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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5년 12월 10일 수요예배 - 하나님 나라와 전도 제자 2 (골 4:7~11)

by 현상금 2025. 12. 10.

하나님 나라와 전도 제자(4:7~11)

 

서론)

1) 월요일 동 시찰 모임을 잘했다. - 권사님 두 분과 남 집사님이 잘 섬겨주어서 고마웠다. 저는 설교 준비하거나 사역할 때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사역의 주체가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나보다 교회가 세워지기를 더 원하신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주님이 더 전도 운동을 하기 원하신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능력과 방법과 계획이 주께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소원을 지금 주님이 이루고 계신 것이다. 나는 거기에 도구로 통로요 일꾼인 것이다. 그래서 그분이 제 속에서 행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잘 할까? 내가 어떻게 은혜를 끼칠까? 가 아니다. 저는 지금 이걸 사역이나 전도나 나의 제반 삶에 다 적용한다.

2) 주의 일에 합당한 그릇 -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무엇을 잘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주의 일에 합당한 그릇으로 키우신다.

3) 저와 여러분이 할 일은 이제까지 살아온 인본주의 체질을 근본으로부터 뒤집는 거다. - 내가 주체가 되었던 것을 180도 주객과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믿음과 의탁과 순종의 체질이 되는 것이다. 그게 골 2:6~7, 3:17의 삶이다. 이게 전도 운동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합당한 방법이다.

 

1. 성경의 대주제는 하나님 나라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고 했다. 하나님 백성은 이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길 갈망해야 한다.

1) 에덴동산을 창설했다. -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추방 당했다.

2) 다시 이스라엘 민족을 택했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도록 하셨다.

이스라엘도 하나님 나라라고 했다. 하나님이 왕이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백성이고 통치 수단은 율법이었다.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다. 그런데 그들이 율법의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 나라에서 추방당했다. 그게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것이었다.

3) 포로 귀환했지만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지 않았고 그들은 계속 속국 생활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열망은 정치적 메시아였고, 로마에서 독립하고, 과거의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마가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독립해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통치를 불순종하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고 했다.

4) 문제는 원죄와 영적 문제가 해결 돼야 하는 것이다.

5) 하나님 나라의 3 요소 중 백성이 문제라고 했다.

하나님은 백성부터 회복되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되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 외침이 하나님 나라였다. 3:15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했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자기 나라 회복으로 생각했었다. 그게 아니었죠?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며, 또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임하게 될 것인지를 계속 말씀해 주셨다. 그러면서 축사 사역과 치유 사역과 각종 저주를 해결하면서 이것들을 하나님 나라가 임한 증거로 보여주셨다.

6)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 백성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어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다.

부활 후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2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1단계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 속에 성령으로 임한다(17:20~21). 2단계는 재림 시 세상 심판과 함께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된다.

사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독립만 생각하고 있었지, 예수님이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했다.

 

2. 지금 많은 성도가 하나님 나라 개념이 너무 약하다

1) 왜 그런가?

이 세상에 너무 젖어 살고 있고 눈에 보이는 것만 너무 꽂혀 있다. 하나님 나라는 막연히 죽어서 가는 나라로만 생각한다. 굉장히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세상에 꽂혀 살고 있다. 세상은 노아 시대와 같은데 성도는 종교인들처럼 살고 있다. 그 만큼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를 구분하지 못 하고 있다.

2)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표를 하나님 나라에 맞추어야 한다.

푯대를 향해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골인 지점으로 살아야 한다. 현상적인 것을 목표로 걸고 살아서는 안 된다.

3)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산다는 게 뭔가?

우리가 성령의 법을 따라 주의 말씀대로 사는 거다. 그래서 불신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 통치를 실현시키는 거다. 내 가정에, 내 직장에, 내 현장에 나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거다. 그러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전도자의 삶을 사는 거다. 지상 명령을 위해서 사는 거다. 28:18~20의 삶을 사는 거다. 이 삶을 위해 절대 필요한 것이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통해 오력을 누리는 것이다.

4) 전도자의 눈이 열려야 한다.

전도자의 눈이 열리면 우리의 가치관과 가치 기준이 바뀌게 된다. 세상을 영적으로 봐야 한다. 세상은 분명히 하나님과 적대 관계, 원수 관계가 돼 있다.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이다. 2:1~3 상태에 있다. 2:13~16의 삶을 살아야 한다.

 

3. 하나님 나라 위해 살았던 바울의 동역자들

1) 두기고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다.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와 에베소서를 갖다 준 사람이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데리고 간 사람이다.

2) 아리스다고, 바나바의 생질 마가, 유스도라 하는 예수

아리스다고는 자원해서 로마 호송선에까지 같이 타고 바울과 동행했던 사람이다. 로마 셋집에도 같이 연금당했던 사람이다. 마가와 예수는 가택연금은 당하지 않았지만 밖에서 늘 찾아와 바울을 도왔던 동역자였다. 아무튼 공통적인 특징은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했고 바울의 위로가 된 사람들이다.

 

결론

1. 이들의 특징 세상 가치를 따르지 않았던 사람이다.

2. 전도자의 눈이 열렸던 사람이다. - 이 눈이 열리면 하나님의 소원에 관심과 시간과 돈을 다 맞추게 된다. 자녀들도 그렇게 키운다. 삶의 체질과 방법도 바뀐다.