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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6월 16일 주일예배 - 2차 선교 여행 출발(행 15:36~41)

by 별종외계오동 2024. 6. 16.

 

 

 

2차 선교 여행 출발(15:36~16:5)

 

한 달 전에 류복남 집사님 딸 하나로부터 문자가 왔다. “목사님 저 새벽에 또, 덕산 파출소 호출 받았네요. 어디에 말할 때도 없고 답답하고.. 정말 아버지가 여호와께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부탁드려요”. 여러분 기도해 주기 바랍니다. 아버지가 여호와께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라고 했는데 누구겠습니까? 제가 이 문자 받고 아직도 류복남 집사님은 술 먹고 헤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기를, 하나한테 갔던 가문의 귀신들이 류복남 집사님에게 계속 역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러분은 현장을 영적으로 봐야 한다.

한동대에서 저랑 동행 캠프하는 학생이 있는데 학기 마지막 이라서 무속 현장을 보여 주러 몇 주 전에 무당 집을 찾아 갔었다. 50 대 아줌마인데 전형적으로 얼굴에 신기가 드러나 보이더라. 자기는 어릴 때부터 신병이 왔고 굿을 안 했는데도 말 문이 먼저 터졌다고 하더라. 이 말 문이라는 것이 신이 몸에 실려서 자동 구술이 되는 것을 말한다. 자기 딸에게도 신기가 왔는데 자기 딸이 강해서 신을 안 받고 이번에 대학 졸업하고 취업했다고 하더라. 좋아할 게 아니다. 귀신이 더 세게 오면 못 감당한다. 사실 사탄에게 잡힌 무당이 최고 불쌍한 사람이다. 현장을 영적으로 볼 수 있으면 전도자가 된다.

 

1. 여러분은 영적으로 보는 눈이 계속 열려야 한다.

1) 사탄이 사람을 실제 누른다.

10:38에 보면 예수님이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사탄이 어릴 때부터 누를 수 있다. 답답하고 압박감 당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생각이 부정적이고 말도 부정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눌리는 사람의 특징은 답답하니깐 어떤 틀에 구속당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놀기를 좋아하고 자유롭기를 좋아한다. 눌리면 염려가 많고 한 가지 생각이 들어오면 그걸 잘 틀지를 못한다. 생각의 유연성이 없다. 남 생각지 못하고 더 자기 중심적이 되게 한다. 긍정적인 생각, 남 살리는 생각, 역발상이 잘 안된다. 이것이 눌린 상태이다. 구원받았는데도 사탄은 하나님 자녀를 계속 눌려있도록 하길 원한다. 가능한 기도를 방해하면서 그리스도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면서 그리스도를 힘입지 못하게 한다. 영의 생각이 잘 안 난다. 걱정이 많아진다. 자기 머리로 짜내서 계속 살게 만든다. 이건 열심히 안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상태 배후에 사탄이 역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이런 걸 영적으로 보는 눈이 자꾸 열려야 한다.

영적 문제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신다, 19:30에 주님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보통 말씀이 아니다. 우리 죄를 다 사했다는 말이 되고, 사탄의 지배 권세를 깨뜨렸다는 말씀이 되고, 죄 사탄 세상을 이길 권세를 얻도록 만들었다는 말이 된다. 정말 이것을 알면 우리는 사탄아 고맙다 할 수 있다. 니가 그럴수록 나는 내 힘으로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의지한다. 너는 결코 그리스도를 이길 수 없다. 너는 항복하고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시간 성령으로 내 영과 혼과 육신에까지 통치 인도 역사해 주옵소서. 사탄의 모든 세력을 꺾어 주옵소서. 이 싸움은 내 싸움이 아닙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거다. 이 기도를 뚫릴 때까지 해야 한다.

2) 사탄은 그리스도께 오직 이 될 때 패배하고 만다.

지난주에 율법주의와 복음을 비교하면서 왜 복음이 아니면 안 되는지 설명했다. 율법과 율법주의로는 영적 문제를 이해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오직 복음 체질이 된 사람이 기도가 되면 영적 문제를 이긴다. 기도가 되면 모든 삶을 다 기도로 처리할 수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일이 커도 주님이 이 일에 주인이시니 모든 것을 처리해 달라고 꼭 기도해야 한다. 기도 생활을 발전시켜야 한다. 일하다가도 또 눌려서 걱정하며 자기 안간힘으로 처리하고자 하는데, 그쪽으로 안 빠지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다. 안 빠지는 영적 역량이 있어야 한다. 성령님이 모든 지혜와 집중력과 은사와 능력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영과 마음과 기능을 잡고 역사하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이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고 감사가 나온다. 이런 사람은 전도의 여력이 생긴다. 일에 눌려버리면 전도의 여력이 없어진다.

