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여정 속에 있은 바울(행 23:11~35)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다. 우리는 몇 년간 집중훈련 마치면서 포럼하는 시간을 가졌다. 포럼하면서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오늘 제목이 언약의 여정 속에 있은 바울이다. 그는 살해 음모 속에 있었다.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 40여 명이 단합해서 바울을 살해하고자 작정하였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바울에게 담대하라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 하는 말씀을 주셨다. 주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직접 받은 이상 바울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본성으로는 두렵지만 주께서 주신 확신이 이를 극복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추고 주님의 관심과 생각에 맞추었다면 더 이상 내 문제가 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문제라고 했다. 여러분 자녀에게 문제가 왔다 해도 여러분이 절대 하나님의 소원을 위해 살고 있다면 그 자녀 문제는 여러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계속 이끌어 주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바울의 생질(누이의 아들)이 살해 음모를 듣게 되었다. 바울에게 알렸고 결국 천부장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졌기에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백부장에게 명령하여 보병, 기병, 창병 총 동원해서 바울을 가이사랴까지 호송하도록 했다. 당시 가이사랴에는 헤롯궁이 있었다. 그 궁은 총독 관저로 쓰였다. 총독 이름은 벨릭스다. 아무튼 바울은 무사히 가이사랴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다 언약의 여정일 뿐이었다. 바울은 주 안에 있었기에 살전 5:16~18의 말씀을 본인이 체험할 수 있었다. 오늘 여러분은 바울처럼 항상 살전 5:16~18이 되기 바란다. 그러면 여러분 인생은 달라지고 제자로 세워지고 제자 마인드를 실제로 갖게 된다. 앞으로 실제 전도 현장을 갖는 사람 중심으로 전도 제자 모임을 갖고자 한다. 누가 전도 제자이겠는가?
1. 전도 제자는 언약을 굳게 잡은 자이다.
지난주에 성령 충만해야 할 3가지 이유를 말씀드렸다. 그 3가지 이유가 뭐라고 했는가?
1) 두 계열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과의 싸움이다. 사탄은 뱀의 후손을 통해 온 세상을 어두움과 캄캄함에 빠뜨리고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끌고자 역사한다. 앞으로 점점 정치, 종교를 장악할 것이다. 이번에 미국 대선에 트럼프가 당선이 되었다. 복음주의 교회가 적극 트럼프를 지지했다. 미국은 지금 기독교 가치관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는 마지노 선에 온 것이다. 이번에 또다시 진보주의 좌파가 정권을 잡게 되면 미국은 희망이 없어진다는 위기 의식 속에서 교회가 트럼프를 밀었던 것이다. 트럼프가 또 어떻게 잡힐지는 모른다. 앞으로 사탄은 정치와 종교를 점점 더 장악하게 된다. 계시록에 보면 마지막 때 정치계 속에서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종교계 속에서 적그리스도를 옹립하는 교권자들이 나오게 된다. 정치와 종교를 잡으면 경제와 문화는 따라온다. 사탄은 정권자와 교권자들 속에 역사하여 교회를 무너뜨리고 전도 운동을 막고자 한다. 초대교회 때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이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 충만을 주시는 것이다. 이걸 언약으로 잡아라. 우리 현장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미 여러분이 눌린 것이다.
2) 두 종류의 믿음이 다 가능하기 위해서다.
바울에게는 두 가지 믿음이 다 가능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을 각오도 되어있었고, 그 이름으로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믿음도 있었다. 이것이 성령 충만으로 가능한 것이다. 믿음은 문제 속에서 크게 된다.
3) 아직 구원받을 자들이 세상에 많기 때문에 1:8의 언약은 계속 유효하다고 했다.
로마 복음화가 남아있기에 주님은 바울에게 계속 성령 충만을 주시는 것이다. 주님이 사실 로마 복음화 하시는 것이다. 주께서 그 곁에 서서 담대하라. 네가 로마에서도 나의 일을 증언하리라 하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777 망대 여정 이정표를 가게 하실 것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인도를 여러분이 올해 계속 받았다면 감사하겠는가 안하겠는가? 삶의 변화가 있겠는가 없겠는가?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3 가지 성령 충만할 이유를 언약으로 잡기 바란다. 주님은 하나님의 소원인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쉬지 않으신다. 이 언약을 잡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소원을 이루신다.
사람들은 하나님 떠나서 불안 동기, 염려 동기가 있다. 일이 안 되면 어떠하나? 이루지 못하면 어떠하나? 돈을 못 벌면 어떠하나? 우리 자녀에게 무슨 문제가 일어나면 어떠하나? 이런 염려의 출발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하나님 떠나서부터 생긴 것이다. 불안 속에서 위기의식이 오면 큰일 났다는 생각에 자기 힘이 딱 들어간다. 자기가 해결하고자 용을 쓰게 된다. 여러분의 인생이 거의 그런 체질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각인된 체질이다. 여러분이 성령의 임마누엘을 누리면서 기도로 문제를 푸는 체질로 바뀌지 않으면 이 체질이 안 바뀐다. 저는 주님의 일도 과거에 힘이 들어갔다. 주님 때문이 아니라 내 동기 때문에 그랬다. 제가 주님이 언약을 이루신다는 것이 믿어지니깐 제가 바뀌게 되었다. 내 동기에 안 빠지고 내 힘을 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믿어지면 힘을 넣을 필요가 없다. 그 믿음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우리를 주님의 통로로 쓰시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 제자의 첫 번째 가 이 언약을 굳게 잡는 것이다.
