어려움을 하나님이 선용하며 해결하신다는 믿음을 갖을 수 있다. 문제와 어려움이 갱신의 기회고 믿음이 자라날 기회고 응답의 기회가 된다. 이게 여러분이 하나님 자녀라서 그렇다. 영적 상태를 못 바꾸면 이렇게 생각하기가 어렵다. 염려에 빠지기 때문에 인본주의로 해결하려 하고 긴장하고 애쓰게 된다. 기도 없이 중요한 결정도 한다. 사탄이 이렇게 이끌어 간다.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이쪽으로 이끌어 가는 놈이 결국 사탄이다. 인간관계에서 원망하고 미워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적 상태를 바꾸기 위해 항상 기도해야 한다.
2) 기도 시 잘 겪는 체험
우리는 종종 이런 체험도 한다. 기도할 때는 영의 생각을 하는데 기도 마치면 근방 육신의 생각으로 돌아간다. 기도는 힘들게 해놓고 육신의 생각으로 돌아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기도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긴다. 제가 경험하기로는 제일 좋은 것은 하루 세 번 기도하는 것이다. 하루 세 번 기도하면 여러분은 영적 리듬이 생긴다. 이때부터 기도로 삶을 운영할 수 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염려를 안 하신다. 그리스도는 모든 능력이 있으시다. 살릴 수 있는 분이시다. 그분이 내 영과 마음과 생각을 통치해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별로 짜증 낼 일이 없다. 교회 안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원만해진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력과 통찰력을 갖게 된다. 출근할 때 자신 기도하고 직장 내에 있는 사람들까지 기도하고 가면 태도가 달라진다. 문제 사건이 생기면 전도의 기회가 되는지 살피고 캐치가 된다. 답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공정한 거래를 해야 할 때 공정한 거래를 한다. 영적인 힘이 있으면 불의를 행치 않는다. 하나님의 배경을 믿게 되고 조그마한 이권 때문에 불의를 행치 않는다. 이것이 전부 영적 상태와 관계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므로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맛보면, 결국 주객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염려의 동기, 인본주의 자존심의 동기까지 이기게 된다. 근본 뿌리 본질까지 뒤집는다. 예수님 믿는 것이 이런 것이다. 영적인 힘이 없으니깐 맨날 빠지는 습관에 또 빠진다. 양심이 정죄하고 마음에 불안함이 오는 습관적인 죄가 있다. 영적인 힘이 없으면 맨날 작심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생각이 근방 약해서 무너진다. 이것이 전부 영적 상태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세 번 정시 기도를 권장한다. 그런 사람이 갈 2:20이 되고 살전 5:16~18이 된다.
예수님은 어떠했을까? 아버지와 하나셨고 24시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셨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새벽 기도도 하셨고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 이는 더 깊은 기도를 하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모범이 된다. 신앙생활은 삼위 하나님과 연합의 삶을 사는 것이고 여기서 모든 승리가 나오고 내가 누리고 기쁘니깐 이 비밀을 말해 주는 전도를 하게 된다. 내가 성령의 통치를 받아 기쁨도, 믿음도 회복되고 체질도 치유되면 자신이 이런 삶을 살지 못했을 때 곧 불신자 상태가 통찰된다. 영이 죽어 있었을 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깨달아진다. 살아난 만큼 우리가 하나님 떠났을 때의 상태 곧 마귀의 종노릇 하던 불신자 상태가 어떤 상태였는지가 제대로 통찰된다. 그러니 불신자 상태에서 빠져나와서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누리게 되면 복음 전할 진정한 동기가 생긴다. 주님이 이 땅에 전도하러 오셨고 구원하러 오셨는데 우리가 그 대행자가 된다.
3) 여러분, 기도는 하고 싶은데 못하고 안되는 것은 왜 그럴까?
사탄이 3,6,11장의 체질에 빠뜨려서 누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살았고 육신을 좇아 산 삶의 배후에는 분명히 사탄이 역사한 것이다. 이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사탄은 계속 방해한다. 여기에 하나님 자녀는 결단이 필요하다. “나는 기도가 될 때까지 기도 자리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 기도를 갈망하는 상태를 심령이 가난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여러분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다. 다만 기도할 때 진실하며 심령이 가난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언약을 잡고 기도해야 한다. 여러분 안에 이미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셨고 지금도 사탄을 이기시는 분이 와 계시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끝까지 잡고 믿음의 고백을 하는 거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시고 여러분 속에 성령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만 바르게, 끝까지 고백하면 기도는 분명히 된다. 제가 말하는 뚫리는 기도가 되고 기도가 발전된다. 하루 세 번 기도의 룰을 정해야 한다. 후대 앞에 부모가 먼저 모델이 되라.