우리는 영적 가나안 정복할 사람들이다. 우리는 영적 가나안의 한복판인 불신 세상 속에 살고 있다. 필연적으로 영적 싸움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눌리지 않고 극복하면 오히려 정복할 수 있게 된다. 이 싸움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싸움이 아니라고 했다.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당하는 싸움이다. 영적 진공 상태는 없다. 영적 정복 안 하고 편하게 살 지대는 없다. 육신적으로 편안하다고 그냥 살면 영적으로 동화되고 정복된다. 꼭 기억하시길 바란다.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이 이런 말씀을 알아 듣지 아닌 사람은 못 알아 듣는다. 성령의 통치받는 걸 모르면 못 알아 듣는다.

세상은 두 계열의 싸움의 현장이다. 불신자 계열과 신자 계열의 싸움이다. 두 계열의 싸움에서 사탄은 첫 번째 불신자 계열의 사람들을 규합해서 온 세상을 어두움과 캄캄함에 빠뜨리고자 한다. 교회는 복음이 약화되고 변질되도록 하길 바란다. 마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이 혼합 종교에 빠지고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살게 된 것처럼 마귀는 교회를 그렇게 되길 원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주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니 결국 정복 당하고 말았다. 지금도 이 원리는 똑같다. 복음을 아는 교회라도 복음에 집중하지 못하면 지게 된다.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것이다. 7,7,7 도표의 내용을 파악하고 이것이 성취되도록 아침, 점심, 3 집중하는 거다. 하루에 세 번 기도가 되는 사람은 영적 흐름을 탄다. 머리로만 알면 진다. 내가 알고 있는 성령님의 임재 통치 인도 역사를 체험해야 한다. 교회가 전도, 제자, 선교 비젼을 가지고 하루 세 번 기도해야 한다. 영적 상태를 바꾸고, 하는 일을 놓고 기도하고, 사람을 놓고도 기도하는 것이다. 영적인 눈이 계속 열리기 바란다.

 

2. 오늘 본문에는 2차 선교 여행이 시작되었다.

예루살렘 총회의 결과로 이방인 성도에게 더 이상 율법의 굴레를 씌우지 말라는 결정이 났다. 바울은 다른 이방인 교회에도 총회의 결과를 알릴 필요성이 있었다. 1차 선교 여행 때 설립된 아시아 교회들의 안위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순회를 목적으로 2차 선교 여행을 계획하였다.

1) 출발부터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39절에 보면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 원인은 1차 여행 중 돌아간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느냐의 여부였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4:10)라고 한다. 그래서 바나바는 데리고 가고자 하였다. 바나바는 보다 인정적인 면이 작용했을 것이고 바울은 사역적인 면에서 마가의 자질을 따졌을 것이다. 언쟁이 격화되어 심히 다투어 갈라서게 된 것이었다. 이걸 굳이 미화할 필요는 없다. 사역자들도 창 3장의 본성이 있음을 늘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생활은 창 3장의 본성의 내가 근면 성실 열심 내는 게 아니다. 3,6,11장의 본성 가운데 얼굴이 이뻐도 그 본성 가운데 이쁜 것이다. 머리가 좋아도 그 본성 가운데 머리가 좋은 것이다. 머리가 좋아도 여전히 사탄의 통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인격인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주인 되셔야 한다. 성령께서 죽은 영을 살려서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회복 충만케 하셔서 창 3,6,11장의 본성을 극복하고 살게 만든다. 이게 이해 잘 안 되고 구분 안 되면 안 된다. 이 구분이 안 되면 창 3,6,11장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 감정,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탄은 함정인 창 3,6,11장의 본성과 거기서 만들어진 체질을 통로로 쓰기 원한다.

우리는 사역자도 창 3,6,11장의 본성이 있음을 늘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사역할 때도 사역자 간에 부닥침이 있을 수 있다. 안 부닥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가? 함께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18:19~20이 답이다. 함께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교회가 다 함께 한 방향으로 인도받을 수 있다.

2) 41절에 보면 결별 후 각각 인도받는다.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1차 여행 루트를 따라 구브로 섬을 향해 갔고(지도) 바울은 실라와 함께 육로로 수리아와 길리기아 쪽으로 갔다. 그럼에도 성령님은 2차 선교 여행 때 중대한 문을 여셨다. 복음이 유럽으로 건너가도록 마게도니아 문을 여셨다. 사람의 조건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위해서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마게도니아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현장에는 영이 죽고 마귀에게 눌린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기다리고 있다. 일단은 듣던지, 아니 듣던지 복음을 다 전파하라는 것이 주의 명령이다.

