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관계, 노사 관계(엡 6:1~9)
우리가 에베소서의 인간관계에 관한 말씀을 지금 받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말씀은 다 이해 되지만 실제 눈에 보이는 사람 앞에서 관계할 때는 올라오는 감정 느낌이 있기 때문에 사실 이 말씀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관계에서 승리하려면 철저히 영적 상태가 항상 그리스도를 인식하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그런 상태가 되어져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인간관계 말씀을 다 한 후 마지막에 영적 싸움에 관한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왜요? 영적 싸움이란 우리 영적 상태와 긴밀하게 관계성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영적인 전쟁에 대한 부분을 사도 바울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은 자녀와의 관계와 주종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주종 관계라고 하면 지금 시대하고는 안 맞죠. 지금은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직장 관계를 생각하시면 돼요. 노사 관계 또 상사와의 관계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인간관계 대원리가 뭐였어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였습니다.” 피차 복종하는 건 서로 뭐 굽신거리라 그런 말이 아니고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상대를 대하라 이 말이에요. 그러면 겸손이 나오게 되고 또 거짓이 없게 되고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러는 것이 이제 피차 복종하는 거예요. 그런 복종을 통해서 부부 관계도 하고 자녀와 관계도 하고 노사 관계도 하라. 이 말이에요. 상대방이 불신자라고 한다면 불신자는 이걸 모르죠. 철저히 불신자는 자기 욕구대로 자기 본성대로 하는 거죠. 사실 우리도 본성은 똑같잖아요. 그런데 다른 점은 뭡니까?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와 계시다는 거예요. 우리 안에 또 우리 위에 지금 통치하고 계시는 분이 있는 거예요. 그분이 심판자도 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받은 것이나 또 우리에게 주어진 것 또 우리의 행한 것이 그리스도 앞에 서서 상벌 받을 때가 온다 라고 분명히 얘기하고 있는 겁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부부 관계 또 자녀 관계, 노사 관계를 해야 하고 성도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장로님과 저와의 관계에서 저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장로님과의 관계를 해야 하고 또 장로님도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목사님과의 관계를 해야 하고 성도 지간에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주님을 놓칠 때가 참 많거든요.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본성에 입각한 생각으로 딱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내 이익과 내 자존심에 걸릴 때가 참 많아요. 주님을 생각하지 못하면 우리는 자존심에 그냥 걸려야 돼요. 주님을 생각하지 못하면 그냥 이해관계에 걸려버려야 돼요. 누가 잘했냐, 누가 못 했냐를 따지면서 내가 심판자가 될 때가 참 많아요. 비방하고 욕하고 막 나가요. 근데도 그걸 의식을 못 하는 거예요. 정말로 상대방이 잘못해서 지적할 것이 있다면 그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해야 돼요. 그러니까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상대방이 인식하도록 하면서 지적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막 성질 나서 확 지적해버리게 되면 그걸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심지어 목사님이 성질내서 얘기하면 목사님이 성질냈네. 이렇게 생각하지, 안 받아들여요. 하물며 여러분이 저한테 성질 내면 안 되죠.
그럼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뭐겠습니까? 우리는 내 동기나, 내 본성이 있잖아요. 여기에 안 빠지는 게 중요해요. 안 빠지고 주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반응하는 훈련을 해야 돼요. 계속 인간관계에서 이래야지 부부 관계가 발전이 있고 성도 관계도 발전이 있어요., 교회에서 정말 저 사람 나를 생각해 주고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관계가 피차 됩시다. 그러면 남 탓하고 다른 사람 핑계 대기보다는 자기를 점검할 때가 많아지게 되는 거예요. 부부 관계에서도 자기 점검할 때가 많아지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서는 안 그렇죠.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악해졌어,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망했어. 저 사람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보는 거야. 그냥 두면 안 되겠어.”이게 뭐예요? 세상 논리에요. 우리가 이런 논리가 너무 익숙하잖아요. 우리는 손해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예민합니까? 무시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예민합니까? 왜 그래요? 인본주의로 살아왔으니까, 내가 체질로 살아왔으니까, 내 안에 계시고 내 위에 계시고 심판자로 계시는 분을 우리가 잘 인식을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진짜 여러분이 정말 나쁜 사람, 평생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을 만났더라도 여러분은 하늘의 상이 클 수 있어요. 내가 저 남자 때문에 난 아무 것도 못 하고, 나는 평생 시달리고 살았는데 무슨 내가 상이 있어! 저게 원수지 그게 아니라니까요. “너는 진짜 내 딸이다. 내 종이다. 너는 내 영광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신다니까요. 이번에 인간관계에 대해서 정말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본성과 동기대로 살지 말라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겁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라고 주님이 우리 안에 오신 겁니다. 여러분이 그래서 항상 깨어 있어야 돼요. 항상 자기 본성과 여러분 안에 주님이 구분되셔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 말씀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1. 자녀와의 관계
