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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5년 3월 2일 주일예배 - 나의 관심(빌 2:13~30)

by 현상금 2025. 3. 2.

나의 관심(빌 2:13~30)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메시지를 머리로 안다고 되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머리로 아는 것 가지고는 3, 6, 11장의 영적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요. 여러분이 어떻게 이걸 극복하게 되죠? 여러분의 영적 상태가 회복되고 영적인 상태가 힘 있고 충만해져야지 여러분 육신의 생각도 이기고 또 자기 본성에서 올라오는 것도 이기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야 실제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은 많이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통치를 더 세밀하게 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정말 여러분 속에 주인으로 통치하시는 축복이 날마다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를 많이 들었거나 설교 내용이 좋다, 안 좋다 평가하는 것으로 사실 여러분의 영적 문제가 극복되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사람 평가할 때가 참 많아요. 저도 그래요. 저도 사실 많이 회개했던 부분이 어떤 거냐 하면 목사님들을 평가하는 거 있었어요. 저 목사는 목회 잘해, 저 사람 메시지 잘해, 저 사람은 안 되겠어. 이런 평가하거든요. 근데 이제 가만히 보니까 제 기준이고 제 관점이에요. 하나님의 관점으로 각 사람을 소명하시고 그 사람을 치유하고 회복해서 쓰시는 그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더라고요. 그걸 제가 회개를 했거든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딱 꽂히면 그 생각이 진짜 오래 가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한 번 저평가했으면 계속 저평가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부분이 있죠? 저 사람 좀 안 좋다 그러면 계속 저 사람이 하는 행동은 다 안 좋아 보여요. 이게 얼마나 나한테 꽂혀 있는 생각이 아닙니까? 근데 우리가 성경을 많이 깨달았다고 이런 본성이 극복 안 돼요.

어떻게 할 때 극복이 돼요? 성령께서 여러분의 심령을 건드려야 돼요. 영의 생각이 육신의 생각과 구분이 되어지고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 기도 체질이 되셔야 돼요. 영적 체질이 되어야 해요. 여러분 내가 주인 되어 사람 평가하는 거, 이거 안 된다고 그랬어요. 왜 안 되냐 하면, 주님은 여러분을 살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이 사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사람과의 관계인 줄로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그 사람하고 관계하고 있지만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주님 앞에 설 때 선악 간의 모든 것이 주님과 계산되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이 평가하시게 된다니까요. 그러니까 저 사람이 악하다고 그래서 내가 악해지면 안 돼요.

하나님의 신전 의식을 제일 많이 의식했던 사람이 구약에서 다윗을 뽑을 수 있어요. 다윗은 심각한 범죄도 했거든요. 그게 하나님 앞에 있음을 겁나게 의식했던 사람이 다윗이에요.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신전 의식을 정말로 세밀하게 느끼면서 늘 그리스도 안에서 행했던 사람이 사도바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을 범사에 인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꾸 본성에서 올라오는 게 구분이 돼요. 이게 타락된 나구나, 사단이 함정에 빠뜨려 놓은 나구나, 이런 걸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거를 극복할 수 있게 돼요.

만약에 이게 극복이 되면 어떻게 돼요? 미워해야 될 사람인데 안 미워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요. 사실 미워하는 이유가, 나한테 걸린 거잖아요. 주님께 걸린 게 아니고 나한테 걸린 것 때문에 미워하게 되거든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성령 통치하면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인데도 안 미워할 수 있고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상처받아야 하는데 안 받을 수 있어요. 내가 주인 되면 상처받아요. 그러나 주님이 주인되면 오히려 상처 주는 사람도 불쌍히 여길 수 있어요. 이게 얼마나 놀라운 삶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회복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항상 관심이 어디 있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께 있어야 돼요. 근데 막 일하다 보면 까먹어요. 여러분이 체질 훈련이 필요한데 그것 때문에 집중 훈련을 하는 거예요. 사도 바울은 정말 항상 그리스도께 관심이 집중되었어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야 하니깐 그랬어요.

