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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5년 2월 16일 주일예배 -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라"(빌2:1~11)

by 별종외계오동 2025. 2. 16.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라(2:1~11)

 

지난주에는 그리스도인의 정치관에 관한 말씀을 드렸어요. 불신 정치인들은 인생의 고통에 진정한 원인을 압니까? 인생 고통의 진정한 원인을 알지 못하죠. 그래서 지금 초래된 결과와 그걸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해답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 문제는 그냥 생긴 문제가 아니죠. 진정한 고통의 원인에 초래된 결과적인 문제죠. 그래서 우리는 인생 고통의 진정한 원인을 영적 문제로 보는 거죠. 이거는 우리만 뜰 수 있는 눈이죠. 불신 정치인은 이 눈이 없어요. 그래서 영이 죽은 이성으로 잘못된 진단을 하고 잘못된 해결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잘못된 사상 속에서 세상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2:13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 되리라했다.

이것이 지금도 하나님 떠난 인간이 지금 벌이는 행동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상 종교로 열심히 웅덩이를 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상이 잘못 들어가서 공산주의 이념으로 열심히 웅덩이를 파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인본주의 학문과 기술 과학 발전이면 다 된다 이렇게 생각해서 열심히 인본주의 학문과 과학의 웅덩이를 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한 통찰력을 올바로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 필요한 기능도 갖추고 그러면서 우리는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답을 줄 수 있는 자가 되어어야 합니다. 우리는 유일하게 우리는 복음을 답으로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정치인들을 보면 두 가지 싸움 가운데 지금 이 나라가 있어요. 하나님이 없는 유물론에 근거한 공산주의 사상에 잡혀 있는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첫 번째 계열의 사람에 속하는 거예요. 그런데 정치에만 그런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모든 전문 분야에 사단은 첫 번째 계열의 사람들을 요원으로 삼아서 세상을 어두움과 캄캄함과 죄악으로 몰아놓고 있는 거예요. 거기에 여러분은 전문성을 가지고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키고 복음의 빛을 비출 사람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첫 번째 계열의 사람들의 배후에 흑암 세력은 무너지게 하옵소서. 그들이 사단의 도구로 쓰임 받지 않도록 사단의 모든 전력과 의도는 무너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 사람 인생에 하나님이 연출하셔서 복음 듣게 하시고 빛이 들어가게 하옵소서. 거기에 우리가 쓰임 받게 해 주옵소서이렇게 기도하기 바랍니다. 오늘은 이제 다시 빌립보서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1. 빌립보 교회의 문제점

1) 빌립보 교회는 갈등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분명히 성령의 역사도 체험했지만 아직 이들이 해결되지 못한 상황 곧 갱신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예요? 성도 간의 일치가 안 되고, 하나가 안 되는 문제였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건 왜 그렇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아직 자신의 창세기 3,6,11장의 본성에 입각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 따르던 제자들도 그랬죠. 12 제자도 공생애 기간에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분명히 고백까지 했어요. 그럼에도 종종 다툼이 있었어요. 왜 그래요? 그들이 육신의 동기를 가진 채 주님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정확한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까? 칭찬까지 받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정작 예수님이 죽음을 예고하시자 어떻게 됐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이 말씀을 보게 되면 베드로가 굉장히 예수님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렇지만 예수님의 안위를 염려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안위를 염려한 겁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많지 않습니까? 대부분 자기는 안 그런 것처럼 속아요. 사실 베드로가 자기 동기를 갖고 예수님을 말렸던 거예요. 그때 예수님이 유명한 말씀을 하셨어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여러분 전부 다 자기 십자가 지고 예수님을 따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십자가를 지러 올라가실 때에도 제자들은 서로 다투었어요.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도 다퉜어요. 누가 높으냐를 가지고 다퉜어요. 은혜는 받았고 분명히 구원받았고 죽는 데까지 따르겠다고 고백까지 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본성이 안 보이면은 거기에 빠집니다.

2) 세례의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된다.