2. 전도 제자는 보좌 배경을 확실히 믿는 자이다.
벌써 삼 주차에 걸쳐 말씀드렸다. 주님의 언약이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는 많은 문제와 일들을 당할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이 가장 염려로 잡히는 것이 안전의 동기라고 했다. 안전 이권에 충돌되면 싸움이 막 일어난다. 그다음에 잡히는 것이 명예의 동기라고 했다. 다윗도 일생에 이 두 가지 공격을 다 당했다.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는 늘 안전과 목숨의 동기가 위협당했다. 그 피 말리는 상황 속에서도 도망자 생활할 때가 영적으로 가장 연단되었던 기간이었다. 그때 왕의 소양 교육을 다 받았다. 그는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기도로 체험했기 때문에 승리했다.
그는 성공하고 말년에 인구 조사하는 죄를 범했다. 대상 21:1에 보면 다윗이 사탄의 충동에 넘어간 것으로 되어져 있다. 그가 이 죄를 범하고 나서 참회의 기도를 한다. 그리고 다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신앙이었다. 그는 실로 시 103:19~22을 믿은 사람이었다. 보좌 배경을 믿은 것이다. 여러분도 보좌 배경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을 때 안전의 동기와 명예의 동기를 이기게 된다. 안전의 동기와 명예의 동기에 인간이 잡히는 것은 사탄의 욕심이 들어가고 하나님 떠났을 때부터 생긴 영적 문제이다. 전도 제자는 보좌의 배경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3. 전도 제자는 성령님을 힘입어 하는 일에 성공하면서 전도와 다락방 운동을 하는 자이다.
1) 왜 우리가 업에 대해 승리하며 성공해야 하는지 이미 말씀드렸다.
주님은 우리를 영적 서밋, 기능 서밋, 문화 서밋 되기를 기뻐하신다. 이렇게 됨으로 우리는 삼 백 프로 준비하는 자이다. 성령 충만으로 전문성 백 프로, 현장에 꼭 필요한 것 하는 현장성 백 프로, 미래에 필요한 것을 찾고 준비하는 시스템 백프로 이다. 그러나 이것을 하는 결국 이유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다. 거기에 돈도 쓰고 기능도 쓰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도와 다락방 운동을 하는 것이다. 불신자는 행복과 기쁨의 조건이 외부에 있다. 환경과 사람과 돈을 의지하며 그것이 만족할 때 기쁨이 온다. 신자는 그게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내 안에 주인이시냐에 기쁨이 있다. 그래서 그의 계명과 말씀을 믿고 의탁하고 순종하느냐에 행복이 있는 것이다. 자기 안에 주님과의 교제는 약하면서, 그분의 소원에 맞추어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약하면서, 현실 조건에 만족하고 기쁨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닌 사람이다. 세상적으로 아직 성공을 이루지 못했어도 그리스도를 주인 삼고 그분의 명령에 계속 순종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2) 전도 제자는 사람들이 영적 문제로 인해 형성된 것을 보는 눈이 열린 사람이다. 그래서 거기에 답을 주는 자이다.
영적 문제가 뭔가? 우리가 원래 영적 존재다. 하나님을 가장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창 3장 사건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상실하고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날 때부터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이걸 사람들이 정말 인식 못 한다. 그게 언제 인식되는가 하면 내게 다시 임마누엘이 회복되어질 때다. 그리스도와 그의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풍성히 믿어질 때 내게 설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인식된다. 이것이 그냥 메시지 듣는 것만으로 안 된다. 그래서 메시지 들어도 사탄이 깔아놓은 설정 속에 계속 산다. 사탄이 깔아놓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창 3,6,11장의 본성이다. 그 본성을 가지고 거기서부터 욕구가 일어난다. 그 욕구를 영이 죽은 인본주의 이성으로 받아들여 사고하고 계산하고 논리하며 살아간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이 본성에서 올라오는 욕구가 이성을 잡아버린다. 이성은 욕구에 잡혀서 논리하고 사고하고 계산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성령께서 심령을 건드려서 영적인 깨달음이 와야지 이 문제가 보인다. 그렇지 않고 메시지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3,6,11장의 본성을 못 이긴다. 안다고 해놓고 실제 삶 속에서는 본성에 다 잡힌다. 태어날 때부터 설정이 잘못되었기에 모두 나 중심의 창 3장의 렌즈를 끼고 살고 있다. 불안 동기의 렌즈를 끼고 살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셨는데도 나는 돈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늘 걱정에 잡혀 있다. 돈 없으면 믿음의 기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 이성으로 계산하고 사고하고 논리한다. 그러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돈 걱정에 늘 잡히게 된다.