1) 자녀에게 주는 교훈
오늘 이 본문은 부부 관계처럼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죠. AD 60년대 메시지라고 그랬죠.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리라.” 했어요. 지금보다 부모 순종이 훨씬 더 강력했던 시대잖아요. 동서고금에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지당한 겁니다. 그런데 이 지당한 말씀을 하는데 그 전제가 주 안에서 하라는 거예요. 자녀들아,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그 말은 주 안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주님의 통치를 받아서 순종하라는 거예요. 심령에서 하라는 겁니다. 심령에서 이 말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하라는 말과 맥락이 같은 거예요. 그러면 6장 2~3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이거는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 했어요.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격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첫 계명이라는 건 십계명 속에 이게 있다는 거에요. 출 20:12, 십계명 나오는 부분이거든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내 하나님 여호와가 내가 준 땅에서 내 생명이 길리라.” 이 땅은 어떤 땅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약속의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런 말이에요. 그다음 신 5:16의 말씀은 가나안 땅 들어가기 직전 모압 평지에서 주신 말씀이죠. “너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내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내 하나님 여호와가 준 땅에서 내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라.”고통 당하면서 오래 사는 건 복이 아니에요. 근데 진짜 그 약속의 기업이 하나님 나라잖아요. 하나님 나라에서 잘 되고 복을 누리면서 장수하겠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이거 최고의 축복이거든요. 당시로서는 최고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를 잘 섬기기를 축원합니다. 부모를 잘 섬기면 자녀들이 그거 보고 따라 해요. 저희 어머니를 다시 모시고 내려오려고 지금 애를 쓰고 있는데 안 내려오시려고 그래요. 근데 내려오셔야 될 것 같아요. 어머니 마음에 내가 가면, 내가 피해를 주는데... 늘 그런 생각이세요. 피해를 줘서 못 내려오겠다고 하시는데 저희는 아니라고, 저희에게 복이라고 계속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아무튼 자녀가 부모에게 잘하는 것이 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누리는 그 축복을 주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부모에게 하는 말입니다.
2) 부모에게 주는 교훈
4절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렇게 돼 있어요. 여기서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높인 말이 아니고 일반어예요. 우리는 어른한테 존칭어로 노여워하신다. 이런 말을 쓰잖아요. 근데 이게 존칭어가 아니고 일반어예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뜻이 뭘까요? 그 말은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또 마음 상하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부모의 어떤 경우가 자녀 마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입니까? 부당하게 혼낼 때 그래서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가 그때입니다. 자기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억울한 감정, 분한 감정, 상한 감정이 들어가 버려요. 그러면 거기에 마귀가 집지을 수 있어요. 세상은 이 현실 세계와 영적인 세계가 같이 상관하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현실 문제만 보고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상처받았어! 이렇게 주로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사단이 하는 일은 하나님과 관계를 막고요. 기도 못 하게 하면서 우울한 감정, 분한 감정을 부채질한다고요. 그리고 틀린 생각에 잡히게 한다고요. 이런 역사도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 바래요. 아이들이 자기가 잘못해서 벌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이때는 상한 감정이 안 생깁니다. 자기가 분명히 잘못해서 대단히 혼나야 하는데 부모가 이때 용서해 준다면 오히려 굉장히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 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교육 태도가 아주 중요합니다. 일관성 있는 태도, 마음으로 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애를 그냥 자유롭게 키우고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근데 애들 죄성이 있어요. 그냥 애들 좋은 대로 기르면 안 돼요. 분명히 기준 교육은 어릴 때 들어가야 돼요. 좀 크면 세견이 들어 자기가 판단할 수 있지만 어릴 때는 판단 못 하거든요.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애들이 버릇이 없어지는 경우들이 너무너무 많아요. 기준 교육이 되어야 해요. “이렇게 하면 너 맞아야 돼. 이때는 하나님이 싫어하셔.” 그래서 율법이라는 게 뭐예요? 초등 학문이라고 그랬잖아요. 어릴 때 로마 시대에 식견이 있는 가정 교사가 마치 애들을 훈육하는 교육을 한 거거든요. 그래야 애가 훌륭한 아이로 커요. 아무튼 부모 교육 태도가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몇 가지 제안을 합니다.
