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심(빌 2:17~30)
1) 3,6,11장의 본성과 체질 – 말씀을 지식적으로 깨닫는 것으로 극복 안된다.
우리는 말씀을 깨닫고 은혜받았어도 내 정신력과 의지력으로 3,6,11장의 본성과 체질을 이기려고 하면 실패한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의탁해야 한다. 그러면 영적 상태가 회복되고 영의 생각이 강해져서 이기게 된다. 그러면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욕구나 생각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장모님의 예) 두 주 잘 보내시다가 돌아가셨다. 집사람 후에 넷째 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가 죽었는데 그 아이를 지키지 못해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하시더라. 처음 듣는 얘기고 믿음의 어머니 입에서 나온 의외의 고백이었다. 주님은 십자가로 그 죄책감까지도 담당하셨다고 말씀해 드렸다.
2) 신앙생활이란 말씀을 지식적으로 더 많이 아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성령의 말씀으로 심령에 교훈하고 가르쳐야 한다. 자기 창 3,6,11장의 본성을 인정하고 이런 내가 주인이 아닌 것과 오직 성령님이 주인이신 것을 날마다 의탁해야 한다. .
3) 우리는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자기 기준을 갖고 사람 평가할 때가 많다.
이것이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된다. 성령님은 이런 것도 분별하게 하신다. 제가 목사님들을 평가했다는 고백을 했었다. 그게 제 기준이고 제 관점이다. 주님의 관점이나 복음의 관점이 아니라고 했다.
→ 우리가 말씀을 많이 안다고 이런 본성이 극복 안 된다. 실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래서 영의 생각이 육신의 생각과 구분 되어지고 영의 생각이 강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의탁해야 한다. 여러분의 관심이 항상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께 있어야 한다.
1. 바울의 관심
1) 바울은 기뻐하고 기뻐하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오늘 본문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재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 전제에 대해 설명했다. 제사 마지막에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이라고 했다. 바울은 자기 죽음 곧 순교를 염두하고 이 말을 한 것이었다.
→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확실하게 믿었으면 이런 고백을 할까요? 성삼위 하나님을 얼마나 깊게 체험했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빌립보 교인이 믿음의 삶과 섬김의 삶을 살기를 얼마나 원했으면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요?
→ 이런 고백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다. 백 프로 성령님이 이런 삶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내신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령께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주객과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 그러면 계속 전환과 변화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주님의 작품이 된다. 내가 어떤 영적 문제에 빠져 있었는지 알고 거기서 빠져나와 치유 회복되면, 증인이 된다. 이 체험한 사람은 현장 보는 눈, 다른 사람 보는 눈이 바뀌게 된다. 육신의 눈, 나 중심의 눈으로 안 보고 주님의 눈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인생으로 바뀌게 된다.
2. 바울은 충성된 두 사람을 소개한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이다. 이들은 삶의 주인, 삶의 통치 체제, 삶의 메커니즘, 삶의 관심과 기준이 바뀐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1) 디모데
디모데는 바울을 영적 아버지로 간주했고 그의 명령이면 언제나 순종했다. 19절~ 21절의 사람이 되었다.“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알므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 그는 바울에게 복음을 받았고 이 복음의 축복을 바울처럼 누리게 된 거다. 그러다 보니까 바울이 가지고 있는 소원과 관심을 동일하게 가진 사역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절대 소원과 관심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항상 그리스도가 주인 되고, 하나님 나라가 목적이 되고, 성령 충만이 방법이 되어진 사람이다.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는데, 디모데는 자기 일(육신의 필요)을 구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성령의 필요)을 구했다.
2) 에바브로디도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에서 선교 헌금을 맡겨서 바울에게 보낸 사람이다. 당연히 빌립보교회에서 충성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을 보낸 것이다. 그가 바울에게 와서 선교 헌금을 전달하고 바울을 수종 드는 일까지 하였다. 수종 들다가 그만 중병에 걸려버리므로 교회와 바울에게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낫게 된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26~27, 30절에 나온다. 신실한 사람이다. 그는 복음의 충격을 받고 복음에 깊게 뿌리를 내려서 그리스도 누리는 제자로 세워진 사람이다. 그러니 타자 중심의 삶을 살 수 있었다. 복음으로 치유되고 복음으로 회복되고 복음 누림이 되는 사람의 모습이다.
→ 그래서 복음 누리는 사람의 특징이 전부 다 나라는 것에 더 이상 걸리지 않는 거다.
→ 복음 누림은 진짜 예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통치하는 걸 누리는 거다. 그래서 내 안에 계신 주님과 성령님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하는 거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영 안에 오셔서 말씀에 대한 계시와 영감과 감동이 가능하다. 모든 지혜, 모든 의, 사랑, 능력, 치유, 권능의 역사가 가능하다. 이런 주의 성령님을 주인으로 삼고 믿고 의탁하고 순종하는 거다. 구분이 되고 분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성령님의 통치를 자꾸 경험하게 된다. 인본주의 삶의 메카니즘이 고쳐진다.
→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진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는 오직 그리스도가 주인이고, 오직 하나님 나라가 인생 방향이요. 오직 성령 충만이 방법인 거다. 우리는 한 번씩 넘어진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다. 근데 깨어 있는 사람은 시행착오가 기회가 된다. 성령님이 주인 되어서 사는 사람은 원망 불평할 게 없다.
결론
1. 이번에 집중 훈련에 더욱 주의 은혜에 잡히기를 기도하기 바란다. - 잡혀야 성령님의 통치 받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이미 잡힌 사람은 푯대를 향해서 살게 된다. 은혜에 잡히기 위해서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소원을 행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 되길 바란다.
3. 자신의 전도 규례를 꼭 세우기 바란다. - 시간, 장소, 방법을 정해라. 믿음의 전도를 실행해라. 집중 훈련의 목표를 정해라. 금주에 2인 1조 팀 구성을 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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