 

3. 우리 중직자, 교사, 청년들이 어떤 제자가 되어야 하겠는가?

1) 영적 상태를 바꾸는 3 집중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같은 문제를 당해도 감당하는 역량이 달라진다. 성령의 통치를 받을수록 승리하게 된다. 한 주간 동안 여러 일들을 겪게 되는데 같은 일을 겪더라도 주님은 점점 더 승리하길 원하신다. 부부간의 싸움도 영적 싸움으로 봐야 한다. 일하는 것도 영적 싸움으로 봐야 한다. 이게 육신적 싸움이 아니라 사람을 잡고 있는 사탄과의 싸움이다. 3 집중이 안 되고는 여러분이 진다. 사탄은 자기 영역과 사람을 뺏기지 아니하려고 교회를 연약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수십 년이 되었는데 교회가 여전히 영적인 역량이 없다면, 하는 일에 승리 못하고 전도자의 삶을 못 살고 있다면 사탄이 이기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이다. 3 집중 못 하면 문제와 사건들이 자기 욕구와 창 3,6,11장 본성에 걸리게 된다. 이게 사탄이 교회를 연약하게 만들고 영적 가나안 정복을 못 하게 하는 방법이다. 구약에서 가나안 정복은 절대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했다. 하나님이 싸워주겠다고 많이 약속해 주셨다.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은 가나안 민족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10번 이상 하셨다. 오히려 내가 그들을 두렵게 하겠다고 하셨다. 육신의 눈과 합리적 이성으로 보면 가나안 민족이 두렵게 보인다. 3 집중이 되어야 영적인 눈으로 현장을 보고 승리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게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을 믿음과 순종하는 것이었다.

2) 믿음의 전도를 할 수 있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영적 가나안 정복의 주인은 그리스도시고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1:8의 언약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이게 영적 사역이기 때문에 사탄이 형성시켜 놓고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육신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공대생들 엘리트들이지만 역시 영이 죽은 이성과 창 3,6,11장 본성 가운데 형성된 체질대로 사는 것이다. 나 중심의 이기심을 갖고 성공하기 위해 오직 공부에 집중하며 살아온 것이다. 합격해서 포스텍에 들어오면 어떤 생각을 갖겠는가? 일단 자부심과 자기가 이루었다는 교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또 학교에서도 계속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과 스트레스는 계속된다. 사탄은 창 3,6,11장의 본성과 체질이 심화하게 만든다. 그래서 종 노릇하게 만든다. 취업하면 또 무한 경쟁이다. 결혼하면 부부생활 갈등한다. 저들에게 하나 없는 것이 예수 생명이다. 영적 생명이 없기 때문에 사탄의 운명 속에 계속 지배받다가 지옥 간다. 불신자가 형성된 것과 지옥갈 수밖에 없는 것을 볼 때 계속 전도 동기가 생긴다. 그리스도가 이 싸움에 주인이시고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행 1:8을 이루시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것을 절대 믿는 망대가 되는 것이다.

 

결론

여러분은 1:8을 이루시는 그리스도를 최고 기뻐하고 기뻐하면 된다. 영이 눌려버리면 그리스도를 기뻐하지 못하고 또 창 3,6,11장의 본성으로 반응한다. 일이 잘 안될 때, 문제가 생겼을 때, 사탄이 공격할 때도 그리스도를 최고 기뻐하고 기뻐하기 바란다. 이때 우리 본성은 답답해지고 기뻐할 수 없게 되지만 여러분의 영은 그리스도를 최고 기뻐하는 것이 승리하는 방법이다. 육신의 본성으로 기뻐하라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영으로 기뻐하라는 것이다.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은 안 눌리신다. 모든 능력이 있으시다. 이런 영적 상태가 되면 여러분이 믿음의 전도를 할 수 있다. 믿음의 사역, 믿음의 일, 믿음의 경제, 믿음의 인간관계, 믿음의 부부생활 할 수 있다. 왜 믿음이란 말을 쓰는가? 내가 주인이 되어 내 동기로 내 방법으로 이루려고 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어 그리스도의 동기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아버지 소원을 이루는 일에 내가 통로로 쓰이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영적 가나안 정복전에서 정복당하길 원하지 않으신다. 땅끝까지 성령의 일꾼으로 정복하길 원하신다. 계속 믿고 순종하면 행 1:8이 성취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전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전 삶의 방법이다. 이게 여러분이 실제 7망대가 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