(1) 첫 번째 부모가 일단은 복음 누리는 부모가 돼야 돼요.
복음 누릴수록 자신에게 걸리지 않고 후대를 교육할 수 있게 됩니다. 부모가 자기 상처 속에서 올라오는 동기가 있을 수 있잖아요. 또 불안이 있을 수 있잖아요. 상처 속에서 불안이 참 많아요. 근데 불안 교육시키면 안 돼요. “야! 이러면 큰일 난다. 저러면 큰일 난다.” 남들은 별로 큰일 나는 거 없는데 자기가 불안 때문에 애들한테 믿음을 심는 게 아니라 불안을 심어요. 이런 식으로 후대를 교육해서는 안 돼요. 여러분이 진짜 문제 당했는데도 안 불안한 모습을 보여줘야 돼요. 그래서 부모가 먼저 치유가 돼야 하는 거예요. 정말 우리 부모들이 치유 못 받고 아기 낳고 또 남편과의 관계 힘든 걸 애한테 풀고 이런 경우가 옛날에 참 많았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본성과 성령님의 소욕을 구분하셔야 돼요. 이거는 내 죄의 본성이고 사단의 통로가 되는 육신의 본성이지, 성령님이 주시는 감정과 생각은 이거 아니지 구분할 수 있어야 돼요. 그게 언제 구분돼요? 평상시에 기도할 때마다 계속 보여야 구분이 되지 그거 안 보이는데 어떻게 구분해요? 자기에게 걸리지 않고 자녀 상태를 보고 도울 수 있는 부모는 굉장히 잘하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교육할 수 있거든요. 연령별로 교육할 수 있거든요. 그렇기에 부모의 영적 상태가 제일 중요해요. 영적 상태가 뭡니까? 주님을 누리는 상태예요. 성령님의 통치를 누리는 상태가 영적 상태예요.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내가 영적으로 눌려 벼르면 온갖 불안 짜증 답답함 염려 다 와버려요. 이건 성격 아니거든요. 영적 상태예요. 우리 영적 상태가 좋으면 환경도 극복을 해버려요. 물론 우리가 완벽할 수 없죠. 부모도 시행착오 많이 하지요. 부모가 시행착오를 많이 거치지만 그걸 통해서 치유 받는 기회가 되셔야 해요. 내 모습이 시행착오를 거쳐서 나타나잖아요. 내가 화 안 낼 때 화를 내버린 거란 말이에요. 내가 영적 상태가 눌려 있으니까, 화를 내게 되는구나 깨달아야 해요. 성도는 시행착오도 하나님이 선용하십니다. 하나님 떠나서 생긴 두 가지 기본 욕구가 있다고 그랬잖아요. 안전 이익의 동기, 또 명예 자존심의 동기 이 두 가지가 가장 센 욕구거든요. 이거에 다 잡혀 있어요. 왜? 하나님을 잃어버렸으니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3,6,11장의 본성이 딱 들어앉은 거예요. 영이 죽어버리니까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못 받아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오직 나잖아요. 3,6,11장 중심이 딱 돼버린 거예요. 그러면서 영이 죽은 이성으로 판단하고 그 이성이 잣대가 되어서 모든 선악의 기준이 되고, 자기 이성으로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산다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본질적으로 치유받아야 할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우리가 사실 그리스도를 진짜 깨닫고 영적 문제 알고 그리스도 누리면서 내가 발견되기 시작할 때가 진정한 치유 회복되는 시간표에요. 그전까지는 100% 인본주의 체질로 살아온 거예요. 우리 인본주의 체질이 발견되고 치유되는 거죠. 그러면 주의 형상이 회복돼요. 우리가 주님의 눈과 주의 마음과 생각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의 말을 하고 주의 뜻을 행하는 인생으로 자꾸 바꾸어지는 겁니다.