2. 하루 세 번 정시 기도 다음 단계
1) 저의 체험의 예
주님은 제게 평상시에도 계속 성령님을 의지하여 모든 것을 하라고 하신다. 하루 세 번 기도하면 영적 리듬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 문제 올 때도 문제를 이기게 된다. 육신의 생각에 잡히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의 생각을 할 수 있다. 이게 갱신의 기회인지, 믿음 성장의 기회인지를 알게 된다. 죄에 빠지는 경우라면 갱신의 기회다. 죄 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 온 문제라면 믿음을 더하기 위한 기회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기회다. 문제가 선용되며 응답받는 기회가 된다. 그런데 주님은 제게 문제있을 때만 아니라, 쉴 때도, 티비 볼 때도, 밥 먹을 때도, 여행할 때도 성령님을 항상 의지하라고 하신다. 저는 기도할 때는 성령님을 의지하는데 기도 끝나면 편안하니깐 육신의 본성대로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냥 육신의 느낌과 생각 속에 밥 먹고, 뉴스 보고, 재미있는 것 눈에 들어오면 보려고 한다. 아내와 말할 때도 육신의 본성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럴 때 저의 영적 상태는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주님은 이렇게 하지 말고 24시 성령님을 의지하라고 하신다. 내 안에 성령님을 항시 의지하여 모든 것을 하라고 하신다. 이게 가능한가? 예수님은 가능하셨고 사도 바울도 가능했다. 엡 6:18절에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되어있다. 이것이 포도나무 가지의 삶을 실제로 사는 것이다. 항시 성령께서 영의 생각으로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기 바란다. 그래서 하는 일에 승리하며 새 계명을 지키며 전도 명령을 준행하는 영적 상태가 될 수 있기 바란다.
2)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지 않겠느냐” 하셨다. 우리는 평상시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령의 능력의 세례를 구해야 한다. 전도는 사탄의 망대를 무너뜨리고 사람을 건져내는 것이기 때문에 행 1:8을 약속해 주신 것이다.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이 자기 능력으로 싸워주신 싸움이라면 영적 가나안 정복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싸워주시는 싸움이다. 능력의 성령께서 나를 붙잡고 나를 통해 정복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와 일과 전도가 연결된다. 하는 일에 성공하면서 개인 전도와 다락방 전도 운동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오늘 본문의 흩어진 초대교회 제자들은 행 2장의 체험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도망가면서도 가는 곳곳마다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 결과로 안디옥교회가 세워졌다.
3. 사마리아 지역 전도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상종치 않는 소외된 지역이다. 사마리아인은 포로기에 그 땅에 이민 온 이방인과 결혼함으로 혼혈족이 되었다. 제자 빌립 집사가 창 3장의 눈과 복음의 눈으로 그 지역을 본 것이다. 불신자 상태가 보이는 것이다. 불신자가 잘 살아도 멸망의 상태로 보여야 한다. 이것이 보일 때 성령께서 전도의 동기가 생기게 하신다. 6~8절에 보면 성령님이 빌립을 붙잡고 능력이 동반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권능의 성령께서 귀신도 나가고 앉은뱅이도 치유되게 하신 것이다. 성령께서 빌립을 붙잡고 이 역사를 이루셨다. 우리가 기도로 주인을 바꾸어서 계속 살게 되면 드디어 능력의 성령께서 우릴 붙잡고 하나님 소원을 이루는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것의 성취이다. (요 14:12, 막 16:17~18) 12절에 보면 빌립이 전한 메세지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것이었다.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메세지다.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 전도가 한 창 되고 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시찰차 사마리아 지역에 내려온다. 그들이 내려와서 보니 영접은 했는데 성령의 은사는 안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진 않았다. 그래서 사도들이 안수하니깐 성령 받는 일이 일어났다. (행 8:14~17)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 안수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요 14:12의 성취다.
결론
내가 체질, 머리 체질 되지 말고 기도 체질, 믿음의 체질이 돼라. 이것이 일의 성공과 전도와 연결된다. 세 번 정시 기도로 영적 삶의 리듬을 타는 것이다. 평상시 무시 기도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능력의 성령께서 우릴 붙잡고 역사하기 원하신다. 여러분이 새 계명을 지키고 전도 명령을 준행할 수 있는 영적 상태가 된다. 3월 한 달은 예비 캠프 기간이고 4월부터 시작되는 15차 집중훈련 기간은 본 캠프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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