 

1. 바울의 관심

1) 기뻐하고 기뻐하라

오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냐 하면 기뻐하고 기뻐하래요. 뭘 기뻐하냐? 217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재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여기 보면 너희 믿음의 재물과 섬김 위에 나를 전제로 들릴지라도 이런 말을 해요. 여기서 전제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바치잖아요? 그 제물을 죽여서 다 각을 뜨고 그렇게 하잖아요? 그 마지막 행사로 그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을 전제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기 죽음 곧 순교를 염두하고 이 말을 한 거예요.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에 내가 순교해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한다. 이게 사실은 그냥 할 수 있는 고백 아니잖아요. 정말로 이렇게 하겠다는 것을 지금 빌립보 교인들한테 밝히는 것은 그들의 올바른 믿음 생활을 독려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거예요.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바울이 그가 믿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확실하게 믿었으면 이런 고백을 할까요? 그가 믿는 성삼위 하나님을 얼마나 깊게 체험했으면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까요? 빌립보 교인이 올바른 믿음의 삶과 섬김의 삶을 살기를 얼마나 원했으며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집중이 안 되면 우리는 영의 생각을 오래 할 수가 없어요. 기도가 안 되는 것도 영의 생각으로 인도를 못 받으니까 안 되잖아요. 우리가 집중을 해야지 영의 생각이 회복되고 영의 기도가 돼요. 우리가 보통 육신의 생각 가지고 많이 살거든요. 육신의 본성에 빠져서 사는 영적 상태로 자꾸 돌아가는 거예요. 우리가 그러면 습관 절대로 못 고쳐요. 특별히 이렇게 사상이나 생각으로 이미 딱 잡혀 있는 거는 절대로 안 바뀌어요. 자기 기준, 자기 동기, 자기 삶의 방법 이런 거 정말 안 바뀌어요. 근데 집중하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통치하게 되시거든요. 성령으로 통치하시고 영의 생각으로 영의 말씀으로 교훈과 깨달음을 주시면서 통치하시거든요. 그게 자꾸 되어지게 되면 내 생각과 성령이 주신 생각이 구분이 된다니까요. 느낌과 감정도 구분이 돼요. 구분이 되니까 바꿀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누구든지 집중해야 해요. 집중할 수 있는 서밋 타임이 없는 사람들은 진짜 신앙생활 오래 해도 자기 생각 안 바뀌어요. 머리로 아는 것 가지고 3 6 11장의 본성과 그 체질이 안 바뀐다니까요. 그 본성을 가지고 그 말씀을 오히려 남 판단하는 것으로 쓴다니까요. 정말 여러분이 현장의 영적 사실을 알고 영적 문제에 어떻게 사람들이 빠졌는지를 알고 그것을 해결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내가 먼저 체험하는 사람이 돼야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은 어떻게 됩니까? 진짜로 우선순위가 바뀌게 돼요. 삶의 우선순위도 바뀌고요. 삶의 이유도 바뀌게 되고요. 삶의 메카니즘, 작동 원리, 삶의 방법도 바뀌게 된다. 그리고 안 바뀌는 모습에 대해서 이제 탄식하게 돼요. 왜 이렇게 안 바뀌지? 이러면서 진정한 탄식이 나와요. 사실 바뀌는 사람들은 진정한 탄식이 있는 사람들이 바뀌어요. 이렇게 내가 어떻게 영적 문제에 빠져 있었는데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체험하는 사람들은 눈이 바뀌게 돼요. 이젠 육신의 눈으로 인생을 안 바라보고, 나 중심으로 안 바라보고, 자꾸 하나님의 중심으로 복음의 관점으로 현장을 보고 사람들을 보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인생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2. 바울은 오늘 본문에 두 사람을 소개한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라는 사람이에요. 이 두 사람 다 바뀐 사람이에요. 뭐가 바뀌었어요? 다 바뀌었어요.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통치하게 되니까 진짜로 그 인생에 삶의 체제, 통치 체제, 삶의 메커니즘 다 바뀐 사람이에요. 관심 기준 다 바뀐 사람들이에요.