(2) 그런 사람은 자녀를 창 3장의 관점과 복음의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뭐가 창 3장 문제인지를 볼 수 있는 눈이 있고요. 복음이 어떻게 자녀를 치유할 수 있는지 알아요. 내게 경험이 있으니까 그 경험 가지고 자녀를 볼 수 있게 된다 이 말이에요. 창 3장의 문제가 어떻게 단계적으로 자녀 체질을 형성시키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사실 아이는 못 봐요. 아직 영적 생활이 미숙하기 때문에 성령의 타치를 아직 잘 못 받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주일학교에서 메시지는 머리로 받지만,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고 보여주고 하시는 것은 아직 잘 안되는 거죠. 그래서 부모가 영적 생활이 잘 안되면 자녀들을 볼 때 그냥 본성으로 혈기가 올라와서 감정과 생각으로 반응하기 쉽거든요. 이제 그런 부분이 치유되기를 바라고 자녀에게 창 3장 문제가 어떻게 연령별로 형성되는지를 보면서 도와주는 거예요. 특히 부모가 가진 장점이 뭡니까? 애들을 생활 속에서 같이 겪잖아요. 애가 뭐가 취약하고 뭐가 문제인지를 부모만큼 가장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생활 속에서 애의 약한 부분, 애가 안 되는 부분들을 같이 느끼면서 도와줄 수 있어요. 지적만 하면 항상 지적받기 때문에 애가 잘 받아들이지 않게 돼요. 지적만 하지 말고 이해하면서 도와주어야 해요. 이해하면서 “엄마도 그랬어. 이런 부분이 잘 안되었지.”말해 주는 거에요. 사실 우리도 안 되었잖아요. 이해하면서 도와주어야 해요. 애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이해해 주면 공감해 주니깐 마음 문이 제일 많이 열리죠.
(3) 아이의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영적 메시지를 해도 잔소리로 들어요.
지금 아이가 굉장히 답답한 상태로 있어요. 그럴 때 잔소리해서는 교육 안 돼요. 영적 메시지, 복음 메시지는 맞는데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안 돼 있어요. 목구멍까지 답답함과 짜증이 꽉찼어. 근데 거기다가 쑤셔 넣으려고 그러면 안 들어가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영적 상태를 도우면서, 마음 상태를 도우면서 메시지 해야 돼요. 그러니까 지금 답답하면 “자라! 그냥 그리고 맛있는 거 먹어라.” 오히려 이렇게 해줘야 되는 겁니다. “오늘 니가 답답한 일을 학교에서 겪었나 보다. 이렇게 이해해 줘야 되어요. 그냥 부모가 예민하고 불안해 하지 말고 진짜 하나님이 우리 아이를 길러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마음을 나누는 포럼을 하고 같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겁니다. 여러분, 아이와 할머니 할아버지도 마음 나누는 포럼을 좀 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안 컸기 때문에 하기가 힘들 거예요. 근데 여러분은 그래도 영적인 사실을 알잖아요. 그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라도 애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돼요. 제일 못하는 게 뭐냐 하면 늘 당위성 교육을 겁니다. 일방통행 교육을 하는 거에요. “니가 그러면 되겠어?”이렇게 당위성 교육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애가 빨리 고치면 좋은데 애가 잘 안 고쳐지잖아요. 애도 영적 메시지가 들어가고 그래야 고쳐질 거 아니겠어요? “하지 말라고 그랬지, 하지 말라고 그랬지, 야~ 이제 이렇게 나가면 어떤 애는 벌벌 떨어요. 어떤 애는 무시하고 넘어가는 거에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마음을 나누는 포럼을 하고 같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야단칠 기회가 아니라 답 줄 수 있는 기회예요. 문제가 벌어지면 애도 긴장하잖아요. 혼날 거 긴장하지, 이럴 때는 자기가 잘못했는 걸 알기 때문에 그때는 답 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예요. 오히려 메시지 받고요. 기도 응답받을 기회가 됩니다. 주일 밤에 같이 강단을 정리하고 같이 기도하면 최고로 축복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영적 체질을 만들어주는 것이 최고 승리의 방법입니다. 따라 해보세요. 영적 체질을 만들어주는 것이 최고 승리의 방법이다. 어릴 때부터 비전을 제시하면서 지도자의 소양까지 길러준다면 진짜 최고 역할을 하는 거죠. 저도 이런 역할을 못 했거든요. 제가 걱정 염려 많이 안 하는 상태니까 걱정 때문에 막 애를 잡는 거 이런 건 없죠. 사실 영적 상태 안 좋으면 부부 싸움도 하지 말아야 돼요. 영적 상태 안 좋은데 부부 싸움하면 정말 집 다 태워요. 그러면 여보 스톱! 이렇게 하셔야 돼요.