세례란 뭐라고 그랬어요? 내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어요. 죽음과 살아남의 연합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어떤 내가 죽었음을 인정해야 됩니까? 3,6,11장의 본성의 나는 시퍼렇게 살아 있지만, 그러나 그런 나는 죽은 나요. 더 이상 주인이 아닌 나입니다그렇게 고백하셔야 돼요. 내 감정이 올라오는데 그걸 어떻게 참을 수 있어요? 순간적으로 얼마든지 올라올 수 있어요. 그러나 얼른 깨달아야죠. 죽었던 내가 올라왔구나. 이렇게깨달아야 가라앉습니다. 세례란 주님의 죽으심과 사랑하심에 연합되는 것이다. 이걸 진짜 아는 사람이 결국은 주객과 체질을 바꿀 수 있습니다. 죽었다는 게 인정이 안 되는데 어떻게 주객과 체질을 바꾸겠어요? 진짜 인정이 되면은 계속 바꾸게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본질을 보는 눈이 계속 열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문제 사건을 왜 주십니까? 나의 옛사람의 실상을 자꾸 보라고 주는 거예요. 안 그래요? 문제 사건이 오면 내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본성과 체질로 반응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성령님이 그것을 깨닫게 만드시죠.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에게 두 가지 권면을 하고 있어요. 첫째 권면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뜻을 합하여서 한 마음을 품으라. 너희들에게 신령한 교제나 또 위로나 이런 것이 있거든 너희가 한마음이 되라는 겁니다. 그게 복음의 합당하게 생활하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 권면은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본받으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오늘 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이 말씀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들었어요. 찬양도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얼마나 많이 불렀어요. 근데 참 안 되는데, 그런 면에서 다시 한번 빌립보서를 통해 교훈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2절에 한 뜻, 한 마음이 되라고 하셨다.

1)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한 고민은 빌립보 교회만 아니에요.

역대 모든 교회가 겪은 문제에요. 이것은 초대로부터 지금까지 겪고 있는 문제예요. 주님은 이것을 아셨기 때문에 요 17장에 대제사장적 기도를 하셨어요. 그 내용의 핵심이 뭐냐 하면 자기 백성을 보존하사 악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시고 교회가 하나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셨어요. 이게 언제 기도하신 거냐 하면 체포 직전에 이제 아버지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 내용이에요. 17장의 내용이 그러니까 중요해요. 유언 같은 기도예요. 그럼에도 하나 되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세계 교회가 그렇고요. 우리 교단도 그렇고요. 지역 교회들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성도가 진짜 다양하지만, 동일한 삼위 하나님이 주인이셔요. 신앙생활이 뭐예요? 삼위 하나님의 통치를 받은 거예요. 삼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생명 주시고 치유 회복해 주시고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시고 증인 되게까지 하시잖아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를 통해서 이제 펼치시기를 원하고 계시잖아요. 이게 하나님의 작품이 되는 거에요. 하나님의 일이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하는 고백을 날마다 하셔야 됩니다. 우리는 자기 부인만 잘해도 승리예요. 3절에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했죠. 다툼과 허영은 언제 생깁니까? 자기를 내세울 때 생기잖아요. 자기를 못 알아줘서 안달할 때 생기잖아요. 왜 허영을 해요? 겉으로만 보이려고 하는 게 허용 아닙니까? 이런 나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정말 죽어주셨구나. 이걸 인정하고 이제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주인이신 것을 믿고 의탁합니다이게 여러분의 고백이 될 때 성령님이 실제 여러분의 영과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게 되십니다. 그래서 영의 생각으로 영의 말씀으로 인도받게 하신다. 이게 바로 우리가 승리하는 방법이고요. 문제 해결 받는 방법입니다.

2) 둘째 3~4절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라고 하셨다.

우리의 죄의 본성은 절대 남을 낫게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능적으로는 저 사람이 좀 낫다 라고 인정할 수 있죠. 실력적으로 저 사람이 좀 낫다. 근데 여러분 자존심의 차원에서는 남을 낫게 여기는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나를 높이고 남을 낮추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남을 낫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낮게는 잘 여겨요. 낫게 여기라는 거예요. 이것을 여러분의 본성을 참아가면서 여러분의 의지력으로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만약에 여러분이 주의 계명을 여러분이 참아가면서 의지력으로 정신력으로 하라고 한다면 그건 종교입니다. 종교 행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요? 여러분의 본성을 인정하고, 또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탁하라는 말씀을 계속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영이니까 그리스도의 마음과 감동을 주셔요. 그리스도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생각을 갖게 해 주세요. 그걸 어디다 갖게 만드냐면, 여러분 영에 그리스도의 생각을 넣어주시고 여러분의 영에 그리스도의 평안과 여유를 주셔요. 그러면서 여러분의 심령에 은혜가 되게 만들어서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게 하셔요. 성령님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잖아요.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다는 표현이 성경에 나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시편의 인용인데 여기서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을 메시아가 그 비방을 받았다. 그런 예언입니다. 이 말씀이 실제로 예수님의 생애 실현이 된 거예요. 예수님은 사실 하나님이시잖아요. 여기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다 했는데 그분의 전 생애가 이런 삶을 사셨어요. 소위 JOY의 삶을 사셨어요. J 뭐라고 그랬죠? Jesus First! Others Second! 그다음에 You! 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 영은 이 삶을 살 때 기뻐요. 그러나 육신의 본성은 이 삶을 되게 싫어해요. 거꾸로예요. 진짜 거꾸로예요. 여러분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 진짜 거꾸로입니다. 우리가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의 형상일 때는 항상 하나님 보좌 배경과 성령으로 충만한 임마누엘을 누렸던 거예요. 영적인 기쁨과 영적인 자유와 영적인 평안이 삶을 주장했던 거예요. 근데 영적 상태가 무너지게 되니까 인간은 불안이 오잖아요. 공허함이 오잖아요. 눌림이 오잖아요. 그리고 마귀의 욕심이 들어갔잖아요. 그래서 3,6,11장의 본성으로 산다니까요. “이게 지금 고장 났구나, 심히 망그러졌구나진짜로 그렇게 느껴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걸 고수하는 인생을 사는 게 아니고, 나 중심으로 안 살고 남 배려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고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고 했어요. 근데 경제 생활하면서 저렇게 하면 내 돈 남는 게 뭐 있어, 이렇게 말할 수 있잖아요.