1) 디모데

디모데는 어떤 사람이에요? 2차 선교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그 팀을 만났죠? 그 후에 합류해서 바울을 수정 들면서 조수 역할, 동역자 역할을 했던 사람이에요. 디모데는 바울을 영적 아버지로 간주했고 그의 명령이면 언제나 순종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바울에게 복음을 받았고 이 복음의 축복을 바울처럼 누리게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바울이 가지고 있는 소원과 관심을 동일하게 갖게 된 거예요. 하나님의 절대 소원과 관심을 알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디모데는 항상 그리스도가 주인 되고 하나님 나라가 목적이 되고 성령 충만이 방법이 되어진 사람이 된 거예요. 그래서 19~ 21절에 보면 바울은 디모데가 어떤 사람인가를 소개하고 있어요.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알므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는데, 누구는 자기 일을 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일을 구했다는 거예요? 디모데는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이때 아마 의사 누가는 함께 있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파송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겠는가, 어떤 지역으로 가 있는 상태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판단되어요. 그런데 오직 디모데는 지금 같이 동역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놓고 늘 기도하는 거예요. 그 성도들과 또 그들의 신앙 정도, 영적 상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수행하고 있는가에 늘 관심이 있는데 그 소식을 알고 싶었던 거에요. 그래서 지금 디모데를 지금 보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와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디모데 밖에 없다는 거예요. 딴 사람들은 다 자기 육신의 소욕에 의한 일에 바빠서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 디모데 밖에 지금 보낼 자가 없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또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2) 에바브로디도

