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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11월 24일 주일예배 - 주님은 나의 연출자(행24:1~27)

by 별종외계오동 2024. 11. 24.

 

 

 

주님은 나의 연출자(24:1~27)

 

신앙생활은 주님의 통치가 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이 진정한 주인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3,6,11장의 본성과 그것을 받아 인본주의 이성으로 살아왔다는 말씀을 드렸다. 우리의 동기를 갖고 보이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만 믿고 계산하며 처리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것이 믿음의 삶이 아니다. 지난주에 영이 죽어 설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말씀을 드렸다.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영이 죽음으로 창 3장의 렌즈를 끼고 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원래부터 갖고 태어나기에 이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 나 중심으로 반응하는데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 못 한다. 불안 염려로 문제를 봐도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임마누엘의 삶이 되고 믿음의 렌즈를 끼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불안치 않고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게 된다. 염려되니 더 열심히 애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3장의 동기에 잡혀서 애쓰는 것인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3장의 렌즈를 끼다 보니깐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하면서 짜내려는 체질이 되었다. 항상 방어적이고 상대나 문제 당할 때 부정적인 사고를 한다. 사고를 당하거나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오면 긍정적인 반응을 할 수가 없다. 믿음의 반응을 못 한다. “이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이런 생각을 못 한다. 항상 염려가 많으니 큰일났다. 이거 해결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한다. 그러다 사람에게 상한 감정이나 생각에 잡혀 상처나 트라우마까지 생긴다. 임마누엘을 누리고 성령의 통치를 받으면 이렇게 되지 않는다.

이제 여러분이 이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여러분이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도록 전환시키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여전히 3,6,11장의 본성이 있지만 눈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성령님의 인도 통치 역사가 계속 발전되면 주객과 체질을 전환시킬 수 있다. 2:20이 된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하는 찬송이 있다. 1절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되어 있다. 2절에는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각종 어려움이 있는데도 족한 은혜를 주시고,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깐 그렇다. 오늘 본문처럼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는데도 괜찮은 것아다. 주님은 그 감옥 상황까지 다 통치 주관 연출하고 계신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주님은 나의 연출자시다.

 

1. 가이사랴 감옥에서 2

오늘 본문을 보면 벨릭스 총독에게 재판받는 내용이 나온다. 바울에게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2년 동안 바울을 감옥에 그대로 둔다. 계속 구류해 놓았는데 이는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에서 그랬다. 이 감옥에서 2년이란 짧은 시간이 아니다. 바울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이무 일도 진전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도 일이 빨리 성과가 나지 않고 발전이 없는 채 시간이 흐른다면 답답함과 눌림과 조바심이 많이 나게 된다. “주님 언젠가요?”하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릴 수 있다. 왜 인가? 계속 성령께서 영의 생각과 영의 말씀으로 마음과 생각을 잡아주시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믿음을 공급해 주신다. 성과 나지 않아도,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언악의 여정이라는 것을 믿는다. 바울은 주객과 체질이 바뀌다 보니깐 자기 인생을 살지 않았다. 자기 동기를 갖고 주님을 끌어당기는 삶을 살지 않았다. 주님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오히려 주님의 이루실 계획과 목적에 수단으로 드릴 수 있었다. 바울은 갈 2:20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2. 바울이 가진 믿음이 뭔가?

1) 절대 주권과 함께 주님이 연출하신다는 믿음을 가졌다.