3) 전도 제자는 이것이 치유되는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것이 치유되는 것을 맛보는 사람이다. 어떻게 이것이 치유 회복될 수 있는가? 기도가 되고 영의 생각으로 인도받을 때 그간 잘못 포맷되고 형성된 것이 보인다. 문제, 사건 당할 때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며, 처세했는지가 보이게 된다.
집중훈련 기간에 우리가 조인주 장로님의 간증을 보았다. 조 장로님은 그런 말을 하였다. 자신은 누구보다도 영적 문제를 잘 안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경제 문제를 댄 통 당하면서 그 생각이 무너졌다. 65평짜리 네일 샵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교회가 자기 샵으로들어왔다고 한다. 앞에 반은 샵으로 쓰고 후면에는 예배당으로 썼다. 자기는 교회가 들어왔다고 기뻐했고 좋아했는데 그때부터 장사가 안되기 시작했다. 적자가 나는데 월세만 230만 원이라고 한다. 1년 이상 적자가 나서 계속 카드 돌려막기 하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안 되었다고 한다. 거기다 개척교회 재정까지 맡으면서 이중으로 고충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어렵게 감당하고 있는데, 담임 목사님이 주일에 설교하시다가 자기를 향해 보면서, “망하면 망해뿌라. 그게 망할 일이면 망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보라” 하셨다. 그 말에 꼭지가 돌아가 버린 것이다. 뭐 망하면 망해버리라고? 지금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줘도 모자랄 판인데 망하면 망해버리라고? 그러면서 뛰쳐나가서 목사님 원망하고 하나님 원망했다고 한다. 몇 시간을 그렇게 하고 집에서 누워있는데 그때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 니가 1년 동안 못 먹었냐? 못 입고 못 다녔냐?.. 그러면서 니 문제가 돈 문제가 아니고 영적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셨다고 한다. “돈이 네게는 우상이다. 그게 니 깊은 상처 곧 장애 속에서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니는 돈 없으면 죽는다. 돈 없으면 무시당한다. 그 생각에 너는 돈을 잡고 있지 않느냐? 너는 예수보다 돈 더 믿잖아”. 그 시각에 비로소 자기 문제가 돈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영적 문제라는 것이 보여졌다고 한다. 가난하면 그 가난을 해결해 주시는 것만이 복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이 임마누엘을 잃어버리고 포맷이 잘못된 채 창 3장의 렌즈(창 3,6,11장의 본성에 올라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본주의 이성으로 늘 계산하고 논리하는 렌즈)를 끼다 보니깐 하나님은 계산에 안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조인주 장로님은 자기 밑바닥을 보면서 그 자리에서 정말 비통함으로 오열하면서 울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구나. 그리고 그날 이후에 매일 새벽 5시마다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새벽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조건부 기도가 아니라 이런 그리스도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며 새벽 기도를 했다고 한다. 새벽 기도를 하길 열흘이 되었을 때 1년 이상 내놓아도 안 나가던 가게가 나가게 되었고 네일샵을 작은 평수로 이전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손님도 오고 회복되는데 직원들 붙잡고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이 영접하고 다락방 문도 열리고 제자로까지 세워졌다고 한다. 안 들은 분은 다시 들어봐라.
결론
바울이 언약의 여정 속에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언약의 여정 속에 있다. 바울은 창 3장의 렌즈가 복음의 렌즈로 바뀌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태생적으로 창 3장 렌즈, 불안의 렌즈를 끼고 산다, 그리스도인도 그렇다. 그런데 이걸 인식 못 하고 산다. 본래부터 그랬고 너무 익숙한 나머지 자기 렌즈가 문제라는 것을 인식 못한다. 전부 환경의 탓, 남 탓 한다. 어릴 때부터 갈등이나, 억울함이나, 상처를 겪으면서 자기를 방어하는 생각과 처세만 배운것이다. 이게 얼마나 세게 셋팅이 되었는지 메시지를 들어도 렌즈 교정이 안 된다. 이 렌즈는 주님이 바꿔 끼도록 은혜를 주시지 않는 한 일평생을 끼고 살게 된다. 렌즈를 바꾸어 껴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 그럴 때 여러분은 전도 제자로 서게 된다.
'본교회메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년 11월 20일 수요예배 - 언약의 여정 속에 있은 바울2 (행 23:11~35) (2) | 2024.11.20 |
---|---|
2024년 11월 10일 주일예배 - 성령충만 받아야 할 3가지 이유(행 22:30~23:11) (7) | 2024.11.10 |
2024년 11월 6일 수요예배 - 사탄의 틈을 막아라(삼하 12:7~15) (4) | 2024.11.06 |
2024년 11월 3일 주일예배 - 체포된 바울(행 21:37~ 22:29) (4) | 2024.11.03 |
2024년 10월 30일 수요예배 - 3 가지 확실히 믿어야 할 것(딤후 1:9~12) (0) | 2024.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