이 에바브로디도는 여러분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사람은 누구냐 하면 빌립보 교회에서 바울에게 보낸 사람이에요. 선교 헌금을 이 사람에게 맡겨서 전달하도록 보낸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빌립보 교회의 대표가 되는 거죠. 근데 이 사람이 바울에게 와서 수종 들다가 그만 병이 걸려버렸어요. 그것도 심한 중병에 걸려버렸어요. 그 소식이 빌립보 교회에 전달이 되어져서 빌립보 교회도 적지 않게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에바브로디도를 걱정하고 또 한 가지는 바울 사도에게 얼마나 염려 거리가 되겠는가를 걱정하는 거예요. 그랬는데 감사하게도 에바브로디도의 병이 나아버렸어요. 그래서 이제 에바브로디도를 속히 너희에게 돌려보내겠다는 거예요. 돌려보내는데 디모데도 같이 가도록 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바울이 에바브로디도의 중심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어요. 우리 2627절을 볼까요? “그가 너의 무릎을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의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이거는 병을 낫게 하셨다 이 말이거든요. 30그가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에바브로디도가 신실한 사람이에요. 우리가 그냥 저 사람이 신실하다, 저 사람 인품이 좋다가 아니라, 이 에바브로디도는 실제 복음의 충격을 받고 복음에 깊게 뿌리를 내려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진 사람이에요. 그래서 26절에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본 교회인 빌립보교회를 지금 간절히 사모한다는 얘기예요. 자기가 병든 것을 빌립보 성도들이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했어요. 자기가 병든 것 좀 알아달라는 게 아니고 오히려 자기가 병들어서 저 빌립보 성도들이 나 때문에 염려하고 있는 것을 염려하고 있는 거예요. 이건 타자 중심이잖아요? 그그리고 30절도 그가 지금 중병이 걸렸는데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어떡하든지 그가 바울을 수종 들려고 애썼다 이 말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게 복음으로 치유되고 복음으로 회복 되어지고 복음 누림이 되는 사람의 모습이에요. 30절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바울에게 어떻게 하든지 잘 수종 들려고 애썼다 이 말이에요. 이게 복음으로 치유되고 복음으로 회복 되어지고 복음 누림이 되는 사람의 모습이에요. 복음 누리는 사람의 특징이 전부 다 나라는 게 더 이상 걸리지 않는 거예요. 제가 이제 영적 생활을 자꾸 하다 보니까 저에게 어떤 게 느껴지냐 하면, 우리가 본성에서 이렇게 느낌과 감정과 말이 나가고 행동이 나가잖아요? 근데 그게 이제 깨달아지고 잡혀져요. 그냥 나가지 않고 내 안에 성령님이 실제 임재, 통치한다는 것을 체험하고 인도와 응답을 받게 되다 보니까, 진짜 예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통치하는 걸 기뻐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 안에 계신 주님과 성령님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하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 집에서, 오늘 아침밥 안 먹고 교회 가겠어요 라고 집사람한테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막 먹으라는 거예요. 제가 성질내듯이 그만해 그랬거든요. 그건 뭐예요? 그거는 내가 하던 습관대로 집사람한테 짜증 내는 방법이잖아요. 그 순간에 얼른 느끼는 거예요. 얼른 느끼면서 내 안에 성령님은 모든 것이고 모든 능력이 있는데, 내가 항상 성령님을 기뻐하고 기뻐하는 건데, 지금 또 이렇게 했네. 하면서 얼른 느끼는 거에요. 정말로 성령님이 여러분의 영 안에 오셔서 모든 진리에 대한 계시와 영감 감동이 가능해요. 모든 지혜, 모든 의, 사랑, 능력, 치유, 권능의 역사가 가능해요. 이 성령님의 실체를 체험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기도란 말이에요. 아까 형상이가 기도했지만, 인본주의 메커니즘으로 얼마나 제가 사는 것처럼 형상이도 그 삶이 삶에 충실한지 모르거든요. 근데 이제 이거 아닌데 느껴야 하는 거예요. 염려하면서 내가 애쓰고 안간힘 쓰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기도 안 하고 일을 술술 하는 사람은 자신이 더 교만해질 수 있어요. 전혀 스트레스도 안 받고 일을 너무 쓸쓸히 한다면 그 사람은 진짜 예수 믿기 참 힘들겠어요. 그렇게 되면 주님 안 의지해요. 오히려 눌리고 그래야지 오히려 좋은 거예요. 그래야지 자기가 발견되거든요.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진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는 전부 다 오직 그리스도가 주인이고, 오직 하나님 나라가 자기 인생의 방향이요. 목적이고 그리고 오직 성령 충만이 방법인 거예요. 성령 충만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일 잘할 수 있어요. 얼마든지 인간관계에 승리할 수 있어요. 우린 한 번씩 넘어져요. 우리가 시행착오 많이 겪어요. 근데 깨어 있는 사람은 시행착오가 보여요. 또 내가 넘어졌네, 내가 살고 있는 것이 보이잖아요. 얼마나 이런 메시지를 지금 제가 많이 하고 있습니까? 근데도 여기서 여러분이 실제 성령님의 통치 받는 기도가 안 되면 이거 전부 다 지식이에요. 그냥 알아듣는 얘기지, 여러분이 실제로 경험 안 되는 거예요. 그러나 정말 이렇게 성령님이 주인 돼서 통치하면 원망 불평할 게 없어요. 원망 불평 안 나와요. 성령님 뭐가 부족하다고 원망 불평을 하겠어요? 나는 돈 없어서 원망하고 저 사람이 잘 안 해준다고 그래서 원망하고 오해한다고 원망하고 그러잖아요. 성령님은 그런 법이 없어 전능하셔요. 전능하셔요. 전능하신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영이셔요. 최고로 회복시키시는 영이셔요. 이들은 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이에요.