2. 노사 관계
1) 종에게 주는 교훈
오늘 본문의 주종 관계는 시대상 속에서 주는 교훈이죠. 5절,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이렇게 돼 있어요. 또 6절,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절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8절,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 앎이라”
여기 대전제가 뭐예요? 주께 하듯 하라는 거예요. 주께 하듯, 우리가 주님께 받은 계명을 갖고 행하면 주게 하듯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눈가림으로 안 한다는 거예요. 사람 머리 돌려서 겉모습만 맞추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 우리가 은혜받고 우리가 속 사람이 변화되기 전까지는 세상 처세는 겉으로 맞추는 거예요. 겉으로 예의 차리고, 겉으로 위로하는 척해 주고 그래서 나의 이익을 도모하는 거예요. 그게 처세술이에요. 마음에는 사랑 하나도 없어요. 마음으로는 그 사람을 위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 이런 내가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리 처세를 잘해도 맹점이 뭐예요? 남 사랑하는 게 안 되는 거예요. 자기 인기 관리지, 회사에서 괜찮은 사람이야 소리 듣도록 자기가 처세한 겁니다. 위에 계신 주님을 생각 안 한 거예요. 5절에 뭐라고 돼 있어요?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그러니까 회사에서 윗사람한테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주님께 받은 계명대로 하라는 거예요. 마음으로 하라는 거예요. 6절에도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또 7절에도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이렇게 돼 있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돼 있죠? 그리고 8절에도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계급에 상관없이) 주님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 앎이니라.”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아까 말한 것처럼 “저 사람이 악했기 때문에 나도 악해졌어.”이거 틀린 얘기예요. 이렇게 되면 지금 사탄한테 완전히 당하는 거예요. “저 남편 때문에 내가 인생 버렸어.” 누가 그렇게 하래요? “저 남편 때문에 너를 더 내게 뿌리내려서 너를 바꾸려고 내가 시도한 걸 니가 아냐” 이렇게 물으신다니까요? 오늘 말씀이 여러분에게 진짜 도전되시기 바랍니다.
2) 상전에게 주는 교훈
마지막으로 9절에 상전에게 주는 말씀이 있어요.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아니라” 지금 상사 내지, 사장한테 하는 얘기예요.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했는데 이와 같이 하는 건 뭐예요? 주께 하듯 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하듯 하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다 받을 줄을 알고 하라는 거예요. 상전도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원리는 똑같아요. 그러면서 위협을 그치라고 했어요. 위협은 뭐예요? 옛날 같으면 종들에게 실제 채찍질 했잖아요. “가둔다, 밥 안 준다.” 위협할 수 있거든요. 지금은 상사가 밑에 부하 직원한테 어떻게 위협합니까? 언어 폭력할 수 있어요. 언어 폭력으로 막 잡을 수 있단 말이에요. “너 그렇게 하면 불 이익 당하게 한다. 너 그렇게 하면 너 잘릴 거야.”이런 게 위협하는 거죠. 그렇게 하지 말고 뭐라고 돼 있어요?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했어요. 그러니까 네가 사장이지만 직원을 진짜 사랑하는지, 아니면 직원을 막 부려 먹는지, 악한 생각을 하는지 아신다는 거예요. 그거를 하나님이 평가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없이 내가 주인 되어서 인본주의로 사는 인생과 진짜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고 하늘에도 계시고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자의 인생은 진짜로 다른 거예요. 이런 인간관계를 우리가 안 배우고 살았던 거에요. 그렇다면 여러분과 제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3. 그리스도를 늘 인정하셔야 돼요.
1) 범사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여러분이 기뻐하셔야 돼요.
왜요? 여러분 인생을 최고로 인도하실 분이에요. 여러분을 진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치유하시고 회복하셔서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하시고 선한 일을 위해서 쓰임 받도록 하시는 거예요. 세상 살리는 일에 쓰임 받도록 하시는 그리스도가 여러분 속에 계시는 거예요. 부부 관계에서도 승리할 수 있게 만드시고, 정말 내 아내가 이상한 아내야. 내 남편이 이상한 남편이야. 그러면 더 깊게 그리스도 은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만약에 이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우리는 두 가지 동기에 철저히 잡혀요. 3,6,11장의 본성에 철저히 잡혀요. 항상 하나님은 인정 못하고, 하나님은 못 믿는 그 이성으로 살아요.