아버지 소원을 위하여서 구원하셨기에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아니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1:6,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우리가 확신하노라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삶도 연출하신다. 우리에게 소원을 갖고 있기에 목적을 위해 주관 통치 연출하신다. 그러니 우리가 육신의 생각에만 안 빠지면 된다. 계속 영의 생각을 하기 위해서 기도 속에 있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을 완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망하면 망하겠습니다 하는 고백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영의 생각으로 인도 받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고 있지 않으면 전부 자기 생각에 빠지게 된다. 자녀에게 문제 생겼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묻고 인도받는 기도를 할 수 있다. 기도 못 한다면 계속 염려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제를 문제로만 보게 된다. 성령께서는 영의 생각과 영의 말씀으로 인도하셔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눈을 잡아 주신다. , 하나님은 이런 훈련시키실까요? 우리가 영적으로 죽으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길 원하신다. 여러분의 눈과 마음과 생각이 주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으로 바뀌어 지길 바라신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종교인의 특징은 현실 응답만 받기를 원한다. 현실 응답만 축복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인생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기 형상으로 바꾸시면서 주의 일을 하게 하신다. 우리의 환경, 문제, 상황은 다 선용 되게 만드신다. 이걸 믿기 바란다. 그러니 우리는 환경 따라 가는게 아니라 말씀 따라가야 한다.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영의 말씀과 영의 교훈과 깨달음으로 인도받게 하신다.

사도 바울은 언제부터 이런 삶을 살았겠는가? 다메섹에서부터이다. 그가 빛보다 더 밝은 광채로 눈이 멀게 되었다. 즉각 어둠 속에 빠졌다. 그의 과거는 사실 어둠 속에 있던 인생이었다. 사람들에게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다. 그때 주의 제자 아나니아가 찾아왔다. 주님이 그를 보내신 것이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주님이 지시하신 말씀을 전하고 안수할 때 눈을 뜨고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9:17~19). 그때부터 그는 사명에 잡혔다.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사시는 인생으로 바뀐 것이다. 그는 막바로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2) 여러분은 주객과 체질이 바뀌었는가?

종교식 기도하면 안 바뀐다. 내가 주인이 아님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로 삶을 처리하는 기도가 발전되면 주객과 체질이 바뀌게 된다. 물론 3,6,11장의 본성은 죽을 때까지 남아있다. 그러나 자기 안에 주님이 더욱 더 사시는 것을 체험한다. 주객이 바꾸는 것이 축복 중의 축복이다. 내가 어떻게 할까 하는 체질이 그만큼 치유된다. 성령님은 어떤 문제 앞에서도 걱정하지 않으신다. 문제는 주님의 문제가 된다.

조인주 장로님은 경제 문제로 극도로 눌리기까지 온갖 방법을 쓰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러고 있는 자기 문제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영적 문제라는 것을 주님이 알게 해 주셨다. 이렇게 되면 주객과 체질이 180도 바뀌게 된다. 나를 십자가에 죽은 자로 인정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창 3장의 렌즈를 끼고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보인다. 어떻게 말하고 처세했는지가 보인다. 이게 복중의 복이다. 그때부터는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과 말씀으로 자꾸 바꾸게 된다. 그러니 문제 앞에서도 쉽게 기도 처리가 된다. 주님을 믿는 것은 삶의 체제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중심축이 바뀌게 된다. 실제 주객과 체질이 바뀌게 된다.

그러면 속에서부터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그리스도께서 진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영적 문제의 해결자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니깐 그리스도 밖의 사람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옥은 누구도 가서는 안 된다. 영적인 눈과 현장 보는 눈이 열리게 된다. 거기서부터 생기는 전도의 당위성을 갖게 된다. 삶과 일에 승리하고 전도 운동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3. 전도 운동도 주님이 연출하신다.