 

3. 여러분의 관심이 정말 138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1) 이번에 집중 훈련에 정말 주의 은혜에 잡히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잡힌 사람은요. 잡혔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푯대를 향해서 살게 되거든요. 그런데 안 잡힌 사람은요. 교회 다녀도 자기 일이 우선이고, 육신에 빠지고, 자기가 주인 되고 항상 그래요. 일단 여러분이 제자 되기 위해서 첫 번째가 주님께 잡혀야 돼요. 은혜에 잡혀야 돼요. 사도 바울은 그냥 다메섹에서 그냥 잡혀버렸잖아요. 근데 수십 년을 믿는데도 안 잡히면 굉장히 자기가 주인으로 삽니다. 그러면 늘 성령님은 그 사람을 통치를 못해요. 주님의 은혜에 잡히기 위해서 집중해야 될 필요가 있는 거예요. 집중하다가 주님께 잡혀요.

강단 말씀을 통해서 계속 영적 눈이 열리시고요. 여러분이 이미 주어져 있는 이 권세의 축복을 진짜로 아셔야 돼요. 속지 말아야 한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여러분은 구원받는 순간에 이미 다 주어졌어요. 운명, 소속, 신분, 권세, 배경, 통치 체제 다 한꺼번에 통째로 바뀌었어요. 근데 안 바뀐 건 본성과 체질은 그대로 갖고 있어요.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바꾸면은 그게 이제는 보이고 그것이 분별되고 극복이 돼버려요. 그러니까 우리가 극복해서 승리하더라도 내가 내 본성을 아니까 교만할 수가 없는 겁니다. 내가 천사로 바뀐 게 아니에요. 100% 성령님을 의지하다 보니까 성령님이 나를 붙잡고 나를 이끄시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에 그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나는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걸 너무나 확실히 아는 거예요. 아무도 교만할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이 주의 성령님을 매 순간 인정하고 의탁하고 순종하면 본성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으로 반응하게 돼요. 우리가 얼마나 염려라는 거, 불안이라는 거, 얼마나 본성적으로 반응합니까? 근데 성령님은 절대로 염려하고 불안하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에게 성령님 의지해 보니까 기쁨을 줘요. 힘을 줘요. 감사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이김을 주셔서 권세를 누리게 하셔요. 그래서 성도들은 문제가 올수록 오히려 그리스도께 더 깊게 뿌리내리는 기회예요.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고 내가 바뀔 수 있는 기회예요.

2) 그런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소원에 나의 소원을 두고 하나님의 소원을 행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 되는 인생으로 바뀌게 돼요.

제가 자주 머리 깎는 이발관 사장님께 물었어요. 그분 불신자거든요. 요새 사장님 무엇이 제일 기쁨이 되십니까? 일부러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사장님 말씀이 트로트 듣는 게 요새 제일 기쁩니다. 자기는 트로트가 그렇게 좋대요. 트로트 여러분도 좋아하잖아요. 여러분은 제일 기쁨이 되는 게 뭐예요? 친구랑 노는 거, 재미 난데 구경 가는 거, 또 절실히 사모하는 사업의 성취, 돈 버는 거, 돈 벌어야죠. 사업 성공해야죠. 그런데 그 목적이 되면 안 돼요. 하나님의 최고 소원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회복되는 것이고 그전에 하나님 백성들이 구원 받고 회복 받는 거예요. 그래서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키는 삶을 사는 게 하나님의 소원이에요. 여러분이 그것 때문에 돈 벌고 그것 때문에 일하시고 친구랑 놀아도 그것 때문에 놀기를 바랍니다.