이번에 17차 집중 훈련에 보면 본죽 대표의 간증을 보게 됩니다. 본죽 체인점 있잖아요. 전국적으로 죽으로 히트 친 체인점이다. 그 간증 보니까 처음부터 그런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어요. 똑같이 염려 걱정하면서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던 사람인데 하나님이 이분 인생을 뒤집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적 경제관을 가지고 또 기업관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는데 얼마나 많이 선교하는지 몰라요. 보세요. 이 사람 하나님이 만져서 이렇게 된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보좌 배경을 누리고 임마누엘을 누리는 사람으로 바꾸시는 거예요. 그러면 퍼주어도 또 하나님이 채워주셔요. 일생 이걸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 많이 하나님의 형상이 깨진 거예요. 많이 사탄한테 잡혀 있는 거예요. 아니 내가 주님 사랑을 하는데, 나는 헌신도 하는데, 그래도 그 부분을 하나님이 손보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래야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통해서 주님이 증명되시는 거예요. 우리 인생이 뭐예요? 주님이 증명되도록 하기 위한 인생 아니겠습니까? 절대로 성경에서는 걱정하라는 말씀이 없어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왜 걱정하라는 말을 하겠어요? 걱정하게 되면 우리는 전부 행동 반경이나, 생각의 반경이 좁아져 버려요. 걱정이 오죠? 문제에 답답함이 오죠? 그러면 어떻게 돼요? 눌림 속에서 폭발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성령님이 가르치시는 삶을 배워야 해요. 성령님이 가르치시는 삶을 배우게 되면 자기에게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관점으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중보 기도가 진짜로 되는 거예요. 그리고 저 사람에게도 복음이 들어가야 저 인생 바뀐다. 내가 경험자잖아. 내가 이렇게 바뀌었는데 저 사람이 생명 얻는 것이 운명을 바꾸는 거다. 저 사람이 생명 얻고 저 인생이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 최고의 관심사다. 최고의 일이다. 그 일에 나를 쓰기를 원하신다. 이게 주 기도 제목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내 일 잘 못하나요? 아니요. 내 일에 진짜 진정한 동기부여가 되는 거예요. 내 일을 주님이 붙잡아주시는 이유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바꾸라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의 업을 그렇게 바꾸라는 거예요. 사도 바울은 지금 남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라고 얘기하잖아요. 그러면서 이제 너희는 이 마음을 본받으라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하면서 이제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도록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3.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1) 6~8절 이것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다.