1) 바울은 2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갇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앞으로 있을 로마 전도를 위해 기도하는 중요한 시간표를 가졌다. 주님은 그를 위해 문제와 상황까지 연출하신다. 2년 후에 하나님의 시간표가 되어 로마로 출발하게 된다. 우리 인생에 대한 계획을 창세 전부터 갖고 계시다. 1:4~5절에 보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되어 있다. 우리 구원이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에는 자기 사람, 내 양 이런 표현이 많이 나온다. 6:37절에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하셨다. 10:27에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하셨다. 8:44 에는 마귀 자식이기 때문에 내 말을 못 알아 듣는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출생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주님은 그로 구원받도록 환경과 상황과 문제까지 연출하신다. 그래서 복음 듣고 믿도록 이끄신다. 그 사람이 믿어낸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전도 현장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주님의 연출을 믿고 들어가야 한다. 전도 현장에 들어가는데 만남을 연출하신다. 그 속에 갈, , 사가 있는 것이다. 만남이 될 때 성령께서 전도자에게도 역사하시고 피 전도자에게도 역사하신다. 전도 받는 자에게 성령께서 하나님께 대한 인식과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인식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은 전도 상황을 연출하시는 것이다. 저는 이런 내용을 믿는 기도를 늘 하며 현장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믿음의 전도를 해야 한다. 다락방 전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저는 내 열심 전도를 했다. 다락방 전도를 만나면서는 제가 현장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제 의지를 사용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주님의 전도를 믿고 전적으로 의탁하는 기도를 했다. 만남을 연출하시는 주님을 믿고 들어가는 전도를 했다. 전도의 주체가 그리스도시고 성령이시다. 우리는 전도할 때 대상자의 이성에 설득하고 호소해서는 안 된다. 이성에 설득되어 믿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성에 설득된다고 믿을 사람 없다. 죽은 영이 살아나야 한다. 우리는 전도 상대에게 이해력 있게 말해 감정이 안 상하도록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게 속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고통의 문제의 원인과 그 결과와 그 해결책을 증거하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을 사람과 안 들을 사람이 있다. 성령께서 그 마음에 연출하는 사람이 듣게 된다. 성령께서 연출하지 않는 사람은 이 복음이 안 들리고 관심도 안 갖게 된다. 이성에 호소해서, 설득해서 믿게 하려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사람들이 안 믿으면 어떻게 할까, 기분 나빠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영적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창세 전에 예정하셨고, 아버지께서 주신 자가 있다고 믿어야 한다. 전도하는데 사람에 대한 생각을 지나치게 하거나,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생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전 2:2~5의 고백을 했다. 사람을 구원시키는 복음의 핵심과 전도의 방법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2) 전도는 주님의 일이요, 주님이 주인이시다.

전도에 있어서도 주객과 체질을 바꿔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주님의 전도인 것을 믿고 진정한 해답을 전하면 된다. 상대방이 안 들으면 이 사람은 오늘 예비 된 자가 아니구나 여기면 된다. 아닌 줄 확인하면 된다. 낙심하거나 눌리지 말아라. 성령께서 예비하신 자를 구원하시는 일에 나를 쓰시는 것이다. 삶에서 자꾸 주객과 체질을 바꾸는 삶을 배워야 한다. 설정이 잘못된 삶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창조주 하나님이 다시 아버지가 되셨고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셨다. 신분 권세를 다 받았는데도 잘못 살아온 체질 때문에 주님이 나를 통해 통치하시는 삶을 방해하게 된다. 내가 계속 주인으로 살고 있으니깐 주의 능력이 안 나타나게 된다. 문제 일어나면 다 자기에게 걸리게 된다. 주님의 마음이 와 닿고 주님의 심정으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내 동기에 다 걸리는 거다. 믿음의 전도를 계속하는 이유는 주님이 마음껏 쓰시는 통로가 되기 위한 것이다. 주객을 바꾸어 백 프로 믿음의 삶을 살고 믿음의 전도를 하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주객을 바꾸어야지 성경적 전도 운동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성령께서 내게 기름 부어 주시면 그때부터는 성령께서 진두지휘하시는 전도 운동이 시작된다.

 

결론

지난주에 누가 전도 제자인가 라는 질문을 했다. 첫째가 언약을 굳게 잡은 자라고 했다. 둘째 보좌 배경을 확실히 믿는 자라 했다. 셋째가 하는 일에 성공하면서 전도와 다락방 운동을 하는 자라고 했다. 항상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과 생각에 속지 말아라.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과 생각을 받아들여라. 전도란 주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을 갖고 주님의 대사로 나가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완전하신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오셨기에 주님이 증명 증거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16차 집중훈련이 마쳤다. 내년 17차 집중훈련까지 내 자신을 어떻게 주님께 드릴까 기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