3) 올해 하는 일에 진짜 승리하시면서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자기 본성으로 반응하지 말고 성령님으로 반응하게 되면 기쁨이 와요. 행복이 와요. 일에 승리하고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거 100% 영적 상태예요. 전도자의 삶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다 1,38,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본성으로 반응 안 하고 성령으로 반응하게 되면 진짜 3 응답 받아요. 문제의 답이 있고, 갈등이 갱신이고, 위기가 기회가 된다 이 말이에요. 이렇게 되면 자기가 진짜 빠져나온 삶을 보게 돼요. 내가 저기서 들어앉아 있다가 이렇게 빠져나왔네 하는 게 보인다고요. 그렇게 되니까 자기가 빠져나온 현장과 자기가 빠져 있었던 처지와 같은 사람들에게 대한 전도자의 마인드가 생기는 거예요. 여러분이 생명 살리고 키우는 기쁨을 누리게 돼요. 이런 사람은요. 육신의 생활에 안주 안 해요. 아무리 부자가 되든 거기에 안주 안 해요. 세상으로 안 빠져요. 이 눈이 열렸는데 어떻게 세상으로 빠지겠어요? 그러니까 현실 문제없고 일 잘 되는 것만 바라는 사람이 절대 아니에요. 교회 봉사하는 정도에서 끝나는 생활하지 않게 돼요. 교회 봉사는 기본이에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인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말이에요.

오늘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가 그런 사람이다 이 말이에요. 바울이 그런 사람이 되다 보니까 또 그런 제자를 하나님이 붙이신 거죠. 여러분이 진짜 이번 집중 훈련의 목표를 세우세요. 나는 어떻게 집중 훈련할 것인가? 개인 목표를 세우세요. 여러분이 진짜 개인 전도와 개인 양육하려면 항상 영적 힘이 필요하거든요. 회사 일은 영적인 힘 없어도 해요. 여러분의 근면 성실로 돼요. 여러분의 기능 좋은 걸로 그냥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지치죠. 근데 진짜 생명 살리고 양육하는 이런 영적인 힘이 없으면 그 일 못 해요. 진짜 하나님 소원에 방향 맞춰서, 사람을 건드리고, 사람을 살리고, 회복하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늘 성령의 능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24시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고요. 여러분이 24가 되면 결국 25시가 나타나요. 성경적 전도 운동이 된다고요. 그래서 저는 현장 가면서 절대 현장에서 영접이 안 됐다든지 뭐 지금 뭐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든지 거기에 대해서 낙심하지 않아요.

전도 되기 어렵네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하나님이 연출 안 한 사람으로 봐요. 하나님 오늘 연출한 사람 만나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하면서 들어가요. 이런 사람이 실제 7망대를 누리는 사람이 된다고요.

여러분이 자신의 전도 규례를 꼭 세우시기 바래요. 그거 지금 할 만한 사람들은 다 세우셔야 돼요. 전도 규를 어떻게 세우냐 하면 시간을 정하는 거예요. 그리고 지역이나 방법을 정하는 거예요. 사람 아무 데도 없는 데 가서 전도하는 건 소용없죠. 여러분은 황금 어장을 찾아야 돼요. 늘 가면 늘 전도할 사람 만날 수 있는 장소를 택하는 거예요. 바쁜 사람들이 있는 데 가서는 하기 힘들잖아요. 쉬는 장소 찾아가야 돼요. 그리고 믿음의 전도를 실천하는 거예요. 믿음의 전도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게 아니고 성령님이 100% 나를 붙잡고 하시도록 의탁하는 거예요. 믿음의 전도를 실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사도 바울이 얼마나 빌립보 성도의 믿음의 성장에 관심이 간절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만 그랬을까요? 화목 교회를 향해서 만약에 사도 바울이 지금 살아있다면은 간절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을 향해서도 사도 바울이 여러분의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이런 고백을 아마 하실 거예요. 저와 여러분이 디모데처럼 정말 뜻을 같이하여 교회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현장에 대해서 하나님의 소원을 진실히 갖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의 패러다임이 바뀌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튼 정시 TV 시청 계속하는 패러다임은 안 바뀌고 있어요. 유튜브 재밌는 거 얼마나 많아요? 또 유튜브만 있습니까? 넷플릭스도 있고 또 뭐 있어요? 많아요. 요새 너무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사단이 그거 다 이용해요. 다 이용해서 어떡하든지 관심과 생각을 집중 못하도록 뺏는 거예요. 이번에 자기 집중 훈련의 목표를 정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