6~8절까지가 예수 그리스도가 낮아지신 그 단계를 설명하고 있거든요. 5단계로 낮아지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의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첫째 그분이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셨다는 거. 그러니까 하나님과 사실은 똑같은 분인데 자기를 비우시는 그게 1단계다. 두 번째는 그래서 종의 형체를 가졌어요. 그게 2단계다. 창조주가 피조물 되는 건 종의 형체를 가지는 거예요. 그래서 세 번째 어떻게 됐어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대요. 사람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이 피조물과 같은 자리에까지 내려오신 거잖아요. 인간의 슬픔과 인간의 고통을 체험하는 자리까지 내려오신 거예요. 다시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본체인데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가 첫 번째 단계, 종의 형체를 가지는 게 두 번째 단계, 사람과 같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게 세 번째 단계, 그다음에 네 번째 단계가 뭐냐 하면 죽기까지 복종하셨죠. 그러니까 최고의 복종이죠. 죽는 거 우리가 제일 힘 들어 합니다. 근데 예수님은 복종을 어디까지 했냐면 죽기까지 했죠. 그래서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가 십자가에 죽으신 겁니다. 그냥 약 먹고 죽은 게 아닙니다. 어디 뛰어내려서 죽은 것도 아니에요. 이 단계를 보면. 낮아지고 낮아지고 낮아지셔서 최고의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신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에까지 죽으신 거예요. 사실 주님은 공생애 기간에도 비방과 욕을 당하셨어요.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예수님이 또 체포되어져서 이제 십자가 지기까지 얼마나 사람들이 멸시 천대를 했습니까? 온갖 말로 조롱하면서 악한 말을 하지 아니했겠습니까? 근데 그분이 하나님이시란 말이에요. 여러분이 최고 미스 월드인데, 왜 저 외모가 저래? 화장이 왜 저래? 이런 소리 하면은 굉장히 모욕이죠. 예수님께서 가장 그런 과정을 거치고 가장 참혹하고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으시면서 십자가에 죽으신 거예요.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이렇게 당하신 거예요. 우리가 그 짓을 했다니까요. 창조주께서 온갖 악한 말을 다 당하고 온갖 조롱을 다 당하고 침 뱉고 피조물에게 이렇게 당하셨어요. 그것도 자기가 하는 일도 몰라요. 자기 죄도 알지 못하는 그런 죄인들한테 고통과 수욕을 당하신 예수님. 지금 유대인들은요. 그렇게 죽여놓고도 예수님은 저주받은 거다 합니다. 왜냐하면 신 2123절에 보면 십자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니라 이런 말씀이 율법에 나와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자기가 죽여놓고 또 예수님에 대해서 저거는 하나님께 저주받아서 죽은 존재야 이렇게 여겼다 이 말입니다. 로마인들한테는 이 십자가는 가장 혐오스러운 형벌이에요. 가장 참혹스러운 형벌이에요. 5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랬잖아요. 본체라는 말은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같다 이 말이에요.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같으신 분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 말이에요. 누구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이 그리스도의 모범을,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라. 그분이 낮은 분인데 지금 이렇게 겸손하게 된 게 아니고 하나님과 동등한 분인데 낮아지고, 낮아지고 최고 낮아지신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세상의 최고 죄인이 형벌 당하는 십자가. 그 자리까지 내려오셨는데 그게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를 위한 그 마음을 본받으라 이 말이에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조금 안 맞다고 또 다른 사람이 좀 신앙생활 못한다고 우리는 불평만 하잖아요?

2) 9~11절 이것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이에요. 앞에 8절까지는 낮아지심이고 9절부터는 이제 거꾸로 그리스도인이 높아지심이거든요. 성부께서 순종하여 이 낮아지신 아들을 지극히 높이 올리셨다는 거예요. 9절에 보니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돼 있어요. 그리고 10절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 이렇게 돼 있죠. 여기서 하늘에 있는 자는 누구일까요? 천상계에 있는 천사들이죠. 이게 하늘에 있는 자들이에요. 땅에 있는 자들은 누구예요? 우리 같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면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지금 죽어 있는 자들. 지하 옥에 갇혀 있는 자들이에요. 그래서 천상 지상 지하의 전 피조물을 총칭하는 표현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무릎에 꿇게 하셨다 이거죠. 11절에 보면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이 예수님이 정말 우리의 구원의 주님이시네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이 말입니다. 5:11~12에 보면 천사들이 예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와요.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싼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종기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누가 찬송한다고요? 천천의 천사들이 지금 성자 예수님 어린 양을 향해서 이렇게 천상에서 찬양을 하는 거예요. 여기 어려운 말이 있는데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 이 생물은 천사들의 대표예요. 그다음에 이 장로들은 뭐냐 하면 구원받은 성도들의 대표예요. 계시록에 보면 24 장로 나오거든요. 그거는 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제자 더하면 24가 되거든요. 그 모든 성도들을 총칭할 때 그 대표를 24라고 그러는 거예요. 여기 장로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대표자들을 둘러싼 천사들이 이렇게 찬양을 하더라 이 말이에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는 주 예수는 주 그 찬양도 있죠. 또 엡 1:21~22절에서 아까는 하늘 위 땅, 땅 아래 모든 피조물이 예수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는다고 돼 있는데 여기는 조금 표현이 달라요.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온 세상을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바다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조금 다르죠? 여기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은요. 영계를 지배하고 있는 천사들이나 악한 영들을 말할 때 이 표현을 씁니다. 영적 존재들이에요. 이들과 또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을 일컫는 모든 이름. 아까는 공간을 초월해서 이건 시간을 통틀어서 모든 이름의 예수 그리스도를 뛰어나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여러분의 머리로 삼으셨다. 여러분의 머리입니다. 화목 교회의 머리요, 한국 교회의 머리예요. 그분이 보좌 통치하시면서 우리 안에 성령 통치하시는 존재가 되신 거예요. 믿으십니까?