보통 믿음의 현주소가 어디 있습니까? 불신자 믿음의 현주소가 어디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삼위 하나님께 믿음의 현주소가 없잖아요. 보이는 환경, 상황, 돈, 사람 그리고 나에게 있어요. 철저히 불신자의 믿음의 현주소는 보이는 곳에 있고 피조물에 있습니다. 썩어질 것에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본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조금만 문제 생기면 또 염려해요. 본성이 개선 안 돼요. 본성은 똑같아요. 여러분 시험해 보세요. 돈 문제 생기면 본성은 똑같이 염려해요. 위기 오면 본성은 똑같이 염려해요. 개선 안 돼요. 다만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기뻐하는 그것이 발전되면 발전되는 거예요. 이게 발전돼야지 주의 계명을 지킨다고요. 인간관계에 승리한다고요.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온갖 인간 죄의 본성을 다 드러내요. 첫째가 물 떨어지고 양식 떨어지니까 못 견뎌요. 본성으로 못 견뎌요. 성령 통치 못 받으니까. 그러니까 10번 이상 여호와를 시험했다고 돼 있어요. 본성을 가지고 참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참아서 되는 거 아닙니다.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계명을 잘지켰습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전쟁이 끝나고 풍족해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영적으로 해이해져요. 영적 감각을 다 놓쳐버려요. 또 육신의 본성대로 사는 거예요. 그리고 미혹의 영에 딱 잡혀서 가나안 신들을 섬기게 된 거예요. 그래서 영적으로 못 깨어 있으니까, 영적으로 못 사니까 결국 징계 받아서 전쟁 나고 포로 된 게 이스라엘 역사 아닙니까?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에요. 그 똑같은 본성을 우리가 갖고 있다니까요. 체질을 똑같이 갖고 있다니까요.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기뻐하면서 결국 그리스도로 행복해지는 단계까지 가기를 축원합니다.
2) 그리스도로 행복해져야 돼요.
우리 엡 1장 20~22절까지 합독하겠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에요?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앞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예수님이 우리 머리잖아요. 주인이시잖아요. 지금 모든 권세를 갖고 계셔요. 영계와 현상계를 다 다스리시는 분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영적 상태가 좋아서 이분이 믿어지면 행복해져요. 맞죠?
3장 16~18절을 읽겠습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의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뭐라고 돼 있어요? 속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그리고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라고 돼 있잖아요. 그렇죠? 여러분 5분 기도해서 터가 굳어지지 않습니다. 뿌리 안 내려요. 그래서 기껏 기도했는데 성질 나는 남편 보면 또 성질이 나요. 기도 시간엔 괜찮았는데 5분 후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요. 이건 아직 뿌리가 내리고 터가 굳어진 게 아닌 거죠. 그래서 계속 기도 생활이 발전되셔야 돼요. 그리스도를 누리는 상태가 발전되는 거예요. 성령님의 통치가 발전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속 사람이 계속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됩니다. 성령의 현재적인 통치를 계속 받으셔야 됩니다. 그게 신앙생활이에요. 신앙생할 잘했다는 것이 왕년이 되면 절대로 안 돼요. 어제보다 오늘이 더 주님과 관계가 좋아져야 돼요. 그러면 여러분이 돈 때문이 아니고 환경 때문이 아니고 사람 때문이 아니고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해져요. 그 단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단계예요. 사람이 나에게 잘못해도 그거를 극복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보면서 기도할 수 있는 상태가 돼요.
결론
자신을 바로 인정하시고 더더욱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주님과의 관계에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저 남편이 저렇게 안 바뀌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 틀리고 틀리고 틀린 생각입니다. 인간관계의 대원리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주께 하듯 하라”입니다. 그 말은 주의 계명으로 각각 해야 될 일을 하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누구를 비판하고 심판하는 역할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거 얼마나 잘 하는지 몰라요. 주로 레파토리가 남 비판하는 거예요. 이제는 진짜 여러분이 은혜받은 걸 가지고 포럼하는 관계가 되기 바래요. 어떤 사람이 분명히 잘못했어요. 특별히 교역자 같은 경우는 잘못한 거를 알려줘야 될 필요가 있고, 성도 지간에도 그럴 필요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감정으로 하면 안 되고 감정이 확 올라와서 상대방한테 아무리 옳은 얘기 해도 그러면 상대방이 감정이 상하기 때문에 안 받아들여요. 전부 다같은 죄의 본성을 갖고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정말 알려줘야 한다면 진정으로 그를 위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거예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그 전제를 가지고 그렇게 말하라는 거예요. 오늘 인간관계에서 참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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