근데 만약 영적 생활을 약하게 하고 여러분이 지금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돌아가는 문화에 더 잘 적응해서 살면은요. 여러분은 이런 영의 생각을 잘 못해요. 문화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고 우리가 문화를 분별해야 되잖아요. 그렇죠? 문화 정복자도 돼야 되잖아요. 그렇죠?그런데 정말 예수님은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어요. 새벽 미명에도 기도하셨어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성부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항상 성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생각을 갖지 않고 항상 성령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이 사셨으면 24가 맞아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게 24가 맞아요. 24 힘들죠. 저도 해도 오히려 사역할 때는 기도를 하는데, 밥 먹을 때 기도 잘 안 해요. 밥 먹으면서 TV 보지, 기도 잘 안 하거든요. 편한 시간에 잘 안 해요. 그냥 우리 육신의 본성을 따라서 참 편하게 지내려고 그러지, 그때 지금도 361장의 본성으로 반응하지 아니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반응하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 잘 안 해요. 여러분, 신앙생활에 대충은 아니에요.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범이거든요. 그리스도께서 성부와의 관계를, 주님이 우리와의 관계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결론

오늘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씀은, 9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이렇게 돼 있잖아요. 이러므로 가 이제 반전이잖아요. 역전시키는 거잖아요.

1. 저와 여러분이 이러므로 의 신앙을 가져야 돼요.

여러분 기독교인으로 돈 벌어서 세상에서 마음껏 쓸 수 있어요. 여러분이 벌었으니깐 하나님이 축복하신 거니까, 이제 마음껏 쓰면서 나는 마음껏 누릴 수 있어 그럴 자유 있어요. 그런데 이러므로 를 기억하세요. 지금은 죄 많은 세상, 구원 받아야 할 세상 속에, 지금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할 상황이거든요. 여러분이 지금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고 그리스도의 삶을 대행할 지금 세상이거든요. 그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이러므로 가 들어가요. 사도 바울은 철저히 이 이러므로 를 바라보면서 살았어요. 여러분이 세상에서 예수 믿어서 성공도 하고, 세상에서 잘 나가고, 세상에서 진짜 남들이 알아주고 나는 좋았어. 예수 믿은 게 진짜 나는 신났어. 근데 이러므로 가 없어요. 그러면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그리스도와 상관해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삶이 없었던 거에요. 그러면 안 돼요. 이게 진짜 망대를 바꾸는 거예요. 그냥 망대 바꾸자는 말하지 마시고 진짜 망대를 바꾸셔야 돼요. 편집하셔야 돼요. 진짜 디자인하시고 설계하셔야 돼요. 제가 그런 표현 별로 안 쓰는데 왜 제가 그런 표현을 덜 쓰냐 하면, 그런 표현만 자꾸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본질적인 삶을 건드려야 되거든요.

2. 여러분이 주어진 신분 권세를 누려야 합니다. 그래야 이러므로 신앙이 가능해져요.

여러분이 성령님의 통치를 받으면 일단 신분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이미 주어진 권세를 누리게 돼요. 정말 말씀의 권세, 기도의 권세, 흑암 세력을 꺾는 권세를 누리게 돼요. 보호자의 권세를 진짜로 누리게 돼요. 이게 누려지는 삶이 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게 됩니다. 은혜 없는데 못 따라가요. “, 나를 이렇게 바꾸시고, 나를 이렇게 회복해 주시고, 참 하나님의 내게 베푸신 아가페 사랑이 이렇게 놀랍구나라고 감동되고 은혜 될 때 그럼 제가 뭐 해야 될까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근데 이미 이 삶이 가능한 보장하고 계셔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으라 하십니다. 이러므로 의 신앙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능한 거예요. 저와 여러분이 이러므로 의 신앙이 되는 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거예요. 여러분 7망대의 축복을 진짜 누리시기 바래요. 그러면 이제 이러므로 로 들어갈 수 있어요. 이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